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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께 공부한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___황지우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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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황지우 시인
대한민국의 시인, 교수. 본명은 황재우(黃在祐).
대표작으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뼈아픈 후회’, ‘나는 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뒤 쓰여진 추모시 중 가장 유명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의 서거 후 일주일만에 써서 경향신문에 기고했는데, 김대중을 ‘시대의 목소리’이자 ‘용서’ 그 자체로 정의하며, 근대사 속 수많은 위기를 항상 힘겹게 넘어 민주화까지 온 뒤에도, 그를 공격해온 상대에게 용서라는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한, 한국 민주화 역사의 영원한 기둥 김대중에게 다음의 만남을 약속하며, 그를 떠나보내는 산문시다. 멈추라는 뜻도 그를 보내기 위해 사람들 모두 다같이 그를 잠시 생각하자는 뜻이다. 단기간에 쓴 산문시치고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시라서, 김대중을 추종한 사람들에게는 널리 읽힌다.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황길주(黃吉周, 1917. 3. 2 ~ 1975. 7. 24)와 어머니 보성 선씨 선귀례(宣貴禮, 1920. 7. 15 ~ ?)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6년 가족들을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로 이주했고, 광주중앙국민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재수하여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미학 전공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강제로 입대했다. 1976년 제대해 복학했고 1979년 졸업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되면서 대학원에서 제적당했다. 경찰에서 고문당하고 석방된 후 1981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85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을 거쳐 2006년 3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제5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재임하다 2018년 8월 정년퇴임하고 고향에 내려가 살고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을 입선하였고 ‘나는 너다’는 시문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내용으로 한 때 논란이 되었으나 이것은 큰형인 혜당(慧撞, 1938. 12. 14 ~ ) 스님과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남동생 황광우에게 주는 헌시(獻詩)로 알려졌다.
한국 해체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으로 도표나 특수 문자, 그림들을 도입해 혁신적인 시작법으로 유명해졌다. 후기로 갈수록 연극에 관심이 많아져 연극적인 요소들이 강해지는 편이다. 가족 이력 때문에 불교적인 색채도 있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군부 독재 시절 한국의 암울함을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내용들이 많으나, 서정시도 자기식으로 구사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기도 했다. 친구 이성복과 더불어 199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많이 영향을 줬다. <나무위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문학과지성사, 1983),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민음사, 1985), <나는 너다>(풀빛, 1987),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조각 시집)(학고재, 1995),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문학과지성사, 1998), <나는 너다>(개정판)(문학과지성사, 2015) 등이 있으며, 희곡집으로 <오월의 신부>(문학과지성사, 2000), 시론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한마당, 1993)이 있다.
※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 시인은 이른바 '해체주의 삼인방'이라 불리며 기존 문단의 틀을 깨고 새로운 형식의 시를 선보이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 황지우 시인의 본명이 ‘황재우’인데 한글 타자기의 오타에 의해 황지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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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의 다른 시>
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
2) 출가하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으로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 본다.
3) 거대한 거울
한 점 죄(罪)없는
가을 하늘을 보노라면
거대한 거울,
이다:
이번 생의 온갖 비밀을 빼돌려
내가 귀순(歸順)하고 싶은 나라:
그렇지만 그 나라는
모든 것을 되돌릴 뿐
아무도 받아주지는 않는다
대낮에 별자리가 돌고 있는
현기증나는 거울
4) 나는 너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經)도 없다.
경이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구만리(九萬里) 청천(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자기(自己)야.
우리 마음의 지도(地圖)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5)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6)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7)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初經을 막 시작한 딸 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8)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나, 이번 생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 손만 댔다 하면 중고품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괘종시계가 오후 2시를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 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괘종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 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밸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면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괘종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 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 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9)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10)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을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런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까지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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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함께 공부하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 시는 황지우 시인이 한 신문사 건물에서 우연히 만난 잡지사의 선배 시인으로부터 “이봐, 황시인! 시 하나 줘. 하이틴이야. 쉽고 간단하게 하나 얼른 긁어 줘!”라며 청탁을 받은 후, 그 자리에서 5분 만에 ‘쓰윽 긁어서 준’ 시라고 한다.”
“시를 써 주고 시인은 잊어버리고 있다가 성우 출신 김세원 씨가 방송에서 낭송한 뒤로 제대로 뜬 시가 되었다.”(권순진 시인의 시평 중에서)
1) 시의 이해
이 시는 사랑과 기다림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으로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능동적인 사랑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제 : 간절한 기다림과 만남에 대한 강한 의지
▶특징 :
- 청각적 심상(3행)과 의성어(쿵쿵, 바스락)를 사용하여 기다림의 초조함을 표현함.
