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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 내용 | 출토지 |
덧띠새김무늬 토기(突帶文 또는 刻目突帶文土器) | 신석기 시대 말 BC 2000년경부터 BC 1500년경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로서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早期) | |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 밑바닥이 좁고 아가리를 뒤집어 겹으로 만든(二重口緣) 적갈색을 띤 무니 없는 토기 | 영암 장천리 7호 주거지. 충북 제천 도화리 |
미송리식 토기 |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 무늬가 토기 |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에서 처음 발굴 |
붉은 간토기(<홍도(紅陶),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 토기 겉에 붉은색 물감을 발라 간(마연한) 토기. | |
검은 간토기(흑도(黑陶), 검정토기, 흑색토기,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 아주 고운 흙을 사용하여 만들고, 표면에 흑연 등의 광물질을 바른 후 문질러 광택을 |
민무늬토기 미송리식토기 붉은간토기(홍도)
붉은간토기(홍도(紅陶),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생활용: 무산 범의 구석 집자리 가장 아래 문화층(신석기시대 최말기)(굽접시, 구멍무늬토기들과 함께 출토), 여주 흔암리, 부여 송국리 유적
무덤의 껴묻거리용 : 고인돌 안에서 민무늬토기 및 간석기들과 함께 출토되며 주로 주머니 모양의 짧은 목단지가 대표적인 모습이나 최근에는 춘천 중도의 고인돌에서 보이듯 납작밑의 대접 모양도 출토
Ⅲ. 삼국시대
덧띠토기(粘土帶土器) : 아가리의 바깥쪽에 둥근 점토띠를 두툼하게 붙인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민무늬토기이다. 덧띠의 단면은 초기에는 원형이다가 점차 삼각형으로 변하게 된다. 대전 괴정동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되었다.
검은 간토기(黑陶長頸壺)
표면에 흑연 등의 광물질을 바르고 문질러서 광택을 낸 토기이다. 검은 목 단지는 요령지방에 그 기원을 두며 덧띠토기(粘土帶土器)와 함께 중부 이남지역의 대표적인 초기철기시대 토기이다. 대전 괴정동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되었다.
회색토기(灰色土器, 瓦質土器)
선사 시대나 삼국 시대에 환원염(還元焰)으로 소성(燒成)되어 잿빛 계통의 색을 띤 토기
토기(민무늬 토기,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중국식 회색토기 다양화)
1. 고구려
흑색도기, 채문토기
2. 백제
경질무문토기,
두르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 타날문토기) 질그릇의 벽면을 타날구로 때리면서 타날문을 남기는 이외에도 회전판의 사용 및 굴가마의 채용 등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 모습은 몸통은 둥글고 주둥이가 짧은 것과 화분 모양이 대부분.
회(흑)색무문토기
도기: 삼족기(삼족형소형토기)
3. 신라
경질의 도기
4. 통일신라
주름 무늬병
제2절 고려시대의 자기
Ⅰ. 청자와 백자의 시작
1. 중국의 청자 백자
당대의 백자소호(7세기 황룡사지9층목탑지의 심초석 하부)
당삼채(唐三彩)
2. 가마터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도기+청자 백자), 용인시 이동면 서리, 여주군 중암리,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고양시 원흥동, 안양시 비산동, 충청남도 서산군 성연면 오사리, 보령면 천북면 사호리, 대구시 동구 진인동, 강우너도 강릉
Ⅱ. 고려자기의 제작과 조형
1. 청자생산의 변화
가. 10세기 청자 생산 시작
나. 11세기 강진 요업의 중심지
다 12세기 고려의 특성
2. 청자의 표면장식
순청자(純靑瓷) | 무늬 장식이 없는 순수한 청자. 소문청자(素文靑瓷). 무문청자(無文靑瓷) |
음각청자(陰刻靑瓷) | 순청자 위에 음각기법으로 꽃이나 기타 식물 또는 장식문양을 넣은 청자 |
양각청자(陽刻靑瓷) | 무늬를 돋움새김하거나 문양물을 사용하여 압출(壓出)함으로써 도드라지게 하는 청자 |
철화청자(鐵畵靑瓷) | 유약(釉藥)을 입히기 전에 붓에 철분 안료를 묻혀 회화적 방법으로 무늬를 그린 청자 |
진사청자(辰砂靑瓷) | 진사(辰砂)(cinnabar, 진사채(辰砂彩), 진사유(辰砂釉), 동유(銅釉))로 그릇 표면에 문양을 그리거나 또는 다른 문양의 일부에 점을 찍거나 표면을 진사안료로 바르고 청자유약을 씌워서 구워 낸 청자. 동화청자(銅畵靑瓷) |
화금청자(畵金靑瓷) | 상감 무늬의 일부에 금을 칠한 청자 |
철채정자(鐵彩靑瓷) | 산화철의 철채(鐵彩)를 그릇 전체에 발라 자기 전체가 검게 보이도록 하는 청자 |
퇴화청자(堆花靑瓷) | 철채 청자의 표면의 흑토를 긁어내 문양을 만들고 그 위에 백토를 두껍게 칠해 흑색 바탕에 흰색 문양을 나타내는 퇴화기법을 사용한 청자 .백화청자(白畫靑瓷) |
투각청자(透刻靑瓷) | 몸 전체를 뚫어 조각하는 청자 |
연리문청자(練理文靑瓷) |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만든 청자 |
상형청자(象形靑瓷) |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청자 |
빈과록(蘋科綠) : 도자기에 입히는 푸른 빛의 잿물(釉藥)
3. 상감청자(象嵌靑瓷)
가. 의의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낸 청자.
