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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으로 흘러라 -
꿈꾸는 섬진강
새벽 5시쯤 집을 나서면 정말 한적한 호남고속도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데, 오늘은 온 가족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거의 7시가 다 돼서야 집을 나선다. 100Km를 달려와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된장찌개맛이 좋다. 1000원을 주고 뜨거운 네스카페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신다. 벌써부터 날이 뜨거워진다.
익산을 지나고, 전주를 지난다. 그리고 한참을 더 달려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태인IC로 빠져 나온다. 태인은 낯선 객처럼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될 작은 시골마을이다. 동진강을 건너 구절재를 넘으니 거대한 호수가 펼쳐진다. 바로 옥정호이다. 옥정호 끝 전망대에 올라 댐을 내려다본다. 상류는 옥정호요, 하류는 비로소 섬진강이다. 옥정호와 섬진강 사이에 댐이 가로막고 있어, 이른바 섬진강댐이다. 팔봉산 발원이라는 섬진강은 이곳에서 필연코 멈춰야만 하는 서글픈 운명이란다. 댐의 높이가 얼마나 될까. 댐은 밑으로 한개의 물줄기를 내뱉어 다시 섬진강을 이어준다.
1차 목적지인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덕치초등학교까지 가는 길옆으로 섬진강이 따라붙는다. 갓길에는 빨강과 하양과 그리고 분홍으로 잘 조화된 코스모스가 가을인양 예쁘게 피어 있다. 섬진강과 코스모스 갓길, 여기에다가 가을이라는 계절마저 덧붙여졌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을 '옥고름을 휙 던져놓은 듯한 江'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래서 섬진강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곳을 골라 흐르는 강으로만 생각해 왔었는데, 섬진강은 가장 낮게 흐르는, 사람냄새 물씬물씬 풍기는 그런 강이었다. 늙은 신선의 오줌처럼 걸쭉한 강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을 섬진강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섬진강에 오기전에 '섬진강은 이런 강일거야' 라며 내멋대로 밑그림을 그려왔으니 말이다.
맑고도 투명한 강물이 흐른다. 그래서 바닥에 깔린 자갈돌의 제각각 색깔이 선명하게 보인다. 바지를 두어 번만 접어 올리면 될 정도로 강물은 얕다. 맨발에 밟히는 자갈돌의 까칠까칠한 느낌이 좋다. 수수미꾸리 내 발짝 소리에 소스라쳐 달아난다. 강폭은 넓어 돌팔매라도 물수제비라도, 강 저쪽까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미루나무 잎사귀 나풀거려 매미소리 강물위에 스며든다. 강둑에 암소 한마리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늙은 주인이 고삐를 당겨 집으로 끌려하니 고개를 뒤로 젖혀 엉거주춤 버틴다. 오늘은 한여름 미루나무 그늘이 마음에 드나보다. 어른들은 발 담그고, 녀석들은 물장구치고, 나는 낚싯대 둘러메고 위아래로 서성이다가 꺽지 낚고, 쏘가리 낚아 꽁지 꿰어 으스대는, 섬진강에 오기 전에 미리 그려 본, 나의 섬진강 밑그림 두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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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문 삼거리를 지나 덕치면 물우리에 도착해서는 나의 섬진강 밑그림을 슬며시 집어넣는다. 바로 덕치초등학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덕치초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서니 이 학교 소사 (小使) 아저씨가 예초기로 잔디를 깎고 있다. 예초기의 기계음 소리에 교정 울타리 벚나무의 참매미 소리가 오히려 코맹맹이가 돼 버렸다. 벚나무 그늘에 앉아 쉬며 한참을 기다리니, 소사 아저씨가 땀을 닦으러 나무 그늘로 온다. 그래서 이것저것을 물어 본다. 김용택 선생님은 방학이라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며, 8월말에 정년퇴임 예정이라고 했다. 학교 뒷산에 빨치산으로 유명했던 회문산 자락이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만일 동안 기도했다는 만일사(萬日寺) 이야기도 듣는다. 강 상류라 부자마을은 아닐지라도 학교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아이들에게는 늘 꿈꾸는 섬진강이었다는 얘기도 듣는다.
