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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성령(03) 성령충만 (에5:15-27)
오늘 우리 함께 나눌 말씀은, 에베소서 5장 15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15-27)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오늘 우리가 성령충만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제가 잘 아는 장로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자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그 누이께서 클래식을 전공하시는 분이셨다고 그래요. 그 클래식을 전공하시면서, 동생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으셨기 때문에, 한국에 굉장히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들어와서, 연주회가 있었다, 그래요. 그래서 동생과 함께 손을 잡고, 그 연주회에 음악을 들으러 갔다고 그러죠.
그런데 이 장로님은 음악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셨어요. 남들은 공연이 시작 되고 전부 다 그 음악에 감동을 받고, 그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이 장로님은 딱 10분 지난 그 시점부터 자기 시작했는데, 코까지 골고 잤대요. 그런데 얼마나 코를 크게 골고 주무셨는지, 이 누이께서 너무 창피해서, 공연이 다 끝나지지도 않았는데도, 그 동생의 손을 잡을 데리고 나오셨다고 그래요. 자기가 굉장히 창피했다고 그럽니다.
이 장로님은 굉장히 승부근성이 강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그 길로, 서점에 가셔서,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려면 어떠한 책을 보아야 합니까?’라고 물어보고, 그 서점 주인이 주는 그 책을 가져다가 공부를 하셨다, 그래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어떤 것이며, 모차르트는? 비발디는? 또 헨델은? 바하는 어떠한 의도로, 그런 곡들을 썼는지를, 열심히 공부하셨대요. 그리고 그 때 음악회에 가서 들었던, 그 음악이 담긴 엘피판을 사다가 들으셨대요. 이 작곡가가 그 곡을 만든 의도와 그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그 음악을 들으니까, 너무 재미있더라는 거예요. 그 때부터 이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리더라는 것이죠.
그러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성경을 쓰신 하나님의 의도(意圖)를,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경의 의도가. 이 사람들 마음속에, 클리어(clear)하게 디파인(define) 되지 않으니까, 성경을 펴기만 하면 졸린 거예요. 그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이 성경! 이 성경이 어떠한 목적과 어떤 의도로 쓰여져 있는 지를 명확히 알고 난 이후에는, 절대로 이 성경을 펴면 졸 수가 없더라는 것이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의도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냥 성경을 펴서,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만 뽑아내서 읽기 시작했다고요. 언제부터인가! 여러분들이 큐티(QT)라는 것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전혀 이 성경에 대한 성경의 저작 의도라든지, 하나님의 목적이라든지,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기본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이 성경에서,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단어! 혹은 한 문장!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만약에 이렇게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 버릇하면, 여러분은 또 하나의 부적을 가지고 다니시는 것이지, 성경을 읽으신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봄 부분을 막 들어요. 그러면서 혼자 막 썰매를 타고 있으면, 그 비발디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비발디의 여름 부분을 들으면서, 가을에 낙엽을 생각하면서 막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성경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아닌데, 자기 혼자 딴 의미로 생각하면서, 막 감동받고 울어요. 그래놓고는 은혜 받았다, 그래요.
그래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봄을 들으면서 겨울을 생각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그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뜻으로 오해를 하면서,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고 감동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건 영원한 생명을 걸고 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무를 수가 없기 때문에, 이건 정말 주의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하실 수도 없었던, 그러한 심오한 뜻을, 본인이 발견해내어서, 자기 혼자 감동받는 거예요. 하나님은 전혀 그런 뜻으로 쓰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 그런 심오한 뜻을 발견해 내어서 혼자 감동받는 거!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 계열의 지방교회 사람들이,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요. 성경을 50독, 100독씩 한다고요. 그 사람들은요! 그렇지만 다른 지식들은 다 거부해요. 그러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성경은 많이 읽었는데, 엉터리란 말이에요. 우리가 그런 오류를 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제임스가 누드를 잘 그린다고요. 우리 교인들은 반은 화가이기 때문에, 제가 이런 예화를 드는 거예요. 누드를 잘 그리는데, 거기 안에는 그 설명을 들어보면, 복음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그 제임스가 그린 그 그림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그냥 그 그림만 보면서, ‘야, 참 섹시하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렇게, 그 앞에서 평을 한다면, 그 그린 작품자인 제임스는, 모욕을 받는 거예요. 성경이 말하는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하고, 자기 혼자 감동받는 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라고요.
우리가 새신자반이라든지, 성경이라는 설교에서, 제가 이야기해드렸죠? 제가 두 시간에 걸쳐서, 아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훑어드렸잖아요? 거기에 무슨 얘기가 적혀 있던가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구원과, 은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아요. 창세기부터 계시록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돈 버는 방법! 어떻게 존경받으면서 사는 방법! 사업에 성공하는 방법! 뭐 이런 방법들을 찾아내려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모독하는 거라고요.
성령에 대해서는 더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 성령에 관한 거예요.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가 무엇인지, 그런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확인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심지어 그런 성령을 전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전도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고 계시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밝히, 열심히, 공부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알고 믿으셔야죠!
참! 저도 여러분들에게 재미있게 해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요. 제가 옛날에, 김대중 대통령 사람 모이게 해주는, 그 일만 한 사람이에요. 그 방법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데 왜 이렇게 고리타분한 교리 부분을 가지고, 개척하자마자 이걸 시작하느냐 말이에요? 이건 나중에 해도 되는 건데! 여러분들이 엉뚱한 길로 가실까봐! 교인들이 계속 줄어갈지라도, 이 부분만을 확실히 해 놓고 가지 않으면, 이 예배당 안에서 지옥 가는 사람이 생길까봐 그러는 거예요.
오늘 성령충만! 성령충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분들 명확히 알고 가셔야 돼요.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성령 세례에 대해서 살펴봤어요. 성령세례가 뭐라 그랬죠? 어느 날 성령이 쫙 불의 혀처럼 임하니까, 몸에 전기가 막 오르면서, 입에 막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이거 성령세례라 그랬나요? 성령세례를 뭐라 그랬습니까? 창세전에 언약하신 하나님의 그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완성하셨고, 그 완성하셨다는 보증으로 성령이, 그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내려오는 그 사건을, 우리가 성령세례라 그랬어요.
그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이 띄어지게 되는 그 사건! 그래서 이 자리에 와서 ‘나는 예수를 주로 고백합니다.’라고 하는 여러분들은 성령세례를 다 이미 받은 분이다!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예수에 대하여, 구원과, 은혜에 대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이해시켜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지,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무슨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시고, 이런 거 아니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세례라는 것은 다분히, 수동적이라고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다분히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거라고요. 하지만 성령충만은 그렇지 않아요. 오늘 본문에서도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성령충만의 부분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요. 그 부분을 우리가 살펴볼 거예요.
성령세례라는 것은, 그렇게 수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한다거나, 요청한다거나, 열심히 노력하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 아녜요. 그래서 시중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러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됩니다! 성령세례를 사모하십시오! 그래야 능력 있습니다. 능력 받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런다고 해서 성령세례가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는 이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게, 바로 성령세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 어디에도, ‘성령세례를 받아라.’라는 명령이 없다고요. 여러분! 성경을 보셨으면 아실 거 아닙니까? ‘성령세례를 받아라!’라는 그러한 명령이, 요구가, 성경에는 한 군데도 없어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성령을, 성령세례를, 이미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2:13)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에바키시 테멘’이라는 이 헬라어 원어는, 과거예요. 성령세례를 성경이 이야기할 때, 항상 이렇게 과거로 이야기한다고요. 헬라어의 과거시제는, 과거에 한 번 일어났고, 거기에서 그쳐버린 것을, 과거시제라 그래요. 성령세례라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거듭날 때, 딱 한 번 받고 거기서 그치는 거예요. 성령세례를 계속해서 받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는 ‘밥티조’라는 ‘세례를 받다’의 과거로 묘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정도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까지 자라나야, 우리에게 그 성경이 오셔서 우리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니라,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우리에게, 성령이 뚫고 들어오시는 것! 그것을 ‘성령세례’라 그래요.
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다 한 몸으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라고 하는 이 고린도교회에게, 사도 바울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계속해서, ‘너희들은 어리다, 어리석다, 유치하다!’ 계속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이렇게 수준이 되어 있는 자들이 아니라, 어리고, 어리석고, 유치하고,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그러한 자들에게, ‘인투루전(intrusion), 뚫고 들어오셔서’ 성령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계신 것을, ‘성령세례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그리스도라는 머리에다가 몸으로 착 붙여주시는 거!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만들어주시는 거! 그것을 ‘성령세례’라고 하는 거예요. 복습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나 오늘 본문에, ‘성령충만을 받으라!’라는 그 말은, 현재시제예요.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성경에 딱 한 번 요기에 나와요. 그러니까 ‘성령충만을 받으라!’ 이 헬라어의 현재시제는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진행형을 의미한다고요.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진행형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받고 또 받고, 받고, 또 받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잘 비교해서 확인하고 계셔야 되는 거예요. 성령충만은 받고 또 받고, 받고, 또 받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세례는 포지셔널(positional)한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딱 신분이 바꿔지면,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성령충만은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한 거예요. 계속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해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성령충만’이라는 거예요.
오늘은 제가 이렇게 연역적으로 설교를 할 거예요. 주제부터 말씀드리고 설명을 해 나갈 거예요.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뭐라고요? 계속적이고, 연속적이고, 반복적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체험적이라는 거예요. 성령세례는? 포지셔널(positional)한 거예요. 그냥 한 번에 딱 끝나고 말아버리는 거예요.
