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의 은유
최 운
gurum39@hanmail.net
“제발 냄새 좀 빼세요!”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댓바람으로 쇳소리가 들이닥친다. 보나마나 딸아이다. 우리 아파트에 와서 무법자처럼 언행을 삼가지 않는 사람은 그 아이 하나뿐이다. 창문을 열어 제치고, 걸려 있는 옷가지에 코를 들이대고, 방향제를 찾는다고 여기저기를 뒤지고…. 가까이 살아서 친정엘 자주 오는 편인데, 내대는 신경질은 실수로라도 거르는 법이 없다. 옷은 반드시 거풍을 시켜라, 외출하기 전에 향수 뿌리는 걸 잊지 말아라. 판에 박은 명령도 꼭 입에 달고 찾아온다. 요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김치와 된장과 마늘 냄새가 온 집 안에 잔뜩 배어 있다는 얘기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알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속내는 늘 편하지가 않다.
‘기껏 딸자식의 지청구나 들으려고 이민을 왔다는 말인가.’
넋두리가 목구멍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짓누르느라 애를 쓴다. 오늘은 오기까지 치받쳐 오른다.
‘냄새 냄새 하지만 그런 냄새 속에서도 잘만 살았다는 사실을 네가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거냐?’
분명 그런 시절은 있었다.
어둠이 추녀 밑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들면, 사랑채 아궁이 가마솥에서는 푹푹 쇠죽이 끓었다. 워낭 소리 추임새에 초저녁이 잰걸음을 걷고, 구유와 외양간을 거친 쇠죽 냄새가 초가집을 포근하게 다독이고는 시나브로 사라져버리던 그 시절-.
대문 밖에는 언제나 구리터분한 냄새가 감돌았다. 마당 귀퉁이에 장방형으로 쌓여 속에서부터 썩고 있던 두엄 냄새에다, 마당 가로 빠져나가던 시궁창 냄새와 헛간에서 밖으로 덧달려 있던 뒷간 냄새가 뒤범벅되는 공간이 바로 대문 밖 마당이었다. 거기서 그 냄새를 맡으며 자치기를 했다. 제기도 찼다. 어느 날은 엄청난 땅을 차지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갖고 있던 구슬을 몽땅 잃기도 했다. 나와 재물과의 인연은 거기에서 끝이 난 것만 같다. 장성해서는 한 번도 보석이나 부동산에 접근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참 잘된 일이다. 국회 청문회에 나설 위인도 못 되지만, 그런 이변이 생긴다 하더라도 ‘존경하는 의원님’ 앞에서 변명을 해대느라 땀을 뻘뻘 흘릴 일은 아예 없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평생 오 척 단구라고 놀림을 받았다. 하나, 요만한 키라도 유지하게 된 데는 그 구리터분한 냄새의 덕이 컸지 싶다. 조롱거리가 한 개 더 늘더라도 그렇게 믿고만 싶은 마음은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저녁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바쁘게 달려가던 내 단짝네 집 건넌방은 조무래기들의 마을 방이었다. 댓진 냄새만 나지 않을 뿐, 발 코린내는 어른들 마을 방 찜 쪄 먹게 지독했으나 다른 단골손님들의 출입에는 아무 지장을 주지 않았다. 호젓한 밤 길, 발부리 앞에서 성가시게 알찐거리다가 느닷없이 흰 보자기로 변해 얼굴을 덮어 씌운다는 달걀귀신과, 방망이를 둘러메고 무리 지어 다니다가 욕심쟁이와 거짓말쟁이를 만나면 정신이 나가도록 실컷 패준다는 뿔 달린 도깨비들도 늦을세라 부지런히 모여 들었다. 자그마치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도 코를 틀어막지 않았다. 만일 그 냄새를 고약하게 여겼다면 까까머리 꼬맹이들의 좁아 터진 마을 방까지 일부러 찾아와 바싹바싹 끼어들었을 턱이 없다. 머리칼을 풀어헤친 여인으로 둔갑해 젊은 사내들만 홀린다는 간사하고 교활한 여우임에도, 비위 하나는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다.
그 방에서 주절대다가 티격태격하고, 실랑이하다가 낄낄거리던 코흘리개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린 지 오래되었다. 달걀귀신도 도깨비들도 그리고 구미호도 그 마을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하다. 아무래도 발뒤꿈치를 물에 불려 더께가 된 때를 벗겨내고, 땀에 전 버선 대신 양말을 신으면서부터 우리들의 긴 이별은 시작된 것 같다.
어느 해 겨울,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오후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는 머리와 어깨에 얹혀 있는 눈송이부터 터셨다. 윗목에서 지푸라기를 깔고 앉아 쾨쾨한 냄새를 방안에 가득히 고이게 만들던 메주덩이들을 한동안 내려다보신 것은 그다음이었다. 메주덩이에 핀 곰팡이의 색깔을 분석하셨을까? 아니면 곰팡 냄새를 음미하셨을까? 이윽고, 아버지는 결과를 발표하시듯 조용히 입을 여셨다.
“잘 뜨는구나!”
사람도 잘 떠야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웅숭깊은 은유로 새롭게 들린 것은 강산이 여러 번 변한 뒤였다.
새로 산 검정 고무신이 손에 쥐어지면 발에 꿰기 전에 얼른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 것은 어릴 적 내 버릇이었다. 등잔 심지를 타고 올라와 그을음에 섞이어 콧속을 매캐하게 찌르던 석유 냄새 비슷했으나, 시골에서는 좀체 맡을 수 없던 부드러운 냄새가 더 풍기는 듯해서 호기심에 끌려 그랬을 것이다. 고무 공장에 취직이 되어 도시로 간 이웃 마을 친구 누나의 분 냄새가 섞였을지도 모른다는 맹랑한 생각이 들 즈음, 나는 고무신을 운동화로 바꾸어 신었다.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은 흙이나 풀보다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걷는 시간이 차츰 많아졌다. 운동화는 다시 구두로 바뀌고, 구두는 항상 약을 발라 반질반질하게 광을 냈고….
오기가 지나쳤나 보다.
딸아이가 들으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속이 뒤집힌다고 타박할 냄새들만 일부러 찾아낸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향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는 주위에 이런 냄새들만 그득했던 것을.
그때는 같은 코를 달고도 왜 냄새 구분을 제대로 못 했느냐는 딸아이의 반박이 또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람 냄새가 너무 진해서 다른 냄새들은 모두 묻혀버렸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한들,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