나. 상감
상감이란 무늬를 넣는 방법을 말하는데 상감기법은 이미 중국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금속공예에 사용되던 방법이었으나 고려시대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응용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법이다.
다. 방법
먼저 초벌구이한 그릇 표면에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 등을 파낸 뒤 그 패인 홈을 회색의 청자 바탕흙 또는 다른 백토(흰색의 흙)나 자토(붉은색의 흙)로 메우고 표면을 고른후 유약을 입혀 구우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나타나게 된다.
라. 12세기 12세기 말 ~13세기 전성
4. 청자의 질 퇴보
몽고 침입이후 13~14세기
Ⅲ. 고려시대의 해양교역과 도자기
1. 공납품
2. 해상무역로
제주 신창리 해역, 군산 비안도 십이동파도, 보령 원산도, 완도 어두리, 물안 도리포
제3절 조선의 도자기
Ⅰ. 분청사기(粉靑沙器)
1.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
회청사기에 백토로 분장했다(高裕燮)
2. 회청사기(灰靑沙器)
철분이 함유된 점토로 성형하여 청자에 유약을 입힌 것.
3. 방법
상감기법(象嵌技法) | 면상감(面象嵌), 선상감(線象嵌)이 사용 |
인화기법(印花技法) | 무늬도장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찍은 후 그 자리에 백토를 넣어 무늬가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 것 |
박지기법(剝地技法) | 기면(器面)에 백토로 분장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을 음각한후 배경을 긁어 내는 것 |
음각기법(陰刻技法) | 그릇의 일부 또는 전면을 백토로 분장하고 시문하고자 하는 문양을 가늘게 선각하여 음각부분에 태토(胎土,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 흙)의 색이 드레나게 하는 기법 |
양각기법(陽刻技法) | 조각하거나 틀로 찍어 문양을 표면보다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기법 |
청화기법(靑畵技法) | 고급 수입안료를 사용하는 기법 |
철화기법(鐵畵技法) | 기면에 백토로 분장한 후 그 위에 철분이 많은 안료로 문양을 그리는 기법으로 구워지면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
귀얄기법 | 거친 귀얄(풀이나 옻 따위로 무엇을 칠할 때 쓰는 솔, paste brush, paintbrush)에 백토를 묻혀 기면에 바르는 기법 |
담금기법(덤벙기법) | 그릇 전체 또는 일부를 백토물(泥粧土, slip)에 담가 분장하는 기법 |
분청사기 철화모란어문장군병 분청사기인화원권문‘禮賓’명대접 분청사기조화연화문편병
분청사기귀얄문태호 분청사기박지모란문호 분청사기덤벙문‘上禾’명대접
Ⅱ. 백자의 완성과 발전
1. 백자(白瓷)
가. 백토로 기물을 만들고 유약을 입혀서 고온에서 구운 기물.
나. 1250~1300⁰C 이상에서 구워지는 치밀한 도자기
다. 순백자(純白瓷)
문양이 없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대종을 이루는 것으로 백색태토에 투명한 유약을 입혀서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
2. 백자의 제작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 수입하였고 백자는 고려시대부터 제적하였다.
3. 본격적 제작과 사용
경질백자(硬質白瓷)의 제작과 사용은 조선왕조 이후에 가속화된다.
