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유태용
오늘도 어김없이 병원에 가는 날이다. 나이 들어 병원에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건만 왠지 요즈음 들어서 병원 가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병원 두 곳을 다닌 지 벌써 3년이 다 돼 간다. 처음에는 낫고자 하는 의욕이 가득 차서 병원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갔으나 치료의 효과가 크게 나아지지 않으니 병원과 의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점점 얕아지니 진료일이 되어 병원 가는 일이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마음이 무겁다. 오늘 하루 빠진다고 나을 병이 안 낫겠나? 빠지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일어난다.
백반증(白斑症), Vitiligo Skin으로 현재도 치료받으러 피부과에 다니고 있다. 백반증은 후천적으로 흰색의 반점이 생겨 퍼져나가는 만성 피부 질환이다. 병의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난치성 피부병이다. 단지 밝혀진 바로는 멜라닌 색소 감소로 인하여 피부에 흰 반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점이 생기는 범위와 부위도 사람마다 양상이 다르다. 왜 멜라닌 색소가 감소하는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반증이 유전적, 면역학적, 생화학적 등 여러 요소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생긴다고 보고 있다.
처음 백반증 증상을 발견한 것은 직장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얼굴 이마 밑에 동그랗게 흰 반점이 눈에 띄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이번에는 귓불 근처가 흰 반점으로 변했다. 황인종의 특색인 황색 얼굴 피부색에 군데군데 흰 반점이 자리 잡으니 내가 면도할 때마다 거울을 봐도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을 대표적으로 평가하는 얼굴 부분에 흰 반점이라니. 들판에 뛰어노는 얼룩소가 이 모습일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뒤에서는 쑥덕거리지 않을까? 스트레스가 심했다.
시골에서 텃밭 가꾸는 생활을 하다가 대구에 왔다. 내버려 뒀던 얼굴 흰 반점 치료를 하기로 마음먹고 우선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수소문했다. 한 지인이 칠곡에 위치하는 적십자 피부과를 소개했다. 내가 알기로는 칠곡이 커지기 전부터 있었던 병원으로 한센병을 잘 고치기로 이름이 났었다. 한센병도 피부병의 일종으로 그 분야에 특화되었을 것이라 믿음이 갔다.
병원에 들어서니 현관에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었다. “백납(백반증), 레이저 시술” 피부병 종류가 수십 가진데 입간판을 세울 정도로 백반증에 특화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한층 믿음이 갔다. 믿음은 신뢰를 주고 신뢰가 커지면 신체 면역기능이 활성화되어 피부 세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 진료. 호명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가니 젊은 여의사가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얼굴에 흰 반점을 보여 주니, ”백반입니다. 레이저 치료로 가능합니다.“
열심히 다녔다. 병원 가는 게 일과가 됐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매일 병원 다니던 생각이 난다. 어른들은 어디가 아파서 병원을 밥 먹듯이 다닐까? 내과, 안과, 치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한의원 등등. 내가 나이가 들어 보니 그 당시 외할머니 병원 순례가 이해가 간다. 경험이 말해준다. 지금도 젊은 사람은 옛날 내가 생각했을 때와 같을 것이다. 삼 년 정도 다니던 어느 날 담당 여의사가 말했다. “이제 표면적으로 나타난 부분은 깨끗해졌다. 앞으로 재발만 되지 않으면 치료는 필요 없으니 그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치료가 끝난 후 일이 년 동안은 얼굴에 흰 반점이 없었다. 이제는 스트레스여 안녕!
어느 날 무심히 거울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왼쪽 이마(옛날은 오른쪽이나) 밑에 커다랗게 흰 반점이 생겨 있었다. 재발한 것이다. 여의사 말이 적중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신을 원망했다. “왜, 나에게 천형과도 같은 피부병을 재발하게 합니까? 성심성의를 바쳐 치료를 받지 않았습니까? 또 이 지긋지긋한 치료를 받아야만 합니까. 이제는 포기하렵니다. 이대로 살겠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원망을 퍼붓고 치료를 포기했다.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지만 백반증에 대한 내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늘 마음 한 곳은 찜찜했다. 어느 날 고교 동창과 대화 하던 중 내 얼굴에 있는 흰 반점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고교 선배가 피부과 원장인데 그 분야에서 이름이 났으니 진료 한번 받아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임상 경험이 풍부하니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작한 마스크 쓰기 운동은 나에게는 좋은 피신처를 제공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 쓰면 상대편은 내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으므로 흰 반점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피부가 좋은 사람도 피부가 이상한 사람도 구별할 수 없으니. 나쁜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이 오래돼 줬으면 하고.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돌아본다. 오래전에 팬데믹이 끝나 대부분 사람이 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 쓴 사람이 없다. 나 이외에. 큰 결심을 했다. 마스크를 벗기로. 내 얼굴에 흰 반점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도 좋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미국 가수 마이클 잭슨도 백반증 환자였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자기가 백반증 환자라고 고백했다. 숨지 않고 당당했다.
백반증은 전염성이 전혀 없으므로 옮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감염병처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지성이면 감천. 열심히 치료를 받다 보면 조상님과 부모님,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의 도움으로 백반증이 내 몸으로부터 살아질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