꿈꾸는 섬진강, 이 마을 저마을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멱감고 피라미 잡고, 아이들은 목줄기 새까맣게 뛰어놀다가 간밤 섬진강 꿈을 꾸었다 한다. 도시화 바람에 친구들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갔지만, 떠나간 친구들은 타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섬진강 꿈을 꾸었다 한다. 일찌감치 江에 마음을 뺏긴 낚시꾼되어 그 물줄기, 그 여울소리 좇아 이렇게 섬진강 찾아 수백리 달려온 것처럼, 어디에서든 섬진강 꿈을 꾸었다 한다. 세월이 흘러 강안(江岸) 가득 자운영꽃 사그라져, 큰 바윗돌만이 휭둥그레 구르는 섬진강이 되었지마는 늘 꿈꾸는 섬진강처럼 이 나그네, 저 나그네의 모습으로 고향을 찾아왔다가 또다시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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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초등학교
녀석들과의 달리기 시합(덕치초등학교 운장은 잔디가 깔려 있다. 임실군의 정책이란다)
참매미
덕치초등학교의 벚나무 그늘
동주의 매미잡기
천담마을과 구담마을
예약한 희문산휴양림 입구, 장승콘도민박에 도착한다. 물우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민박집이다. 전화로 예약할 때, 주인 아주머니가 여기는 모기도 없고, 꺽지와 쏘가리도 없다고 하더니, 와 보니까 진짜 알만하다. 산속 깊은 곳에 계곡을 틀어앉은 집이기 때문이다. 계곡 웅덩이에 몇 마리 유영하는 물고기는 아마 버들치일까보다. 때마침 평일이라 피서객은 없고, 나의 두 녀석은 계곡 웅덩이를 금세 장악해 버린다. 그러더니 1박 2일 여행을 2박 3일로 변경해 달라고 한다.
장어구이와 꽁치김치찜으로 점심을 먹는다. 계곡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점심을 먹은 녀석들은 다시 외할아버지를 졸라 계곡 웅덩이로 수영을 하러 나갔고, 소쇄(瀟灑)한 계곡 바람을 쐬며 누워 있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든다. 섬진강꿈을 꾸면서, 섬진강이야기를 상상하면서, 허름한 차림의 섬진어부가 되어보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주 맛있게 잠을 잔다.
귓전을 울리는 참매미 소리에 잠을 깬다. 오후 3시다. 아이들과 외할아버지는 나무그늘에서 앉아 쉬고, 외할머니와 집사람은 아직 잠을 자고 있다. 차를 몰고 민박집을 빠져 나온다. 물우리 합수머리까지 내리막길이다. 물우리에서 좌회전, 회문삼거리까지 직진이다. 들녘이 뜨겁다. 다시 오른쪽에 있는 섬진강의 호흡이 숨가쁘다. 코스모스는 여름 한낮을 조롱이나 하듯 희살궂게 하늘거리고 있다. 동막제 갓길에 제멋대로 뻗어있는 칡덩굴에 여름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천담마을이다. 섬진강에 오기 전에 섬진강에 대해 공부할 때는 [진뫼-천담-구담]을 거슬러 올라가 구담마을이 섬진강의 최상류지역인줄 알았는데, 막상 섬진강에 와서 본 결과는 그 반대였다. 천담마을이 있고, 그 다음 하류가 구담인 것을, 구담마을이 임실에서도 오지중의 오지라 하여 가장 상류로만 알고 있었으니 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진강 수련원앞 잠수교로 차를 몰고 내려 갔다. 잠수교 아래 여울이 죽는 곳에서는 한명의 낚시꾼이 루어를 던지고 있었다. 던지는 폼은 어색했지만, 진지한 자세가 현지꾼 같았다. 먼 거리라 조과를 확인할 수 없어 카메라에 200mm 렌즈를 끼고 보니, 꿰미고 뭐고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꺽지 루어낚시를 즐기는 것 같았다. 옛날에 징검다리 자리였다는 잠수교 위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루어를 던져볼까 말까하고 말이다. 그러나 뜨거운 햇발, 모호한 시간, 구담마을에 대한 호기심을 떨칠 수 없어 섬진강수련원 잠수교를 빠져 나온다. 새로놓은 듯한 다리, 천담교를 건넌다. 드디어 천담과 구담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대로 천담교를 건너 좌회전을 한다. 천담교에는 동네 영감님들이 모여서 때아닌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차를 세우고 천담교 가까이 있는 섬진강슈퍼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서너병 사서 윷놀이 하는 영감님들에게 한잔씩 따라 드리며, 천담과 구담에 관한 전설을 청하면, 영감님들 앞다투어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줄텐데, 나는 그런 너스레를 떨 주변머리가 없다. 그래서 아예 천담교에서 머뭇거리지도 않고 곧바로 좌회전을 한 것이었다.
