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 출근해
‘북케어’ 3시간 근무를 마치고
당당하게 퇴근한 날이었다.
(출,퇴근이라니.....무릇 기하幾何인고!)
티브이 연속극에 시선이 꽂혀 있는
아내 김 여사 등을 보며
“통닭에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슬쩍 한마디 던졌다.
김 여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인지 날숨인지를
한번 푸욱 내쉬더니
방바닥에 딱 붙어있는 -살집도 별로 없는- 엉덩이를
물항아리 들어올리듯 무겁게 들고일어나
냉장고에 붙어 있는 빨간 전단지를 떼어 들고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00통탉집’으로 몇 번인가 전화를 해 쌌더니,
“와 전화를 안 받을꼬.... 망해뿟나?” 한다.
“그럼 뭐, 설 때 먹고 남은 똥그랑땡이라도 줘” 했더니,
못 들었는지 또 핸드폰을 집어 든다.
“니 자주 시켜 묵는 통닭집 전화번호 있제? 몇 번이고?”
하고 묻는다.
“아, 치킨..... 알았어.” 방학이라 집에 있는 딸내미 목소리다.
“느그 동네서도 여까지 배달되제?”
“그럼 되지.....알았어.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보낼게”
“보낸다꼬? 그래, 계산은 내가 할 테니께네 .....
퀵으로 퍼뜩 보내달라 케라.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니 아빠 성질 알제? ”
스피커폰으로 하지 않아도 -투박한 지 엄마와는 다르게-
조근 조근한 딸애 목소리가 다 들린다.
“흥, 닭 잡아서.....털 뜯어서.....토막내서....튀겨서.....
삼산동에서 여기까지.....오늘 중으로 올라라 모르겠네.
똥그랑땡이나 멸치쪼가리라도 줘. 우선 한잔하게.”
“쪼매만 참으소! 알라들맹키로 보채기는.....”하고는
다시 티브이 삼매에 빠져드는 김 여사.
‘하늘(天)보다 높은 게 지아비( 夫)인 걸 모르나!’
육, 칠십 년대까지는 아직 숨이 붙어있던
찢어진 창호지 같은 ‘세리프’를 몇 번 읊어대다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팔지어다!’ 하고는 일어나
멸치볶음과 김치로 술상을 차려
한 두어 잔 마시고 있는데 ‘띵똥’한다.
검은 화이바를 쓴 '배달맨'인지 '배달민'인지가
제법 큼직한 하얀 비닐봉지 하나를 문밖에 내려놓고 이내 되돌아선다.
“저기요! 계산....계산.....” 카드를 꺼내들고 다급하게 부르는 아내에게
“했어요!” 하고는 휭 하니 사라져버린다.
“계산은 내가 한다켔는데 와 니가 했노? ”
“엄마, 주문하면서 미리 카드로 결제를 하는 거야. 아빠랑 맛있게 드시고, 또 전화해.
족발집도 있고 빵집도 잘하는 데 있거든....” 한다.
김 여사, 치킨 꾸러미를 풀어 술상 위에 놓으며
“또 공짜로 먹게 생겼네. 번번이 미안해가 우짜노....인자 전화도 몬 하긋다. 아무리 딸네미라도....”
공룡 뒷다리만 한 닭 다리를 하나 들고
원시인처럼 입가에 뻘건 양념을 묻힌 채 물어뜯으며
나도 한마디 보탰다.
“딸을 한 두엇 더 날 걸 그랬네.....”
그날따라 술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첫댓글 흠....
딸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딸복은 없었나 봐요~~ㅠㅠ
전화번호만 물어봤을 뿐인데.... ㅋㅋㅋ
아무래도 딸쪽이 나은듯해요.
때론 아들도 살가운사람도 까끔은 있단소리도 듣긴 하지만 ,
남의 얘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