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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탑 | 특징 |
고구려 | 요동성의 三層土塔, 五層木塔 | 삼국유사 기록. 미전 |
백제 | 益山 彌勒寺址塔 | 7C초. 무왕. 목탐양식의 석탑.국보 제11호.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
夫餘 定林寺址五層石塔 | 7C 안정되면서도 경쾌한 모습.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 지정문화재 국보 제9호.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 |
신라 | 慶州 黃龍寺九層木塔 | 7C 선덕여왕 .거대한 규모.9개국을 정복하여 조공을 받을 상징. 몽고병란때 소실 |
慶州 芬皇寺模塼石塔 | 7C선덕여왕.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축조. 국보 제30호.원 래 9층 현재 3층.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
Ⅲ.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구분 | 탑 | 특징 |
초기 | 義城塔里五層石塔 | 백제식 목탑을 본뜬 석탑과 신라식 모전석탑의 혼합양식 |
感恩寺址東西三層石塔 | 국보 제112호.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55-9 | |
佛國寺三層石塔(釋迦塔) |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 국보 21호. 경북 경주시 불국로 15-1 | |
佛國寺多寶塔 | 높은 예술성과 빼어난 건축술 국보 제20호. 경북 경주시 불국로 15-1 | |
말기 | 강원 양양 陳田寺址三層石塔 |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을 새긴 것으로 유명. 국보 제122호. 강원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0-2 |
전남 구례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 국보 35호.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황전리) | |
전남 장흥 寶林寺三層石塔 | ||
전북 남원 實相寺三層石塔 | ||
충남 보령 聖住寺三層石塔 |
장식조각
경주 章項里五層石塔 : 仁王像
경주 願遠寺址三層石塔 : 四天王像과 十二支神像. 원원사는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낭융 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들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양양 陳田寺址三層石塔 : 四方佛, 八部神衆像, 天人像
구례 華嚴寺西五層石塔과 산청 泛鶴里三層石塔 : 佛菩薩, 四天王像, 八部神衆像, 奏樂像, 十二支神像
남원 實相寺百丈庵三層石塔 : 佛菩薩, 神將(신병(神兵)을 거느리는 장수), 奏樂天人, 欄干, 연꽃무늬
四天王 :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는 수호신.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세계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가 수용한 것으로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
八部神衆 :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神將)이란 뜻. 팔부신장(八部神將). 사천왕의 권속. 팔부(八部)는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達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侯羅伽)이다. 이 팔부(八部)는 모두 사람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명중팔부(冥衆八部),팔부중(八部衆) 또는 천룡팔부(天龍八部)라고도 한다.
야차 (yaksa, 夜叉)
1. 야크샤의 음역.
[동]약차(藥叉), 약차신(藥叉神), 열차(閱叉), 야걸차(夜乞叉), 능담귀(能噉鬼), 첩질귀(捷疾鬼), 경첩(輕捷), 용건(勇健), 포악(暴惡).
8부중(部衆)의 하나. 불법을 지키고 보호하는 선신(善神). 초자연적인 존재. 숲 또는 성수(聖樹)에 살고 있는 신령(神靈)의 일종으로서 수목의 신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함. 거처하는 곳에 따라서 천(天) 야차, 지(地) 야차, 허공(虛空) 야차 등으로 나눈다. 특히 천 야차와 허공 야차는 날아다닌다고 함.
3. 사람을 해치거나 잡아먹기도 하며, 포악한 일을 하는 악신(惡神).
건달바 (乾達婆)
ⓢ gandharva 또는 건달박(健達縛) · 건달바(?達婆) · 언달바(彦達婆) · 건답화(?沓和) · 헌달박(?達縛). 번역하여 심향행(尋香行) · 심향(尋香) · 식향(食香) · 후향(?香). (1) 8부중(部衆)의 하나. 제석(帝釋)의 음악을 맡은 신. 지상(地上)의 보산(寶山) 중에 있으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먹으므로 이같이 이름.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정법(正法)을 찬탄, 불교를 수호. (2) 인도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음식의 향기만을 찾아 그 문 앞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여 음식을 얻어 살아가므로 이같이 이름. (3) 중음신(中陰身). 중음신은 향기만 맡으므로 식향(食香)이라 하고, 혹은 다음에 태어날 곳에 냄새를 찾아다니므로 심향행(尋香行)이라 함.