구담마을로 가는 길은 섬진강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오른쪽 논은 길보다 높이 있었고, 섬진강이 보일락말락 하는 곳에는 언제나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구담마을이 얼마나 남았을까. 동네 입구 매화나무 가로수에 매실을 따가지 말라는 글귀가 시처럼 적혀 있었다. 참으로 감성적이기도 하지. 섬진강변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시인이란 말인가. '섬진강도 거져 보았죠. 매실향도 그냥 맡으세요. 섬진강 흐르는 물 천천히 바라보시면 가진 것도 버리고 싶은데, 왜 매실열매까지 따시렵니까. 늙고 지친 우리 부모님들의 한 해 식량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라고 쓴 금지 팻말의 시구. 정말 섬진강변사람들다운 발상이었다. 날은 덥지만, 가슴속 깊이 느낀 전율이 소름되어 팔뚝부터 불거져 나왔다.
구담마을 입구에서
구담마을의 빈집에도 옥수수 수염은 빨갛더라
구담마을에 도착하니, 군데군데 빈집이 보인다. 마을 중앙 고샅에 마을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곧바로 마을 회관 마당에 차를 주차하고, 회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구담마을 할머니들이 모두 회관에 모여 있는지, 10여명이 회관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들께 인사를 하며 여기가 구담마을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웬 할머니가 ‘구담마을이지’ 하면서 대뜸 수박 한 조각을 먹으라고 준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니, 아예 윽박지르는 수준이다. 수박 맛이 아주 달고 시원했다. 천담과 구담까지 오며 생긴 땀띠가 쑥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동네가 영화 촬영지 맞죠?” 라고 물어보았다. 또 그 할머니가 바로 ‘조기야’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신다. 마을회관의 오른쪽, 느타나무가 있는 곳이라 했다. 할머니들께 꾸벅 인사를 하고 느티나무 언덕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로 쌓은 축대를 껑충 뛰어 올라 느티나무 공터쪽으로 향했다. 공터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 것인지, 용접 장비와 철제강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인부들은 저 위편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언덕 끝으로 향했다. 순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한 장면이 필름 되어 되살아났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성민이가 언덕을 뛰어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다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저 멀리 휘돌아가는 섬진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돌아오지 않는 친구, 창희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구담마을 한 모퉁이 언덕이 좋았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강변 미루나무에서 들려오는 말매미 소리가 좋았다. 이대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 섬진강에 드리워질 교교한 달빛에 취하고도 싶었다. 대지는 뜨겁게 달궈져도 섬진강은 무연하게 흘러가고, 섬진강이 무연하게 흘러가도 섬진강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은, 이제는 단지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 잠시 쉴 때, 그래서 구담마을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불쑥 찾아와서 여행자인양 멋을 부리는 행위가 그네들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구담마을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천담에서 江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고향을 흐르는 江에 징검다리가 그대로 놓여 있기를 바라는 것은 고향을 떠난 자의 욕심이다. 고향마을에 초가집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고향을 떠난 자의 욕심이다. 