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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레노 토로바 Federico Moreno Torroba(1891)
부친은 유명한 오르간주자로 그의 지도하에 음악생활을 시작한 Torroba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마드리드 왕립 콘세르바토리오에서 수학했다.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팔랴, 튜리나 등 스페인의 많은 작곡가들이 프랑스에 유학하여 대성하였으나 토로바만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 가지 않았다 한다. 그는 스페인에 머물러 작곡에 열중하였는데 처음 오케스타라곡을 많이 써 스페인 독특한 오페레타, 즉 [사루스에라]같은 작품은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뒷골목 처녀] [가라바의 여자와 몬테가르메로] 등이 그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타를 갖고 있었으나 1920년에 처음 세고비아의 연주를 듣고 세고비아를 위하여 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세고비아 자신도 토로바를 자기에게 협력해주며 레파토리를 넓혀준 최초의 작곡가였다고 말하고 있다. 토로바의 곡에는 Sonata, Concerto와 같은 형식악도 있으나 그와 같은 어려운 곡보다는 스페인 무곡과 민요를 주제로한 것중에 보다 좋은 작품이 있다. 그는 맹인 작곡가 로드리고와 함께 만든 2막 오페레타 [푸른 악마(Elduend Azul)]도 남기고 있다.
11. 괴란죌셔 (Goran Sollscher)
괴란 죌셔는 1955년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1978년 열린 20회 파리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직접 고안한 11현 기타를 가지고 자유곡으로 바흐의 'Prelude-Fuga-Allegro, BWV 998"를 연주하여 20회 파리 콩쿠르를 석권하였는데, 그가 연주한 이 곡은 청중을 완전히 압도하는 연주로 기교와 음악성 모두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 많은 기타 팬들은 그의 바흐연주에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그의 연주는 대개 그가 고안한 11현 기타로 연주되다. 이것은 그가 파리콩크르에서 우승한이래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11현 기타는 스웨덴의 기타 제작자인 게오르그 볼링이 제작한 것으로 기본 조현법에 있어서부터 다른 다현 기타와 틀리다고 하는데 그것은 보통 기타 보다 3도 높게 조현되며 7번-11번현은 반음계로 진행되어 조율된다고 한다. 그리고 연주는 7번 현까지는 실제적으로 줄을 눌러 연주하는 반면 그 위의 줄들의 개방현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11현 기타는 왼손의 부담을 줄이고 양질의 저음을 얻을 수 있는 이점외에도 르네상스 류트나 바로크 류트를 위한 작품도 별다른 수정없이 연주를 할 수 잇다고 한다. 그러나그의 연주가 11현 기타에만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고 6현 기타를 사용하여서도마찬가지로 뛰어난 연주를 보여 준다. 현재 괴란 죌셔는 독일 등 지에서 아주 뛰어난 연주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곡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근래에 '기타로 연주한 비틀즈'라는 음반을 내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최근의 마누엘 바루에코와 함께 비틀즈를 클래식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음악의 지평선을 확장시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2. 호아퀸 로드리고 JOAQUIN RODRIGO (1902)
