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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제17구간 (생명고개~장척산~동신어산~매리2교까지)
<첫째 날> 생명고개~장척산~동신어산~매리교까지
...............언 제 ; 2014년 5월 17일 (경남 16~26도, 맑음)
...............누구와 : 구본영, 박종관, 박찬익, 부길만, 이정일, 황성자 (이상 6명)
...............산행시간 ; 총 5시간 15분
...............휴식, 식사, 알바 ;
<06;30>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김해행)출발
<08:47~09;05> 선산휴게소 휴식
<11;00> 김해고속버스터미널 도착
12;00 생명고개 출발/김해시 상동면 묵방리 장척로 462번길196(신어산장)
12;14 임도 1.2.3
12;17 터실 앞산(405봉)/표지판/급 좌, 내리막
12;38 장척산(531m)/우/백두산5.1km, 롯데야구장3.2km 표지판
12;45 양쪽으로 백두산 표지목/직
12;48 시례북산(522.6m)
13;05~13;40 점심
13;58 예덕산(481봉)/표지판/우
14;05 안부삼거리/직
14;12 선무봉(478m)/백두산 갈림길/급좌
14;25 안부삼거리/우
14;32 감천고개/안부사거리
15;00~15;13 새부리봉(499m)
15;16~15;20 전망바위
15;40~16;00 동신어산(459.6m)/정상석/낙남정맥 출발 및 종착지
16;30~15;50 사실상 마지막 봉우리에서 휴식
17;00 중앙고속도로 밑 통과
17;15 매리2교 도착/낙남정맥 완주/김해시 상동면 매리 113-12
<18;30~19;40>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및 묘소) 방문
<20;20~22;40> 진해 회타운에서 식사 및 노래방
<23;00> 모텔 투숙
<장갑생> 주소;창원시 진해구 이동 6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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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드디어 마지막 낙남정맥 종주 날이다. 한 달 만에 만나는 일행들 모두가 상기된 얼굴을 띠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속속 도착한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한 김해행 고속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 진입한 후 여주휴게소를 지나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 접어들어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아침 9시가 되어갈 무렵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선산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황별표 유부초밥과 김밥이 배분된다. 밥도 그냥 맨밥이 아니고 여러 재료를 섞어 지은 밥이다. 국물대용으로는 홍삼 달인 진액에 매실엑스 등을 가미한 독특한 맛이다. 여기서 남정네들이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도 고맙다는 인사 대신 오히려 다음엔 이것 싸와라, 저것 싸와라 하며 염치(?)가 없다. 너무 황송해서 일까.
버스는 다시 11시 정각에 김해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장갑생 기사분은 다른 일정으로 못 나오고 대리로 최성길(010-9066-2-54)이라는 분이 픽업하시는데 이 분도 인상이 무척 좋아 보인다. 김해시내를 벗어나 나밭고개를 거치고 장척계곡을 따라 생명고개에 도착하니 낮 12시이다. 드디어 낙남정맥 마지막 코스를 진입하는데, 춥지도 덮지도 않은 계절의 여왕 5월이다. 그러나 중순을 지난 오늘의 날씨는 일찍 찾아온 더위 탓에 벌써 26~27도까지 가리킨다.
이곳에도 백두산이 있다. 민족의 영산인 북한과 중국의 경계에 있는 白頭山만이 아니다. 이곳의 백두산은 김해지방에 대홍수가 났을 때 산봉우리가 100마(碼)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데서 명명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산경표상의 끝점인 북쪽의 백두산(2,744m)과 대칭되는 시발점의 산이라는 뜻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풍수 지리학적인 의미에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백두산 표지목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가 임도 3개를 지나 출발 20분 쯤에 405m의 터실 앞산봉에 오른다. 코스는 다시 좌측으로 급하게 떨어졌다가 531m의 장척산에 올라서니 백두산 5.2km, 롯데 야구장 3.2km의 표지목이 반긴다. 장척(長尺)이란 풍수지리설대로라면 산돼지가 시내로 내려오는 모양(산저하계형)의 명당으로서 자손이 번성하고 부귀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니 투향할 만한 자리가 아닐까.