자, 성경이 말하는 그 성령충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고요. 이 성령충만이, 시중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도토리가 충전이 되어서, 우리가 만지기만 하면 그냥 막 넘어지고, 막 이러는 거! 그런 것인지, 성령충만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성령충만은, 과연 어떤 것인지, 한 번 보자고요.
자, 성경에서,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성령충만이 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성경에는 명확히 이야기해 놓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인간들이 이 성경을 안 읽고, 자기들 상식으로, 지금 가르치고 있는 거라고요. 사도행전 4장 8절로 갑니다.
(사도행전 4:8-12)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 베드로가, 지금 성령충만을 받고, 무얼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사도행전 4장 31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4:31)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이 충만하여 뭘 해요? 말씀을 전한다고요!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세요.
(사도행전 6:3)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일곱 집사!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던 일곱 집사는, 어떤 사람들이에요? 성령충만함을 받은 자들이란 말이에요. 사도행전 7장 55절 보시면,
(사도행전 7:55-56)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뭘 봅니까?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고요.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않습니까? 성령이 충만한 자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지금 윤곽이 잡히죠? 사도행전 9장 17절 보세요.
(사도행전 9:17-18)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때려죽이러 가던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뭘 하게 됩니까? 그 예수를 전하는 자가된다고요.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복음을 전하더라니깐요! 얼마만큼 강하고 담대하게 전했는지 아십니까? 그 자가, 박수무당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한다고요. 사도행전 13장 8절 보세요.
(사도행전 13:8-10)
8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당당하고, 대담하게, 복음을 전하죠? 사도행전 11장 24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11:24)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뭐 했던 사람이에요? 복음 전했던 사람이잖아요?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니까,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사도행전 13장 49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13:49-52)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니던 이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한 자들이었다. 그런다고요. 성령충만이라는 말을 다 찾아 드린 거예요. 지금! 성경에서!
성령충만이 무엇과 함께 설명되고 있습니까? 성령충만한 자들은, 무리나 개인이나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더라는 거예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그 110명의 제자들이나,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그 베드로나, 바나바나, 바울이나, 스데반이나, 성령이 충만하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충만! 성경이 말하는 성령충만은, 그 성령충만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전하고,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더라는 거예요. 그것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성령충만과 함께 나오는 이야기 중에! 성령충만의 제일 되고 가장 특징적인 표지는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삶으로 예수를 전한다는 거예요.
자, 예수를 자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해, 성령을 받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이, 예수를 자랑하고 싶지 않고, 예수를 전하고 싶지 않고, 더더군다나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설렁설렁 여러분의 인생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가 체험한 그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로부터 얻어낸 반대급부! 예수로 얻어낸 축복! 이런 것들 이야기하지 않고, 예수를 이야기하더라는 거예요. 내가 기독교를 믿음으로 해서, 내가 얻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를 전하더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성령세례를 우리가 받죠. 그리고 그 성령은 구원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고요. 그리고 나서 그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그것이 흘러 넘쳐 나오는 거예요. 그것을 성령충만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충만!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입으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요? 아니,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냐고? 알아야 전할 거 아닙니까? 여러분의 체험을 전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받은 엉뚱한 선물! 축복! 전하는 거 아니라면, 예수를 전하는 것이라면, 그 예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예수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계시냐 말이에요? 일단 그 예수에 대해서 알아야, 성령이 충만해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녜요? 디모데전서 6장 3절로 가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3-5)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라는 목회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말씀을 바르게 전하라고, 목회서신을 보내죠? 그것을 우리가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라고 이야기한다고요. 거기에서, ‘교훈’이라는 말이 열네 번 나와요. 말씀을 바르게 전하라는 것을, ‘교훈’이라고 사도 바울이 단어를 썼는데, 그 교훈이라는 말은 ‘닥트린(doctrine)’이라고요. ‘디다스 칼레오.’
이 디모데전서 6장 3절에 나오는 다른 교훈 ‘헤테로 디다스 칼레오’라는 것은 ‘폴스 닥트린(false doctrine)’이라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이 교리를 알지 못하면, 성경을 엉망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리 설교를 제가 하는 거예요.
제가 교리를 이렇게 중요시 여기니까, 어떤 목사가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교리가 뭐 그렇게 중오하냐고? 찌리릭 하고 오는, 이 사이다 같은 감동!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교리를 알지 못하고,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성령 하나님의, 이 성경을 쓰신 저작 의도를 알지 못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단 말입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증인을 왜 이단(異端)이라고 합니까? 여러분 몰몬교를 왜 이단이라고 그러세요? 우리와 교리가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똑같은 성경을 갖고 있어요. 심지어 이슬람 교인들은, 우리와 구약성경이 똑같다고요. 왜 그들을 이단이라고 합니까? 같은 성경을 갖고 있는데. 교리가 달라서 그런 거예요. 교리가!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그 교리를 여러분이 명확히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합니까? 똑같은 사람들이지요. 아니, 이슬람에도 교리가 있고, 불교에도 교리가 있고, 증산교에서도 교리가 있고, 남묘호랑개교에도 교리가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에 교리가 필요없다니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아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은 지정의로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왜 사람이 직립인간인지 아십니까? 머리로 여러분 이해를 하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끓어오르는 감정만 갖고 신앙생활 하다가는, 그렇게 해서, 이단에 빠지는 거예요. 어떻게 뭐로 분별하실 겁니까? 여러분, 저를 뭘 믿고 따라오실 겁니까?
제가 언젠가 다른 길로 여러분을 인도해 간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것을 구별하면서 떠나실 거예요? 성경을 근거로 떠나셔야죠. 제가 ‘지옥 가자!’ 그러면 다 지옥 가실 거예요? 교리가 중요한 거예요. 성령충만한 삶,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삶으로, 시인하기 위해선, 그 말씀을 알아야지요. 말씀을 알아야지요!
지난 주간에 제가 우리 선배님들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목사 6명이 밥을 먹고 있더라고요. 목사가 분명해요. 이목사, 김목사, 박목사, 이렇게 목사라고 불렀으니까.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냐 하면, 냉면 사발로 목사들 팰 뻔 했어요. 거기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교회 경영을 배우기 위해선, 일본을 배워야 된다.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교회의 재정을 풍성하게 늘리고, 어떻게 하면, 교회의 사람들을 더 많게 만들고, 그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선, 일본을 배우라는 거예요. 교회의 주인이 누군데요? 예수님이세요! 교회는 누가 이끌어 가십니까? 예수님이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의 운영을 위해서, 일본을 배워야 된다니요? 그리고 자기는, 세상에 나가서 비즈니스 했어도, 아주 잘했을 것 같대요. 그러니까 웬만큼 큰 교회 목사 같아요. 그들이 예배당에 가서 뭘 가르치겠습니까, 여러분!
아니 건축헌금이 50만불 모자란다, 그러니까, ‘나 한 번 불러라! 내가 충분히 그거 걷어준다. 한 번에! 그 대신 반 나 다오.’ 중국의 모 학교에 헌금한다고, 교인들이 헌금한 돈 갖고 가서, 자기 아버지 아파트 분양받고, 그런 개자식들이 있습니까? 도대체 그게 목사예요? 여러분 개 자제분들이죠? 그게 갈비로 주리를 틀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죠. 그게!
왜 그런 겁 없는 행동들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성경이 말하는 바를 몰라서 그래요. 인간은 얼마만큼 악한 존재이며, 그 죄가 무엇이며,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떨어져야 할, 어마어마한 그 저주의 지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천국과 지옥을 믿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살겠습니까? 그들이 교회에 가서 뭘 가르치겠느냐고요? 저는 참 답답합니다. 그건 다 여러분들 책임이에요.
왜,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 성경공부 하는데,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큰 교회 목사님인데, 왜 좋으냐면? 돈을 내라고 하는데, 참 기분 안 나쁘게 내라!’고 한 대요. 그래서 돈을 내면서도 기분이 안 나쁘대요. ‘나는 병신입니다.’ 그 얘기예요. 그건! 자기가 지금 속고 있는 거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돈을 내면서도 별로 기분이 안 나쁘다는 거예요. 그렇게 언변이 좋은 우리 목사가 자랑스럽다는 거예요.
여러분! 밖에 나가서 돈 버는 게 쉽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헌금하는 그 헌금이, 그렇게 쉽게, 우습게, 여러분의 손에 쥐어지는 거냐고요? 새벽부터 밤까지 열두 시간,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씩, 직장 상사들의 그 멸시, 천대 다 받아가면서, 손님들의 비위를 다 맞춰가면서, 뼈 빠지게 번 돈 아닙니까? 내 신앙고백으로 교회에 드려진 그런 헌금을 가지고, 그러한 개 자제분들이 와서 갈비나 뜯고 있으면, 아니 여러분이 분개하셔야 될 것 아닙니까?
어떻게 목사 앞에만 가면 여러분은 그렇게 벌벌 떨어요? 목사 저주권! 축복권! 이런 거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펑션(function, 역할)이 다른 거예요. 저는, 말씀을 공부해서 여러분께 전달하는 거고, 여러분들이 새벽에 와서 밥 해주면 밥 얻어먹고, 또 청소도 하고, 테이프도 만들고, 똑같은 일이에요. 어는 것 하나 경하고 중한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목사가 저주하면 재수 없을까봐, 그 앞에서 아무 말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참 답답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헌금하시는 거 아녜요? 말씀을 아셔야 돼요. 교리를 충실하게 기본으로 갖고 성경을 보세요. 제가 자신하건데, 이 교리 설교 다 마치고 나서, 이제 책별로 제가 강의를 할 텐데, 수월하게 나갈 수 있어요. 일사천리로 그냥 나갈 수 있어요. 그 기본만 알면! 우리가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아셔야 됩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을 보시면,
(갈라디아서 1:6-9)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 성경에 나오는 말 이외에, 다른 말! ‘여러분! 예수 믿으면, 축복받고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내지는, ‘여러분! 예수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이 걸린 병 다 낫게 해줍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능력이 임해서, 내가 손 얹고 기도하는 사람의 문제들이 다 해결됩니다.’ 성경에 없는 그러한 얘기를, 체험적인 얘기들!