기타아를 위한 <아란훼스 협주곡>를 내놓아 세계에 이름을 떨친 화퀸 로드리고는 1902년 바렌시아 근처인 사훈토에서 태어난 스페인 음악가이다. 3살 적 장님이 된 그는, 어려서부터 바렌시아 음악원의 후란시스코 안티오크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920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여러나라를 여행한 직후 작곡한 그의 첫 데뷰곡인 교향적 스케치<홍굴라레스>는 1924년 바렌시아 교향악단이 초연해 호평을 받았다.1927년 파리로 간 로드리고는, 뒤카에게 작곡법을 배우고, 화야와 친해졌으며, 음악의 필수 동반자인 터키 피아니스트 캄히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후 모리스 엠마뉴엘과 앙드레 삐로에게 음악학을 계속 공부한 뒤, 1939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란훼스 협주곡>을 작곡, 사인스 델 라 마사에게 헌정.초연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로드리고는 기타아를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이 악기의 독특한 작곡기법으로 <즐거운 소나타>와<스페인 소나타>등을 작곡했고, 매우 포플러한 <토니딜라와 환딩고> 2중주곡과 노래와 함께 연주하는 <휠리아스>.<카나리아스>.<3¡Æⓒøac>등이 유명하다. 더우기 로드리고의 기타아 협주곡들은 현대 세계에서 최고 정상급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음량이 적은 기타아일지라도 특성을 잃지 않고 오케스트라아와 멋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의 작곡기법은 스페인 특유의 리듬과 민요와 카덴짜를 바탕으로 하지만, 프랑스 인상주의에 기우는 형틀과 신고전적인 화성과 가락, 그리고 현대 불협화음을 사용함으로써 18세기 이래 스페인 국민음악과 선배들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국제성을 띄워 풍융한 음악으로 빛을 발하며 치달았다. 1954년에 작곡된<어느 귀 신사를 위한 환타시아>는 세고비아에게 헌정.연주된 곡이지만, 17세기 선배대가 가스파르 산스를 위해 쓴 작품으로도 보고 있다. 한편 성음에서 내놓은<축제 협주곡>도 유명하며, 기타아와 바이올린을 위한<여름 협주곡> 그리고 첼로를 위한<경쾌한 풍의 협주곡>도 잘 알려진 곡들이다. <기도와 춤>은 1962년 프랑스국영방송국 음악콩쿨에 11등을 한 곡으로, 원래 화야를 존경해 작곡한 찬가인데 알릴리오 디아스에게 헌정.연주함으로써 인기를 현대기법의 명곡이다. 무조의3/4박자 하모닉스주법의 전주로 시작해 장식음과 아르페지오 (분산화음)와 트레몰로주법이 번갈아 교체되는 매우 신비롭고 명상적인 곡이다. <저기 목동들이 가네>와 <산타아고 데 콤포스텔라 길을 따라>는 <3¡Æⓒøac>가운데 2곡이다. 먼저 <저기 목동들이 가네>는 크리스마스 캐롤곡상으로, 같은 음높이로 되풀이 되는 오스티나토 베이스주법과 인상적이고 몽롱한 조성은 로드리고의 작곡 특징을 엿 볼수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걸음따라>는 스페인 북서지방에 위치한 옛도시의 희미한 추억과 반항을 음미하여 얻어진 작품이다. 이 도시는 한 때 라 코르냐주의 수도였고, 현재는 카토릭 주교관구와 대학교가 있으며, 세고비아의 여름 기타아 학교로 유명한 도시이다. 또한 중세 시절엔 사도 성 야곱의 무덤이 있다고 믿어, 예루살렘과 더불어 제일의 성지순례지로 이름을 떨쳤다.