낙엽송 심어진 고향마을 입구에 질척 질척 비좁은 흙길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 역시, 고향을 떠난 사람의 욕심일 뿐이다. 삶은 꿈과 다르기 때문이다.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민박집으로 되돌아올 때, 물우리의 '낚시, 잡화, 담배'라고 유리창에 견고딕체로 굵직하게 써 놓은 작은 가게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60은 넘어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의 표정이 가관이다. 아마도 자기가 구멍가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단지 낯선 사람이 자기집 문을 불쑥 열고 들어와, '누구지?' 라고 첫번째로 의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뭐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이 섬진강에 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온 사람이라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안 사도 될 물건을 이것 저것 주섬주섬 골라 담으니, 나중에는 냉장고문을 열더니 시원한 음료수까지 따서 마시라고 건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며, 회문삼거리로 돌아가지 않고, 천담마을로 바로 길도 일러 주는 것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오면, 들르는 가게와 식당마다 서비스정신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많이 본다. 현대는 문화가 키워드이며, 서비스가 곧 경쟁력인 사회이다. 서울과 지방도시, 그리고 군단위 면단위로 갈수록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골마을의 모든 가게 주인과 식당 주인이 친절해야 하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억지이다. 왜냐하면 역으로 말해 서비스 정신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그만큼 순수하다는 얘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들른 물우리의 작은 구멍가게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5시였다. 해가 어느 정도기울었기에, 물우리의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일러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가 보자' 하며 가족과 함께 민박집을 나섰다. 물우리에서 직진, 양쪽에 다랭이논이 있는 시멘트포장길이었다. 장산(長山)마을을 지나니, 시멘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타났다. 바로 이길이었다. 중2 국어 교과서에 나온다는 자건거 여행길이었다.
강변 풀섶에 새까만 점들이 보인다. 흙염소들이다. 강기슭에 하얀 점이 보인다. 백로 두어 마리다. 길섶에 고개숙인 노란 점들이 보인다. 어젯밤에 피었다 진 달맞이꽃들이다. 산밑 양지바른 곳에 연보라의 점들이 보인다. 쑥부쟁이 꽃이다. 구름이 없어 하늘은 높푸르고, 인적이 없어 섬진강은 고요하다. 옥고름을 던져놓은 듯한 섬진강이 바로 이곳이로구나 하고 감탄할 때, 길은 섬진강과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섬진강수련원 후문으로 이어진다. 섬진강 수련원, 바로 구 천담분교이다. 김용택 시인이 천담분교가 폐교가 되기 전까지 근무하던 곳이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수련원 정문으로 나오니, '아뿔싸!' 조금 전에 왔던 그 자리, 천담분교 잠수교이다.
느티나무 그늘에 차를 댄다. 외할아버지와 녀석들은 벌써 한 팀이 되어 다슬기를 줍는다고 흩어진다. 나는 루어대를 끼워 맞추고, 라인을 늘여 웜을 매달고, 잠수교 위로 향한다. 포인트가 어디인줄 모를 때는 역시, 다리 주변이 제일이다. 다리 상류 여울 가장자리에는 웬 조무래기들이 많이 왔는지, 튜브를 타고, 풍선 놀이를 하고 있다. 4살 정도의 애기부터 7살 정도의 어린이까지 예닐곱 명은 될 듯하다. 많은 아이들이 계속 떠들어대며 놀기에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괘념치 않기로 하고 낚시에 몰두해 보기로 했다. 다리 하류 물흐름이 가장 좋은 곳으로 슬라이더웜을 던졌다. 천천히 루어를 끌어주는 중에 첫번째 입질을 받는다. 섬진강 꺽지다. 그리고 두 번째 캐스팅에서도 또 입질을 받는다. 섬진강에서 낚는 두 번째 꺽지다. 내심 쏘가리이기를 기대했는데, 꺽지라도 만족하다. 이곳이 섬진강 상류이기 때문이다.
