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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일깨우는 山寺의 풍경소리
삶을 일깨우는 山寺의 풍경소리
도해 스님 시집 「이 세상에 올 때의 약속」
김전(시인,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kumijb@hanmail.net)
1. 프롤로그-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정성
시는 시인의 정서적 자아가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그 주역인 화자는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분신일 수도 있고,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시의 매력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주관화와 세계화하는 데 있다. 작품 전편에 흐르는 서정적 자아는 따뜻하고 환상적이다. 불자로서 속세를 벗어난 고고한 삶의 향기가 독자의 정신세계를 한 층 높이고 있다. 도해 스님은 맑은 심성의 소유자로 그의 고고한 인품이 작품 곳곳에서 향기를 드러내고 있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흐르고, 입술엔 정감 어린 말씀이 마주하는 사람을 평안으로 이끌고 있다. 오랜 습작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불교 철학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의 학구열은 남달라 늘 책을 가까이하고 있으며 불교에 대한 학식도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다. 스님은 동국대학 교수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스님이 첫 작품집 「이 세상에 올 때의 약속」을 발간한다고 연락해 왔다.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인생 철학을 함축하고 있기에 강한 호기심이 작품 세계로 인도하게 됐다. 작품 전편에서 도해 스님의 산사에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처럼 청아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사랑과 자비가 바탕에 깔려 있다. 불교적 철학이 지렛대가 되어 작품을 끌어가고 있다. 여기서 독자에게 인간의 참모습을 찾아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요즈음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때에 모처럼 보기 드문 작품을 마주하게 됐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정성을 차분한 어조로 탐색해 보는 태도가 돋보인다. 도해 스님을 보면서 인간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이 가진 무게가 다를 것이다. 가벼운 무게로 세파에 쓸려가 존재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무거운 무게를 억지로 지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무게의 경중은 자기 삶을 엮어가는 방식에 달려 있다. 여기서 도해 스님을 볼 때마다 그에게서 중후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묵직한 발자국을 찍으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에서 참 불자의 본보기를 보게 된다.
2. 사유의 얼굴들
어린, 그 어느 해 겨울
하늘을 가리게 눈이 내릴 때면
터널을 뚫어 친구 집에서 놀다가
고구마로 허기진 배를 채워도 행복하다
멀리 떨어진 집은 새끼줄을 묶어놓고
밤새 안녕한지 서로의 안부를
새끼줄을 당겨서 확인한다
한 달이 지나도 서로 만날 수 없는
이웃들의 얼굴에 걱정만큼
깊은 산골짜기에 눈이 쌓인다
지붕보다 높게 쌓인 눈 이불을
장대로 구멍을 내면
백야에 눈이 따가워도
짙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눈 터널」전문
눈이 두껍게 쌓여 이웃 간에 왕래가 어려웠을 때의 추억이다. 눈 터널을 뚫어 친구 집에 갔다. 거기서 허기진 배를 고구마로 채웠다고 했다. 고구마는 우정의 표시다. 서로 연락하기 위해 새끼줄을 당겨서 이웃의 안부를 확인했다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그때의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 작가는 아마 강원도 어디쯤이 고향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됐다. 어렵고 배고플 때 우리는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온 마을이 하나 되어 고락을 함께했다.
‘지붕보다 높게 쌓인 눈 이불’에서 시어의 확장성이 돋보인다. 눈 이불에서 차가움과 따뜻함을 비유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눈은 우리가 살아가는 장벽을 말한다. 장벽을 헤쳐나가면 희망이 보임을 말하고 있다
‘눈 이불을 장대로 구멍을 뚫으면 짙푸른 하늘이 보인다.’라고 재미있게 나타내고 있다.
담백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쉽게 이해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은비녀 같은 옥잠화를 보면
어머니의 젖 냄새가 가슴에서 일어나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른다
매콤한 눈물로 아침을 짓고
오이냉국 보리밥에 배부르면
쑥 향기 자욱한 모깃불에
팔뚝만 한 옥수수로 베어 물며
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잠들었지
아이들의 조잘조잘 웃음소리가
어머니의 사랑도 모르지만
어릴 적, 끝-모를 향기 머금은
어머니 비녀 같은 꽃
「옥잠화 전문」
옥잠화를 통하여 어머니의 은혜를 그리고 있다.
‘은비녀 같은 옥잠화를 보면/어머니의 젖 냄새가 가슴에서 일어나/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른다.’