4. 분원(分院)
가. 왕실용 백자 제조장을 15세기 후반부터 경기도 광주 일대에서 운영
나. 사옹
원(司饔院, 국왕의 식사와 대장안의 식사공급을 관장하던 기관) 소속의 관영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으로 19세기까지 운영
Ⅲ. 백자의 다양한 표현
1. 다양한 장식기법
2. 상감백자, 철채백자, 철유백자, 청화백자
가. 상감백자 : 주로 흑색의 선상감 위주로 초화문이나 선문등이 주류를 이룬 백자
나. 철채백자 : 검정의 단색이 되도록 기면 전체에 산화철 안료롤 바른 백자
다. 철유백자 : 철분이 많은 유약을 사용한 백자
라. 청화백자 : 산화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그린 백자
국보 제309호 달항아리 국보 제310호 달항아리
시대 | 자기 | 내용 |
11세기 | 순수청차(純粹靑磁) | 신라와 발행의 전통기술을 토대로 송자(宋磁)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비취색(翡翠色)이 나는 청자. 무늬 장식이 없는 순수한 청자. 소문청자(素文靑瓷). 무문청자(無文靑瓷) |
12세기중엽~13세기 중엽 | 상감청자(象嵌 靑磁) | 12세기 중엽에 상감법을 자기에 활용하여 강화에 도읍한 13세기 중엽까지 주류를 이루었으나 元 간섭이후에는 제작가능이 떨어지면서 쇠퇴하여 갔다. 특수행정구역인 강진, 부안 등 소(所, 자기소)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고려 인종 원년 1123년 북송사신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극찬 |
15~16세기 | 분청사기(粉靑沙器) | 13세기 이후 元으로부터 북방 가마의 기술이 도입되면서 청자의 빛깔도 퇴조하여 점차 소박한 분청사기로 바뀌어 제작되기 시작했다(세종때 절정을 이룬 조선자기의 주류). 官窯(관요)가 아닌 도공들이 자기들이 개발한 방식에 의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매우 서민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다. 청자에 백색의 분을 칠한 것으로 백색의 분과 안료로서 무늬를 장식(회색 또는 회흑색의 胎土(태토)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상감 분장(粉粧)한 후 구워낸 도자기). 안정된 그릇 모양과 소박하고 천진스러운 무늬가 어우러져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구김살 없는 우리 멋을 잘 나타낸다. |
15순백자(純白磁세기 | ) | 백색태토에 무명한 유약을 입혀 높은 온도에서 구운 순수한 백색의 자기. 15세기 후반에 국가가 司饔院(사옹원) 分院에서 고려백자의 전통과 명자(明磁)의 양향을 받아 생산한 것으로 질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청자보다 깨끗하고 담백하여 선비들의 취향과 어울려 널리 이용되었다. ① 고려 백자의 계통을 이은 백자 : 유백색의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대략 15세기까지 제작 ② 원, 명(元, 明)시대 경질(硬質) 백자의 영향을 받아 희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경질 백자로 약 15세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백자. |
15~16세기 | 상감백자(象嵌白磁) | 단단한 정도에 따라 고려 백자의 맥을 이은 것으로 경상도를 중심으로 함 연질(軟質)과 경기도 광주의 경질(硬質) 상감백자(象嵌白磁)의 두 갈래로 무늬는 중국 명(明)나라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짜임새 있는 넝쿨무늬와 분청사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탈한 넝쿨무늬 두 종류의 계열이 있고 15세기경에 집중되어 있으며 16세기에는 소멸되었다. |
16세기 | 청화백자(靑畵白磁) | 元・明의 영향 아래 형태와 문양이 어울려 기면위에 붓으로 산화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그리는 것으로 우리의 독특하고 준수한 세련미 표현. |
17세기 | 철화백자(鐵畵白磁) | 산화철 안료를 사용하여 흑갈색 무늬를 그린 것으로 철회(鐵繪)백자라고도 한다. 15세기 중반경부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되었다.백자 철화 대나무·매화무늬 항아리(국보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18세기 | 동화백자(銅畵白磁, 진사(辰砂)백자) | 동화백자는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구리 성분 안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그릇 표면에 칠을 한 백자로 진사(辰砂)백자라고도 한다. 18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듯하다.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고려 인종 원년 1123년 6월, 총 200명이 넘게 구성된 北宋의 국신사(國信使) 일행이 바닷길을 건너와 고려에 도착해 고려에 한 달 남짓한 체류하였고, 이때에 보고 들은 고려의 역사・정치・경제・문화・종교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글과 그림으로 빠짐없이 기록한 것으로 작성은 사절단의 인원・선박・예물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서긍(徐兢, 1091~1153)이 그림과 글로 옮겨 선화 6년 1124년 송 徽宗(휘종)에게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40권을 바쳤다. 현재 그림(圖)은 없어지고 글(經)만 전해지고 있다. 서긍의 학문은 고금을 섭렵하여 佛家, 老子, 孫武, 吳起, 盧扁의 책들과 山徑, 地誌, 方言, 小說에 이르기 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해서楷書, 행서行書 및 전서篆書에 능하였으며, 특히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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