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반(鐵盤)을 향해 쏜 화살은 어디로 가는가
지난 호에서 칠정이 칠규를 통해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감정이 몸에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를 봅니다.
강연은 비유 하나를 듭니다.
가마솥을 떠올려 보십시오. 무쇠솥입니다. 안쪽이 둥글게 파여 있습니다.
그 솥 안쪽을 향해 활을 쏩니다. 화살이 어떻게 됩니까.
"화살이 쭉 날아가서 솥에 들어가서 딱 들어가니까 돌아가지고 얼른 와요. 쏜 사람한테 다시 오는 거야."
책은 이 비유를 철반(鐵盤)이라 부르며 이렇게 정리합니다.
"둥근 그릇 속을 향해 화살을 쏘면 되돌아와 쏜 사람이 그 화살에 되맞게 마련이다. 이는 사람의 감정을 비유어로 한 말이다."
그리고 결론이 이렇습니다.
"감정은 그 심사가 발휘될 때마다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화살이 된다는 뜻이다."
강연은 같은 말을 이렇게 합니다.
"그 감정은 나의 감정은 내가 속 그릇에다 대고서 쏘는 화살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 감정이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병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병이 어떻게 시작되는가. 강연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병이 생기든지 그 병이 생기기 이전에 발동 의식이 일어나는데, 그게 감정이에요. 칠정이에요."
가만히 보면 어떤 감정이 시작되고 결집되어 있다가, 그다음에 "내가 이렇게 다쳤다" "이런 병이 생겼다"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책은 여기서 아주 멀리까지 밀고 갑니다.
"하다못해 무심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또한 나에 의하여 발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돌부리에 걸린 것까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네 병은 네 탓"이라는 말로 읽으면 이 이야기는 사람을 해칩니다. 아픈 사람에게 죄책감을 얹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점은 감정이 생리에 실제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마음의 일로만 여기고, 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사가 발휘될 때마다 그것은 어딘가로 나가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둥근 벽을 돌아 나에게 돌아옵니다.
책은 이렇게 씁니다.
"소위 나 자신이 성질을 부린다는 것은 내 심사가 화살이 되어 가마솥을 향해 쏘아지게 하는, 실수하는 삶과 같다."
죄가 아니라 실수라고 표현한 것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을 어떻게 품었느냐에 따라 되돌아오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어떤 감정, 어떤 화살로 쏴가지고 독화살을 쐈느냐 못 쐈느냐에 따라서, 내 감정을 어떻게 품었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병성 원인을 유발시킬 수 있다."
동양의학이 감정을 병인으로 보는 것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 진단의 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까지가 감정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존재하고, 실제로 몸을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 —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다음 호에서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