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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번개맨 놀이를 하는 이유가 분명해 졌다. 번개맨과 동일시되고 싶은 욕망과 결핍은 번개맨 놀이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리고 유치원 때 엄마아빠 놀이도 마찬가지이다. 절대자인 엄마 아빠가 되고 싶은 욕망은 그러한 놀이를 하게 만들어 낸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기피증에 빠진 사람들은 PC게임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PC게임 안에서 그는 능력자가 되고 존재감을 인정받는다. 현실에서 결핍된 존중의 욕구는 불가피하게 PC게임이라는 대체물로 보상받으려 하는 것이다. |
아동에게 상상력은 새로운 심리 과정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의식 활동 형태로, 아주 어린 아동의 의식 속에는 아직 생겨나지 않고 있으며, 동물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의식 기능들처럼 상상력도 처음에는 행동으로부터 생겨난다.
(기억속의 경험이 없이 만들어지는 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동의 놀이는 상상한 것을 행동하는 것이라는 옛날 속담은 반대가 돼야 한다. 즉, 청소년과 학령기 아동의 상상력을 행동이 없는 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치원 놀이에서 도출되는 즐거움은 단순히 고무젖꼭지를 빠는 것과는 다른 동기들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분명하다. 놀이가 모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동이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이 욕망을 즉각적으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동은 자기 방에 가서 택시를 타는 시늉을 할 때와 같이) 그것은 좀처럼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놀이에서 그와 같은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동 스스로 게임이 생겨나는 동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놀이는 다른 형태의 활동과 많이 다르다. (잘 이해 안 됨)
따라서 다른 형태의 활동들과 아동의 놀이를 구분하는 준거를 확립하면서, 우리는 놀이에서 아동의 상상적 상황을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놀이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지만 아동이 이러한 동기를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모든 놀이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결과로 생겨난다는 것은 아니다?)
놀이를 하는 아동의 활동을 생각해 보자. 상상적 상황에서 아동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규칙을 가지고 하는 게임의 발달은 취학 전 시기 후반에 시작되고, 학령기에 발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규칙이 없는 놀이는 없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 공식적인 규칙을 미리 정해놓은 게임이 아닐지라도, 모든 놀이의 상상적 상황은 이미 행동 규칙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동은 자신이 엄마이고 인형이 아기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아동은 엄마 행동 규칙을 따라야 한다. 놀이를 통해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동의 실제 삶에서 간과하는 것이 놀이에서는 행동 규칙이 된다. (P148)
놀이에서 상상적 상황을 제거하고 남는 것은 ‘규칙’이다. 놀이에서 상상적 상황이 존재할 때마다 규칙이 있게 된다. 이 규칙들은 이미 형성돼 있는 것으로, 게임의 과정에서 변하는 규칙이 아니라 상상적 상황으로부터 유래한 규칙들이다. 따라서 아동이 규칙이 없는 상상적 상황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만일 아동이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아동은 엄마 행동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아동이 수행하는 역할과 대상에 대한 아동의 관계는 언제나 규칙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상상적 상황이 행동 규칙을 포함하듯, 규칙을 가진 모든 게임은 상상적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상상적 상황은 규칙을 감춰진 형태로 포함하며 역으로 규칙을 가진 모든 게임은 숨겨진 형태로 상상적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 아동의 놀이는 드러난 상상적 상황과 숨겨진 규칙을 가진 게임에서 드러난 규칙과 숨겨진 상상적 상황을 가진 게임으로 진화한다.
(드러난 규칙과 숨겨진 상상적 상황을 가진 게임은 뭐가 있을까? 아이가 성장하여 축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축구의 규칙은 정확하게 들어나 있다. 규칙이 확실한 축구 속에 숨겨진 상상적 상황은 무엇일까? 자신을 ‘메시’나 ‘네이마르’라고 상상하며 플래이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축구에 정해진 규칙이 있지만 그러한 규칙은 월드컵에서 상대국가와 가상의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가상의 감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놀이에서 행동과 의미 (P149)
아동의 발달에 대한 놀이의 영향은 지대하다. 상상적 상황 속의 놀이는 3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놀이는 아동을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행동이다. 레빈과 동료들은 장이론(Field Theory)을 통해 주변 환경이 갖는 상황적 구속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3세 이상 아동의 경우 놀이에서 외적 사물이 제공하는 유인체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적 의도와 동기에 의존하는 인지 영역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아주 어린 아동에 대한 상황적 제약들의 근원은 아동들의 의식의 주요한 특성 때문이다. 아주 어린 아동의 지각과 동기는 결합돼있다. 이 연령의 아동이 가진 지각은 일반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하며, 운동 반응의 특성과 통합돼 있다. 모든 지각은 활동에 대한 자극이 된다. 상황은 지각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전달되고, 지각은 동기 활동과 운동 활동으로부터 분리돼 있지 않다. 이 같은 의식 구조를 가진 아동이 자신이 속한 상황에 의해서 제약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될 것이다. (아주 어린 아동이 시각장으로부터 의미장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나 놀이에서 사물들은 결정하는 힘을 잃는다. 아동은 어떤 것을 보지만, 자신이 본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 따라서 아동은 자신이 본 것과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상태에 도달한다. 이러한 행동의 자유는 오랜 발달의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이다.(p150)
골드슈타인과 겔브는 사실이 아닌 어떤 것을 말할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해 기술했다. 겔브는 ‘나는 오른손으로 글씨를 잘 쓸 수 있다.’라는 문장을 쓸 수 없었던 왼손잡이 환자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환자는 창문 밖의 화창한 날씨를 바라보면서 “오늘 날씨 나쁘다”라는 말을 따라하지 못하고, “날씨가 좋다”라고 말했다. 또 ‘눈(snow)은 검다’와 같은 의미 없는 문장은 따라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 환자도 있다. 아동에게 ‘시계’라고 말하면 아동은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의 인지이론은 뭐지?)