옥잠화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은비녀를 유추해 내는 관찰력이 놀랍다. 이렇게 시인은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부분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감각적인 묘사가 시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시각에서 후각으로 이루어진 공감각적인 이미지로 개성적 표현이 돋보인다.
매콤한 눈물, 오이냉국, 보리밥으로 보내던 추억의 시절이 오롯이 떠오른다.
배고프고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인의 상상력은 대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감정 이입함으로써 재구성된다.
이 작품의 비유는 시적인 맛을 더해 주고 있다.
낮에는 기도와 밭일을 하고
밤에는 독서와 사색의 시간
벗이 오면 삶을 묻고 답하며
서로의 진실한 안부를 묻는 일상
사랑 흘러넘치는 바다에
산을 띄워 방석 삼고
바닥에 닫는 낚싯줄 드리운 채
길지도 않은 하늘 넓이를 잰다
세상의 고단함 잠시 밀쳐두고
서로 차 한잔 쨍하며
바둑알을 파도에 놓으며
달과 은하수 켜 놓은 밤
삼백예순 섬의 징검다리
「야경 夜景」전문
여수 앞바다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스님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낮에는 기도와 밭일, 밤에는 독서와 사색, 가끔 친구가 오면 삶을 묻고 답하며 인생을 논한다. 삶이 힘든 사람의 멘토가 되어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바다에다 산을 방석으로 띄워 놓았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바닥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하늘 넓이를 잰다고 하였다. 개성적인 표현이 독자를 감동의 장으로 끌고 있다.
‘바둑알을 파도에 놓으며/달과 은하수 켜 놓은 밤/ 삼백예순 섬의 징검다리’
확장성 있는 작품이다. 독특한 발상과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낯설게 하기 기법까지 갖춘 수작이다.
하늘과 바다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시인이야말로 제대로 된 시인이다.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시에서는 메시지 전달도 중요하지만, 시적 기교를 이용한 표현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도해 스님은 시어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인이다.
바다를 사랑의 바다로 나타내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준다고 바다가 되었다. 바다 같은 도해 스님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봄바람에 실려 온 향기
꿈같은 잠을 깨워도
행복은 멈추질 않네
보글보글 자르르
물 끓이는 소리에
차선이 춤을 추네
향기로운 차 맛은
욕망의 오감을 잠재우고
영원의 시간을 멈추네
「 차 한잔」
차 한잔의 효능을 체험과 상상력으로 묘사하였다. 의성어(보글보글 자르르)를 통하여 역동적 이미지가 나타난다.
차를 마시면 신선이 되어, 욕망과 오감을 잠재우고, 영원의 시간을 멈춘다고 하였다.
차를 우리면서 봄바람에 실려 온 향기를 코로 맡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 무념무상의 세계로 잦아들게 하는 시간이 바로 차를 우리는 시간이 아닐까? 예부터 산사의 스님들은 차를 우려내고, 차를 마시면서 세속의 번뇌를 잠재웠을 것이다. 쉼 없이 일어나는 잡념을 찻잔 속에 속여내지 않았을까?
정성껏 차나무를 기르고, 찻잎을 따고, 그 찻잎으로 차를 만들고, 우려내는 기나긴 기다림의 과정은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다도(茶道)라면 조선 시대의 초의 선사를 들 수 있다. 초의 선사는 당시 침체한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으로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오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이다. 주로 스님들에 의해 즐기던 차가 이젠 대중화되고 있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고고한 삶을 사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도 평소처럼 미래에는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잡고 괭이질을 한다
행복의 과정은 너무 힘들고 괴로워도
꿈꾸는 미래의 희망을 막을 수 없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등으로 잡아도
흙먼지도 달고 감미롭다
기억할 수 없는 먼 시간
애타게 미친 듯 행복을
지금도 찾고 있다
「많은 날의 시간」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그 많은 날, 그 많은 시간이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다. 고통의 시간과 때로는 행복했던 추억도 떠오를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선택에 대한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득도의 길, 불자의 길은 녹녹잖다. 현실에 부딪혀 때로는 돌아서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괭이질한다.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승려는 도만 닦으며 일하지 않는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라.”는 스님의 노동 철학이 있다.
성철 스님은 “실제로 영원한 자유가 없다면 굳이 부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가르쳤다.
작가는 영원한 자유와 미래의 행복을 위해 괭이를 잡고 땀을 흘린다. 현실이 괴롭더라도 미래에 찾아올 행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잡아 바로 세우는 모습이다.
