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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자신의 일상을 떠나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때문에 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이나 풍물들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행기 혹은 기행문이라 하겠다. 보통 사람들은 불과 며칠 동안의 짧은 여행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하는데, 30여 년 동안 여행을 다녔던 이븐 바투타에게는 아마도 여행이 그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일컬어 ‘역마살’이 끼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이븐 바투타 역시 그의 삶에 역마살이 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븐 바투타(1304~1368)는 모로코 출신의 아랍인으로서, 14세기 전반 약 30여 년간 아랍과 인도 그리고 중국 등을 여행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세계 4대 여행기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은 아랍어 완역본을 ‘10대를 위한’ 문체와 내용으로 가다듬어 쉽게 정리한 발췌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역본은 이슬람 문화를 전공하거나 특별히 그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들을 10대를 상정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나 문체는 일반 성인 독자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이슬람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랍을 여행하거나 그곳의 지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저자의 여정을 하나하나 따지고 확인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14세기 전반의 아랍은 다수의 부족들이 존재했고, 각 부족의 수장을 술탄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서 메카와 메디나로 상징되는 성지순례는 일생을 두고 꼭 한번이라도 거쳐야만 할 과정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특히 당시의 이슬람 부족들이 성지순례자와 방문객들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는 것, 그리고 법률가에 대한 대접이 아주 깎듯했다고 한다. 법률가인 이븐 바투타가 이슬람 각국을 여행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문화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슬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븐 바투타 역시 이슬람 각국을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과 결혼을 하고 때로는 그들 중 일부와는 이혼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현지 여인과 결혼하여 수많은 자녀를 두었다’고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는데, 그 자녀들을 모두 양육했던 것 같지는 않다. 문득 이 시점에서 곳곳에서 그와 결혼한 부인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성들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아랍권에서 결혼조차 여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성들에 의해 쉽게 결정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었던 듯, 소아시아의 라지크라는 도시에서는 바투타 일행을 서로 모시기 위해 다투다가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바투타는 가는 곳마다 각 부족들의 수장인 술탄을 만나 자신의 여행 경험과 지식을 펼치기도 한다. 아마도 당시 아랍에서 바투타와 같은 지적인 여행들을 통해서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정보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술탄들은 돈과 음식으로 바투타 일행들을 대접하였다. 인도에서는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고, 여러 해 동안 당시 원나라의 상황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바투타 일행에 대한 이러한 환대가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였던 중요한 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1325년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성지순례를 떠났던 바투타는 1349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으며, 이후 다시 3년 동안 아프리카로의 여행 기록을 남겨 거의 30여 년간을 여행으로 소일했던 것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바투타는 고국인 모로코의 술탄의 명령에 의해 여행기의 쓰기 시작하여 2년이 되지 않아 집필을 마쳤다고 한다. 현재 바투타의 원본은 사라지고, 당대의 문장가인 ‘이븐 주아이 알 칼비’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판본이 현재 전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여러 지방의 기이한 일과 여행 일정의 특별한 행적을 목격한 자의 보물 같은 기록’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투타의 행적을 좇아 아랍 지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풍속을 접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졌다고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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