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렵다 우리말!(양수진)
회의에 늦었다! 마침 학교 주차장 비탈에 자리가 있어서 허둥지둥 주차하고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 도중 우리반 아이의 문자가 왔다. “선생님 차가 밀려요….” 앗! 아까 비탈에 주차한 차가 밀린다고? 이건 사고잖아? 너무 놀라서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나와서 보니 내 차는 아주 잘 있었다. 다시 문자를 봤다. 이어지는 다음 메시지는 “조금 늦을 것 같아요.”였다. 이런! 아침 등교 시간에 흔하게 받는 메시지를 나의 특수한 맥락 안에서 읽었다. 완벽한 오독(誤讀)이다. 밀린다는 말은 내가 이해한 ‘밀다’의 피동형으로 반대쪽에서 힘이 가해져서 미끄러진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 학생은 ‘정체(停滯: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그치다)’로 이해했다. 우리말 참 어렵다!
초등학교 6학년 지인의 딸이 수학 문제를 풀다가 ‘가격인상’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지인은 ‘가격이 올랐다’는 뜻도 모르냐며 동생을 불러 물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은 ‘첫인상인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인상(引上: 물건값 따위를 올림)과 인상(印象: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은 우리말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르다. 우리말은 한자를 기본으로 해서 단어가 만들어진 탓에 동음이의어가 많다. 우리말 진짜 참 어렵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우리말 다시 쓰기’를 페이스북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이 많이 쓰는 단어 14개를 우리말로 바꾸는 행사였다. 힙하다, 존버, 인플루언서, 단톡방, 핵노잼, 덕후, 현타, 인싸, 홈베이스, 츤데레, 기프티콘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홈베이스(home base)는 교과 교실제 학교에서 학교 생활의 거점으로 마련되는 사물함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야구의 홈베이스로 착각해서 본루(本壘)로 표현하기도 하고, 글자 뜻 그대로 이해해서 집자리, 내 공간, 출신지, 고향,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공간으로 바꾸기도 했다. 요즘 우리말은 외국어 범벅 말이 너무 많다. 우리말 진짜 참 너무 어렵다!
우리말을 표현하는 문자는 한글이다.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찬사처럼 표현할 수 있는 글자가 무려 1만1172자나 된다. 발음할 수 있는 소리도 3192음절이다. 하지만 우리말 소리값 뒤에 의미 요소를 담은 한자가 숨어있다는 게 함정이다. 학생들이 한글로 소리를 읽어도 의미를 재구성하지 못하는 말이 너무 많다. 요즘 나의 한문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내용은 우리말 소리값 뒤에 숨어있는 한자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은 무거운(重) 것을 만드는(工) 일(業)을 하는구나라고 스스로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에서도 ‘시나브로 말·글·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 역시 아이들과 일제 잔재 용어 바꾸기, 무분별한 외국어와 지나친 축약어 사용 자제하기, 아름다운 우리말 사용하기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외솔 최현배의 도시 울산이 아름다운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우리말이 너무 어렵다고 계속 투덜거렸지만 사실은 츤데레(겉으로 인정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함) 마음이다.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첫댓글 우리 청소년들 아름답고 위대한 우리말을
은어로 사용하는 것 들도 사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애국이 커다란 무언가가 아니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