‘기억할 수 없는 먼 시간/애타게 미친 듯 행복을/ 지금도 찾고 있다.’
마지막 연에 이 시의 주제가 나타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행복의 길로 전진하는 과정에 깊은 고뇌가 숨어있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저마다의 꽃들은
때가 되면 조용하지만 큰 소리로
자기의 탄생을 우주에 알린다
가치 없이 의미 없이
그 자리에 있는 듯해도
이름과 색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피어난다
나는 나만의 고유한 존재로
아름다운 의미를 갖춘
하나밖에 없는 우주 꽃이다
「우주 꽃」
인간은 윤회의 굴레 속에서 맴돌고 있다. 의미 있는 존재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우주 꽃은 다양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인간 개개인은 이 우주에서 의미를 갖춘 하나의 꽃이다. 꽃처럼 소중한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작품은 존재론적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많은 사람이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져 버리는 아쉬운 존재다. 따라서 살아있을 때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때 의미 있는 존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우주 꽃으로 비유하여 에둘러 묘사한 점이 좋았다. 시는 비유와 상징 함축으로 이루어져야 시다운 맛을 볼 수 있다. 시적 함축이나 간결성이 돋보인다.
서정적인 끼와 매력이 묻어나 있다. 존재론적 자아 성찰을 구현하고 있다. 심도 있는 인간 탄생의 당위성을 시적 논리로 전개하고 있다.
바벨탑 숲속 미로 사이로 드물게
아주 드물게 태극기 하나
점으로 반긴다.
선열의 높은 정신과 고독한 삶 알지 못해도
울컥하는 그 고통, 그 마음 되새기며
특별한 날 펄럭이는 태극기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그 역사의 눈과 눈으로 전해진 진실은
나라, 민족, 정의, 전쟁, 평화, 독립의
친숙하면서도 덤덤해진 단어의 나열 속에서
진행 중인 분단, 이별의 이야기가 가끔은
꿈속에서도 살아나고 있다
「태극기 전문」
태극기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 애국선열이 지켜온 조국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한다. 태극기를 보고 조국애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통일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바벨탑 숲속 미로 속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조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온전한 나라가 되지 못하고 분단 속에서 갈등의 골이 깊다.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아 올렸던 노아의 후손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통일을 향해 바벨탑을 쌓고 있다. 태극기 흔들며 그날을 향해 나가고 있는 민족의 앞날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역사가 왜곡되고 선열들이 지켜온 조국이 흔들리고 있다. 지역적 갈등, 세대 간 갈등, 북한의 핵실험 등은 우리나라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극기가 환하게 자유를 누리면서 밝은 웃음으로 다가올 그 날은 언제일까?
바벨탑은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Noah)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하였으나, 여호와가 노하여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인생을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라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히
올바른 인간의 길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혼돈의 늪
지구상에서 모든 악의 근원은 인간이고
희망의 불씨도 인간이었다
힘들고 힘든 고통의 연속과
있고 없음의 다른 시선 속에서도
“착하게 열심히”라는 신념 하나로
오늘도 잇몸이 보이도록 너~털 웃는다
다시, 열심히 착하게 시작이다
「작은 평화 전문」
선과 악,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등은 인간의 삶과 늘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함께하는 한, 세상은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간다. 바로잡아도 또 어긋나고 또다시 바로 잡으려 해도 엇길로만 나가는 인생길이다. 세상은 내 뜻과 반대로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게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닐까?
우리는 삶의 오르막길에서 무수히 많은 위기를 만난다. 그때마다 빨강 신호등이 켜져 앞길을 가로막는다. 어둠의 터널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고통은 연속되고 있다.
선과 악이 있고, 있고 없음의 다른 시선이 발목을 잡을지라도 ‘착하게 열심히’라는 깃발을 높이 세우고 전진한다.
‘오늘도 잇몸이 보이도록 너~털 웃는다./ 다시, 열심히 시작이다.’
작가는 달관의 자세를 보인다. 종교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작은 평화의 시작이다. 인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지향과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3. 스님의 생각과 스님의 길
이 세상에 올 때 약속한
아주 간절한 다짐들이
어머니 태중에 들 때 한 번
자궁 속 뜨거운 세포분열에 한 번
태어나는 순간 놀라서 한 번
연거푸 세 번의 기절에
꼭 이루겠다던 굳은 다짐과
태어난 목적도 잊은 채
그렁그렁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올 때의 약속」전문
이 작품은 시집의 제목이다.