12시45분, 표지목에는 백두산을 가리키는 방향이 두 갈래이다. 우측 방향이 약간은 짧은 코스이지만, 그렇다고 직진 오르막능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걸음을 떼는 순간, 부교수 발굽 뒤 2~3cm 옆에서 까치독사가 따리를 틀고 있다. 하마터면 밟을 뻔 했다. 스틱으로 건드려 보니 표독스럽게도 앙탈을 부린다. 그러나 살생하기를 거부하고 방생을 하는데, 유별히 겁이 많은 미호씨,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12시 50분에 522.6m의 시레북산을 지나는데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오후 1시가 넘었다. 그늘진 명당(?)을 찾아 구미호표 점심식사를 위하여 핑크색 보자기를 편다. 상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 쌈밥에 양염돼지불고기를 볶아 만든 반찬들이다. 뭐니뭐니해도 산행할 때 먹는 쌈밥의 감칠맛이란 俗世에서 먹는 것하고는 비교되지 않는다. 여기에 커피와 녹차까지 곁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푸근하고 여유롭다. 특히 미호씨의 요리솜씨는 ‘햇살 칼국수 & 김밥’ 의 前途에 희망을 보는 듯하다.
오후 2시에 예덕산을 넘는다. 그리고는 선무봉 표지목에서 백두산 쪽이 아닌 매리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후 2시 30분에 감천고개에 내려선다. 이어 새무리봉을 지나 절경 좋은 암봉에 올라서니 주나바라경(?)이 저절로 나온다. 파란 하늘이 더욱 선명해 지고, 가슴까지 뚫리는 듯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니 ‘낙남정맥 여기서 시작 되다’라는 동판이 박힌 동신어산에 닿는다. 3시 40분이다.
만감이 교차되는 459.6m의 동신어산 정상, 전망도 뛰어나다. 낙남정맥 완주 기념 현수막을 내 걸고 차례차례 카메라에 담는다. 단체사진도 찍고, 개인 사진도 찍고, 현수막을 몸에 감고도 찍고, 펴고도 찍고, 둘이도 찍고 셋 이도 찍고, 지난해 9월 28일에 출발하여 9개월째, 17구간으로 나누어 오늘 그 완주의 끝을 보는 순간이다.
우리나라 主脈들을 엄밀히 따져보면 바다에서 끝나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부산·경남지역의 산꾼들은 동신어산이 낙동강 유역 안의 산줄기이고, 바다에서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主脈이 아니라는 논리를 편단다. 그래서 낙남정맥은 영신봉과 불모산, 보배산(보개산), 봉화산을 지나 부산 강서구 녹산수문에 이르러 꼬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주장이 서로 상존하고는 있으나 여태까지 동신어산이 낙남정맥의 시발과 꼬리라는 것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 동신어산 정상에는 ‘이곳에서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한반도 산줄기의 끝과 시작이라는 지위가 엄연히 부여된 곳이다.
내려다보이는 낙동강 하구의 건너편이 바로 부산시 양산의 물금마을이다. 승학산, 백양산, 금정산 고당봉, 오봉산, 토곡산, 천태산이 뚜렷하고 지금은 부산 지하철이 이곳까지 연장, 운행되고 있단다. 농경지였던 평야가 이제 주택이나 상업 용지로 바뀌었다지만 낙동강 하류의 경우엔 해수면 상승으로 안부가 자주 물에 잠기기도 했었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경관을 비라보고 있노라니 지난 17구간까지 있었던 힘들고 고달팠던 일는 어디가고 보람과 추억거리만 회상된다.
드디어 오늘이 그 마지막 완주의 날이다. 동신어산을 내려와 ‘매리’란 동내는 창원시에 있는 큰 회사 하청 공장들과 폐품 처리 시설로 매연만 자욱하다. 그 옛날 ‘고암나루터’란 낭만적인 명성은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흔적이 없다. 우리는 조그마한 마트 의자에 둘러 앉아 맥주병을 따서 낙남정맥 완주를 자축하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인 봉하마을로 핸들을 꺾는다. 그리고 내일은 김해 일부와 통영시를 탐방할 계획이다.