그 때였다. 역시 화근은 다리 상류에서 조무래기들이 가지고 노는 풍선이었다. 여울가에서 풍선공을 가지고 노는데, 풍선공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풍선을 받을 때, 풍선이 장지 손가락에 먼저 맞아 옆으로 툭 튀기고, 또 엄지 손가락에 맞아 옆으로 툭 튀기고 했는데, 풍선이 여울쪽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풍선이 물위로 둥둥 떠내려가자, 튜브를 가슴에 낀 대여섯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물에 떠가는 풍선을 건져 오겠다고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발이 땅에 닿지 않자 기겁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다시 다리 하류를 향해서 낚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물에 빠진 아이의 엄마인지 이모인지 모르는 여자가 '어떡하지, 어떡하지' 말만 되풀이 할뿐 물에 뛰어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모겠지' 생각하며 이러다가는 어린아이의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다리 밑으로 뛰어내려 낚싯대를 내려놓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자갈밭에 던져놓고, 성급히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물속은 암반으로 이어져 발 디딜곳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미끄러웠다. 물은 무릎까지 적시더니, 허리까지 적시고, 금세 가슴팍까지 적시었다. 아이는 장마에 떠내려온 교각밑 나무등걸에 끼어 있었다. 튜브를 간신히 손으로 잡고 있었다. 아이 놀랄까봐 아저씨가 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아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서 먼저 튜브를 잡고, 힘이 빠진 아이가 튜브를 놓쳐 물속으로 빠질까봐 어린애의 배를 추켜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물가로 나왔다. 물가로 나온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나는 등산화부터 윗도리까지 싹 젖어버린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고 말았다.
진뫼마을에서
장승콘도 민박집에 밤이 찾아왔다. 여치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추 잠자리 밤길 잃어 헤매이던 자리에, 왕거미 익숙하게 실을 뽑았다. 갈참나무숲이 가리고 남은 비인 하늘에, 북부칠성은 천역덕스럽게 꼬리만 담가놓고 있었다. 두손으로 속세의 모든 빛을 가리매, 단지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빛뿐. 기다리지 않으면 뚝뚝 떨어지는 별똥별들이 오늘밤 이렇게 바깥 침상에서 밤을 축복하며 별똥별을 기다렸건만, 별똥별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간밤에, 옆방에 든 투숙객들의 투덜거림이 좀 과하다 싶다고까지 생각했었는데, 그 후로는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나도 모른다. 눈을 떠보니 새벽이다. 산속의 새벽은 적막하기만 하다. 방문이 어딜까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하지만 이내 알아챈다.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더듬거려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다. 참으로 잘 깬 시각이다. 섬진강으로 낚시를 다녀오기에 아주 적당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민박집을 빠져나와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인적이 없다. 섬진강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길섶의 쑥부쟁이는 습기를 머금어 잎새를 축 늘어뜨리고, 달맞이꽃은 그새 꽃잎을 닫으려 한다. 다가가야 맡을 수 있는 달맞이꽃의 향기를, 다가서야 느낄 수 있는 이 대지(大地)의 체온을, 가까이 가야 하나가 되는 섬진강의 아침을, 이렇게 지상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숭고하게 맞이한다. 섬진으로 뛰어든 개구리가 놀랐을 때, 나도 놀랐고, 긴 무자치 강변 달개비숲에서 기겁했을 때, 나 또한 기겁했음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자연 앞에 서면 작아지는 나약한 인간임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어제 봐두었던 곳, 장산마을과 천담마을 사이, 여울끝에서 낚시를 시작한다. 장산마을쪽에서 날아온 백로 한마리가 천담마을 쪽으로 날아간다. 죽을듯말듯 몸부림치는 피라미 한 마리가 물을 튀기며 계속 떠내려가고 있다. 상류로 몇걸음을 옮겨본다. 여울끝 바위지대마다 꺽지가 붙어있음직도 한데, 묵묵부답이다. 그 때 한마리가 툭 친다. 그러더니 내 슬라이더웜을 가로챈다. 무엇일까. 갈겨니다. 갈겨니가 웜을 물다니, 이상한 일이다. 꿈틀꿈틀 유영하는 슬라이더웜이 미루나무에서 떨어진 벌레쯤로 여겨 물었나 보다.