의미장과 시각장이 분리되는 것은 유치원 시기에 일어난다. 놀이에서 사고가 사물들로부터 분리되며, 행동이 사물보다는 생각으로부터 생겨난다. 나무토막이 인형이 되고, 막대기가 말(馬)이 되기 시작한다. 규칙에 따라 행동이 사물보다는 생각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실제적, 직접적, 구체적 상황과 아동의 관계를 완전히 반전시키는 것이다. 아동이 사물로부터 사고(단어의 의미)를 분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이것을 단번에 해내는 것은 아니다.
아동은 아직 사물로부터 사고를 떼어낼 수 없다. 아동의 약점은 말(馬)을 상상하기 위해서 ‘막대 속의 말’을 추축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동의 지각 구조가 변했기 때문에, 실체(reality)에 대한 아동의 관계를 결정하는 기본 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인간 지각의 특수성은 의미를 지각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두 개의 손을 가진 둥글고 검은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본다. 따라서 인간 지각의 구조는 사물이 분자이고, 의미는 분모(사물/의미) 지수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지수는 모든 인간 지각이 분리된 지각보다는 일반화된 지각으로 구성돼 있음을 상징한다. 아동에게 사물은 사물/의미 지수를 지배하고, 의미는 거기에 종속된다. 그러나 막대기가 진짜 말(馬)에서의 말의 의미를 분리시키는 추축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 이 비율은 역전되고 의미가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의미/사물의 모양이 된다.
어떤 막대리라도 말(馬)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엽서는 아동에게 말이 될 수 없다. 물론 상징을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인에게 엽서는 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동은 대체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아동의 활동은 놀이이지 상징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징은 기호다. 그러나 막대기는 아동에게 말의 기호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아동은 사물의 속성을 이용하여 사물의 의미를 바꾼다. 놀이에서 사물의 의미가 중심이 되고, 사물은 지배적인 위치에서 종속적인 위치로 이동한다.
놀이에서 아동은 평소의 사물과 행동으로부터 떼어낸(개별사물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의미 체계를 인간은 의도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다는 능력을 의미함) 의미들을 가지고 논다.
(예찬이에게 막대기는 ‘번개스틱’이다. 비행기 장남감이 번개스틱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예찬이는 막대기의 속성을 이용하여 번개스틱으로 바꾼다. 번개맨 놀이에서 막대기(사물)보다 번개스틱(의미)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찬이는 의미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나 아동은 놀이 속에서 진짜 행동과 진짜 사물을 결합시킨다. 이것이 놀이의 전환기적 특성이며, 초기 아동기의 상황 구속성과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성인의 사고(思考) 사이의 (과도기 적인) 단계이다.
막대기가 진짜 말(馬)로부터 ‘말’의 의미를 분리시키는 추축이 됐을 때, 아동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의미적인 영향을 주게 만든다. 아동은 다른 어떤 것에서 추축을 발견하지 않고는 사물로부터 의미나 단어를 분리해 낼 수 없다. 의미의 전이는 아동이 단어를 어떤 사물의 속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의해서 촉진된다. 아동은 단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나타내는 사물을 본다. 아동에게 막대기에 적용된 ‘말’이라는 단어는 ‘거기에 말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아동은 단어 뒤에 서 있는 사물을 본다. 아동이 처음 사물을 가지고 놀 듯이 의미를 가지고 놀 때 의미의 사용에서 중요한 전환단계가 일어난다. 나중에 아동은 이러한 행동들을 의식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변화는 문법 언어와 문자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아동은 무언가를 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아동은 이러한 활동들을 의식적으로 숙달하는 것이 아니다. 놀이에서 아동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사물로부터 의미를 분리하는 자신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놀이를 통해 아동은 개념이나 사물의 기능적 정의를 획득하게 되고, 단어는 사물의 일부가 된다.