그동안 同居同樂을 함께했던 부길만 님, 박종관 님, 박찬익 님, 구미호 님, 황별 님 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과 더불어, 지금까지 근 10년 8정맥을 완주하는 동안 잘못 되고 기분 나빴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들만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낙동정맥도 더불어 함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지나온 낙남정맥의 추억들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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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의 첫 구간, 지리산 세석산장, 영신봉을 지나 장쾌한 지리산 절경을 전망하며 석문을 지나고 부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대나무 숲 속을 연신 미끄러지고 엎어지기도 했다. 어둠에 청학동매표소를 내려와 ‘고향식당’에 짐을 풀고 생쥐처럼 오돌 오돌 떨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그러나 그 이튼 날 역시 천둥번개 속을 헤치며 일정을 끝까지 마무리 하고난 뒤에 청학동 마을을 찾았던 일이 더욱 새롭기도 하다.
2013년 10월, 3~4구간 때에는 최치원의 전설이 깃든 고운동을 출발하여 산죽지대를 벗어나 길섶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느라 進行에 차질을 빚었다. 황별씨가 도토리를 주어가며 늑장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 이튼날 백토재를 지나 안남골 고개에 왔을 때 뱀을 만난 구미호씨는 유별나게 뱀 겁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산행을 마치고 사천의 다솔사 탐방을 할 때에의 일행 전부가 만족해하는 모습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냐’ 며 푸념하던 박종관 님, 저녁이 되니까 옛 自社 지사장이었던 이현서 님을 불러내어 진주 토박이 장어 요리를 스폰서하게 했다. 그 다음날 고미동을 지나 감나무농원 능성이를 넘을 때 마침 마주친 연세 드신 멋진 할머니는 구기자와 홍시를 먹고 가라 던 기억이 다시금 새롭다.
해도 넘어간 스산한 부련이재, 싸늘해진 아스팔트길 따라 ‘장자골 펜션’ 숙소에서 토종 백숙에 유기농 반찬을 잔뜩 시켜놓고 절반도 먹지 못해 아까워하던 제7구간, 갖가지 정원수와 야생화길을 거닐며 농촌의 풍요함을 느낄 때는 부럽기도 했다. 그 이튼 날 수많은 글쟁이들이 들려주는 경남 고성의 진산 681.4m의 無量山을 보고 이 산이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았다느니, 헤아릴 레야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다느니, 또 어떤 이는 ‘다정다감하면서도 개성이 있는 산세가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농부의 미소’라고 까지 표현했던 산이 제8구간의 무량산이었다.
해발 484m의 백운산 정상에서의 정오, 남해바다의 절경을 한 눈으로 감상할 땐 세상만사가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발이 불어 터지도록 걷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담티재에 도착하여 청광리 민박집에 신세를 질 때 노부부가 베푼 소박한 인심은 세상사는 인정을 느꼈다. 요즘 농촌의 노인정에는 60대 늙은이는 ‘ㅈ나게 설거지’만 한다는 그 아지매, 다시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꽁꽁 언 새벽 아침을 2회에 걸쳐 승용차로 담티재에 데려다 주면서 ‘다음에 시간되면 꼭 놀러 오이소’,라고 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아니나 다를까, 황별씨 특유의 다정다감한 文體로 에세이집에 발표하여 세상에 소개하는 소재가 되기도 했던곳이 제9구간이었고,
제10구간의 발산재가 스님의 탁발 모양이라고 하지만,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를 보았던 곳이다. 특히 高從厚의 신도비 앞에 섰을 땐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한양(서울)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전란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중 하던 때 의병장 高敬命은 두 아들과 함께 칼을 들고 의병을 일으켰으니,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수령들은 도망치는구나.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어찌 제 몸을 아낄 수 있으랴.
오직 의(義)로 돌아가라.”
유명한 고경명의 馬上檄文이다.
오곡재가 까마귀 골짜기라는 것도 모르고 무심히 烏谷재를 출발했던 11구간, 南高北低의 함안지방이다. 국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餘航山의 유래를 듣고 조상의 슬기에 감탄도 했다. 그러나 6.25전투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19번이나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장이 바로 이곳의 서북산 전투였으니 나라를 지킨 호국영영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제12구간에서의 오후 1시, 마산 남해의 앞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무한한 나래를 펼친 761.4m의 舞鶴山, 산 이름 그대로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춤추는 듯하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대곡산(516m)과 더불어 장관을 이루는 곳. 저녁 엔 마산 어시장 ‘감포회집’의 미인계에 끌려 한잔 걸치는 계기가 되었다.