생략법으로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올 때의 약속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의미 있는 삶, 상생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바람처럼 우~우 왔다가 흔적 없이 떠나는 사람, 의미 있는 삶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올 때의 모습은 누구나 공통적이다. 첫 번째 태중에 들 때, 두 번째 자궁에서 세포분열 할 때, 세 번째 태어나는 순간에 기절하며 태어난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삶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렁그렁 살고 있다고 했다.
도해 스님이야말로 그렁그렁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많은 스님을 만났지만, 도해 스님만큼 인품과 불교적 학문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서늘한 가을 달빛
왁자하던 섬돌에 머물고
똑 또르르, 따 아 앙 땅
목탁과 종소리
산승의 깊은 잠을 깨우면
저마다의 방에 불이 켜진다
예나지나 항상 그랬던 것을-
지금 다시 새삼스럽지 않구나
「달빛 드리운 산사」
청량한 아침 이슬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적막의 가을 뜨락에 점 하나를 찍고 있다. 목탁과 종소리가 속세의 사람과 사물을 깨운다.
목탁과 종소리가 산승의 깊은 잠을 깨우면 산사의 아침이 시작된다.
산사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나타난다. 한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공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호흡이 짧은 작품이지만 성공적인 작품이다.
뜻을 세워 출가한 일
세상의 성공과 다르다
권력과 부귀를 탐하고
높은 이름을 쫓지 않고
처음 세웠던 뜻을 생각해도
가물가물한 기억조차 없다
하루하루 까칠한 머리 만지며
현재의 마음을 보듬고
영원한 봄의 행복 얻고자
기쁘게 뜻을 다시 세운다
누가 세상이 空 하다고 말하나!
홍매화 향기 눈앞에 가득하다
「입춘」전문
이 작품은 시적 화자의 독백이다. 스님이 출가할 때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출가하는 사람은 성공과 권력과 부귀, 명예를 탐하지 않는다. 속세를 떠나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는 일이다.
출가를 하게 되면 자신을 버리고, 속세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자신을 다스리고 득도하는 삶도 또 다른 임무다.
때로는 번뇌와 고독 속에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후회할 때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자기를 보듬어보고 뜻을 세운다고 하였다.
마지막 행에서 ‘누가 세상이 空 하다고 말하나!/ 홍매화 향기 눈앞에 가득하다’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도 이 땅엔 홍매화 향기 같은 희망이 있으니 도전할 가치가 있다.
시에서 마지막 행은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야 한다.
스님도 인간이다. 인간의 참모습을 진솔하게 나타낸 점에서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부처가 말했다.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 같이 괴로워하며
일할 때는 뜻을 모아
같이하는 것이 가족이다.”
간절한 사랑과 진실한 믿음으로
남남이 만나서 부부가 되고
그 뜨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족이 되었다
그 약속의 심연에 들어가면
행복보다 아쉬움이 많더라
현생에서는 아쉬움이 없는
가슴 시원한 사랑을 하자
「가족」전문
가족이라는 평범한 소재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일상 체험을 소재로 관심을 끌고 있다. 관찰력과 사색의 흔적이 엿보이고, 내면의 서정을 대상물과 하나로 형상화 시킨 점이 좋았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같이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 했다. 이는 꼭 혈연이 아니라도 좋다. 함께하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도 함께하지 못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가족이 있다.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 현실 앞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작가는 가족관계를 돌아보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행복보다 아쉬움이 더 많더라.’ 라고 말하고 있다.
‘현생에서는 아쉬움이 없는/ 가슴 시원한 사랑을 하자.’
가족관계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훈적이다.
중생들의 마음
내 마음에 모두 담아서 보듬는
부드러운 자비의 손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자비는 자기의 마음을 아는 거라고
성인들이 솔직히 말해도
밖으로 밖으로 자신을 찾아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지친 몸으로 방에 누우면
천정의 화면에서
마음과 행동들의 영상이
분명하게 재생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번뇌로 허덕이는
거짓들로 가득 찬
나를 깨우치려고
지장보살이 손을 내밀고 있다
「자비스러운 마음」
이 작품은 스님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시적 화자는 모든 중생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서 보듬어주고 싶어 한다.