한 시간쯤 낚시를 해서 갈겨니 한 마리만 낚았다. 꺽지와 쏘가리가 없나 보다. 꺽지 개체수가 엄청 많은 섬진강수련원앞으로 가볼까 하고 망설여보지만, 이내 포기한다. 섬진강을 내려다보다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장산마을쪽을 핸들을 돌린다.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다시 시멘트포장길이 나타난다. 바로 장산마을 앞이다. 장산마을앞 섬진강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풀섶의 이슬을 털며 첫번째 징검다리에 올라서니, 옛날 성황천에서 건너던 징검다리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강변밭에서 밭 매던 할머니께 점심을 갖다드리려면 꼭 건너야했던 성황천 큰개울의 징검다리, 나는 꼭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의 광목치마를 잡고 따라다녔던 어린시절 성황천의 큰개울 징검다리. 그러나 지금은 남녘 섬진강에서 홀로 징검다리를 건넌다. 한돌 한돌, 한다리 한다리, 섬진강을 건넌다.
장산마을앞의 징검다리
섬진강에서 피라미를 낚는 학생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줍는 모녀
징검다리를 건너갔다오니, 반바지를 입은 동네 어른 한 분이 강가로 내려온다. '혹시 저분이 김용택 시인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이 동네가 어떤 동네냐고 물어보니, 대뜸 김용택 시인을 아느냐고 내게 되묻는다. 물론 안다고 대답하니, 바로 이 마을이 김용택 시인의 고향, 진뫼마을이란다. 장산마을이 곧 진뫼마을이란다. 長(장), '길다', '질다'에서, 진이 되고, 山(산)이 뫼가 되어 진뫼마을이 된 것이란다. 그러면서 그 어른은 진뫼마을 뒷산을 손가락으로 짚어 뒷산의 형태를 설명해 주시고, 진뫼마을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신다.
가난했던 마을, 진뫼마을. 진뫼마을에는 논과 밭이 적어 가난이 대물림되었다고 한다. 앞산 닥나무 베어, 뒷산 알밤을 모아 진뫼마을 金氏 가문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난한 동네이면서 어떻게 김용수, 김용기, 김용택 같은 시인이 나왔냐고 물으니, 답은 기대했던 대로 섬진강 때문이었다고 한다. 섬진강은 진뫼마을 아이들에게 사시사철 놀이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큰 홍수가 나도, 태풍이 와 물난리가 나도 익사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바로 허락바위 때문이란다. 징검다리 초입에 허락바위를 놓고, 강물이 허락바위를 넘어서면 아예 섬진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흑염소가 비에 맞고 있어도, 누에 먹일 뽕잎이 아무리 급해도, 밤이 뚝뚝 떨어져 새움을 틔울지라도 허락바위가 물에 잠기면 강을 건너지 않았다 한다.
그러면서 어르신은 징검다리 가운데에 있는 허락바위를 보여 주셨다. 허락바위에는 자율(自律)이라는 한자가 파져 있었다. 웬 연고냐고 물으니, 임실군청에서 바위를 가져다가 '자율'이라는 글자를 파서 군청마당에 세운 것을 진뫼마을 청년회에서 근래 되찾아온 것이라 했다. 어른은 다시 나를 진뫼마을로 안내했다. 진뫼마을 입구에는 '長山樓'라고 현판을 쓴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진뫼마을의 '장산루'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진뫼마을 입구
민박집을 나선 여행자들은 순창쪽으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날이 유난히 뜨거운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순창과 담양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에서 '배롱나무꽃, 목백일홍'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에서
순창에서 담양으로 가는 길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에서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에서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의 '죽통밥집, 떡갈비'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에서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에서 - 여행을 마치며..
섬진강을 다녀와서
2008년 8월 7일부터 8일까지
글/사진 구노 신광철
좋은 글과 사진 구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