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일정이 대충 잡혔을때
부산 갈 때면 만났던 내 동네친구
진태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는 내 한국 방문을 반기면서
우리가 환갑도 지나고 했으니
이번에 동네친구들을 다 함께 만나자고 했다.
동네 남자친구들은 남자들끼리 계모임을 해
1년에 몇번씩 만나고 있다.
나보다 10살 많은 내 고모는
우리동네 남.녀 친구들이 함께 계모임을 하고 있다고.
가끔씩 서로 연락하고 한국갈때면 만나는
진태와 기선이와 기숙이와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가까운 집안이라 병문안을 왔던
수용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만난지 20년도 더 되었거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40년 넘도록
한번도 못본 친구들도 있었어
그 친구들도 만난다니 반가왔다.
진태가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동네친구들 14명 단톡방을 만들었고,
단톡방이 불이 났다.
그 작은 촌동네에서 용띠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18명이나 되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
깜빡 잊고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도시의 친척집으로 전학을 갔다.
전학간 남자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면
남.녀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놀곤했다.
나는 자주 빠졌지만.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조선시대 할아버지가
대문옆 사랑체에 계셔서 대문을 통과할수가 없었다.
그래 난 할아버지가 어디 가실때만 놀러갈수 있었다.
진태가 날짜와 장소를 정해서 연락을 주었고,
서울과 울산, 대구, 남해에서 온 친구들도 있어
숙소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몇십 년 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난다니
많이 반가와서 설레였는데,
한국갈 날짜가 다가오자
내가 화장도 하지 않고, 가꾸지도 않고,
외모도 약간 촌스럽기에
약간 걱정이 되었다.
특히 고등학생때 무슨일로
나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진숙이가
부산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엄청 잘 산다는 말을 엄마로 부터 들었기에
진숙이가 한국 부자 사모님들처럼
피부관리 받고, 명품으로 치장해서 나타나면
나와 더 비교가 될 것 같아서 신경이 써였다.
그런데 전날까지 내일 보자고했던 진숙이가
당일날 갑자기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
진숙이 모습이 많이 궁금했던지,
안도보단 실망감이 좀 컸다.
1차 약속장소인 숙소로 갔더니
먼저 온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십 년 만에
60대 장년이 되어 남. 녀가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함께 자라서인지
전혀 쑥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반가와서 큰 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러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자녀들이 결혼할 나이는 되었지만,
사위나 며느리 본 친구가 몇 되지 않았고,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친구는 없었다.
숙소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가 예약된
자갈치 회센터로 갔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자갈치 횟집에서
사진빨은 내가 최고인 듯.ㅎㅎ
생전 처음 해 본 손가락 하트
향숙이와 기선이 그리고 수용이랑
가정주부인 기선이는 대구에서 살아 내가 한국 갈 때마다 만난다.
수용이는 부산에서 형사과장으로 은퇴하고
낚시배 한 척 사서 남해에서 살고 있다고.
수용이는 고등학교 때 경운기로 남의 농사일도
많이 도와주었고, 일을 정말 많이 했다.
영어과 교수님이신 향숙이도 만난 지 10년도 더 된 것 같다.
향숙이는 도로 건너 약간 아래쪽에 살았는데 행정구역이 달라
초. 중을 다른 학교에 다녀 고등학교 가서야 만났다.
향숙이는 문과, 나는 상과.
내친구 부모님들이 대부분 농부셨는데,
향숙이는 아버지께서 교감선생님이시고,
장로님이셨다.
그래 우리 동네 + 향숙이네 동네 합해서
향숙이가 대학간 여자 1호 이다.
석사에 박사까지 했으니
남. 녀 통틀어 공부를 제일 많이 했네.
향숙이가 우리 동네 도랑에 빨래를 하러 가면
우리동네 아주머니들이 향숙이에게
넌 부모를 잘 만나서 대학도 가고 좋겠다고 해서
그때 본인은 속으로
내가 부모를 잘 만나서 대학 갔나?
내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 갔지 했단다.
몇년 지나서야
공부를 잘했지만 딸이라서
대학을 못 간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향숙이네는 2층 양옥집에 살았는데
고등학생때니 81년도 였던가
향숙이네에서 처음으로 비틀즈를 만났고,
장로님이신 향숙이 아버지께선 내게
너 일요일에 교회 오면 집안일도 하지 않아도 되니
교회 오라고 하셨다.
그래 난 속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음
당연히 교회에 가지, 힘든 농사일을 왜해요 하고선,
향숙이 아버지에게
제가 일하지 않고, 교회 갔다간
저희 할아버지한테 마당 비자루로 맞고,
집에서 쫓아 난다고 말씀드렸다.
정배와 진태
둘 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정배는 아버지가 장남이시라 우리 뒷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다,
정배가 초등학교 1학년때인가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부산으로 전근을 가시면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정배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셨기에 그때 유치원을 다녔다.
난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이름만 겨우 쓸 줄 알았는데.
정배는 국립 수산과학원인가 연구소 인가 은퇴하고
비슷한 일을 하고있다고.
진태는 현역으로 오너의 신임아래 철강쪽 중소기업을 책임지고 있다.
진태가 장소를 정하고, 음식도 예약했는데
자갈치 회센터에도 가격별로 코스가 있었다.