자비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하여도. 밖으로 나가버리는 마음이 자신을 고갈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정의 화면을 보며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낸다. 숨김없이 나타난 내 모습에서 거짓과 번뇌로 허덕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지장보살이 손을 내밀어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지장보살은 불교의 주요 보살 중 하나로,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면 나는 성불하지 않길 원하옵니다.’라고 큰 대원을 세운 보살이다.
손을 내밀면 그만큼이나 뒷걸음질
잡힐 듯 밀당하는 애인같이
먹이를 줄라치면 쏜살같이 다가와
먹이만 먹고 악수하려면 새침하게 돌아선다
항상 멀찍이 서서 살펴보며
나의 행동을 살피는 눈길 멈추지 않고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그림자같이
눈꼬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고양이
언제나 화두를 놓치지 않는
참선하는 스님이다
「참선하는 고양이」전문
이 작품도 불교적 철학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개입되었다.
작가는 새로운 의미로 자기 모습을 성찰하고자 하였다.
참선은 번뇌를 끊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선(禪) 수행이다. 이는 불교에서의 수행 방법이다. 참선하는 고양이라! 고양이를 자기 모습에 이입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고양이가 시적 자아를 관찰하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함부로 가까이 오지 않으면서 나의 행동을 살피는 고양이다. 객관적 입장에서 고양이가 관찰하도록 하였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오면서 화두를 놓치지 않는 스님이라고 치환시켜놓았다.
시적 자아는 늘 정진하면서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비유를 통하여 늘 참선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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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이 없는
밝디밝은 세상에서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사바세계에 왔다.
자신도 남도
속일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한
지금,
바람은 시원하고
마음은 달이 되었다
「달 꽃을 보며」 전문
지금까지 자연은 많은 시인에게 시 창작의 소재가 되어 왔다. 자연의 생명력과 순전한 사랑이 융합된 시로 독자의 가슴을 울려 줬다. 여기에 시인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결합한다면 한 편의 훌륭한 시가 탄생할 것이다.
달이란 밝음과 깨달음, 희망과 낭만이라는 단어를 포함한다. 보름밤 두둥실 떠오른 달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달 꽃이라 표현했다. 그 달 꽃이 인간 세상으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었다. 달을 바라보고 그 마음이 달처럼 밝고 맑게 되었다.
서정시의 품격과 시를 대하는 시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산을 오르는 것은
내 육신의 땅을 짓이겨
유한의 몸을 깨닫고
마음의 벽을
부수는 일
「불모산을 오르며」전문
사량도에 있는 볼모산은 높이 399m이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볼모산을 오르면서 화자가 느낀 점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도 불교적 철학이 담겨 있다. ‘산을 오르는 것은’ 함축적인 시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바로 산을 오르는 길이 아닐까? 힘겹게 살아가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관조적 세계 인식과 삶의 예지가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이 바라본 삶의 자세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친근한 일상에서 이렇게 묵직한 삶의 철학을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한한 인생이 가야 할 길은 마음의 벽을 부수는 일이다. 오욕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무한한 뜻이 담겨 있다.
4. 에필로그 –진정한 삶을 위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삶이 되기도 한다. 삶의 질은 자기 선택에 따라 다양한 빛깔로 나타난다.
도해 스님은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출가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광야 같은 인간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오신 분이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현재 여수 달마사에서 주지 스님을 하고 있다.
시는 노래다. 그러나 그 가락은 슬픔일 수도 있고, 즐거움일 수도 있다. 자기 개성과 인품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시의 품격도 다르다. 시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 山菊은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한자리에 있어도 벌과 나비는 모여든다. 좋은 시는 바로 산국과 같은 것이다.
도해 스님의 시는 한마디로 청량한 산사의 풍경소리다.
체험과 상상을 통한 시적 미감을 맛보게 하는 작품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작품이다.
적막을 깨뜨리는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여수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달마사는 도해 스님이 있기에 더 아름답다.
그의 첫 시집 ‘이 세상에 올 때의 약속’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작품집이 독자에게 사랑받길 기원한다.
책 뒤편에
시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 山菊은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한자리에 있어도 벌과 나비는 모여든다. 좋은 시는 바로 산국과 같은 것이다.
도해 스님의 시는 한마디로 청량한 산사의 풍경소리다.
체험과 상상을 통한 시적 미감을 맛보게 하는 작품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작품이다.
달빛이 방안에 찾아오면 적막을 깨뜨리는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여수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달마사는 도해 스님이 있기에 더 아름답다.
김전(시인, 시조 시인, 문학평론가) 평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