이러한 것을 복음이라고 전하는 자들은 뭐라고 그럽니까? 저주를 받을 지어다! 여러분이 만약에, 성경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한다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저주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고 나가시란 거예요. 엉뚱하게 선교 가서, 무당종교 퍼트리고 오지 말고, 알고 나가자는 거예요. 알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책도 소개해 드리고, 책도 나눠드리고, 공부하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전도를 하더라도 알고 하셔야죠.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탄과 대적해서, 세상과 대적해서 싸울 무기가 뭡니까? 딱 하나! 성경에서 말하는 무기! 말씀이라고 그러잖아요? 에베소서 6장 17절을 보세요.
(에베소서 6:17)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진리의 띠! 평안의 복음에 예배하는 신! 뭐 무기가 어디 있어요? 무기는 단 하나, 성령의 검! 곧 말씀이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요. 그러니까 그 말씀을 그때부터는 궁금해 하게 된다고요.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히 흘러넘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과 싸워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맨날 무너지고, 와서 하는 기도는 ‘주여! 지난주에도 이렇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여주옵소서.’ 언제까지 이런 기도만 할 거냐 말이에요? 우리가!
아니, 사탄은 장검을 뽑아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말씀을 갖고 한 번 싸워보자!’ 그러잖아요? 말씀을 가지고 공격하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예수가 오셨는데, 이 땅에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귀신만 알아보지 않습니까? 그 귀신들은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있었던 분! 분들이라네요. (하하하하) 있던 작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를 알아보고, 말씀을 안다고요. 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안단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도 그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될 거 아녜요? 맨날 뽑으면 그냥, 요한복음 3장 16절, 요만한 거! 연필 깎는 칼! 그거 하나 뽑아서 이 싸움이 되겠어요?
두 번째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에베소서 5장에 나온 것처럼,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그의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오늘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이야기해놓고, 뭐라고 그 이야기를 이어갑니까?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자식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들아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마라.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라. 상전들아 종에게 공갈치지 말아라.’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전해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되는 거예요. 성령충만하게 되면!
여러분이 돌아보셔야 돼요. 기도원에 가서, ‘야, 성령충만 받았다! 오늘 아주 그냥 만땅으로 성령 그냥 충만해졌다.’ 나가면서 신발? 새 신발로 바꿔 신고 가요. 헌 신발 신고 와서! 그런 사람들 옛날에는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그래서 나오면서 머리끄댕이 잡고 막 싸우는 거예요. ‘내 신발 왜 신니?’
그런 건 성령충만 아니란 말예요.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보면서, 예수를 보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을 이 땅에 오셔서 설명하셨듯이, 예수님이, 나도 너희를 하나님이 나를 보낸 것처럼 보낸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서 예수가 드러나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게 바로 성령충만한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와, 인내가 나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이익과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을 오히려 멸시하고, 밟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그러한 열매들이 맺히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그 성령의 열매들!
(갈라디아서 5:22)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런 열매가 여러분들에게 생겨야 돼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세례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곳까지 끌고 가신다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성령은 우리를 끌고 가세요. 우리는 거룩을 향해서 가게 되어 있어요.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예수란 머리에다가 붙여 놨다면서요? 우리는 한 몸이라면서요? 그러면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따라야 될 거 아닙니까?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따르지 못할 때, 그 사람을 뭐라 그래요? 중풍이 걸렸다 그러는 거예요. 머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하지 못할 때, ‘뇌성마비 장애인’이라 하는 거예요.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아! 내 입으로 들어와라!’ 명령을 내렸는데, 손은 딴 데로 가는 거예요. 뇌성마비 환자들이 밥 먹는 거 보셨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영적인 그런 장애인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란 머리에 붙어 있다면서요? 그럼 머리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야죠? 어떻게 들을 수 있어요? 성령을 통해서 들을 수 있어요. 성령이 우리를 자극하시고 조명하신다고요. 여러분이 말씀을 알아야, 그게 성령의 음성인지, 마귀의 음성인지 구별할 거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시인(是認)하는 자들이에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들이에요.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는 알고 있어요. ‘메시야흐!’ 그 메시야로 알고 있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분! 지옥에서 구원해주신 분! 그러나 ‘주(主)’라고는 고백 안 한다니까요.
주는 뭐예요? ‘당신이 주인이고, 나는 종입니다.’예요. 그러니까 ‘주인이 시킨 걸, 나는 하겠습니다.’가 내가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주라고는 고백 안 하고, 그리스도인 예수만을 원한다고요. 이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반쪽짜리 복음이라 그러는데, 반쪽짜리 복음을 갖고 있는 자는 구원 못 받는다. 그래요.
그러면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셔야죠. 나는 성령의 그 조명과, 깨달음과, 그 자극을, 따라가고 있는가? 그 성령의 음성을 구별해내어서, 그 성령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는, 내 몸을 지금 틀고 있는가? 성령세례를 받고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령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못 쫓아가면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는 자다’라고 이야기해요. 성령을 어떻게 소멸해요? 성령이 소멸되는 분입니까? 하나님이신데요. 아니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왜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이야기할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을 보세요.
(데살로니가전서 5:19)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성령을 소멸치 말라 그래요.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구속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뚫고 들어오셔서 강압적으로 우리를 끌고 가시지만, 성령충만의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성령이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실 때, 우리가 그 방향을 따라서 몸을 털어서 가야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계속해서 우리가 거부하고, 무시해버리면, 점점점점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 성령의 음성을 못 듣게 되는 거예요. 그걸 성령을 소멸한다고 이야기해요. 성경에서는!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엉터리로 사는 사람은, 계속 엉터리로 사는 거예요. 아니요, 우리는 딛고 일어나는 거예요. 설사 실패한다 할지라도 한 번 이를 악물고 한 번 해보는 거죠. 그게 성령충만한 자와, 성령을 소멸하는 자의, 차이점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을 보시면,
(에베소서 4:29-32)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을 근심케 하는 자들은, 지금 위에 기술되어진 일들을, 안 한다는 거예요. 성령이 충만한 자들은요 이 일들을 해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더러운 말은 너의 입 밖에 내지도 말라! ‘그러면서 당신은 왜 욕하십니까? 설교시간에!’ 저는 조금 다른 거예요. 그 이야기하고는!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이야기 했다고요. 저는 개자제분이라고 그랬지, 그건 더 심한 욕 아녜요? 독사의 새끼라는 거는! 예수님의 그 의분(義憤)에 저는 동참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는, 이 종의 신분으로서, 어찌 제가 그 의분에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도 종종 설교시간에 욕이 나오면, ‘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의분에 동참하는구나!’ 이 시대의 교회가, 바르게 되는 그 날까지, 욕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성령을 소멸치 마셔야 돼요. 성령을 근심케 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성령은 절대 강제로 일하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이야기하신다고요.
여러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도 우리가 살펴봤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2원인(原因)! 하나님을 제 1원인이라고 그래요. 제 2원인은, 하나님이외의 모든 것! 우리의 인품! 성격! 상황! 조건! 이런 걸 이야기하거든요. 이 제 2원인을 전혀 무시하지 않고, 일을 이루어 가신다고요. 우리의 의지를 발동해서, 하나님을 좇아오게끔 우리를 각성케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조명(照明)을 하세요. 그렇지만 억지로는 안 끌고 간다고요.
