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평화바람, 문정현과 평화바람, 검둥소.
대추리로 이사 오길 참 잘했습니다(4)
* 빈집은 언제 버려졌냐는 듯이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주민들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건강차를 대접한다는 뜻으로 차린 전통 찻집이 거실을 차지했다. 작은 방은 빈집들에 버려진 쓸 만한 옷들을 모은 헌 곳 가게, 또 다른 작은방에는 영사기를 갖춰 놓은 상영관이 들어섰다. 거실 한쪽 벽면은 사진가 노순택 씨가 찍은 주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지난 가을부터 이따금 하루 사진관을 열어 주민들이 장수 사진과 가족사진을 찍어 드렸다. 그는 "당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많이 찍어 드리려고 오늘부터 잠깐 이사 왔다."라며 "대추리 상설 황새울 사진관을 많이 애용해 달라."고 말했다.(2006. 1. 3.)
* 매일 촛불 행사장에선 트랙터 평화 순례단 얘기로 시작해서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구호로 끝난다. 아무리 튼튼하고 논일 잘하는 트랙터라도 딱딱한 도로를 열흘 넘게 달린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자전거보다는 빠르고 오토바이보다는 느린 트랙더가 자동차 사이를 달린다. 새벽부터 달려 하루해가 지고 촛불을 밝힐 때에야 비로소 일과를 멈투는 트랙터. 사람이 쉬어야 트랙터도 쉬고 사람이 자야 트랙터도 잔다.(2006. 1. 13.)
* 아이들은 빈집을 탐험하면서 왜 우리 동네는 점점 빈집이 늘어나는지, 왜 마을이 점점 부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며칠 전에 '저주 받은 집'에 다녀와서 버려진 성모마리아 상 눈이 움직인다며, 왜 기영이는 전학을 갔느냐고 묻는다. 나는 군사기지를 확장하려는 정부에서 집과 땅을 빼앗고 주민들을 내쫓아서 이사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실에서 전차와 칼, 총과 벗하며 노는 아이들에게 놀이방에선 싸우지 말고 경쟁과 적자생존을 학습하는 게임보다 자연과 함께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자는 얘기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2006. 1. 23.)
* 국방부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농지와 농수로를 파괴했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친다. 갯골을 손으로 메워 만든 땅이라 개흙이 드러났다. 무서운 포클레인을 주민들과 평택 지킴이들이 온몸으로 막는다. 몇 백 명이 수천 명을 막을 수 없다. 포클레인이 파헤쳐 놓은 논을 다시 손으로 메운다.(2006. 3. 15)
* 오늘 촛불 행사에 전원권이 왔다.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인가. 사람들이 비닐하우스가터지게 많이 왔다. 그런데 '진짜' 전인권이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내 손을 끌더니 무대에 서게 하였다. 나를 불러내다니 웬일인가? 어느 누가 조종하지 않았을까? 박자를 정확하게 맞출 수 없어 '진짜' 전인권의 입만 보고 따라 불렀다. 귀띔만 해 주었어도 더 잘 부를 수 있었을 텐데.(2006. 4. 15.)
* 신부들은 그들의 손에 끌려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연행된 동지들이 걱정되어 쉽게 내려올 수 없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 웬일인가! 뙁뙁 소리가 들린다. 현장을 볼 수 없지만 학교를 때려 부수는 소리임이 틀림없다. 학교가 무너진다. 가슴이 조인다. 그래, 마음은 빼앗기지 않았으니 그만이다. 그렇게 위로했다.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 긴지. 가장 긴 날이다.(2006. 5. 4.)
* 한 달 동안 군인들이 친 철조망은 거대하고 흉물스러웠다. 그 안에 철조망이 얼마나 들어갔는지가늠하기도 힘들다. 논 곳곳을 돌아다녀 보니 고속도로처럼 차 달린 바큇자국이 선명하다.(2006.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