상상적 상황의 창조는 아동의 삶에서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 첫 번쩨 조짐이다. 놀이의 첫 번째 패러독스는 아동이 실제 상황에서 분리된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패러독스는 놀이에서 아동은 최소 저항선(가장 쉬운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최대 저항선(가장 어려운 방법)을 따르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는 즐거움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아동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규칙을 따르고 충동적인 행동을 포기하는 것이 놀이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얻는 길이기 때문에 아동은 자신을 규칙에 종속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최대 저항선을 따른다.
놀이는 아동에게 직접적인 충동과 반대로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아동은 게임의 모든 단계에서 게임의 규칙과 게임이 아닌 상황이었으면 행했을 행동 사이의 갈등과 직면한다. 게임에서 아동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한다. 아동은 놀이 속에서 자연적인 끌림을 극복했을 때 최대한의 의지력을 보여준다. 아동은 그가 원하는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게임의 규칙에 따르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규칙의 준수와 원하는 것의 포기가 최대 즐거움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놀이의 핵심적인 특성은 욕망이 돼버린 규칙이다. “욕망이 된 생각, 열정이 돼버린 개념”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은 그 원형을 놀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자발성과 자유의 영역이다. 규칙을 수행하는 것은 즐거움의 원천이다. 규칙은 가장 강력한 충동이기 때문에 규칙이 승리한다. 그와 같은 규칙은 내적 규칙이다. 이 내적인 규칙은 피아제가 말하듯이, 자기절제와 자기결정의 규칙이다. 요약하면 놀이는 아동에게 새로운 형태의 욕망을 준다. 놀이는 아동의 욕망과 가상적인 ‘나’, 즉 게임에서의 자기 역할과 게임 규칙을 관련지음으로써 아동에게 욕망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동의 가장 커다란 성취들이 놀이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성취들은 장래 아동의 실제 행동과 도덕의 기본 수준이 될 것이다.
(요즘 중학생 아이들은 규칙에 대한 내면화가 약하다. 아동기 충분한 놀이와 규칙의 자율적 내면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학업 경쟁에 일찌감치 내몰리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규칙 속에서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초등교육의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학교에서는 그러한 규칙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론적 탐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유치원과 초등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를 허하는 것은 아디들의 발달을 위해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행동과 의미의 분리 (p156)
결론(p158)
나는 다음 세 가지 점을 보여줌으로써 놀이에 관한 논의를 끝맺으려 한다. 첫째, 놀이가 아동기의 지배적 특징이 아니라 발달에서 선도적인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둘째, 놀이 그 자체의 발달에서 상상적 상황의 지배가 규칙의 지배로 변화하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고 한다. 셋째, 놀이가 가져온 아동 발달의 내적 변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놀이는 발달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상에서 아동 행동은 놀이에서의 행동과 반대다. 놀이에서 행동은 의미에 종속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행동이 의미를 지배한다. 따라서 놀이를 아동의 일상 행동의 원형이며 지배적인 형태로 간주하는 코프카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유치원 아동의 행동이 항상 의미에 의해서 인도되고, 아동의 행동이 결코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 없는 메마른 상태라고 가정할 수 있겠는가? 규칙에 대한 이러한 엄격한 종속은 삶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놀이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놀이는 아동의 근접발달영역을 창조한다. 놀이에서 아동은 언제나 실제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놀이 속에서 아동은 마이 머리 하나는 더 큰 것 같다. 돋보기의 초점과 같이, 놀이는 모든 발달적 경향성들을 압축된 형태로 포함하고 있으며, 놀이 그 자체가 발달의 주요 원천이다.
놀이-발달 관계를 교육-발달 관계와 비교할 수 있지만, 놀이는 필요와 의식의 변화를 위해 훨씬 더 광범위한 바탕을 제공한다. 상상적 영역과 상상적 상황 속에서의 행동, 의도적 계획의 수립, 실제 삶의 계획과 의지적 동기의 형성, 이 모든 것이 놀이에서 나타나 놀이를 취학 전 발달의 최고 수준으로 만든다. 아동은 근본적으로 놀이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오직 이러한 의미에서 놀이는 아동 발달을 결정하는 선도적인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놀이는 어떻게 변하는가?
아동은 처음에 현실에 기반한 상상적 상황에서 시작한다. 인형과 놀고 있는 아동은 거의 정확히 자기 엄마가 자신에게 한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상상력은 거의 없다. 이것은 기억의 재생산에 가깝다.
놀이가 발전함에 따라 그 목적을 의식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목적이 게임을 결정하고 활동을 정당화한다. 최종적인 목표로서의 목적은 놀이에 대한 아동의 정서적 태도를 결정한다.