<3¡Æⓒøac>은 <환당고>와 ,<파스칼리아>와 사파이테아도로 이루어진 곡인데, 1954년 <어느 귀신사를 위한 환상곡> 작곡 몇주 전에 완성된 작품들이다. 첫번째 <환당고>는 18세기경으로 부터 스페인 남부 안다루시아 지방의 후라멩꼬 민요와 춤곡으로, 3박자와 6박자를 지녔다. 이곡은 등불 킬 무렵에 많이 불려지고, 느린 춤곡에 때로는 발라드풍의 노래도 곁들여지는경우도 있으며 가끔 끝부분에 가서 치달아 격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 환딩고는 3곡의 소품가운데 가장 유명해 자주단독으로 연주하는데, 중간 트리오 부분을 제외하고는 보통 테마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세빌랴나스>영향을 받은듯 매우 복잡한 악기와 춤곡멜로디 스타일을 지녀 18세기 마드리드 특유의 경쾌함과 화려함을 지녔다. 두번째 <파시칼리아스>는 샤콘느와 비슷하게 느린 3박자의 춤곡이다. 마지막<사바테아도>는 스페인 남쪽 안다루시아의 3박자를 지닌 춤곡이다. <헤레스의들판>도 스페인 헤레스의 정경묘사곡으로, 로드리고 독특한 기법으로 풍토내음이 물신 나는곡이다. <옛사라반다>는 스페인의 유명했던 비웰리스트 루이스 밀란은 <엘 마에스트로>를 출판해 비웰라를 위해<환타시아>. <사랑노래>. <소네트>. <로망스>등 그 무렵 스페인 왕조의 우아함을 연상케 하는 곡을 많이 작곡했으며, 까스띠아에 신사를 위한 학교도 세운 멋장이였다. <즐거운 소나타>는 로드리고가 즐겨 작곡했던 3악장 형식으로 <스페인 소나타>와 같이 기타아로 된 명곡이다. 이 곡은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매우 유모스러운 도메니코 스카를랏타 음악을 다시 부르는 듯 하나, 궁극적으로 볼 때 최근의 근대 클래식 소나타 형식을 구하고 있다. 또한 로드리고는 여러 악기-피아도,바이올린.첼로등-로 바꾸어 많은 소나타를 작곡했다. <헤네랄리훼 곁에>는 스페인의 여러 풍경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아름다움을 묘사한 곡이다. 훼네랄리훼는 알함브라궁전과 같이 연결된 신비스러운 정원으로, 누구나가 다 스페인에서 제일의 명승지로 꼽고 있다. 향기롭고 살랑거리는 듯한 미풍과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교회 종소리와 함께 정원의 꽃들은 주위를 막아주는 상록수들 덕으로 그들의 편안한 안식처에서 너울거리며 춤추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안락하고 정취가 깃든 분위속에서 기타아는 한껏 그 본연의 넋을 울릴 수 있는 것이다.
13. 에밀리오 퓨홀 Emilio Pujol (1886)
1886년 스페인의 그라나딜라에서 출생한 푸홀은, 현대 기타아음악의 시조인 타레가의 직계문하인중 유일한 생존자로서, 그리고 권위있는 가타아 음악역사가로서 독보적존재이다. 어려서부터 반두리아를 배우고,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4살때 그가 소속한 합주단이 파리에서 연주하였을때, 소년 푸홀의 뛰어난 솜씨가 프랑스 대통령의 관심을 끌었고, 이것을 계기로 타레가의 문하생으로 기타공부를 하게 되었다. 1912년 런던 베히스타인홀 연주회의 대성공을 깃전으로 하여, 14년의 영국 연주와 19년의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의 연주회 등, 세계적인 대가로서의 풍모를 과시 하였다. 22년 파리로 이주한 후 베를린과 로텔단의 연주는 특기할만 하다. 47년 리스본 국립음악학교 교수를 거쳐서, 이탈리아 기지 음악원에서 기타아 음악사를 담당하였으며, 현재 모교인 바르셀로나 음악원의 교수로 있다.(기지음악원 기타아과는 65년 기지 백작 사망후 폐쇄되었음) 푸홀은 타레가의 영향을 받아 오른손 손톱을 사용하지 않는점이 현대의 다른 기타리스트들과 다르다. 그리고 푸홀의 최대 업적은 전고전과 그 이전의 기타아 음악의 연구와 현대에의 부활에 있다. 작고한 부인 마틸드 게르바스는 플라멩코 주법의 명수로서, 팔랴의 오페라 "꿈없는 인생"중에서 "스페인 무곡"과 무용 조곡 "삼각모자"중의 "실내의 춤"이 부부 2중주의 레코드로 나와있다. 푸홀의 레코드중에는 비엘라의 연주로 된것도 있는데, 이것은 마리아 시드의 노래, 루이스 밀란과 펜사드르 등의 16세기 스페인 가곡의 반주음악이다. 작품으로는 "로맨스", "세실리아", "요람의 노래" 등이 유명하며, 밀란, 무다라, 나르바에스, 산스, 비제, 바흐 등 고전을 비롯하여 알베니즈, 그라나도스, 팔랴 등 근대 작곡가의 작품에 이르는 폭넓은 편곡 작품과 "타레가의 주법에 의한 합리적 기타아교본" 등 저서가 있다.
