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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기행(紀行)이란 자신이 여행한 곳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감상을 글로 남기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그렇게 남긴 글을 기행문이라고 하며, 시 형식으로 창작한다면 그것이 바로 ‘기행시’가 되는 것이다. <유럽 도시 여행>이라는 이 책의 기획 역시 처음부터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저자가 답사한 곳의 다양한 정보는 물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상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미 1편에서 그리스의 아테네를 비롯한 4곳의 도시를 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2권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함하여 4곳의 도시를 기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2권에 소개된 도시는 빈을 포함해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체코의 프라하, 그리고 독일의 소도시인 드래스덴 등이다. 1권이 출간된 지 3년 정도 지났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서 2권 출간을 두 해 넘게 늦추었다’고 그 사연을 밝히고 있다. 2권 서문의 제목이 ‘오래된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서’라고 제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오랜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도시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의미라고 짐작된다.
실제 첫 번째로 소개된 오스트리아의 빈은 흔히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평가되고 있으며, 지금은 ‘유럽의 첫손꼽는 문화 예술 도시로 도약’했다고 강조한다. 아마도 저자에게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던 듯, 그 제목을 ‘내겐 너무 완벽한’이라고 붙인 것으로도 충분히 저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의 내룍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주변국들의 침략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하며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처지를 비교해 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비엔나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엔나커피’의 사연을 거론하기도 하고,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왜 이 도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여행 전에 오스트리아와 빈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저자의 기행이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두 번째 도시는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로 흔히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음악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며, 역시 내륙에 위치한 지형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외침에 시달려야만 했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저자는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 ‘슬픈데도 명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데,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딛고 일어서 지금은 역사의 밝고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특히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뉴브강 가에 나치에 의해 강으로 내몰렸던 유대인들의 구두 조형물 사진과 그 사연이었다. 저자 역시 ‘강변의 구두는 유대인들의 가슴 미어지는 참극과 헝가리 사람들의 비워버리고 싶은 범죄행위를 되살’리는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고 해석한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오히려 ‘일본에 의해 한국이 근대화가 되었다’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신친일파’들이 뉴스거리가 되는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체코의 프라하는 세 번째로 소개되는 도시이며, 여기에는 ‘뭘 해도 괜찮을 듯한’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구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하다가, 좌절되었던 역사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명명했던 슬픈 역사가 떠올려지는 도시이다. 이 사건은 밀란 쿤데라에 의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의 배경으로 제시되었으며, <변신> 등의 소설로 유명한 카프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 도시인 드레스덴은 독일의 소도시로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 의해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다가 재건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라고 한다.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발표했던 장소로, 그 이후 대북 적대정책으로 인해 그 구상은 단지 구호에 그쳤다는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드레스덴은 저자가 유학하던 시절에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이라서 가볼 수가 없었고, 이번 기행의 여정지로 선택해 방문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의 도시 모습은 2차 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철저히 파괴된 현장을 ‘복원하거나 신축’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름조차 낯선 도시이지만, 저자는 이곳에서 과거의 비극을 딛고 일어선 도시의 현재 모습을 느끼고 싶어 선택했을 것이라 이해된다. 2권에 소개된 4곳의 도시들을 아직 가보지 못했기에, 저자의 바람대로 ‘코로나19 사태의 끝자락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된다면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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