1인당 4만 원 코스라는데
보통 수준의 일식집이었음 10만 원도 더 될 것 같았다.
푸짐하고, 회도 음식도 좋았다.
가성비 끝판왕이니 강추.
1차 찌게다시로 시작해
3,4번은 더 나왔는 듯.
몇십 년 만에 만났어니 궁금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본인들 살아가는 이야기에 자녀들 이야기도 잠깐 하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에
선거 이야기도 나왔다.
내 정치 성향을 몰랐던 친구가
내 반대쪽을 열열히 지지해 깜짝놀랬다.
윤석열의 보수는 보수가 아닌 이익집단이고, 극우인데,
교육을 받을만큼 받은 그가 정치적으로 그런 사고를 지녔다는게 씁쓸했다.
저녁 먹고 회센터 뒤 자갈치 밤 바닷가에서 기선이와 향숙이와
여자들 여덟 명 중 셋만 참석
하필 그때 두 딸들과 함께 오사카로 여행을 가게된 기숙이를 비롯해
갑자기 아파서 참석지 못한 진숙이와
어깨가 다쳐서 못 온 점옥이
파프리카 수확철이라 바빠서 못온 분희와
연락이 두절된 미진이까지 다섯 명이 참석지 못했다.
* 여자 동기가 여덟이나 되었다니...
남자들 9명 중 6명 참석
베트남에 사는 태연이는 이 모임에 참석하려고
5일 전에 미리 부산에 왔는데,
베트남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 급히 되돌아갔다며
많이 아쉬워했다.
의사인 욱년 이와 변호사인 민경인 단톡방에도 없었다.
두 친구는 자랄 때도 동네친구들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도시로 전학은 갔지만
부모님들이 우리 동네에 사셨으니 방학 때 왔을 텐데.
독실한 신자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토요일 밤늦게 대구 집으로 돌아가는 향숙이를 배웅하러 갔던 부산역에서
숙소에서
세상에... 에어비앤비에서 2층 전체(방 5개)를 모두 예약해 놓았다.
기선이도 그날 밤에 집에 가려고 했는데,
난 밤늦게 고모집에 혼자 갈 자신도 없고,
기선이와 둘이서 이야기도 할 겸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기선이가 이야기하는데
너무 피곤했던지 난 먼저 쿨쿨 잤다는.ㅎㅎ
기선이는 잠자리가 예민해 그날 밤 못자서 미안했다.
내 블로그에 대해 알게 된 정효(사진 위 핑크상위)가
동네친구들과 함께 했던 이 시간들을
자기 사진과 함께 내 블로그에 꼭 올려 달라고 했다.
사진을 허락해 주니 나야 좋지.
정효앞 갑태는 현대중공업에서 퇴직하고
소일거리 찾아서 하고 있고,
내 옆 우연이는 서울에서 페인트가게를 하는데
공사장에 납품을 많이하는것 같았다.
영업을 잘 하는지
아들을 영국에 유학시켜 국제공인회계사가 되었다고.
시골의 한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뛰어놀다
도시학교로 일찍 전학을 갔던 친구들과
집에서 부모님 도우며 공부했던 친구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과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함께 자라서인지
격의 없어 좋았다.
60년간 쌓은 그들의 끈끈한 우정은
형제나 다름없을 것 같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다들 열심히 살아서
노후걱정 없이 잘 살고 있어 좋았다.
동네 친구들 덕분에 오래오래 기억될
귀한 추억을 선물 받았다.
내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서
다들 65세에 미국에서 만나게 되길!
벌써 그날이 기대가 되네.
첫댓글 어릴때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참 부러워요
친구들이 모두 30대 40대 같이 젊고 건강해 보이고
보기가 좋아요
친구들 모두 노후걱정없이 잘 살고 있다니..
한국이 살기가 좋아져서
다 잘 사는것 같아요
미국에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국은 노후정책도 잘 되있어서
노인들 복지정책, 의료보험등 참 잘 되있는것 같아요
1970년대에는 미국이 살기좋은 곳인것 같았는데...
시골에서 자랐는데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일가(먼친척)들이고,
어릴때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라 몇십년 만에 만났지만,
금방 그 옛날로 돌아가 그시절 이야기를 하며 즐거웠습니다.
한국인들중 노후가 넉넉한 분들이 35%쯤 될런지?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국민연금과 노인연금으로
노후를 지내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노인분들께서 워낙 소비를 잘 하지 않으시니 지출이 적어서
건건히 견디시는 분들도 많고, 소비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분들도 있답니다.
국민연금은 65세 부터 수령할수 있는데, 그 전에 강제로 퇴직당하시거나
명퇴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그 나이때 자녀들에게 몫돈이 들어가기도해
퇴직후 어려운 분들이 많더군요.
하~너무 신기하고 반가울거 같아요^^
어릴때 친구들 이 이렇게 은퇴한 나이가 되서 만나다니요~
전에 아빠 친한 형님분이 말씀하신거 기억나네요.
경기도 양평 분이신데,70넘어 초등학교 동창회 가셨는데,여자 초등동창이
아무개야!! 하면서 이름부르는데,너무 어색했다~고요^^
딱 그런 기분도 들거 같아요 ㅋㅋ
이십몇년전에 한번 만나긴 했는데다
동네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라
몇십년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함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학교 동창모임에서 만났는데
이름부러면 많이 어색할것 같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