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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로서 좋아하는 술을 언제든 마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1년 52주, 전 세계의 모든 술을 마신 한 남자의 지적이고 유쾌한 음주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1주일을 단위로 각각 한 종류의 술을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에피소드와 각종 브랜드 또는 제조법 등에 대해서 상세히 논하고 있다. 1년 52주를 각각 13주씩 4개의 단위로 끊어, 위스키(1주)로부터 크레망 달자스(52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술들을 소개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1가지 술에 대해서 다양한 종류의 음용법과 브랜드들 혹은 각종 칵테일 방법까지 다루고 있어, 이 책에 언급된 술의 종류는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를 자처하고 있어, 다양한 술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 저자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은 예전만큼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지는 않고 있지만, 한때 시판되는 술들이나 새로이 출시된 주류들도 꼭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래서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다양한 과실주를 담그기 시작한 것도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때에 맞춰 다양한 술을 담고, 100일 정도 지나면 그것을 터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아마도 이 책에 언급된 술 종류를 구해서 마셔보려고 시도를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제는 정도껏 즐기면서 마시려고 노력하는 중이기에,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흥미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의 주요 술들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발효주인지 혹은 증류주인지 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고 있었다. 칵테일의 재료로 사용되는 칵테일 베이스는 물론, 계절에 따라 즐기는 음주 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의 소주를 다루면서, 술을 주고받는 방법과 연장자 앞에서 고개를 돌려 마시는 음주 예절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그러한 풍습이 이국적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 이해된다. 또한 흔히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술로 알려진 압생트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환각은 처음부터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술에 대한 다양한 ‘신화’는 어떤 사실에 근거해서 알려진 정보보다, 그저 술자리에서 가볍게 사람들과 나누었던 것이 과장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저자는 다양한 술을 소개한 만큼 애주가이자 ‘술꾼’으로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로서는 프랑스의 사과와인을 증류한 깔바도스(Calvados)가 소개에서 빠진 점이 아쉬웠다. ‘깔바도스’는 프랑스의 지명이자, 그곳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원료로 한 증류주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나는 깔바도스를 예전에 근무했던 대학에서, 당시 교환교수로 왔던 프랑스인이 자기 집에서 담근 술이라고 소개를 해서 마셔봤던 적이 있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꼬냑과는 또 다른 깔바도스의 풍미와 맛에 반했었다. 이후 그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내 기억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가 알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꼬냑이 더 유명하기에 그것을 중심으로 다루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저자가 접해보지 못했던 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술의 종류와 음용법, 그리고 세계 각국의 음주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었던 점이 나로서는 하나의 성과라 여겨진다. 예컨대 칵테일 진토닉으로 주로 마시던 진의 원료가 향나무이고, 그것을 가리키는 주니퍼(juniper)에서 왔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또한 버려지던 카카오 과육을 이용하여 만든 증류주인 솔베소, 그리고 열대문화를 상징하는 칵테일 문화로서의 ‘티키’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여전히 여기에 소개된 52종류의 술들 가운데 생소한 것들이 적지 않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닿으면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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