제13구간에서는 오후 3시에 天柱山에 오른다. 인근 산 중에서 이 산이 가장 높아 하늘[天]을 떠받치는 기둥[柱]이라는 뜻이 담긴 산이다. 천주산을 청룡산, 담산, 작대산 등으로도 불리기도 하고 또 이곳 주변엔 무학산, 정병산, 장복산, 용제봉 등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하루 종일 걷다가 날씨는 어두워지고 아직 갈 길을 창창, 어둠속에서 창원CC옆을 지날 때는 그렇게 지겨웠다. 그러나 저녁 숙소에 들렸을 때 작심이나 한 듯 무리한 산행을 집단 항의 할 땐 그에 따른 불가피성을 변명하느라 난감한 적도 있었다.
제14구간, 進禮山城 東門址를 지나 나무테크 계단을 밟고 비음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튼다. 이틀째 걷느라 氣盡脈盡해서 일까. 절경이 뛰어나다는 400m거리의 비음산 정상을 포기하고 남산재를 지나 12시 30분에 699m의 대암산을 넘는다. 그리고 이곳의 龍池峰, 龍蹄峰이란 이름이 진례 신안에 있는 龍沼에서 용이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실제 이 주위에 공룡 발자국과 연관된 것일까.
제15구간 때의 차창 밖은 4월의 연녹색이 한창이다. 아침 식사는 황별표 특식, 취나물 쌈밥과 계란말이 덮밥, 미소국물까지 준비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하나하나씩 손가락으로 집어서 맛보는 묘미도 별미지만 취나물 특유의 향에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또한 색다르다. 지난달 샌드위치처럼 좀 ‘질퍽했더라면’ 더 맛있을 텐데...... 황별이 피식 웃는 뜻은 무엇일까.
냉정고개, 무속전수관, 불티재, 황새봉을 지나 구미호표 점심 식사도 별미였다. 잡곡밥에 밤과 대추 등 건 과일을 가미한 영양밥이다. 개개의 플라스틱 도시락을 일일이 챙기고 신선한 야채 반찬에 따뜻한 물과 커피, 빵, 과자, 녹차까지 곁들였다. “이러다간 산 꾼들 입 맛 다 망칠 것만 같다”고 투정하던 박종관 회장, 여기에 황별이 배낭을 부스럭거리며 뒤척이더니 맥주 한 캔을 꺼내들고 ‘요건 술이 아니’라나.
넓고 넓은 산 중턱이 온통 공동묘지뿐이다. 이름도 가지가지. 추모공원, 영락공원, 또 어떤 곳은 낙원묘원 등등, 인생사 한 줌 흙으로 가기 마련인데 추모이면 어떻고, 낙원, 영락이면 별것이랴.
제16구간에서의 일이다. 5시 50분, 모텔을 나오자마자 ‘전주콩나루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청년 한 사람과 아가씨 세 사람, 밤새껏 술에 취해 손찌검 위협을 가하며 싸움을 한다. 급기야 소주병을 깨트리고 탁자까지 뒤집는다. 다른 손님들과 우리까지 12~13명 정도는 되는데 누구하나 싸움을 말리는 이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새벽부터 험악한 싸움에 끼어들 수도 없고, 서빙아줌마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도 15분이나 지나서야 경찰이 도착한다. 늑장출동이다. 요즘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초기대응의 미숙함을 질타하는데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나밭고개를 지났을 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던가. 어쩌면 그냥도 태워줄 것만 같은 트럭 운전사는 10분도 채 운전하지 않고 2만원을 달란다. 울고 싶었던 황별씨는 돈을 만지작거리며 어이없다는 눈치였다.
가야CC를 돌고 돌아 12시가 지나면서 신어산 三峰을 차례로 거친다. 옛 금관가야의 古都 김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신어산(神漁山)정상이다. 굽이굽이 천년전설의 영험과 신비에 쌓인 산,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 감돌며 남으로 빠지고, 그 주위는 광활한 김해평야가 펼쳐진 곳, 바로 지난달 절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