‘성도의 견인(堅忍)’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오해하시면 안 돼요. ‘야! 구원받았으니까 억지로 그냥 거기까지는 가겠지. 그리고 개판치고 살아도 되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조명하고, 깨닫게 하시고, 각성케하시고, 기다리신다고요. 우리가 의지를 발동해서 좇아오게! 강제로 끌고 가시면, 심판 날에 하실 말씀이 없잖아요? ‘쟤네들은 그냥 끌고 가놓고, 우리는요?’ 하나님은 기다리세요. 때로는 패시면서! 때로는 우리에게 교훈하시면서!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인생 채찍! 사람 막대기! 호세아서에 나오는 것처럼, 가시와, 담으로, 우리 앞길을 때로는 먹고, 우리에게 회초리를 대시면서, 우리를 이리로 끌고 가신다고요. 그 때에, 그렇게 회초리가 날아올 때에, 우리는 얼른 알아듣고, 방향을 틀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자리까지 분명히 우리를 만들어 가실 거라고요. 자기의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우리에게 선물하신 그 구원을, 반드시 이루어 가실 거라고요. 이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패실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말할 때, 돌아오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셋 셀 때까지 안 오면, 다섯까지 세시는 분이에요. 오만 번까지라도 세시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고집이 세신 분이라고요. 끝까지 여러분을,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럼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이렇게 올바른 교리 말씀으로 무장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바른 복음을 자랑하며, 전하는 자들이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자기의 의지를 발동하여, 힘겹지만,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을, 성령충만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난주에,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그런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받혔어요. 변호사가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아프지 않지만 병원에 다녀라! 병원에 한 번 간 것도, 두 번 간 걸로 얘기해라!’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대부분 다 눈 감고 가죠.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는 분이에요. 그 분이! 성령이, ‘안 된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이 길을 쫓는가 하면, 이 음성을 무시해 버리고, ‘한 번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 이리 가는 사람을, 성령을 소멸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형제가, 저에게 메모지를 갖고 왔어요. 자기 집사람이 일 년 반전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메모를 해서, 자기 베게에다 넣어놓은 것을, 일 년 반 후에 찾아낸 거예요. 펑펑 울면서 왔는데, 뭐라고 여기에 쓰여 있느냐 하면요,
하나님 뜻에 따라, 저희 두 사람 부부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나,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게 해주신 은혜를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하신 말씀, 언제나 잊지 않고 이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업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남편에게 건강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믿음, 허락하여 주셔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의 아들임을 알고, 세상의 빛, 땅의 소금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소서! 모든 일을 주의 뜻대로만 하게 하시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세상의 욕심을 멀리 하게 하소서. 사업 또한 욕심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사업이 되게 하소서! 어떠한 시험과 유혹도 이기며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지혜로움으로,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항상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먼저 하나님 편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기 원하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힘쓰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둘 항상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새로운 해를 바라보며, 저희 죄 지은 것 자백하고, 용서구합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의 내용이 여기 다 들어가 있어요. ‘하나님! 나 부자 되는 거 싫지 않습니다. 우리 남편 사업 성공하는 것 싫지 않습니다.’ 그거 싫으면 바보죠? ‘그렇지만, 나의 욕심 따라서 그런 것들이 주어진다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물질과 명예에 노예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거 다른 사람 얘기할 때 편해요. 그런데 그게 자기의 남편의 이야기일 때는 다르다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도문을 적어서 베게 밑에다 넣어 놓은 거예요. 술이나 마시고 다니고, 하나님 외면하던 남편이, 정확히 1년 반 후에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몇 주간 나의 이 문제가 너무나 해결되어지지 않아서, 새벽기도에 계속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 속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왜 하나님 내 이 상황을 변화시켜주지 않으십니까? 원망의 기도였는데, 지금은 아!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을 원하시는 군요. 하나님! 언젠가 내가 변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금 해결됐다고 하면, 언젠가는 또 다시 이런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나는 또 무너질 텐데…, 하나님! 지금 내가 변하기를, 내가 변하기를 원하시는군요. 어떻게 나 같은 인간 마음속에서 이렇게, 나는 변해야 된다는 마음이 솟구쳐 오릅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나는 오늘 감사의 기도를 하러 기도원에 갑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갔어요. 지금! 성령충만한 자의 삶이, 이렇게 한 사람의 영혼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자의 삶!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꽉 차 있어서, 도대체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사람! 이 사람을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한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하나님나라가 그렇게 완성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령충만함을 받은 자라고요. 이러한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저는, 교인들이 줄어도 상관없어요.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하나님의 음성,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좇아 사는 사람들! 성령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과, 하나님께 졸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는, 오늘날 많은 자칭기독교인들의 삶과, 어떤 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겠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신 이후에, ‘나가서 입 다물어라!’ 왜 제자들에게, ‘나가서 입 딱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했는지 아십니까? 복음이라는 것은 십자가지, 내가 이렇게 너희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이나 만들어주고, 병이나 낫게 해주고, 귀신이나 쫓아주고, 그게 복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내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음으로, 너희가 나가서 나를 소개할 때에, 나를 이러한 것으로만 소개할까봐, 이야기하지 못하게 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그 이야기들만 하고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병이나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주고, 여러분들이 필요한 떡이나 나눠주는 게,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본주의인 것입니다. 인본주의 아녜요.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 아니라고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언제든지 콜하면 나타나서, 무슨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나타나서, ‘주인님 뭘 원하십니까?’ 이거 기독교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아시고 그런 소리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제 성령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아셨으면 그렇게 살아내야죠. 저와 여러분이 이 문을 나서면서, 결단하고 결심하면서 나가시자고요. 그래, 비록 실패할지라도, 노력해보자고요. 이를 악물고라도 한 번 해보자! 그게 성령 충만한 삶이라면 그렇게 한 번 살아보자! 그렇게 결단하면서 이 문을 나서자고요.
(20)聖霊(03)聖霊の満たし(エペソ5:15-27)
今日、私たちが共に分かち合う御言葉は、エペソ人への手紙5章15節から27節までの御言葉です。
(エペソ5:15-27)
15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がどのように歩むべきかをよく注意し、知恵のない者のようではなく、知恵のある者のように歩みなさい。
16 時を有効に用いなさい。今の時代は悪いからです。
17 ですから、愚かな者にならないで、主の御心が何であるかを悟りなさい。
18 酒に酔ってはいけません。それは放蕩に至るものです。むしろ御霊に満たされなさい。
