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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forever remember'
벌써 11년이 흘렀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서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함께 공감해 줄 때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어느덧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지 금년 4월이면 만 11년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유족이 되어버린 희생자 가족들이 광장 한쪽에서 천막을 치고 그 비극의 진상이라도 알고 싶다고 절규할 때, 많은 이들이 그들의 심정에 공감하고 진상 규명을 원한다고 그들과 목소리를 함께 했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이들은 단신을 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통닭을 시켜놓고 폭식투쟁을 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지난 정권 시절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과 그 실체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늦게나마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그 원인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되어, 꽃다운 나이에 바다에 수장되었던 이들의 억울함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의 저자인 김제동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교복을 입고 길을 가는 학생들을 보면 먼저 나서서 말을 걸며 때로는 농담과 함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입시와 각종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건네는 말 한마디가, 아마도 그들의 일상에 자그마한 여유로 느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나 역시 다시는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지금도 양복 깃에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5년 전의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위안과 공감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있으시죠?>라고 먼저 말을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가 바로 김제동이다. 실상 그가 진행하는 방송이나 강연은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강연을 진행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유명한 대중 강연자들은 청중들의 반응보다 자신의 메시지 전달에 비중을 두고, 그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말을 확신하듯 토해내는 이들의 대중 강연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서 접한 김제동은 상대방의 말에 따라, 그에 공감하는 적절한 내용의 말을 건네준다. 그러한 적절한 예가 바로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성주 사드 연설 전문’이라 할 것이다. 원고 없이 즉석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들을 인용하면서, 사드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그의 논법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독자들에게 커다란 여운을 남겨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독신으로 사는 자신의 처지를 강조하면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어려움들을 토로하는 내용들은 아마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독자들의 모습과 그대로 겹쳐질 수 있을 것이다. 유명인으로 인정되는 저자 자신도 보통 사람들의 고민이나 고달픔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위로해 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실을 짚어보고, 자신의 관점에서 가볍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는 그의 화법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자신에만 갇혀있지 않고, 공동체를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잘못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던지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화법으로 무장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은 바로 공감이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 그럴 때 있으시죠?’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이 ‘2부, 우리가 보이기는 합니까?’에서는 공동체 성원으로서 당연한 권리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설파하고 있다. 또한 ‘3부, 우리 이렇게 살 수 있는데’는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때론 풍자하면서 때로는 농담을 던지며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비루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웃들과 우리 사회의 건강한 모습을 만들어 나갈 것을 원하는 그의 희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이해인 수녀의 편지글을 통해서, 그의 삶과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기죽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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