아수라(阿修羅)
아소각(阿素恪), 아수륜(阿須倫), 아소라(阿蘇羅), 무단정(無端正), 비천(非天), 아수라천(阿修羅天). 수라(修羅)라고도 한다.
아수라(阿修羅)는 산스크리트어 ‘asur’의 음역(音譯)이다. ‘아소라’ ‘아소락’ ‘아수륜’ 등으로 표기하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본래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善神)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이 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신으로 통한다. ‘아수라장’은 아수라가 불법(佛法)을 없애기 위해 제석(帝釋; 신들의 제왕인 샤크라)과 싸우는 전장(戰場)에서 나온 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아수라의 음역으로 阿須羅라 쓰기도 한다. 인도 브라만교의 고대 문헌인 리그베다 초기에는 아수라는 절대령, 생명 있는 자 등을 의미했으며, 고대 페르시아의 최고신으로, 빛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어원이 같으므로 인도에서는 선신(善神)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시대의 변천과 사상의 변화에 따라 ‘비(非: A) 천(天: Sura)’ 곧 ‘신이 아니다’라는 해석이 생겨나 차츰 악신(惡神)으로서 취급되었던 것 같다.
아수라는 몹시 특이한 신으로서 남성이 될 때는 지극히 추악한 모습이고 여성으로 될 때는 극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에 들어와서는 천룡팔부 부중의 하나가 되어 6도 가운데 아수라도의 주인공이 되었다.
천룡팔부(天龍八部)라는 말은 불경(佛經)에서 나온 용어로서, 많은 대승불교의 경전에는 부처님이 많은 보살과 비구니에게 설법을 하실 때에 언제나 천룡팔부가 함께 참석하여 설법을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수라는 종종 부하들을 이끌고 제석천과 싸움을 벌이는데, 그 이유는 아수라에게는 미녀는 있으나 맛좋은 음식이 없고, 제석천에게는 맛좋은 음식은 있으나 미녀가 없기 때문에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매번의 싸움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악전(惡戰)이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듯이 엄청나다고 한다. 우리는 시체가 질펀하게 널려 있는 참혹한 전쟁터를 수라장(修羅場)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수라와 제석천의 싸움에서 유래한 것이다.
싸움이 있을 때마다 아수라는 언제나 패배하는데 가장 큰 싸움에서 일패도지한 이후 아수라왕은 하늘과 땅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어서 몸을 변화시켜 연뿌리에 난 실 구멍 속으로 숨었다고 한다.
가루라(迦樓羅)
가류라(迦留羅), 게로다(揭路茶), 가루다(迦 茶), 금시조(金翅鳥), 묘시조(妙翅鳥), 식토비고성(食吐悲苦聲)
가루다의 음역. 迦婁羅, 伽樓羅라고도 함. ‘
가루라(迦樓羅 - Garuda)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큰 새로 용(龍)을 잡아먹는다는 조류의 왕입니다
거대한 새의 형상이며, 두 날개를 펴면 길이가 300여 만리에 달하고, 거처는 4천하(天下)의 대수(大樹)이며, 용(龍)을 먹이로 한다고 함.
대승 불교에서는 8부중(部衆)의 하나로 꼽는다. 밀교에서는 대범천(大梵天), 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하기위해 가루라의 모습으로 화현한다고 하며, 또는 문수 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태장계 만다라의 외금강원에 자리한다.
긴나라(緊那羅)
緊那羅(긴나라)
Kinara 또는 긴나라(緊拏羅)ㆍ긴타라(緊陀羅)ㆍ긴날락(緊捺洛)ㆍ견타라(甄陀羅)ㆍ진타라(眞陀羅). 번역하여 의인(疑人)ㆍ의신(疑神)ㆍ인비인(人非人). 가신(歌神)ㆍ가악신(歌樂神)ㆍ음악신(音樂神)이라고도 한다.
8부중(部衆)의 하나. 사람인지 짐승인지 또는 새인지 일정하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는 하늘의 악신(樂神). 혹은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하고, 또는 말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도 일정하지 않다.
