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 【15】
옹이가 박혀있던 자리
시 문화원 초청으로 인문학강의를 위해 춘천을 찾았었다. 경춘선을 타고 가는 동안 봄은 강물을 따라서 온다는 이치를 알았다. 춘강(春江)의 물색이 스치는 창밖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일 봄소식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일까?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는 내게 한 여자가 다가온 것이다.
“나 알아보겠어요?”하며 손을 내미는 여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여 년 전, 잠실 공연장에서 꽃 같은 딸을 잃은 대학동창이었다. 그녀와는 대학 때부터 소설동인 활동도 같이하며 오래도록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어떻게 잘 있긴 한 거야?” “음, 이렇게 숨 잘 쉬고 살아.” 주름이 곱게 내려앉은 초로의 얼굴을 하고도 웃는 모습은 옛 그대로였다. 가벼운 생활 얘기로 시작된 대화는 그녀의 인생을 해일처럼 덮쳤던 ‘뉴키즈 사태’ 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재에서 1992년도 일기책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뉴키즈 언더 블록’ 공연 광풍에 한 소녀가 밟혀 죽는 사고가 여러 날에 걸쳐 장문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품안의 자식을 그렇게 몰랐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둑했으면 사고가 나자 ‘광란의 10대’라며 아이들을 표적했고, 행사를 주관한 업체만 공공의 적으로 몰았을까.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척 하면서도 실상 가장 가까운 곳부터 알지 못했던 우리…. 일기는 청맹과니 사회의 부끄러움을 들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을 저민 것은 뉴키즈 공연 소동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딸을 끝내 죽음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그 어머니 때문이었다. 딸을 잃은 후 그녀와는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이후로 그녀는 어느 곳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도 그 마음을 헤아려 연락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녀는 지금 춘천에서 살고 있고, 시청에 갔다가 우연히 내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대화의 시침은 시공을 건너 뛰어 먼 곳에 멈춰 섰다.
“뉴키즈에 얼을 뺏긴 애가 아니야... 호기심 많은 10대 소녀였을 뿐야...”
탄흔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녀의 넋두리. 딸은 2학년을 마치면서 올라간 성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고3 일 년을 다짐했던 평범한 여고생이라고 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가 말을 이었다.
“친구가 표 2장을 구했다며 뉴키즈 공연을 가겠다기에 그래 고3 되기 전에 한번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승낙을 했던 그녀도 다를 바 없는 이 땅의 평범한 어머니였다. 친구 따라 공연장을 향해 나서면서도 “엄마, 나 이런데 가도 정말 되는 거야?” 설렘과 망설임을 보였던 청순한 딸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내내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괜스레 친구의 가슴에 상처만 덧대어 놓았구나...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모습이 차창에 어른거렸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간 곳 없는 계수나무
네가 나를 모르는데 /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 치 앞을 몰라…./
그즈음 어른들은 한 곳에다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사랑이 뭐 길래’ 라는 TV연속극이 방영되는 시각이 되면 전화 통화량이 급격히 줄고, 전화하는 것조차 실례라고 할 정도로 어른들은 TV라는 우상에 갇혀 있었다.
김국환이 코믹하게 부른 삽입곡 ‘타타타’도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김혜자가 능청스레 타타타를 흥얼대면, 이 땅의 어른들이 이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러면서 누구를 떠올렸을까. 어쩌면 남녀간 고부간 세대간에 흐르는 정전기를 자조적으로 깔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냉소가 있다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하필 그 사고가 난 날은 민속절인 정월 대보름이었다. 내가 자랄 때만해도 달은 천해를 떠가는 배이며, 영원히 상록 불사하는 계수나무가 자라나는 곳이다. 작았다가 커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달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영생불사를 동경했고, 생명의 부활과 회춘의 욕망을 꿈꾸었다. 그러한 저 둥근 달이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계수나무와 토끼는 없다. 예전처럼 숲과 골짜기 등 온 누리를 감싸고, 탁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그러한 달은 영영 사라져 버린 걸까. 그 달빛은...
⌾...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그래도 우리가 낙담을 털고 살아갈 수 있음은 희망이란 것을 되찾아주는 자연의 섭리일 게다. 움츠리고 비탄하는 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봄의 화신들이 어둑한 창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쯤 양수리에는 늪과 물가로 생명을 탈환하는 생명의 경이가 시작되고, 빈 초원에 푸름이 꿈틀거릴 무렵, 제주도에서는 유채꽃이 온 들판을 황금물결로 흔들 것이다.
청잣빛 한강에도 춘심(春心)을 가르는 바람이 일고 있다. 환희와 비탄의 역사를 끌어안고 흘러왔듯이 이 봄에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바위와 장애물들을 만나 부딪쳐 깨지기도 하지만 강은 하나로 흐른다. 인생도 멍든 상처를 보듬고 흐르다 보면 치유도 되고 잊히기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그녀가 문자를 보냈나보다.
“고마웠어, 묵은 친구가 미더웠나봐. 덕분에 마음은 개운해. 나 오늘 가게 계약해 빵집 해보려고. 잘할 수 있을까? 기도해줘.”
세월이 풀리는 두루마리 화장지 같이 헤프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세월에 연민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정분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은총이 아닐까? 그래서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 쌓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쁜 마음으로 답 글을 올렸다.
“다 잘 될 거야. 담장 밑에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더라.” (17.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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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이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혀질수 없어요. 그것을 대하는 감정만 무뎌질뿐~ 지인분의 빵가게가 잘되길 바래요~
그 때의 시건이 생각납니다. 가슴이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