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제주에 내려온 이후 오늘 처음으로 하루 쉬다.
오전엔 집 청소와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점심식사 마치고 바로 집을 나섬.
이 곳에 와서 그간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 좋은 기회를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
아라동 제주여고 인근에 위치한 집에서 약 4.5km 떨어진 민오름을 오르기로 한 것.
오름은 일반 산과는 달리 한라산의 기생화산을 말하는데 제주에는 368개가 있다고 한다.
제주에 있으면서 지금 생각으론 그 모두를 오를 계획이지만 일단 집 가까이 있는 것부터 시작,
연북로를 따라 가다 만난 한천 계곡의 모습. 엊그제 비가 와서 제법 물이 있다. 제주의 계곡은 모두가 암으로 이루어져 비가 오면 갑작스레 물이 넘쳐 오르고 비가 그치면 금방 빠져 나가는 게 그 특징.
1시간을 걸어 만난 민오름 입구. 해발 251.7M 이니 서울 남산(270M) 정도의 높이. 그래도 둘레는 3km.
제주 올레길과 더불어 요즘 오름이 관광객들과 현지인으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숲 향기가 짙은 호젓한 길을 오르자니 절로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더불어 민오름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이 있더라는. 제주의 대표적 소나무인 곰솔이 멋드러진 풍경을 연출하고 숲 향기로 인해 코는 행복하다.
초입에서 약 20여분 오르자니 이렇게 정상을 만난다. 정상엔 간단한 체육시설이 조성되어 있더라는.
정상에서 바라 본 아라동과 제주대학교 일대의 모습. 날이 흐려 한라산은 잘 보이질 않고.
민오름을 내려오자니 그 길이 바로 한말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제주 유배시절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면암 유배길로 이어지더라는.
면암 유배길은 민오름 아래 정실마을에서부터 방선문 계곡까지 5.5km인데 이미 5km 이상을 걸어온 상태지만 그냥 돌아올 수 없어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간 갈고 닦은 걷기 본능 어데 가겠는가? ㅎㅎ
최익현 선생은 대원군의 그릇된 정책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 결국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실권을 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후에 상소문의 일부 내용이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이유로 대신들의 탄핵으로 1873년부터 2년간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후 정계에 다시 복귀하고 일본에 반대해 의병까지 일으키나 결국은 대마도로 또다시 유배를 가 향년 74세로 순국하신다.
일생에 한번 유배가는 것도 기구한 운명인데 두번씩이나 유배를 가니 한말 나라의 정세가 참으로 급변하고 위태로웠단 반증.
면암 유배길을 걸으며 만나는 밀밭. 누런 황금 들녁이 마치 가을 분위기 같다. 참새와 허수아비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더라는.ㅎㅎ
혼자서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 중간중간 헤매는데 때마침 나타난 이정표가 반갑다.
최익현 선생은 제주 유배 기간 중 한라산에도 오른 모양이다. 선생의 한라산 유람기 전문이 돌에 새겨져 있더라는.
이제 1.2km 남았다. 지금 시간 오후 3시 15분. 대략 12시부터 걸었으니 이미 걷기 시작한 지 3시간 경과. 다리가 쪼매 아프다.
오후 3시 30분에 드디어 면암 유배길의 종착지인 방선문 계곡에 도착. 얼마나 아름다운 계곡이면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 했을까?
방선문 계곡의 모습. 그저께 내린 빗물이 어느새 많이 빠져 나간 상태. 계곡 바닥과 측면이 모두가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눈 크게 뜨고 신선을 찾아보았으나 잠시 외출하셨는지 내 눈엔 보이질 않더라는.^^
바위의 크기가 집더미 보다도 더 크다고 생각하는 순간, 물 소리가 첨벙첨번 나서 돌아보니 야생 고라니가 물을 건너 뛰어가더라는. 그 모습이 얼마나 잽싼지 미처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암튼 이 곳이 청정지역임을 증명하는 듯. 그나저나 저 큰 바위들은 한라산에서부터 굴러 내려 왔을까?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점차 개여서 구름 사이로 살짝 모습을 내민 한라산. 그 모습을 담아 봤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약 5시간 동안 중간중간 쉬며 15km 정도를 걸었다.
모처럼 걷기 운동을 제대로 하니 장딴지가 살짝 뻐근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뿌듯하다.
언제 또 쉬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암튼 쉬는 날은 직접 걸으며 제주의 숨겨진 비경을 틈틈히 찾아 나서고자 한다.
돈 벌랴, 나 싸다니랴 암튼 바쁘다 바빠.ㅎㅎ
아참! 집에 와서 인터넷을 조회해 보니 제주에 올레길과 더불어 오름을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최근엔 올레길에 이어 유배길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고.
대표적인 유배길은 추사 유배길, 면암 유배길, 성안(제주목 관아에서 관덕정까지의 약 3km의 제주 관내)유배길, 이렇게 세 곳이라 하니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