마후라가(摩侯羅伽, 摩羅羅迦, Mahoraga)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이라고 하며 용의 무리에 속하는 악신이며 묘신(廟神)이다. 막호락(莫呼洛), 모호락(牟呼洛)이라 쓰며, 대복행(大腹行)이라 번역한다. 천(天 Deva), 용(龍 Nāga), 야차(夜叉 Yaksa), 건달바(乾達婆 Gandharva), 아수라(阿修羅 Asura), 가루라(迦樓羅 Garuda), 긴나라(緊那羅 Kimnara)와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을 이룬다.
특수한 석탑
경주 佛國寺多寶塔
구례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경주 定慧寺址十三層石塔 정혜사지13층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합천 海印寺願堂庵多層石塔
철원 到彼岸寺三層石塔
보령 聖住寺址三層石塔
분황사모전석탑을 계승한 전탑
안동 新世洞七層石塔, 造塔洞五層石塔
칠곡 松林寺多層石塔
Ⅳ. 고려시대의 석탑
구분 | 탑 | 특징 |
전기 | 개성 南溪院七層石塔 | 국보 제100호. 높이 7.54m. 원래 경기도 개성시 덕암동.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
개풍 玄化寺七層石塔 | 황해도 개성직할시 장풍군(長豊郡) 월고리(月古里))의 령추산 남쪽 기슭 현화사지에있는 석탑. 북한국보 제41호. 높이 8.6 m. 1020년(현종 11)에 세웠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 |
개성 佛日寺 五層石塔(949~975) | 불사리(佛舍利)가 봉안된 사리계단(戒壇) 남쪽 | |
청양 西停里九層石塔 | 보물 제18호 | |
평창 月精寺八角九層石塔 | 국보 제48호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 월정사에 있는 8각 9층석탑. 높이는 15.2m | |
부여 長蝦里三層石塔 | 충남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보물 제184호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양식을 모방한 백제계 석탑 | |
부여 無量寺五層石塔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66 무량사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5호로 | |
서천 庇仁五層石塔 |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183. 보물 제224호.부여정림사지5층석탑(국보제9호)의 양식모방 | |
익산 王宮里五層石塔 | 국보 제289호.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 80 | |
변형석탑 | 강릉 神福寺址三層石塔 | 탑신부의 층마다 괴임돌 |
서울 弘濟洞五層石塔 | 탑신부의 층마다 괴임돌 | |
화순 雲住寺石塔들 | 독특한 무늬와 형태를 나타내면서 한꺼번에 다량의 탑 | |
구미 桃李寺石塔 | 제단식탑. 보물470호.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 도리사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고 부르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극락전 앞에 있다 | |
공주 麻谷寺五層石塔 | 이국적인 현태의 상륜부를 얹응,보물 제799호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金九 관련 | |
寶篋仁石塔 | 국보 제209호. 충청남도 천안군 북면 대평리 탑곡에 있던 것으로 높이 190㎝.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보협인탑은 〈보협인다라니경 寶篋印陀羅尼經〉을 넣은 탑을 의미하며, 그 조형은 중국 5대10국(五代十國) 중 오월(吳越)의 왕인 전홍숙(錢弘俶)이 955년경에 만든 금동제 팔만사천탑에서 유래 | |
신라계승 | 정선 淨巖寺水瑪瑙塔 | 보물 410호.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산214번지 함백산(咸白山) 기슭. |
안동 東部洞五層塼塔 | 보물 제56호. 경북 안동시 운흥동 231 | |
여주 神勒寺多層塼塔 | 보물 제226호.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 |
후기 | 영변 普賢寺八角十三層石塔 |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향암리 소재 보현사 대웅전 앞에 있는 고려 말기의 석탑 |
敬天寺十層石塔 | 국보 제86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재.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元의 石塔을 본뜬 것으로 고려시대 석탑의 白眉. 조선시대의 圓覺寺址十層石塔의 모델 |
Ⅴ. 조선시대의 석탑