19 詩と賛美と霊の歌をもって互いに語り合い、心から主に向かって歌い、賛美しなさい。
20 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いつも父なる神に感謝しなさい。
21 キリストを恐れる心をもって、互いに従いなさい。
22 妻たちよ。主に従うように、自分の夫に従いなさい。
23 なぜなら、キリストが教会の頭であり、ご自身がその体の救い主であるように、夫は妻の頭だからです。
24 しかし、教会がキリストに従うように、妻たちも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夫に従いなさい。
25 夫たちよ。キリストが教会を愛し、そのためにご自身をお与えになったように、妻を愛しなさい。
26 キリストがそうされたのは、みことばによって水で洗い、きよめて聖なるものとするためであり、
27 ご自身の前に栄光に満ちた教会として立たせ、しみやしわやそのようなものが何一つなく、聖く傷のないものとするためでした。
今日、私たちは「聖霊の満たし」について見ていく時間です。先週の金曜日、私がよく知っている長老の方が私たちの教会を訪ねて来られました。その方が子どもの頃の話をしてくださいました。子どもの頃、その方のお姉さんがクラシック音楽を専攻しておられたそうです。クラシックを専攻していたので、弟に良い音楽を聴かせたいと思われ、韓国にとても有名なオーケストラが来て演奏会があったそうです。そこで弟の手を引いて、その演奏会に音楽を聴きに行ったそうです。
ところが、この長老は音楽については全くの素人でした。他の人たちは演奏が始まるとみなその音楽に感動して聴いているのに、この長老はちょうど10分ほど過ぎた頃から眠り始め、いびきまでかいて寝てしまったそうです。しかもそのいびきがとても大きかったので、お姉さんはあまりにも恥ずかしくなり、演奏が終わる前に弟の手を引いて外へ連れ出したそうです。自分はとても恥ずかしかったと言っておられました。
この長老はとても負けず嫌いな方です。それでその足で書店に行き、「クラシック音楽を理解するためにはどんな本を読めばよいですか」と尋ね、その店主が勧めてくれた本を買って勉強したそうです。それでクラシック音楽とは何か、モーツァルトは?ヴィヴァルディは?ヘンデルは?バッハはどのような意図でその曲を書いたのかを一生懸命に勉強したそうです。そしてそのとき演奏会で聴いた音楽が収められているLPレコードを買って聴いたそうです。作曲家がその曲を作った意図と目的を正確に理解して聴くと、とても面白かったそうです。そのときからクラシック音楽が耳に入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のです。
そして何をおっしゃったかというと、今日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いると言う人たちが、自分たちは聖書を信じていると言いながら、その聖書を書かれた神の意図を全く気にしていないというのです。だからその聖書の意図が人々の心の中でクリア(clear)にディファイン(define)されていないので、聖書を開くと眠くなるのです。聖霊の感動によって書かれたこの聖書が、どのような目的と意図で書かれているのかを明確に理解した後は、聖書を開いて眠ることなど絶対にできないというのです。
私たちは神の意図を知ろうともせず、理解もしないまま、ただ聖書を開いて自分が聞きたい言葉だけを抜き出して読み始めたというのです。いつからか、皆さんがQT(キューティー)というものをするようになって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点があります。皆さんがこの聖書の著作意図や神の目的を全く知らず、基本も知らないまま聖書を読みながら、「今日この聖書から神が私に与えてくださった言葉」「あるいは一つの文章」を取り出し、「今日神が私にこう語られたのだから、これは私にどんな意味だろうか」と考える。もしこのように聖書を読む癖がつくなら、皆さんはもう一つのお守りを持ち歩いているだけで、聖書を読んでいるのではないのです。
皆さん、ヴィヴァルディの『四季』を聴きながら、春の部分を聴いているときに、自分はそりに乗っている場面を想像していたら、ヴィヴァルディは嬉しいでしょうか。ヴィヴァルディの夏を聴きながら、秋の落ち葉を思い浮かべて涙を流すのです。聖書が語っている話はその話ではないのに、自分一人で別の意味を考えながら感動して泣く。そして「恵みを受けました」と言うのです。
もちろんヴィヴァルディの四季を聴きながら、春を聴いて冬を思うことはできます。しかし聖書が語っている真意を理解せず別の意味に誤解しながら涙を流し、感動し、「恵みを受けた」と言うなら、それは永遠の命をかけてい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だから取り返しがつかないことなので、本当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神が全く意図していなかった深い意味を自分が発見したと思い込み、一人で感動するのです。神はそのような意味で書いていないのに、自分一人で深い意味を見つけたと言って感動する。これはとても危険なことです。
ウォッチマン・ニーやウィットネス・リー系の地方教会の人々が、そのような誤りを犯しているのです。聖書を50回、100回と読むと言います。しかし他の知識はすべて拒否します。だから自分たちの思い通りに聖書を解釈してしまい、聖書はたくさん読んだのにめちゃくちゃなのです。私たちはそのような誤りを犯してはいけません。
私たちのジェームスはヌードを描くのがとても上手です。うちの教会員の半分は画家なので、こういう例えを出すのです。ヌードを上手に描くのですが、その説明を聞くと福音が全部入っています。しかしジェームスが描いたその絵の意図を知らず、ただその絵だけを見て「いやあ、セクシーだなあ」と評価するなら、その作品を描いたジェームスは侮辱を受けるのです。聖書が語る正確な意図を知らずに自分一人で感動することは、神を冒涜することなのです。
私が新来者クラスや「聖書とは何か」という説教で話しましたよね。創世記から黙示録まで二時間かけて一気に説明しました。そこには何が書かれていましたか。イエス・キリスト、十字架、救い、恵み以外には何も書かれていません。創世記から黙示録の終わりまで、イエス・キリスト以外には何も書かれていません。
ところがそこから「この地上でお金を稼ぐ方法」「どうやって尊敬されて生きるか」「事業で成功する方法」などを探そうとするなら、それは聖書を冒涜することです。
聖霊についてはなおさらです。今日、多くの教会が誤解しているのがまさにこの聖霊に関すること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とは何か、聖霊の満たしとは何か、聖霊が私たちに与えた賜物とは何か。そのようなことを確認もしないで人々に聖霊を伝えているなら、それは伝道ではなく神を冒涜しているのです。だから私たちははっきりと、熱心に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知って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実は私も皆さんを楽しませたいのです。そしてその方法も知っています。どうすれば人がたくさん集まるか、その方法を私は知っています。昔、私は金大中大統領の人集めの仕事ばかりしていた人間です。その方法を知らないわけがないでしょう。ではなぜこんなに堅苦しい教理を、開拓したばかりの教会で最初から始めるのでしょうか。本来なら後でもできることです。しかし皆さんがとんでもない道に行っ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からです。たとえ教会員が減っていったとしても、この部分だけは確実にしておかなければ、この礼拝堂の中から地獄に行く人が出るかもしれないからです。
今日の「聖霊の満たし」。聖霊の満たしが何であるかを、皆さんははっきり知って帰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前回まで私たちは聖霊のバプテスマについて見てきました。聖霊のバプテスマとは何でしたか。ある日、炎の舌のような聖霊が降りてきて、体に電気が走り、口から泡を吹いて倒れることを聖霊のバプテスマと言いましたか。聖霊のバプテスマとは何でしたか。創世前に契約された神のその契約に従って、イエス・キリストがこの地に来られ、その働きを完成し、その完成の保証として聖霊が神の選ばれた民に下ってくる出来事、それを私たちは聖霊のバプテスマと言いました。
そしてそのことによって神の民の目が開かれる出来事。だからここに来て「私はイエスを主と告白します」と言う皆さんは、すでに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た人だと話しました。聖霊が来て私たちの目を開き、罪について、義について、裁きについて、イエスについて、救いと恵みについて悟らせ理解させること、それが聖霊の働きであり、聖霊が来て私たちに能力を発揮させることではないと話しました。
ですから聖霊のバプテスマは非常に受動的なものです。神の主権によって私たちに与えられるものです。私たちが何もしていないのに、神の能動的な働きによって与えられるものです。しかし聖霊の満たし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今日の本文でも「聖霊に満たされなさい」と言っています。聖霊の満たしには私たちがすべき部分があるのです。その部分を見ていきます。
聖霊のバプテスマというものは、そのように受動的なものですから、私たちが求めたり、願ったり、熱心に努力したからといって与え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世間で言われているように、「皆さん!力あるクリスチャンになるためには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聖霊のバプテスマを慕い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力があります。力を受けます。祈りなさい。」そう言ったからといって聖霊のバプテスマが来るのではなく、聖霊のバプテスマはすでにすべてのクリスチャンに与えられているもの、それが聖霊のバプテスマなのです。
ですから聖書のどこにも「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なさい」という命令はありません。皆さん!聖書を読んでいれば分かるでしょう。「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なさい」というそのような命令も要求も、聖書には一か所もありません。すべてのクリスチャンはすでに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ているのです。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2章13節を見てください。
(コリント第一 12:13)
13 私たちは皆、ユダヤ人もギリシア人も、奴隷も自由人も、みな一つの御霊によってバプテスマを受けて一つの体となり、また皆一つの御霊を飲む者とされたのです。
「一つの御霊によってバプテスマを受けた、エバキシ・テメン」というこのギリシャ語の原語は過去形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について聖書が語るときは、いつもこのように過去形で語られるのです。ギリシャ語の過去時制は、過去に一度起こり、そこで終わった出来事を表します。聖霊のバプテスマというのは、私たちが新しく生まれたときに一度だけ受けて、そこで終わるもの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を何度も受け続けるのではありません。
ここでは「バプティゾー(バプテスマを受ける)」という言葉の過去形で描写されています。ですから聖霊はすでに私たちの内におられるのです。つまり、私たちがある程度神の望む水準まで成長してから聖霊が来て力あるクリスチャンになるのではなく、罪と咎によって死んでいた私たちの中に、聖霊が突き破って入って来られること、それを「聖霊のバプテスマ」と言うのです。
このコリント第一の手紙で、「私たちは皆一つの体として一つの御霊によってバプテスマを受けた」と言われているそのコリント教会に対して、使徒パウロは何と言っていますか。ずっと「あなたがたは幼い、愚かだ、子どもっぽい」と言い続けているのです。つまり、ある程度成熟した人たちではなく、幼く、愚かで、未熟で、罪と咎によって死んでいたような者たちの中に、聖霊が「イントゥルージョン(intrusion)」、つまり突き破って入り込み、私たちの内に住んでくださる。それを「聖霊のバプテスマ」と言うのです。
つまり聖霊が来て、私たちをキリストという頭に体としてぴったり結びつけること、キリストと連合させること、それを「聖霊のバプテスマ」と言うのです。復習ですよ、皆さん。
しかし今日の本文の「聖霊に満たされなさい」という言葉は現在形です。聖霊に満たされなさいという言葉は、聖書に一度だけここに出てきます。このギリシャ語の現在形は、継続的で反復的な進行形を意味します。継続的で反復的な進行形ということは、この聖霊の満たしというものは、受けて、また受けて、受けて、また受け続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ですから聖霊のバプテスマと聖霊の満たしは、よく比較して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聖霊の満たしは受けて、また受けて、受け続けるもの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はポジショナル(positional)なものなのです。
つまり、神の子どもとして身分が変えられたなら、それで終わりなのです。では聖霊の満たしは何でしょうか。それはエクスペリエンス(experience)なのです。継続的に、経験的に、体験的に、私たちの人生の中で経験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それが「聖霊の満たし」なのです。
今日はこのように演繹的に説教を進めます。まず結論から話して、それを説明していきます。聖霊の満たしとは何でしょうか。継続的で、連続的で、反復的なものです。そして体験的なもの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はポジショナルなものです。一度起こってそれで終わるものです。
では聖書が語る聖霊の満たしとは何か、具体的に見てみましょう。この聖霊の満たしが、世間で言われているように、まるで電池が充電されるように満たされて、私たちが触ると人が倒れたりする、そういうものなのかどうか。聖書が語る聖霊の満たしとは一体どのようなものなのか見てみましょう。
