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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염상섭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삼대>는 일제 강점기 한 집안의 3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시 신문에 연재되었으며, 총 215회에 이르는 장편의 분량의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출간할 당시 신문 연재소설을 여러모로 수정하였기에, 어떤 것을 저본으로 하는가에 따라 <삼대>의 텍스트는 최소한 2종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이 책은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 신문에 연재될 당시의 삽화를 그대로 전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장편의 분량에 꼼꼼한 주석과 삽화는 물론, 작품에 드러난 당시 사회의 면모를 소개하는 이른바 ‘곁텍스트’를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배치하고 잇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생활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전환기’라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삶의 방식을 추종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삼대>의 배경이 되는 일제 강점기 역시 그러한 ‘전환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3대의 구성원 중에서 제1세대인 할아버지 ‘조의관’은 대지주이자 막대한 재산을 소요한 인물로 이미 시효를 다한 양반으로 행세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이고, 가문 혹은 재산의 존속을 위해 분투하는 ‘구세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족보를 사서 양반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형식상으로는 신분질서가 이미 깨어졌으나, 여전히 양반이라는 위세가 허용되던 당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인식이라고 이해된다.
2세대인 아버지 ‘상훈’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할아버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새로운 시대의 의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학교 설립에 관여하고 교회 사업에 힘쓰는 지식인으로 자부하지만, 실상 부친인 조의관의 재산을 이용하여 술과 노름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에 빠져든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아들과 동창인 홍경애 사이에 태어난 서자가 있으며, 여학교를 갓 졸업한 의경이라는 인물과 새롭게 살림을 차리는 등 축첩을 자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손자인 3세대인 ‘덕기’는 일본에 유학 중인 청년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제시되어 있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사회주의 사상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인물(심퍼사이저)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렇듯 3대에 걸친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1세대인 조의관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재산 상속에 얽힌 사건들로 전개된다. 3대에 걸친 조씨 집안에는 1세대인 조의관의 첩 ‘수원댁’과 2세대인 상훈의 본처, 그리고 3세대인 덕기의 처와 누이동생 덕희 등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재산가인 그들의 집안일을 돌봐주는 다양한 인물들도 등장한다. 여기에 덕기의 지인인 병화는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홀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또한 덕기의 동창이자 2세대 상훈의 아들을 낳아 키우는 홍경애, 그리고 병화의 하숙집 주인 딸인 필순과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이 그려내는 모습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구성도 인상적이지만, 작품에 형상화된 일제 강점기 서울(경성)의 모습들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세밀한 필치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각 항목의 말미에 각 인물들이 등장하는 배경을 삽화로 수록하여, 당시 서울의 위치와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낭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의 말미에 ‘<삼대> 깊이 읽기’라는 항목으로 작품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시하고, 염상섭과 삽화가인 안석주의 연보를 첨부하였다. 이어 작품의 해설과 신문에 연재되었던 ‘정본’을 재구하기까지의 상황을 제시한 간략한 글들이 수록되었다. 작품 원문의 해당 부분에 수록된 주석들을 마지막에 따로 모아 ‘주석 모음’을 붙인 것 또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192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 하의 서울 풍속과 함께 당대를 살아가던 인물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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