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그린 입술
장현숙
열쇠 수리공이 아파트 문을 강제로 열고 있었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경찰과 경비원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딩동’ 우리 집 인터폰이 울렸다. 현관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던 나는 인터폰 화면에 비친 경찰의 모습이 의아했다. 문을 열자
“혹시 며칠 사이 옆집 할머니 본 적 있나요?”
경찰이 대뜸 물었다. 친정어머니 입원으로 열흘간 집을 비웠던지라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미국 사는 아들이, 며칠 동안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자 아파트 관리실로 연락했고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애석하게도 할머니는 구토 자국과 함께 바닥에 싸늘하게 누워있었다. 식탁에는 먹다 남은 떡과 엎질러진 찻잔이 할머니의 마지막 사투를 설명하고 있었다. 벽에 그린 입술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여전히 그녀를 향해 뭔가 말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옆집 사람으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아했다. 그녀는 하얀 피부와 갈색 웨이브 헤어스타일로 집 안에서도 원피스를 입고 귀고리로 멋을 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어느 날 우린 눈웃음을 나눈 후 이웃이 되었다. 그녀가 이사 온 지 1년이나 지난 후였다. 어지간히도 사회성이 없는 내 성격 탓이다. 그녀는 주민 센터에서 ‘컴퓨터 활용하기’ 수업을 받았단다. 그날은 ‘메일 주고받기’를 배웠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그녀 집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교사라는 직업 덕분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대학 교수였으니 그녀는 나에 대한 막연한 동질감을 갖고 있었나 보다.
집 안은 모델 하우스로 착각할 만큼 깔끔했다. 흔히 70대 주부들이 갖고 있음직한 오래된 가재도구들은 눈 닦고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정석을 보는 듯했다. 하나 의아한 것은, 식탁 정면 하얀 벽의 그림
한 장이었다. 금방이라도 입을 열 것 같은 입술 그림이었다. 암갈색과 분홍색이 절묘하게 아우러져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선뜻 알 수 없는 입술이었다. 우린 간혹 그녀가 직접 만든 꽃차를 음미하며 식탁에 앉아 얘길 하곤 했다. 그녀는 한때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고 결혼 5년 만에 찾아온 아이를 위해 퇴직했단다. 아들이 유학하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녀는 상실감에 빠졌다. 아버지가 권하는 국내 대학의 교수 자리를 마다하는 아들의 처사를 며느리 탓으로 돌렸다. 그 후 며느리는 발길을 끊었다.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1년에 몇 번씩 안아 볼 수 있었던 손자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끝없이 그녀의 맘을 어루만져 주던 남편과의 대화였다.
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은 그녀는 겨우 현실을 직시하고 벗어나기를 시작했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가재도구를 모두 바꾸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외형적인 몸부림이었을 뿐 시간이 갈수록 침묵의 공간에는 더 큰 공포가 밀려왔다. 남편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벽에 입술을 그려놓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식탁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 사이로 남편이 말해 주었단다.
‘여보, 주민 센터를 다녀보는 게 어때?’
그래서 컴퓨터 활용하기 수업을 받았다.
‘여보, 모르는 게 있으면 옆집 선생님에게 물어 봐.’
그래서 이메일 주고받기를 정확하게 배웠다.
그 후 그녀는 손자랑 주고받은 이메일을 자랑하면서 생기를 찾았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 지난달에 또 다른 이웃이 왔다. 열 살 위아래면 친구라고 하지 않는가? 친구 같은 이웃이 생겼다. 엘리베이터라도 같이 타는 날이면 나는 그들의 입술을 쳐다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봐야겠다.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외롭지 않는 이웃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