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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위한 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新婦)여.
김춘수 시선"처용處容"[민음사]에서
꽃을 위한 서시를 읽으면서 꽃을 대하는 마음이 간곡하고 엄중하고 비밀스런 통로를 가져야 함을 느낀다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나는 한밤내 운다."는 구절에서 꽃은 자기 존재의 구심점을 말해 주고 있다 무명의 꽃 한 송이 피워내기 까지 지난 삶을 모두 바쳐야 하는 삶의 본능이 보여주는 것은 한 접시 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되어 몸을 태워야 피어나는 것이 꽃이다 꽃을 피워 낸다는 것은 목숨을 바치는 일이다 그렇게 혼신을 다하여 피는 꽃을 위하여 시인은 "돌개바람되어 / 탑을 흔들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돌에까지 스며 금이 될 수 있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꽃을 피워낼 수 없다는 것이다 꽃을 피워내는 일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받아내는 일이다 세상의 조화가 없이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땅의 울림이 있어야 하고 하늘의 빛이 담겨야 하고 허공의 가슴이 펴져 있어야 한다 그러한 조화의 결정체가 꽃으로 나타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삶도 그 조화로움의 결과가 일치 되어야 꽃 처럼 피어나는 삶이 된다 그런 삶을 두고 시인은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라 하였다 신부란 세상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 아닌가 꽃이 피는 마음 하나면 이 세상 살아가는 마음이 어찌 외롭고 두려우랴 꽃을 피워내기 위한 마음은 이 세상의 삶의 조화를 조율 할 줄 아는 사람 많이 꽃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지상의 모든 꽃의 향기는 우리 삶의 존재가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 주는 조화로움의 신비를 말해 주는 듯한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