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6일 모임에서 공부한 <서두름의 경>은 한 수행자가 부처님에게
<멀리 여읨>과 <적멸>이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멀리 여읨>과 <적멸(욕망의 꺼짐)>은 숫타니파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수행자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희론적인 개념을
버리면 <멀리 여읨>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이 '자아'가 아니요,
'내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멀리 여읨>이 일어납니다.
이어 <적멸>을 어떻게 얻는지 묻는 수행자에게 부처님은 어떤 갈애가
일어나더라도 <멀리 여읨>의 새김(기억과 성찰)을 통해 없애면 적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숫타니파타는 <멀리 여읨>과 <적멸>이 무엇보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깨달음이 <베다>나 바라문들의
<제사>처럼 옛부터 전해내려 온 것이 아닌, 당신 스스로 깨친 것이라 말했습니다.
새해 1월 6일 모임에서 공부할 경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입니다.
이 경은 지난 12월 16일에 공부한 <서두름의 경> 에 이어지는 경입니다.
이 경에는 놀랍게도 고따마 부처님이 출가 전에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리고
<서두름의 경>에서 설명한 <멀리 여읨>을 부처님은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당신의 체험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로부터 공포가 생깁니다.
싸움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두려워했는지, 그 두려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잦아드는 물에 있는 물고기처럼 전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서로 반목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에게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이 세상 어디나 견고한 것은 없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의 처소를 찾지만, 점령되지 않는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 이하 같은 경에서 인용
세상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시기 질투하며 싸우는 모습을 본 부처님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번민했습니다. 특히 부처님은 인간의 고통의 뿌리를 무엇보다
폭력에서 보았습니다. 당신 스스로 안전한 곳을 찾았지만 어느 곳이나 폭력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곳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경전의 메세지는
기존 불교의 교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매우 놀랍도록 인간적인 부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불교의 교리에는 인간의 고통을 여덟 가지로 설명합니다. 즉, 생노병사 등
네 가지 고통과 애별리고(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고(미워하는 자를
만나는 고통), 구부득고(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성고(오온-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에서 일어나는 고통) 등 여덟가지가 그것입니다.
팔고(여덟가지 고통)는 우리 삶의 고통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도식적인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에서는 그러나 부처님이 직접 경험한
고통이 곧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폭력은 단순히 신체적인 폭력을 넘어 언어적 폭력과 생각에
의한 폭력까지 포함합니다. 나아가 폭력에 은폐되어 있는 탐욕과
분노와 교만을 통해서 폭력의 원인을 연기법적으로 이해합니다.
돌아보면, 오늘 우리의 삶에도 폭력이 만연하고 있으며 우리 마음 속에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이 숨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폭력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부처님이 출가 전에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왕족이며, 동시에 무사계급(크샤트리야)에 속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인도의 왕족은 인근
국가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어야했으며, 반란과 도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늘 폭력을 주고 받았습니다. 부처님의 나라도 부처님 생전에 다른 나라
(꼬살라)에 의해 멸망 당했던 것을 보아도 당시 전쟁과 폭력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일제나 육이오의 경험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참상을 경험하였습니다.
삶의 도처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목격하며, 부처님은 마침내 싫어서 떨어져
나오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수행의 첫 단계로 받아들였습니다.
더이상 폭력을 통해 얻는 권력과 명예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이것을 염리(厭離; 싫어하여 여읨) 또는 출리(出離)라고 합니다.
그들이 끝까지 반목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혐오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나(부처님)는 그들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보았습니다.
염리를 경험한 부처님은 세상의 허무를 느껴 자포자기 하거나 쾌락으로
도피하지 않고, 번뇌의 화살을 뽑는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진리의 빛이며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염리를 경험한 부처님은 이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묶여진 속박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을 꿰뚫어 보고, 자신을 위해 열반을 배우라.
부처님은 욕망을 소멸하는 길 즉, 진정한 행복의 길을 탐구했습니다.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간(과거 현재 미래)의 성격을 파악하고, 나아가
소유를 추구하는 집착의 원인을 탐구하여,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것을 완전히 말려버리고, 미래에 그대에게 아무 것도
생겨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하게 유행할 것입니다.
명색(정신·신체적 과정)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욕망과 집착을 싫어하여 멀리 떨어져 고통의 원인을 탐구하였습니다.
<멀리 여읨>을 통해 고통의 원인과 조건을 관찰하여, 무아의 진리를 깨닫고
<적멸(열반)>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수행에는 보통 종교의 교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자연적 권위나 신화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숫타니파타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에는 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의 고통을
경험하였으며, 나아가 마침내 어떻게 그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진솔한
자기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경을 읽으면, 누구라도 인간의 삶을 고뇌한
한 진지한 지성을 만날 수 있으며,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분의 가르침에 공감하게 됩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