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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분쟁과 한국과 일본 사이의 수출 규제로 인한 갈등으로 한층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복잡한 정세가 한꺼번에 실타래처럼 풀릴 수 있듯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하겠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경제 패권을 향한 주도권 싸움으로 애꿎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갈수록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여기에 수출 규제라는 도발로 시작된 일본의 행위는 한층 복잡한 지경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는 그것이 두 나라 사이의 역사에 대한 관점 차이로 비롯되고 있어, 우리의 국민적 감정을 크게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No 아베!'라는 슬로건이 말해주고 있듯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과거의 역사를 망각한 일본 극우의 정치 세력에 대한 정당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일본 각지에 난립했던 막부체제가 서서히 붕괴되고, 이른바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일왕의 친정체제가 구축되었다. 일왕을 앞세운 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이른바 '정한론'을 내세운 그들은 한반도를 침략했고, 끝내 경술국치(1910)로 인해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저자는 서문에서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입장만이 고려된 용어이기에 앞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6>은 메이지유신 이전의 혼란스러운 일본의 정국을 그려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전부터 서양과의 교류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었던 일본의 조슈번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5명의 인물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으며, 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근대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저자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이 책의 진도가 느린 탓으로 일본의 역사는 여전히 메이지유신(1868)까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에도막부가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 독립전쟁을 위시한 서양 각국의 상황도 아울러 병렬시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는데, 조선은 여전히 세도정권의 세력 하에 ‘은자의 나라’라고 불리고 있었다. 당시의 권력자들은 순조의 죽음으로 인해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후계자를 세우는 것에 골몰하였고, 그것은 결국 후계자가 누군가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세도정권의 핵심 가문이었던 안동 김씨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이해관계가 맞아들어 고종이 즉위하게 되었고, 한때나마 대원군의 강력한 통치로 인해 세도권력의 위세는 잠시 꺾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왕비의 위세를 이용한 여흥 민씨 가문과 흥선대원군과의 권력 다툼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대원군은 집권 초기 강력한 개혁 정책을 시행하여 세도가문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일본과 청의 개입으로 인해 대원군의 정책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외세를 끌어들였던 결과가 그들의 침탈로 귀결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역사적 행위의 공과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국제적인 정세를 파악하지 못해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른바 ‘삼정의 문란’으로 일컬어지는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서 민중들은 힘들게 살아야만 했으며, 결국 진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백성들의 봉기로 인해 당시를 ‘민란의 시대’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이틈을 타서 이씨가 물러가고 정씨가 왕이 된다는 내용의 <정감록>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내세운 동학이 교세를 폭발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한국과 중국의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메이지유신’과 ‘동학혁명’에 이르는 과정은 아마도 다음 권을 기다려야 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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