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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는 단순히 도시에서의 효율적인 생활을 위한 지침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책의 원래 제목이 ‘사람들을 위한 궁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저자는 원제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흔히 인프라(infra)라는 말로 통칭되는 단어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줄임말로, 사회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시설들을 지칭하며 ‘사회간접자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모든 사람들이 소통을 통해 만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고 그곳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 연구에 뛰어들게 된 배경으로 1995년의 폭염을 거론하면서, 저자는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주거 환경에 주목했음을 밝히고 있다. 최근 여름마다 폭염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내 경험으로도 당시의 폭염은 상당히 극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극심한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비슷한 생활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는 희생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지역에서 기반시설이 얼마나 갖춰져 있고, 또 그 역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는가를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연구인 것이다.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이란 부제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취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도시의 생명’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규정짓는데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 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도시 생활에서 가장 문제로 꼽히는 점은 이웃끼리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최근 도시에서의 고립적인 삶을 타개하려는 갖가지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때문에 현장 조사를 통한 분석 결과를 제시한 저자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 주변 환경의 인프라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문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동체의 소통을 위한 기반시설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의 도서관과 학교의 역할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시설이 아닌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버려진 건물이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유리창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그곳이 곧 우범지대로 변한다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이의 대안으로는 방치된 공간을 보다 개방적으로 꾸미고, 곳곳에 녹지와 텃밭을 조성하여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양한 도시에서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의 제안이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연구가 다인종 사회인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인종과 빈부의 격차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여름철에 미국 동남부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허리케인에 대비하는 장벽의 건설이 지니는 문제와 지역 공동체의 지원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저자는 유사한 상황에 처해진 사례를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나라들의 사회적 환경과 비교하여, 고립을 넘어서는 소통의 공간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결국 그 대안은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사회적 연결망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데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대규모 토목 건설 공사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긴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않게,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사용되어야만 할 것이다. 특히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저자의 조언처럼 거창한 시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프라의 문제는 결국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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