敬天寺十層石塔계승 | 圓覺寺址十層石塔 | 국보 제2호.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파고다)공원에 있는 조선 초기(1467년, 세조 13)의 대리석 석탑. 높이 약 12m |
원주 上院寺極樂殿앞多層石塔 |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1060 상원사는 치악산 중턱인 해발 1,100m | |
영변 普賢寺八角十三層石塔 | 남양주 水鍾寺八角五層石塔 |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시도유형문화재 제22호(雲吉山 水鍾寺) |
남양주 妙寂寺八角七層石塔 |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222(妙寂山 妙寂寺). 향토유적 제1호 | |
강릉 神福寺址三層石塔 | 양양 洛山寺七層石塔 | 보물 제499호. 강원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
제2절 韓國(한국)의 僧塔(승탑)
불교의 三寶(삼보)
佛寶(부처) | 탑과 불상을 만들어 에배 |
法寶(가르침) | 수많은 경전으로 세상에 보급 |
僧寶(스님) | 불법을 전도하고 민생을 교화하는 전도자 |
國師, 王師
僧塔과 塔碑 : 浮屠(부도)
Ⅰ. 승탑의 기원과 통일신라시대의 승탑
1. 僧塔
고승들의 유골을 안전하게 탑속에 안치하는 법식
2. 최초의 승탑
傳興法寺廉巨和尙塔(흥법사염거화상탑) : 迦智山 개창자 道義禪師 제자. 844년 입적
3. 현존하는 승탑
가. 八角堂形 僧塔 : 곡성 泰安寺 寂忍禪師照輪淸淨塔, 화순 雙峰寺 澈鑑禪師塔, 남원 實相寺 證覺大師凝廖塔과 秀澈和尙楞伽寶月塔(수철화상릉가보월탑), 장흥 寶林寺 普照禪師彰聖塔, 문경 鳳巖寺 智證大師寂照塔, 구례 鷰谷寺 東浮屠 (鷰=燕)
나. 변형
여주 高達寺址浮屠, 양양 禪林院址浮屠 (보물 447호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
浮屠(부도) 1. 중, 승려 2. 불탑 3. 불교 4. 주사위
Ⅱ. 고려시대의 승탑
1. 규모 장중, 지붕 과장, 기단부 변형 다양
여주 高達寺元宗大師惠眞塔, 문경 鳳巖寺 靜眞大師圓悟塔, 국립박물관 興法寺眞空大師塔
2. 왜소해진 승탑
곡성 泰安寺 廣慈大師塔, 공주 甲寺浮屠, 영동 寧國寺浮屠
3. 변형승탑
가. 寶宮形 : 원주 智光國師玄妙塔(원주神勒寺
나. 塔型: 원주 令傳寺址普濟尊者舍利塔(원주→국립중앙박물관), 쌍탑
다. 石鐘形 : 경기도 장단 華藏寺智空禪師塔, 여주 神勒寺 普濟尊者石鐘
라. 塔身圓球形 : 弘法國師實相탑(충주 淨土寺神勒寺
Ⅲ. 조선시대의 승탑
1. 지붕 융기 상륜부 길쭉
충주 靑龍寺 普覺國師定慧圓融塔, 양주시 檜巖寺無學大師洪融塔(보물 제388호,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2. 복합형승탑(팔각형승탑+석종형승탑)
3. 절마다 僧塔院에 승탑
4. 전통팔각형승탑 : 구례 鷰谷寺逍遙大師塔
5. 華嚴寺四獅子石塔 계승 : 순천 禪庵寺 華山大師塔
제3절 石燈(석등)과 石碑(석비)
Ⅰ. 석등의 의미와 구조
1. 石燈
가. 야간에 집 마당을 밝히는 목조 조형설치물→한 나라때 陵墓→불교도입후 법당을 밝ㅎ히는 상징물→탑앞, 고승의 묘탑, 임금과 정승의 능묘 앞(長明燈)
나. 가장 오래된 석등 :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백제의 석등
다. 완형의 석등 : 영주 부석사 석등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
2. 구조
기단부 하단(댓돌) 중간부(기둥 돌) 상단(연꽃무늬 장식) 그 위에 불발기집
Ⅱ. 석등의 종류
1. 八角기둥形(一般形石燈)
가. 통일신라
부석사석등(통일신라 후기), 합천 청량사석등, 구례 화엄사각황전앞 석등, 남원 실상사석등(통일신라), 장흥보림사석등, 남원실상사의 백암장석등(장식적)
나. 고려
부여 무량사석등, 나주 서문석등(통일신라석등 계승), 개성 현화사석등(불발기집 개방형, 상륜부 강조),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등(이국적 양식), 옥구 발산리석등(원형기둥에 용무늬), 논산 관촉사석등(원기둥에 꽃띠)
2. 雙獅子石燈
가. 통일신라 : 법주사 쌍사자석등, 광양 중흥산성쌍사자석등, 합천 영암사지쌍사자석등
나. 고려시대 : 여주 고달사 쌍사자석등
다. 조선 : 충주 청룡사석등(사지 한 마리)
라. 양주 회암사지석등(쌍사자 왜소, 납짝한 모양)
3. 四角形石燈 : 고려 이후에 등장
가. 고려시대 : 논산 관촉사석등, 개성 현화사 석등, 능묘
나. 조선시대 : 충주 청룡사석등, 양주 회암사지석등, 능묘
4. 長明燈(능묘의 석등)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능묘 앞에 세워진 석등
Ⅲ. 석비의 기원과 특징
1. 석비의 기원
가. 碑(비)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고부터 어떠한 의미를 특정한 장소에서 널리 알리고 또한 그 내용을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 영구불변의 재료인 돌을 택하여 그 표면에 새겨 놓은 기념물.
