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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을 보면 교육학 관련 내용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미국인들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분석을 통한 사회학 연구서이다. 책의 원제는 ‘미국인들의 유난스런 지극정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출판사에서 이를 <나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이른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척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나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미국 사회는 구성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심화되어가고 있으며,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미국인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치부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민뿐만 아니라 여행지로서도 미국을 선택할 때 조금은 주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현재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의 존재가 있다고 여겨지며, 그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의 미국에 대한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어쩌면 그 결과로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은 미국인들의 의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저자들이 생각하는 미국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덜 너그러운 사회와 편협한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변화의 양상에 ‘미국인들의 유난스런 지극정성’이 구성원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지면서, 전 사회적으로 그것이 <나쁜 교육>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저자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고된 일과 고생을 혐오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미소포노스’라는 가상의 철학자를 등장시키면서,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담긴 ‘비진실’에 대해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전체 4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1부의 내용은‘대단한 비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통용되는 3개의 명제가 모두 ‘비진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는 내용의 ‘유악함의 비진실’, 늘 너의 진심을 믿으라는 내용의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을 일컫는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저자들은 ‘이들 생각은 고대의 지혜에 모순되고, 개인의 번영에 대한 현대 심리학의 연구와도 모순되며, 자신들을 끌어안는 개인과 공동체에 도리어 해만 끼친다’고 단언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그대로 저자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2부는 ‘나쁜 생각들이 현실에서 작동할 때’라는 제목으로, 2개의 장에 걸쳐 현대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협박과 폭력’의 문제와 함께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의 실태와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먼저 미국의 각 대학에서 특정 주제의 강연을 방해하기 위한 시위들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협박과 폭력’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하게 된 현실에 대해서 진단하고 있다. 또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에 대해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비난하는 이른바 ‘마녀사냥’의 행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하고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모두 6개의 항목에 걸쳐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라는 제목으로, 저자들 나름대로 현재 미국 사회가 처한 문제에 대한 진단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한 현상들에 대해 우선 제목만을 소개하면, ‘양극회 사이클’ ‘불안증과 우울증’ ‘편집증적 양육’ ‘놀이의 쇠퇴’ ‘안전주의를 지향하는 관료제’ 그리고 ‘너무 정의로운 사람들’ 등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가정의 문제로부터 사회와 학교에 걸쳐 다양한 층위에서 전개되었던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들이 주장한 <나쁜 교육>은 단지 학교만의 현상이 아닌, 미국의 전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상 이러한 현실에서 그 대안이 가능한지 의심스럽지만, 저자들은 마지막 4부에서 ‘지혜로워지기’라는 제목으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보다 지혜로워지려면’이라는 제목을 통해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면서 학교와 사회에서 이를 규범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대학들이 보다 지혜로워지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기업화한 대학들이 본질적인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더 커다란 공동체의 원을 그’릴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오는 글’의 제목처럼 ‘사회가 보다 지혜로워지려면’ 이러한 대안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주로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변화해가는 미국 사회의 문제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도 사회적인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가짜뉴스릐 범람’과 특정인을 향한 ‘마녀사냥’에 가까운 비난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있다 하겠다. 더욱이 익명의 가면 속에서 타인을 향한 ‘악성 댓글’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이나 대학은 이미 그 자정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검찰과 법원 등 사법부도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이미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쉽게 그 대안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저자들의 제안처럼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혜로워지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각을 달리해서, 이 책에서 던지는 문제들을 우리와 연결시켜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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