- 동일한 시구의 반복으로 운율을 형성했다(오다 / 가다, 너였다가).
- 역설적 표현을 통해 능동적 기다림의 자세를 강조함.
(14행~15행 _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19행 _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맨 끝 행 _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설의적 표현(7행 _세상에서 가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현장감을 느끼게 함(쿵쿵거린다, 온다, 간다, 닫힌다).
- 종결어미 ‘_다’를 여러 시행에 사용했지만 마침표는 맨 끝 행에만 사용. ⇒ 시인의 의도일까, 입력 과정의 실수일까?
- 이 시의 끝에는 착어가 있다.
“착어(着語) :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언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 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 “착어(着語)란 불가에서 공안(公案)에 붙이는 짤막한 평(評)을 가리킨다.”(<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 휴머니스트, 2015년)
⇒ 착어의 역할 :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며, 작품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착어를 통해 기다림의 대상인 ‘너’의 의미를 확대하고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해 보게 한다.
※ ‘착어(着語)’와 같은 형식과 의미로 시 전문지 등에서는 ‘시작 노트’ 또는 ‘시작 메모’를 많이 사용한다.
2) 시의 구성
1행~5행 : 설레는 기다림 / 6행~12행 : 간절한 기다림
13행~15행 : 적극적인 기다림 / 16행~22행 : 만남에 대한 강한 의지
3) 시상 전개
소극적 태도(그 자리에서 기다림과 초조함) ⇒ 마음의 변화 ⇒ 적극적 태도(너에게 감)
4) 시대적 배경과 상징성
이 시를 두고 일부 해석에서는 이 시의 ‘너’를 민주화나 자유화 같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황지우 시인이 군사 독재 시절을 살아가며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이력을 고려할 때, ‘너’는 단순한 개인이 아닌 사회적 이상을 상징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시의 깊이를 더해 주며 기다림을 통한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 시적 대상인 ‘너’ : 표면적 대상 = 사랑하는 사람 / 시대적 대상 = 자유와 민주주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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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는 저와 함께 세 번째 겨울을 지나고 있는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창문 가까이 두어도 겨울 해가 짧은 탓인지 잎은 빛을 잃었고 줄기도 시들시들합니다. 다만 지난해 겨울에도 지지난해 겨울에도 식물은 꼭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를 대하는 저의 마음. 혹여나 완전히 시들어 죽게 되는 것일까
이제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이 식물은 이런 방식으로 겨울을 보낸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분명 새봄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 생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춥고 척박한 날들이 이어질수록 기다림은 푸르고 무성해지는 듯합니다.”
___<박준 시인>, 『중앙SUNDAY / 시(詩)와 사색』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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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는,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랑론’을 읽어냈다. 바디우는 사랑이 둘이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라는 통념을 거부하고 ‘사랑이란 두 자유의지를 갖춘 사람이 둘로서 서로 마주 보는 것’이라고 정의하는데, 황지우의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기다리는 동시에 ‘너’에게로 가는 것은 ‘둘’로서의 사랑을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우디의 말처럼 사랑이란 언제나 ‘둘’의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를 기다리는’ 것 혹은 ‘내가 너에게 가고 있는’ 것이 모두 가능한 것이겠지요. 만약 기다림이라는 애끓는 마음이 더는 생기지 않는다면, 사랑은 이제 곧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이란 계속 기다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아마도 시인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당신이 곁에 있어도 당신이 항상 그리운 것’이 사랑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___<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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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누구나 기다림의 애절함을 느끼는 건 아니다.
시인은 도대체 누구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부모는 가슴 시리고 아픈 기다림의 애절함을 겪지만, 집을 떠난 자식은 부모의 간절한 기다림을 알지 못한다.
“그 자리”
물리적 자리가 아닌, 존재의 자리다.
자리는 앉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자리가 되는데, 지금은 자리만 남아 있다.
그 자리는 내가 앉아야 할 자리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앉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가 내게 맞는 자리에 앉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기로 한 적이 없는 자리이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는 오기로 한 자리다.
“문”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나는 양의 문이니”
문 또한 물리적인 문이 아니다.
문은 관계의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다.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아흔아홉 마리는 그 문을 통해 출입하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는 그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존재의 자리, 존재의 문.
나는 존재의 문으로 들어가,
존재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아무도 없는 자리, 보이지 않는 문,
그곳에서 누군가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