나, 내용 : 단순한 표지물. 법규, 연원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인물 또는 사건의 내력
나. 발달
원시적石刻→自然石 碑石→藝術的 碑石
2. 우리나라 석비의 특징
가. 자연석비에서 출발
제1廣開土大王陵碑(414년) |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 호태왕비.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소재.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4면에 1,802자가 기록되어 있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구려의 건국 과정과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업을 연대순으로 기록하였다. 광개토대왕이 신라왕 내물 마립간의 원군 요청에 의해 군사 5만 명을 이끌고 왜구를 물리친 내용과 북쪽으로 동부여를 정복하였고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을 차지하였으며, 남으로는 한강선까지 진출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비문의 내용 중 ‘신묘년 기사’(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정복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를 근거로 하여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였다. |
제2廣開土大王陵碑 |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麻線)촌에서 2011년 7. 29일 발견된 제2의 광개토왕비 |
中原高句麗碑 | 국보 제205호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5세기 후반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 알수 있는 자료 |
영일 冷水里碑 | 국보 264호, 지증왕4년, 503년. 이 신라(新羅)碑는 冷水里 마을 주민이 밭갈이를 하다 발견, 지난 89년 4월 문화재관리국에 발견 매장 문화재로 신고된 고비이다. 이 碑는 고르지 못한 네모꼴의 자연석 앞.뒤.위 3면에 글자를 새겼으며 매형별 글자수와 크기가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앞면은 12행 1백52자, 뒷면 7행 59자, 윗면 5행 20자로 총 2백31자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앞면과 뒷면이 가로 65㎝ 내외,세로 44- 69㎝ 내외이고 윗면은 가로 66㎝ 내외, 세로 27- 30㎝ 내외로 밑부분이 넓고 윗부분은 약간 좁은 모양으로 돼 있 는 비석이다. 이 碑에는 신라(新羅)의 斯夫智王 (실성왕)과 乃智王(내물왕)등 두왕이 珍而麻村의 節居利에게 재산취득을 인정하는 敎를 내렸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
丹陽赤城碑(551년) | 진흥왕, 한강상류 진출 |
北漢山眞興王巡狩碑(555년) | 국보 제3호 |
昌寧)眞興王拓境碑(561년) | 국보 제33호 |
黃草嶺碑568년) | |
摩雲嶺碑(568년) | |
대구 戊戌塢作碑 | 578년)(塢 둑오).대구무술오작비(大邱戊戌塢作碑) 보물 제516호로 1946년 대구 중구 대안동에서 발견되었다. 무술년(578년)에 승려 두 명이 영동리촌에서 인부 312명을 동원하여 13일만에 수리시설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경주 南山新城碑 | 1. 경주남산신성비제1비(慶州南山新城碑第一碑)(591년)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는 1934년에 제1비(第1碑)가 발견된 이래 1956년에 제2비(第2碑), 그리고 1960년에 제3비(第3碑)가 발견되었고, 그후로도 4·5·6비의 발견이 이어졌다. 1985년에는 7·8비가 발견되었다. 「남산신성비」에는 나두(邏頭), 도사(道使), 촌주(村主), 성사(城使) 등 신라의 지방통치와 관련된 관직들이 다수 나오고, 장척(匠尺), 문척(文尺), 면착상((面捉上), 석착상(石捉上) 등 일종의 기술자에 해당되는 직명이 상당수 보인다. 