聖書の中で、聖霊の満たしを受けた人たちが何をしたのか、どのような経験をしたのかを見れば、聖霊の満たしが何かすぐに分かるではありませんか。聖書にははっきり書いてあります。しかし人々はこの聖書を読まず、自分たちの常識で教えているのです。使徒の働き4章8節に行きましょう。
(使徒4:8-12)
8 そのときペテロは聖霊に満たされて言った。「民の指導者たち、長老たちよ。
9 私たちが今日、病人に行った良い行いについて、この人がどうして癒されたのかと尋ねられているのなら、
10 あなたがたも、すべてのイスラエルの民も知りなさい。あなたがたが十字架につけ、神が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たナザレの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この人は健康になってあなたがたの前に立っているのです。
11 この方こそ、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であり、隅のかしら石となったのです。
12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人が救われるべき名は、私たちにこの名のほか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使徒ペテロは今、聖霊に満たされて何をしていますか。イエスがどなたであるか、福音を語っているのです。使徒4章31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4:31)
31 彼らが祈り終えると、集まっていた場所が揺れ動き、一同は聖霊に満たされ、大胆に神の言葉を語りだした。
聖霊に満たされて何をしますか。御言葉を語るのです。使徒6章3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6:3)
3 兄弟たちよ。あなたがたの中から、御霊と知恵に満ち、評判の良い人を七人選びなさい。私たちはその人たちにこの務めを任せます。
七人の執事。神の福音を伝えたその七人の執事はどのような人たちでしたか。聖霊に満たされた人たちでした。使徒7章55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7:55-56)
55 しかしステパノは聖霊に満たされ、天を見つめ、神の栄光と、神の右に立っておられるイエスを見て、
56 「見よ、天が開けて、人の子が神の右に立っておられるのが見えます」と言った。
ステパノは聖霊に満たされて何を見ましたか。神の右に立っておられるイエス・キリストを見たのです。そしてそのイエス・キリストを証ししたではありませんか。聖霊に満たされた人たちが何をしたのか、だんだん輪郭が見えてきますね。使徒9章17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9:17-18)
17 そこでアナニアは出かけて行き、その家に入り、サウロの上に手を置いて言った。「兄弟サウロよ。あなたが来る途中で現れた主イエスが、あなたを再び見えるようにし、聖霊に満たされるために、私を遣わされました。」
18 するとすぐに、サウロの目からうろこのようなものが落ち、再び見えるようになった。そして彼は立ち上がってバプテスマを受けた。
今、キリスト者たちを打ち殺しに行こうとしていたサウロが、聖霊に満たされると何をするようになりますか。あのイエスを宣べ伝える者になるのです。聖霊に満たされると、福音を宣べ伝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どれほど強く大胆に宣べ伝えたかご存じですか。その者が、祈祷師の前で堂々と福音を語るのです。使徒言行録13章8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言行録13:8-10)
8 ところが、この魔術師エルマ(この名を訳せば魔術師)は彼らに反対し、総督が信じないようにと努めた。
9 サウロ、別名パウロは、聖霊に満たされて彼をにらみつけ、
10 言った。「あらゆる偽りと悪に満ちた者、悪魔の子、すべての正義の敵よ、主のまっすぐな道を曲げることをやめないのか。」
堂々と、そして大胆に福音を宣べ伝えていますよね。
使徒言行録11章24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言行録11:24)
24 バルナバは善い人で、聖霊と信仰に満ちた人であった。それで大勢の人々が主に加えられた。
バルナバは何をしていた人ですか。福音を宣べ伝えていた人ではありませんか。彼が聖霊に満たされて福音を宣べ伝えると、大勢の人々が主に加えられたのです。
使徒言行録13章49節を見てください。
(使徒言行録13:49-52)
49 こうして主の言葉はその地方一帯に広まった。
50 ところがユダヤ人たちは、信心深い身分の高い婦人たちや町の有力者たちを扇動し、パウロとバルナバを迫害して、その地方から追い出した。
51 二人は彼らに向かって足のちりを払い落とし、イコニオンへ行った。
52 弟子たちは喜びと聖霊に満たされていた。
福音を宣べ伝えるために歩き回っていたこの弟子たちは、聖霊に満たされた者たちだったのです。そういうことです。
今、聖書の中で「聖霊に満たされる」という言葉をすべて示したのです。聖書では、聖霊に満たされることが何と共に説明されていますか。聖霊に満たされた者たちは、群衆であれ個人であれ、例外なく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宣べ伝え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
ペンテコステの日、マルコの屋上の部屋にいたあの110人の弟子たちも、サンヘドリンの公会の前に立ったあのペトロも、バルナバも、パウロも、ステファノも、聖霊に満たされると、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宣べ伝えていたのです。
ですから「聖霊に満たされる」とは、聖書が語る聖霊充満とは、聖霊に満たされた者は、口でイエス・キリストを宣べ伝え、生活によってイエス・キリストを証しするということなのです。それ以外にどんな話がありますか。何がありますか。聖霊充満と共に語られる話の中で。
聖霊充満の最も大きく、最も特徴的なしるしは、聖霊に満たされた人はイエス・キリストについて語り、生活によってイエスを伝えるということです。
では、イエスを誇りたいと思わない人は、この意味において厳密に言えば、聖霊を受けた者ではないのです。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ていないということは、キリスト者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ですから、皆さんの人生の中で、皆さんがイエスを誇りたいと思わず、イエスを宣べ伝えたいとも思わず、さらに自分が愛する家族や兄弟たちがイエスを信じていないのに、それでもただぼんやりと自分の人生のためだけに生きているなら、皆さんはまだキリスト者ではありません。
聖霊に満たされた者は、自分が体験した体験を語るのではありません。聖霊に満たされた者は、イエスから得た見返り、イエスから得た祝福、そういうものを語るのではなく、イエスを語るのです。
私がキリスト教を信じたことで得た何かを語るのではなく、そのイエスを宣べ伝えるのです。
聖霊が私たちのもとに来られ、私たちは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ます。そして聖霊は、救いについて、人間について、イエスについて、私たちに理解させてくださるのです。
そしてその聖霊に満たされると、それがあふれ出てくるのです。それを聖霊充満と言うのです。満ちあふれることです。分かりますか。
では、口で、生活で、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宣べ伝えると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いや、そのように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宣べ伝えるためには、まず何が先に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
知らなければ伝えられ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皆さんの体験を伝えるのではなく、皆さんが受け取ったとんでもない贈り物や祝福を伝えるのでもなく、イエスを伝えるのなら、そのイエスについて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
皆さんはイエスについてどれほど知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まずそのイエスについて知らなければ、聖霊に満たされるも何も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
では、テモテへの第一の手紙6章3節に行きましょう。
(テモテへの第一の手紙 6:3-5)
3 だれでも異なる教えを説き、健全な言葉、すなわち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言葉と敬虔に関する教えに従わないなら、
4 その人は高慢で、何も知らず、議論や言い争いを好む者であり、そこからねたみ、争い、そしり、悪い疑いが生じ、
5 心が腐り、真理を失って、敬虔を利益の手段と考える人々の間に争いが起こるのである。
使徒パウロは、テモテとテトスという牧会者たちに手紙を書いて、御言葉を正しく伝えるようにと牧会書簡を送りますよね?それを私たちはテモテへの手紙第一・第二、そしてテトスへの手紙と呼んでいるのです。そこでは、「教え」という言葉が十四回も出てきます。御言葉を正しく伝えなさいということを、使徒パウロは「教え」という言葉で表現しているのですが、その「教え」という言葉は「ドクトリン(doctrine)」という意味です。「ディダスカレオ(didaskaleo)」です。
このテモテへの第一の手紙6章3節に出てくる「異なる教え」、つまり「ヘテロ・ディダスカレオ」というのは、「偽りの教理(false doctrine)」という意味です。
だから、皆さんが教理を知らなければ、聖書をめちゃくちゃに読むしかなくなってしまうのです。だから私が教理説教をしているのです。
私がこのように教理をとても重要視しているので、ある牧師がこんなことを言っていました。教理がそんなに重要なのか、と。ビリッと来る、このサイダーのような感動!それさえあればいいのだ、というのです。皆さんが教理を知らず、イエスが誰であるかを知らず、聖霊なる神がこの聖書を書かれたその著作意図を知らずに信仰生活をすることは、本当に危険な結果をもたらすのです。
皆さん!なぜエホバの証人を異端と言うのでしょうか?なぜモルモン教を異端と言うのですか?私たちと教理が違うからです。同じ聖書を持っています。さらに言えば、イスラム教徒は、私たちと旧約聖書が同じだと言うのです。では、なぜ彼らを異端と言うのですか?同じ聖書を持っているのに。教理が違うからです。教理です!
では、聖書が語っているその教理を皆さんが明確に知らないなら、どうして彼らを指さして批判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同じ人たちではありませんか。いや、イスラムにも教理があり、仏教にも教理があり、甑山教にも教理があり、南無妙法蓮華経にも教理があります。なのにキリスト教には教理が必要ないと言うのですか?そんなことがあり得ますか?知るべきなのです。
皆さん!信仰というものは、知・情・意で受け入れるものです。なぜ人間が直立している存在なのか知っていますか?頭で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皆さんが湧き上がる感情だけで信仰生活をしていたら、そのまま異端に陥ってしまうのです。どうやって、何によって見分けるのですか?皆さん、私を何を根拠に信じてついて来るのですか?
もし私がいつか別の道へ皆さんを導いて行ったとしたら、皆さんはどうやってそれを見分けて離れていくのですか?聖書を根拠に離れ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もし私が「地獄へ行こう!」と言ったら、皆さん全員地獄へ行くのですか?教理は重要なのです。聖霊に満たされた生活、イエス・キリストを口で、また生活で告白するためには、その御言葉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御言葉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先週、私は先輩方と一緒に食事をしていたのですが、隣で牧師が6人食事をしていました。明らかに牧師でした。李牧師、金牧師、朴牧師、というふうに互いに牧師と呼び合っていましたから。そこで何の話をしていたかというと、私は冷麺の器でその牧師たちを殴りそうになりました。そこで何と言っていたかというと、教会経営を学ぶためには日本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そう言っていたのです。
どうすれば教会の財政を豊かに増やすことができるのか、どうすれば教会の人をもっと多く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そういうことを学ぶためには日本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す。教会の主人は誰ですか?イエス様です!教会は誰が導いておられるのですか?イエス様が導いておられるのです。なのに教会の運営のために日本を学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は何ですか?そして自分は、もし世の中に出てビジネスをしていたとしても、とても成功していただろうと言うのです。ですから、かなり大きな教会の牧師のようでした。彼らが礼拝堂に行って何を教えるのでしょうか、皆さん!
建築献金が50万ドル足りない。すると「私を一度呼んでみなさい!私が十分にそれを集めてあげる。一度で!その代わり半分は私にくれ。」中国のある学校に献金すると言って、信徒たちが献金したお金を持って行って、自分の父親のマンションを分譲で買ってやる、そんなろくでもない奴らがいるのですか?いったいそれが牧師ですか?皆さん、ろくでもない連中でしょう?肋骨をねじって罰しても足りないような奴らでしょう。それが!
