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같았으면 여름휴가로 바쁠 시즌인데, 코비드로 올해는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어디를 갈 수도 없고,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내듯 오랜만에 옛날 여행사진들을 꺼내봤다. 사진을 넘기다보니 유독 눈에 띄는 게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사진으로만 봐도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게 정말 다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마음으로라도 가는 추억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Niagara Falls, 캐나다에 살면서 꼭 한번은 가보리라 벼르고 있던 곳이었다. 엄청 큰 폭포로만 알고 갔었는데, 막상 가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었다. 이름을 보면 falls라고 단수가 아닌 복수, 즉 폭포가 여러 개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여러 개로 갈라진 폭포들 가운데에는 고트섬이 있었다. 언젠가 홍수가 나서 섬이 다 쓸린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가보니 염소 한 마리만 살아있어서 고트섬이 됐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섬을 기준으로 미국과 캐나다가 나뉜다는 거였다. 미국 쪽으로는 American falls와 Bridal veil falls(면사포 폭포)가 있고, 캐나다 쪽으로는 Horseshoe falls(말발굽 폭포)가 있었다. 처음 이곳엔 원주민이 살았었는데, 그들은 이 폭포에서 나는 굉음소리를 Thunder of the water(물의 천둥)라 부르며 아주 신성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유럽인들에게 발견되었고, 그들이 이곳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총과 대포로 싸운 결과가 지금의 나눔이 되었다고 한다. 근데 미국이 산수를 잘 못했나? 이게 캐나다 쪽에서 보면 폭포가 한눈에 보이는데, 미국 쪽에선 폭포의 옆구리로 쏟아지는 물만 보일 뿐 사진 찍을 각도가 나오질 않는다. 거기다 캐나다가 가진 말발굽 폭포가 너비 900m에, 떨어지는 높이가 48m라고 하는데, 미국 쪽 폭포는 320m니 훨씬 작고, 떨어지는 물의 양도 말발굽 폭포로 90%의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내가 캐나다인이라선지 나이아가라 폭포의 나눗셈 결과가 왠지 뿌듯해 웃음이 절로 났다. 이 폭포에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maid of the mist(안개속 숙녀호)라는 배를 타면 된다. 정말 폭포 속으로 가깝게 들어가면 사진 찍기 불가! 눈뜨기도 불가! 웃기도 불가! 비명만 가능! 우의를 입어도, 결국은 온 몸이 샤워를 당하게 된다. 그러고도 부족해 이 폭포 물과 한바탕 싸워보고 싶다면, 젯보트를 타면 된다. 소용돌이치는 광폭한 하얀 물거품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물이 얼마나 세게 달려와 치는지, 말이 싸워본다는 거지 사실은 물한테 일방적으로 실컷 맞다 끝나는 싸움이다. 특히, 안경과 선글라스는 다 날아가 버리니 꼭 벗고 타야 한다. 그리고 캐나다 쪽엔 ‘씨닉터널’, 미국 쪽은 ‘바람의 동굴’이라 부르는 폭포를 향해 지하로 뚫린 터널이 있었다. 폭포 물로 멱 감고 싶으면 꼭 들어가 봐야할 곳이다. 여행 가이드가 폭포에 가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이야, 가라!”를 세 번만 외치면 젊어진다고 했다. 정말 순진하게 믿고 팔을 벌려 외치는데 폭포 물이 사정없이 나의 화장발을 날려버렸다. 여자들은 나이가 덜어지는 게 아니라, 벗겨진 화장발로 나이가 더 보태지니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안 그랬다간 여기서 나오면 가이드가 얼굴을 못 알아보는 수가 있다. 그리고 무지개 색조의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나이야가라 폭포의 야경은, 정말 그 오묘함이 극치를 이뤘다. 휘영청 뜬 달 아래로 선녀의 하얀 날개옷을 입은 듯하다가, 금방 빨간 치마폭을 흔들며 섹시해졌다가, 금세 신비로운 보라색을 드리우며 낯을 가렸다. 낮엔 모든 여성들의 화장발을 벗기면서도 자긴 밤마다 조명발로 변신을 하다니, 그러고 보면 밤의 나이아가라는 시샘 많은 여인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 폭포에 얽힌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고 싶다면 아이맥스 영화관에 가면 된다. 영화엔 인디안 처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족의 추장이 젊고 예쁜 처녀에게 돼지 같이 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한다. 그 결혼을 거부한 그녀는 집안의 수치가 되고, 결국 집안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부족에서 추방될 것을 선택한다. 부족을 떠나온 그녀는 작은 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는데, 나중에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이가라 여신이 된 그녀가 받아 줘서 살았다고 한다. 수학교사였던 62세 애니 테일러란 여인이 나무로 만든 술통 속으로 들어가 말발굽 폭포에서 떨어지는 모험을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끝까지 말려보지만, “옛날 인디언들은 이걸로 담력테스트를 했었다. 그러니 나도 무사할 거야.”라고 말하며 그녀는 자신이 키우던 검은 고양이를 안고 통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소가 부족할 것을 염려해 사람들은 펌프로 통 안에 바람을 넣어주곤 통을 내려 보냈다. 물론 폭포 아래쪽 하류에선 통을 건지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렸는데, 통을 건져보니 진짜 그녀가 살아있었다. 단지, 검은 고양이가 하얗게 질려 흰 고양이가 되어 나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와~! 옛날 우리 동네 총각들은 오밤중에 묘똥에 말뚝 박고 오기로 담력테스트를 했는데, 이 동네 총각들은 저 높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졌다니!” 난 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해가며 대륙의 남다른 스케일에 감탄을 했다.
그 전엔 폭포라는 걸 생각할 때 항상 아래로 떨어지는 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는 50m를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떨어진 높이보다 더 높게 하얀 물보라가 솟아올랐다. 그래서 그곳 하늘엔 항상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신이 다시는 대홍수로 인간을 죽이지 않겠다는 징표로 줬다는 무지개가 그 거대한 물줄기를 품으로 안아 가두고 있는 듯 보였다. 무지개 높이까지 솟아오른 물보라는 다시 안개비가 되어 그곳을 방문하는 인간들과 또 인간이 만든 많은 조형물들 위로 내려앉았다. 난 하얗게 내려앉는 안개비를 맞으며, 우리 모두가 저 위대한 자연 아래 기거하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물과 하얗게 솟아오르는 물의 조화 속에서 레인보우가 환하게 웃는 곳,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첫댓글 캐나다에 40년을 살면서 아직 나이야가라 폭포를 가보지 못했는데
남파님이 나이야가라에 대해 뚜르르 자세하게 소개해 주시니
마치 폭포 앞에 서서 믈안개에 흠뻑 젖은 듯합니다
시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수필, 꽁트...... 기대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제 아내가 쓴 것입니다. 얼마전 밴쿠버문협에 기고한 것인데 캘거리문협분들과도 공유하겠다고 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남파 지난 모임에서 옆지기님의 성함을 듣긴 했는데
정확히 기억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남파님의 성함을 모르기에 남파님 이신 줄 알았습니다
동인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 본명을 알면 좋겠습니다 (이런 실수 않도록)
감사합니다
@한부연 동의합니다-----카페에서는 본명을 쓰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나이아가라
아직도 그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유명하기도 하고
참 인상적인 자연 풍경입니다.
열번 가 보았던 추억이 새록 새록 나네요.
건필하세요.
박 정은님
"검은 머리 앤"님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