또 신라의 외위(外位)로서 찬간(撰干), 상간(上干), 간(干), 아간(阿尺), 일벌(一伐) 등이 나오고 있으며, 아량(阿良), 노사(奴舍), 영고(營沽), 칠토(柒吐) 등의 지명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신라의 지방통치체제를 구명하는 데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2. 경주남산신성비제2비(慶州南山新城碑第二碑) 3. 경주남산신성비제3비(慶州南山新城碑第三碑) 4. 경주남산신성비제4비(慶州南山新城碑第四碑) 5. 경주남산신성비제5비(慶州南山新城碑第五碑) 6. 경주남산신성비제6비(慶州南山新城碑第六碑) 7. 경주남산신성비제7비(慶州南山新城碑第七碑) 8. 경주남산신성비제8비(慶州南山新城碑第八碑) 9. 경주남산신성비제9비(慶州南山新城碑第九碑) |
砂宅智積碑(654년) | 백제 의자왕 때의 사택지적이 남긴 비.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유일한 금석문이다. 일본인들이 부여신궁(扶餘神宮)을 세우기 위해 쌓아놓았던 돌무더기 속에서 1948년에 발견되었다. 높이 102㎝, 폭 37.9㎝, 두께 29㎝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비면은 길이 7㎝인 정방형 선으로 금을 그어, 각 행에 모두 14자씩 4행으로 모두 56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갑인년 정월 9일, 나지성(奈祗城) 사택지적은 몸이 해가 가듯 쉽게 가고 달이 가듯 돌아오기 어려움을 슬퍼하여 금을 뚫어 진당(珍堂)을 세우고 옥을 깎아 보탑(寶塔)을 세우니, 그 웅장하고 자비로운 모습은 신광(神光)을 토해내어 구름을 보내며, 찌를듯이 높게 솟아 슬프고 간절함은 성명(聖明)을 머금어……"라고 되어 있다. 사택지적은 〈니혼쇼키 日本書記〉에 보이는 642년(의자왕 2) 왜에 사신으로 파견된 대좌평(大佐平) 지적(智積)과 동일인으로 보이며, 그렇게 볼 때 갑인년은 654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의 문장에 인생의 무상함을 적은 내용으로, 도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어 백제 귀족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蔚珍鳳坪碑(국보 제242호),永川菁提碑(보물 제517호) | |
白頭山定界碑(1712년) | 1712년(숙종 38)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세워진 경계비. 1712년청 오랄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과 조선의 접반사인 박권(朴權)과 함경감사 이선부(李善傅)간에 체결 |
나. 삼국시대 당의 영향으로 거북비 등장
太宗武烈王陵碑
다. 통일신라시대 석비의 조형 진척
月光寺圓朗禪師塔碑(국립중앙박물관소재), 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통일신라)
라. 고려시대 석비이의 위용 당당 및 규모 매우 장중
원주 興法寺眞空大師碑 : 유려한 行書, 천안 奉先興慶寺碑碣 : 고려시대 제일의 白顯禮의 楷書
영통사대각국사비(靈通寺大覺國師碑) : 황해북도 개성시 월고리 영통사 터에 있는 고려 화엄종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 문종 9, 1055~숙종 6, 1101)의 생애를 기리는 비. 고려의 대표적 문인 김부식(金富軾)이 짓고 오언후(吳彦侯)가 구양순체.
마. 고려말~조선초 간략한 댓돌위에 비석, 비돌 위에는 지붕돌 얹는 형식
백두산정계비
3. 석비의 문화적 요소
가.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서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나. 제작연대가 확실한 작품으로 시대적 예술역량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은 그 자체가 명문장으로 문학작품이다.
최치원(崔致遠) : 四山碑銘
라. 빗돌에 새겨진 글씨는 명필가의 작품으로 특히 고려 이전의 서예사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崔致遠의 친필 : 하동 雙磎寺眞鑒禪師碑文, 金生의 글씨 ; 太子寺郎空大師碑文
神品四賢
金生(신라), 柳伸(고려 문종때), 坦然(고려 인종때), 崔瑀(崔怡, 고려 고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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