なぜそんな恐れを知らない行動ができるのか知っていますか?聖書が語っていることを知らないからです。人間がどれほど悪い存在であり、その罪が何であり、その罪のゆえに私たちが落ちるはずの恐ろしい呪いの地獄が、どれほど恐ろしい場所なのかを知らないのです。もし天国と地獄を信じているなら、どうしてそんなふうに生きられるでしょうか?彼らが教会で何を教えるというのですか。私は本当にやりきれない思いです。それは全部、皆さんの責任なのです。
ある人が聖書勉強をしている時に、私にこう言いました。「私たちの教会の牧師は大きな教会の牧師ですが、なぜいいかというと、献金を出しなさいと言うのに、気分を悪くさせずに出させるんです。」だからお金を出しながらも気分が悪くならないそうです。それは「私は愚か者です」と言っているようなものです。自分が今だまされていることを分かっ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それなのにお金を出してもあまり気分が悪くないと言うのです。そんな弁舌の上手い牧師が誇らしいと言うのです。
皆さん!外でお金を稼ぐのは簡単ですか?皆さんが教会に献金するそのお金が、そんなに簡単に、軽く、皆さんの手に入るものなのですか?早朝から夜まで12時間、14時間、15時間も、職場の上司の侮辱や軽蔑を受けながら、客の機嫌を取りながら、骨身を削って稼いだお金ではありませんか?自分の信仰告白として教会にささげられたその献金で、そんなろくでもない連中が来て肉ばかり食べているなら、皆さん怒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か?
どうして牧師の前に行くと皆さんはそんなに震えるのですか?牧師の呪いの権限?祝福の権限?そんなものありません。何もありません!ただ機能(function)、役割が違うだけです。私は御言葉を学んで皆さんに伝えるだけで、皆さんが早朝に来てご飯を作ってくれればそれをいただき、掃除もして、テープも作り、同じことです。どれ一つとして軽い仕事も重い仕事もないのです。
それなのに牧師に呪われたら不運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て、その前で何も言えないのですか?皆さん。本当に情けないことです。皆さん、そんなに苦労して稼いだお金を献金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御言葉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教理をしっかりと基礎として聖書を読んでください。私は断言しますが、この教理説教を全部終えたあと、今度は聖書の各書ごとに講義をしていきますが、とてもスムーズに進めることができます。一気に進め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基本さえ分かれば!私たちが信じていることが何なのかを明確に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ガラテヤ書1章6節を見てください。
(ガラテヤ 1:6-9)
6 キリストの恵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を召してくださった方を、こんなにも早く離れて、別の福音に従っていることに私は驚いています。
7 ほかの福音はありません。ただ、ある人たちがあなたがたを混乱させて、キリストの福音を変え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8 しかし、たとえ私たちであれ、天からの御使いであれ、私たちがあなたがたに宣べ伝えた福音以外のものを宣べ伝えるなら、その者は呪われるべきです。
9 私たちが前に言ったように、今もう一度言います。もしだれでもあなたがたが受けたものと違う福音を宣べ伝えるなら、その者は呪われるべきです。
この聖書に書いてある言葉以外の、別の言葉!「皆さん!イエスを信じれば祝福されて幸せに豊かに生きられます。」あるいは「皆さん!イエスを信じれば聖霊が来て、皆さんの病気を全部治してくれます。皆さん!イエスを信じれば力が臨んで、私が手を置いて祈ればその人の問題が全部解決します。」聖書にないそういう話、体験談のような話!
こういうものを福音だと言って伝える者は何と言われていますか?呪われよ!皆さんがもし聖書の内容を正確に理解しないで、他の人に伝道しに出て行くなら、皆さんは呪われるようなことをしているのです。だから知ってから行きなさいというのです。とんでもない宣教に行って、シャーマン宗教を広めて帰って来ないように、知ってから行こうというのです。知って!だから私は皆さんに本を紹介し、本を分け与え、勉強しましょうと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か。伝道をするにしても知ってからするべきでしょう。
皆さん、私たちがこの世を生きながら、サタンと戦い、世と戦う武器は何ですか?ただ一つ!聖書が言っている武器!御言葉ではありませんか。エペソ6章17節を見てください。
(エペソ 6:17)
17 救いのかぶとと、御霊の剣、すなわち神の言葉を取りなさい。
救いのかぶと!義の胸当て!信仰の盾!真理の帯!平和の福音の備えの靴!武器はどこにありますか?武器はただ一つ、御霊の剣、すなわち御言葉です。聖霊が来られると、私たちはその御言葉を理解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だからその御言葉をそれからは知りたくなるのです。その御言葉が私たちの中に満ちあふれなければ、私たちは世と戦って勝つことはできません。だからいつも倒れて、祈りに来て「主よ!先週もまたこうして倒れてしまいました。赦してください。」いつまでこんな祈りばかりするのですか?
サタンは長い剣を抜いて、イエス・キリストにさえ「御言葉で一度戦ってみよう!」と言いました。御言葉で攻撃してきたではありませんか。イエスが来られたのに、この地では誰も分からなかったのに、悪霊だけが分か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悪霊は天でイエスと一緒にいた存在たちなのです。だからイエスを見分け、御言葉を知っているのです。何が神の言葉なのかを知っているのです。ならば私たちもその御言葉が何であるか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いつも抜くのがヨハネ3:16の小さなナイフだけで、この戦いができますか?
第二に、聖霊に満た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福音を生活で伝えるということは、今日読んだ本文、エペソ5章にあるように、聖霊に満たされるとその人の生活が変わるということです。使徒パウロはエペソ教会に聖霊に満たされなさいと言って、そのあと何と言っていますか?
「夫たちよ妻を愛しなさい。妻たちよ夫に従いなさい。子どもたちよ親に従いなさい。父たちよ子どもを怒らせてはいけない。僕たちよ主人に従いなさい。主人たちよ僕を脅してはいけない。」
聖霊が満ちると、私たちの生活の中でイエス・キリストがそのように現れるのです。私たちの生活が変わるのです。聖霊に満たされると!
皆さん振り返ってみてください。祈祷院に行って「今日は聖霊充満を受けた!今日はもう満タンだ!」と言いながら出て行くとき、靴は?新しい靴に履き替えて帰る。古い靴を履いて来て!昔はそういう人がどれほど多かったか知っていますか?それで外に出ると髪の毛をつかんでけんかするのです。「なんで私の靴を履くの?」
そんなものは聖霊充満ではありません。生活に変化が起こるのです。聖霊充満とは!その人を見てイエスを見るのです。イエスが神をこの地に来て説明されたように、イエスは「父が私を遣わしたように、私もあなたがたを遣わす」と言いました。だから私たちの生活の中でイエスが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れが聖霊充満の人の生活から出てくるのです。
皆さんの生活の中に、赦し、愛、憐れみ、忍耐が現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の利益や不便を解決するために他人を軽蔑して踏みつけるのではなく、私たちの生活の中でそのような実が結ばれるのです。ガラテヤ5章22節の御霊の実です!
(ガラテヤ 5:22)
22 御霊の実は愛、喜び、平安、忍耐、親切、善意、誠実、柔和、自制です。このようなものを禁ずる律法はありません。
(このような実が皆さんに現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聖霊が私たちに来て、私たちにバプテスマを与えます。そしてその聖霊は私たちを聖なるところへ導いていきます。どんな方法でも!聖霊は私たちを導いて行きます。私たちは聖さへ向かって行く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聖霊が来て私たちをイエスという頭につなげたと言いましたよね?私たちは一つの体だと言いましたよね?ならば頭が命令すること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頭の命令に従えないとき、その人を何と言いますか?中風にかかったと言うのです。頭が望むことを私たちができないとき、それを脳性麻痺と言うのです。「スプーンよ、口に入れ!」と命令しても手は別の方向に行くのです。脳性麻痺の人が食事するのを見たことがありますか?
皆さんが霊的なそのような障害者になってはいけません。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という頭につながっているのです。ならば頭の要求を聞か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どうやって聞くのですか?聖霊によって聞くことができます。聖霊が私たちを刺激し照らしてくださるのです。皆さんが御言葉を知らなければ、それが聖霊の声なのか悪魔の声なのか区別できないではありませんか?