그리고 발달의 마지막에 규칙이 나타난다. 규칙이 엄격할수록, 아동에게 더 큰 집중을 요구하며, 아동의 활동에 더 많은 규제를 가하게 되고, 놀이는 더 긴장되고 어렵게 된다.
(초3,4학년부터 남자아이들은 단순히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좀더 규칙이 엄격하고 자기 통제가 필요한 실제 축구경기에 더 많은 흥미를 갖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아동은 놀이에서 자기 행동을 결정할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것은 가공의 자유다. 아동의 행동은 사실 사물들의 의미에 종속된다.
발달의 관점에서 상상적 상황을 창조하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에 상응하는 규칙의 발달은 일과 놀이 사이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행동들을 나타나게 한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는 것은 학령기에 마주치게 되는 근본적인 사실이다.
(놀이에서의 규칙은 목적을 위한 자발성에 근거하지만 일(공부, 숙제)에서의 규칙성은 타율적이고 강제적이다. 이게 맞게 보는 건가?)
학령기 아동에게 놀이는 주로 운동경기 유형과 같이 보다 제한된 형태의 활동이 된다. 놀이는 학령기 아동의 발달에 특수한 역할을 한다. 학교 시기에 놀이는 사라지는 것이 안니라 현실에 대한 태도에 스며든다. 놀이는 학교 수업과 공부(규칙에 기초한 의무적 활동)속에서 그 내적 연속성을 가지게 된다. 의미장과 시각장 사이의 새로운 관계, 즉 생각 속의 상황과 실제 상황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 놀이의 핵심이다. (뭔 말이지?)
겉으로 보기에 놀이는 놀이가 이르게 하는 복잡한 매개적 사고 형태와 의지 형태와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오직 깊은 내적 분석을 통해서만 놀이의 변화 과정과 발달에서의 놀이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ebs다큐 놀이의 반란 - 제1부 놀이, 아이의 본능
http://ebs.daum.net/docuprime/episode/7138
<놀이, 그 안의 숨은 비밀을 파헤친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 속에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세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소꿉놀이를 통해 실제 해보지 않은 세상을 안전하게 대신 경험하게 되는거죠."
-선우현 교수(명지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놀이에도 시기가 있다. 나이에 따라 구분되는 놀이 유형을 통해 놀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본다. 그저 노는 것으로 생각했던 놀이에는 아이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습놀이, 상상놀이를 거쳐 협동놀이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가족화, 그림 속에 아이의 마음이 있다>
아이의 그림이 말하고 있다.
평소 아빠와 놀이시간이 부족한 7명의 아이에게 가족화를 그려보게 했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놀았던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한 아이들, 그림 속에 아빠에 대한 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가족화로 나타나는 아이의 생각, 나는 과연 아이와 잘 놀아주는 부모 였을까?
<놀이를 잃어버린 똑똑한 아이>
"아이가 놀이 속에서 경험해야 할 부분이 책과 교구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또래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부모님의 기대 속에 자신을 맞추려 하다 보니 낯선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선우현 교수(명지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한글, 수학, 영어 모두 또래보다 우수한 아이!
그러나 언제부턴가 드러나는 아이의 문제점.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 생각했던 아이의 문제는 놀이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모의 높은 기대를 맞추기 위해 놀이도 일처럼 했던 아이.
놀이가 일이 되어버린 아이에게 가족놀이치료는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2부-아빠놀이 엄마놀이]
<감성적인 엄마, 이성적인 아빠>
엄마놀이 아빠놀이, 같다?! 다르다?!
엄마의 놀이는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우뇌를 발달시키는 반면, 아빠의 놀이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좌뇌를 발달시킨다. 엄마와 아빠의 놀이의 차이점을 밝히고 엄마, 아빠가 골고루 놀아줄 때 아이의 두뇌가 골고루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이 성공의 키워드, 아빠!>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놀이를 재미를 위해 한다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아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놀이를 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사회성을 기르게 됩니다. 그리고 재미를 위해 놀이를 하다 보면 새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많이 하게 되고 이 과정은 아이의 창의력에 도움을 주게 되는 거죠 - 김영훈 교수 (가톨릭대학교 의정부 성모병원 병원장)
<아빠가 변한다!6주간의 아빠놀이학교>
이선영(2010)의 연구에 의하면 영유아기 아빠의 양육참여와 놀이참여는 자년의 인지, 언어, 사회성, 정서 등 다양한 영역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제작진은 아빠와의 관계가 부족한 6명의 가족에게 6주간의 아빠놀이학교를 제안했다. 연세대학교 김명순 교수와 함께 진행된 아빠놀이학교를 통해 아빠들은 얼마나 변할수 있을 것인가?
[제3부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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