皆さん!私たちはイエスを主でありキリストであると告白する者たちです。私たちはイエスをキリストとしては知っています。メシアとして知っています。私たちを罪から救ってくださった方!地獄から救ってくださった方!しかし「主」とは告白しないのです。
主とは何ですか?「あなたが主人で、私はしもべです。」ということです。つまり「主人が命じることを私は行います。」ということがイエスを主と告白することなのです。しかし私たちは主とは告白せず、キリストとしてのイエスだけを求めているのです。これを信仰の先輩たちは「半分の福音」と呼びました。半分の福音を持っている者は救われないと言うのです。
では私たちはもう一度確認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は聖霊の照らしと悟りと促しに従っているのか?聖霊の声を聞き分けて、その聖霊が望む方向へ自分の体を向けているのか?聖霊のバプテスマを受けて生まれ変わったにもかかわらず、聖霊が望む方向に従わずに生きている人を「聖霊を消している人」と言います。聖霊をどうやって消すのですか?聖霊は消える存在ですか?神なのに。違います。
しかし聖書ではなぜ「御霊を消してはいけない」と言うのでしょうか?テサロニケ第一5章19節を見てください。
(テサロニケ第一 5:19)
19 御霊を消してはいけません(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御霊を消してはいけない」とあります。この言葉が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というと、救い(贖い)の問題においては、聖霊が私たちの意思とは関係なく突き破って入り、強制的に私たちを導いて行かれますが、聖霊に満たされるという部分においては、私たちが努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聖霊が私たちを刺激し、私たちに声を聞かせてくださるとき、私たちはその方向に従って体を動かして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ところが、私たちがそれを繰り返し拒み、無視してしまうと、だんだんそれに慣れてしまい、ついにはその聖霊の声が聞こえ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聖書ではそれを「御霊を消す」と言っているのです。
ですから、教会の中でもいい加減に生きている人は、ずっといい加減に生き続けてしまうのです。いいえ、私たちは踏みとどまって立ち上がるのです。たとえ失敗したとしても、一度歯を食いしばって挑戦してみるのです。それが聖霊に満たされた人と、聖霊を消してしまう人との違いなのです。エペソ4章29節を見てください。
(エペソ 4:29-32)
29 悪い言葉を一切口から出し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聞く人に恵みを与えるために、その時々に応じて人を育てるのに役立つ良い言葉を語りなさい。
30 神の聖霊を悲しませ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がたは贖いの日まで、御霊によって証印を押されているのです。
31 あらゆる悪意、憤り、怒り、叫び、そしりなどを、すべての悪とともに捨て去りなさい。
32 互いに親切にし、あわれみを持ち、神がキリストにあっ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互いに赦し合いなさい。
聖霊を悲しませる人たちは、今ここに書かれていることをしない人たちだということです。聖霊に満たされた人たちは、これらのことを行う人たち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皆さん!「悪い言葉を口から出してはいけない」とありますね。「それなのに、あなたはなぜ説教の時間に悪い言葉を言うのですか?」と言うかもしれませんが、私は少し違うのです。この話とは。
イエス様もパリサイ人たちに向かって「まむしの子ら」と言われました。私は「ろくでもない連中」と言っただけです。それよりも「まむしの子」というほうが、もっと強い言葉ではありませんか。私はイエス様のその義憤に参加しているのです。イエス様に従って命を捨てると言うこのしもべの立場として、どうしてその義憤に参加しない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これからも説教の時間にそういう言葉が出てきたら、「ああ、イエス・キリストの義憤に参加しているのだな」と思ってください。この時代の教会が正しくなるその日まで、そういう言葉を言わ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のです。
皆さん、聖霊を消してはいけません。聖霊を悲しませてはいけません。聖霊は決して強制的に働かれる方ではありません。だからこそ、私たちに聖霊に満たされなさいと言われるのです。
皆さん!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でも私たちは見ましたが、神は「第二原因」を用いられます。神を第一原因と言います。第二原因とは、神以外のすべてのものです。私たちの人格、性格、状況、条件などを指します。神はこの第二原因をまったく無視せずに働かれるのです。私たちの意志を働かせて神に従うように、私たちを目覚めさせ、悟らせ、照らしてくださいます。しかし無理やり引っ張って行くことはされないのです。
「聖徒の堅忍」という教えを誤解してはいけません。「救われたのだから、どうせ最後まで無理やりでも連れて行かれるだろう。だから好き勝手に生きてもいい。」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神は私たちを照らし、悟らせ、目覚めさせ、待っておられるのです。私たちが自分の意志で従って来るのを!もし神が無理やり連れて行かれるなら、最後の審判の日に言うことがなくなってしまうではありませんか。「あの人たちは無理やり連れて来られたのに、私たちはどうしてですか?」となってしまうでしょう。神は待たれるのです。時には打たれながら!時には私たちに教訓を与えながら!
聖書にあるように、神は人生のむち、人の杖を用いられます。ホセア書にあるように、いばらや垣で私たちの道をふさぎ、時には私たちを打ち、私たちをこちらへ導かれるのです。そのむちが飛んでくるとき、私たちはすぐに悟って方向を変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は必ず私たちをこの位置まで導かれるのです。ご自身の子を殺してまで与えてくださったその救いを、必ず完成させられるのです。その地点に行くためには、私たちが変わ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が自ら変わらないなら、神は打つしかないのです。だから、まだ優しく言われているうちに戻って来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皆さん!神は三つ数えて来なければ終わり、という方ではありません。五つまで数える方です。いや、五万回でも数える方です。神はそれほど頑固なお方なのです。最後まで皆さんを完成された作品にされるのです。
では、聖霊に満たされた人とは、このように正しい教理の御言葉で武装し、いつでもどこでも正しい福音を誇り、伝える人であり、聖なる生活を追い求め、自分の意志を働かせ、苦しくても聖霊の声に従って生きる人のことを言うのです。
先週、私たちの教会の執事の一人が電話をしてきました。交通事故に遭ったのです。後ろからぶつけられました。弁護士がこう言ったそうです。「痛くなくても病院に行きなさい。一度行ったのを二度行ったことにしなさい。」それで私に電話が来たのです。「こんなふうに生きてはいけ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か?ほとんどの人は目をつぶってそうします。でも、こんなふうに生きてはいけないのではありませんか?」聖霊の声を聞いている人です。その人は!聖霊が「だめだ。うそをつくな。その道へ行ってはいけない。」と言われる声を追う人もいれば、その声を無視して「一度くらい!みんなそうしているのだから!」と別の道へ行く人もいます。そういう人を聖霊を消している人と言うのです。
そしてある兄弟が、私にメモを持ってきました。自分の妻が1年半前に神にささげた祈りを書いて枕の中に入れておいたものを、1年半後に見つけたのです。泣きながら来ました。そこにはこう書いてありました。
神様の御心によって、私たち二人を夫婦にしてくださったことを感謝します。あまりにも違う二人ですが、互いに理解し助け合いながらここまで過ごさせてくださった恵みに心から感謝します。「妻たちよ、主に従うように夫に従いなさい」という御言葉をいつも忘れず、この通り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助けてください。事業のために昼も夜も働く夫に健康を与え、神の御心に従って行動できる信仰を与えてください。多くの人に会うとき、主の子であることを覚え、この世の光、地の塩としての役割を果たす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すべてのことを主の御心のとおりに行わせてください。物質や名誉や権力の奴隷にならないようにし、この世の欲望から遠ざけてください。事業も欲によって得るのではなく、神の祝福として受ける事業となりますように。どんな試練や誘惑にも打ち勝つ力を与えてください。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純真に、試練に勝たせてください。いつも主の栄光を現す者としてください。まず神の前で正しい人になり、家庭の平和のために努力する夫となりますように。私たち二人をいつも愛によって一つにしてください。新しい年を迎えながら、私たちの罪を告白し、赦しを求めます。いつも感謝し、このすべてを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切に祈ります。
エペソ5章の御言葉の内容がここに全部入っています。「神様、私が金持ちになることを嫌だとは思いません。夫の事業が成功することも嫌ではありません。」それが嫌なら愚かでしょう?「しかし、もし私の欲によってそれらが与えられるなら、きっぱりと拒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物質や名誉の奴隷になら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こういうことは他人の話をするときは簡単です。しかしそれが自分の夫の話となると違うのです。それでもこの祈りを書いて枕の下に入れておいたのです。酒ばかり飲んで神を無視していた夫が、ちょうど1年半後、その祈りの答えとして神のもとに帰って来たのです。
牧師先生!私は数週間、この問題があまりにも解決されなくて、毎朝の祈りに出て祈りました。祈り、御言葉を聞くうちに、私の心に変化が起こりました。最初は「神様、なぜこの状況を変えてくださらないのですか?」という不満の祈りでした。しかし今は「ああ、神が私に望んでおられるのは、私が変わることなのだ」と思うようになりました。神様、もし私が変わらないままこの問題が解決されたなら、いつか同じ状況が来たとき、私はまた倒れてしまうでしょう。神様、今、私が変わることを望んでおられるのですね。どうして私のような人間の心に、私が変わ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思いが湧いてくるのでしょうか。神様、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牧師先生、私は今日、感謝の祈りをささげに祈祷院へ行きます。
そして祈祷院へ行きました。今、聖霊に満たされた人の人生が、このように一人の魂を変えていくのです。聖霊に満たされた人の人生!その中にイエス・キリストが満ちていて、一人では抱えきれず、外へあふれ出てしまう人!この人を「聖霊に満たされた人」と言うのです。そのような人がこの世に存在するからこそ、神の国が完成へ向かって進んでいくのです。それが聖霊に満たされた人なのです。このような人たちと信仰生活をするなら、教会の人数が減っても私は構いません。誇りに思います!皆さん!
自分に損が来ても神の声、聖霊の声に従って生きる人!それが聖霊に満たされた人です。こういう人の人生と、神にしつこく頼み込んで何とか自分の欲しいものを手に入れようとする今日の多くの自称クリスチャンの人生と、どちらが本当のクリスチャンの人生でしょうか。
なぜイエス様は、病人を癒し、悪霊を追い出し、死人をよみがえらせた後、「外へ行って黙っていなさい」と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なぜ弟子たちに「出て行って何も言うな」と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福音とは十字架だからです。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の奇跡でパンを与えたり、病気を治したり、悪霊を追い出したりすることが福音ではないのです。だからまだ十字架にかかっていない時に、人々がそれだけでイエスを紹介してしまうのを防ぐために言わせなかったのです。しかしイエスが言うなと言ったことばかりを言っている教会は、神を侮辱しているのです。
イエスを信じるということは、十字架を背負う人生です。皆さん!あなたの病気を治し、悪霊を追い出し、必要なパンを与えることがキリスト教ではありません。
キリスト教は神中心なのです。人間中心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が神のために存在するのであって、私たちのために神が存在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のために、呼べばいつでも現れて、アラジンの魔法のランプのジーニーのように「ご主人様、何を望みますか?」と言う、それはキリスト教ではありません。
皆さん!神がどれほど偉大なお方か知ってそんなことを言うのですか?皆さん!今、聖霊に満たされた人生が何であるか分かったなら、そのように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私たちがこの扉を出るとき、決断して出て行きましょう。たとえ失敗しても、努力してみましょう。歯を食いしばってでも一度やってみましょう!それが聖霊に満たされた人生なら、そのように一度生きてみましょう!そう決意してこの扉を出て行き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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