14. 이다프레스티&알렉산드르 라고야 (Ida Presti & Alexandre Lagoya)
1924년 프랑스 출생. 6세때부친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10세때 파리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져 천재 소녀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녀가 13세 되던해 (1938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고 어머니와 3살된 여동생을 돌보면서 생활을 꾸려 나가야만 했다. 그후 전쟁과 힘든 고난의 순간들을 겪었던 그녀는 그때를 결코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1943년 그녀가 19세때 Henry Rigaud와 결혼한후 1년뒤에 딸 Elisabeth를 낳았다. 그 시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두번째 결혼을하여 Gina를 낳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의 남프랑스에 살았으며 가끔 정부기관을 위한 연주회를 준비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기적인 연습은 하지 못하였으나 종종 새벽 2-3시까지 짚시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어울렸다. 또한,프레스티는 아주 맑고 고운 목소리와 초고음 소프라노의 음성을 지녔기에 그후 파리의 Gaveau홀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악보없는 즉흥연주를 좋아하였으며 유명한 기타리스트 Alexandre Lagoya가 Sor의 연습곡중 하나를 특별하게 만든 곡의 세번째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멋지게 연주하여 라고야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그후 알렉산더 라고야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며 이중주 파트너가 되었다. 그들은 한때 솔로 연주를 뒤로하고 이중주 연주로 높은 활기를 보였으며 그 당시 그녀는 '형기리 여인', 변덕스런 연습곡' 등 많은곡을 작곡하였다. 세계 제 2차 대전후 그녀 나이 20세때에는 놀랍게도 그녀를 `여성 모짜르트`라고 칭하였으며 프랑스,이태리,폴란드,독일,마르코,인도네시아 그리고 영국등지로 연주여행하였다. 그녀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라디오 방송에서 즐겨 애용했다. 그녀는 화려한 독주자로 활동하던 30대 초반에 알렉산더 라고야와의 사이에 두번째 딸 Sylvain을 낳았다. 알렉산더 라고야와의 이중주는 역사적인 큰업적을 남겨 오늘날 '아사드 형제'등 많은 이중주단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녀의 교수법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마치 흐르는 샘과 같은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배우는 학생들로부터 표출할 수 있도록 각자 알맞은 운지와 각 음절마다에 음악적 실험과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43세의 여생 가운데 33년 동안이나 전문 기타리스트로 지냈으며 그녀의 작곡, 작품들도 녹음,취입되었다.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통해 기타음악 애호가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는 기필코 그녀를 위한 두번째 장례식을 치뤄야 할 것이다. 라고야는 이집트 출신의 기타리스트로서, 세고비아의 제자이다. 프랑스의 여류 기타리스트인 프레스티의 남편이기도한 라고야는 부부 듀엣 연주로 전설적인 명성을 떨쳤으며, 니스 음악원 기타과를 주관하며 많은 후진도 길러냈다. 1967년 4월 미국 연주여행 중에 프레스티가 급사한 후 지금까지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세고비아의 애제자인 만큼 기교적으로 나무랄데가 없으며 지중해적인 명쾌성과 솔직함이 특색이다.
15. 크리스토퍼 파크닝 (Christopher Parkening)
크리스토퍼 파크닝은 미국 출신의 기타리스트로서 14살부터 기타를 시작했다. 그는 남가주 대학에서 첼리스트 피아티 고르스키로부터 음악의 해석에 대하여 배웠고 캘리포니아와 스페인 마스터 클래스에서 세고비아에게 배우기도 했다. 매년 약 90회의 음악회를 열고 있고,현재 미네소타 음대 기타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기품이 느껴지는 연주를 한다. 놀라운 기량으로 종교적인 바탕을 가지고 연주하는 그는 BACH의 종교 곡에서 특히 좋은 해석을 보여준다. 그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와 잔잔한 비브라토 , 정감 있으면서도 절제하는 음색이 일품인데, 세고비아와 음악의 해석이나 음색 등에서 비슷한 면을 보이지만, 세고비아 보다는 약간 가벼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음반중에서 'A Bach celebreation' 이나 'Parkening plays Bach'등을 들으면 바흐 등의 바로크 시대곡 뿜만 아니라 타레가나 망고레 같은 낭만적인 정서가 있는 곳도 완벽에 가깝게 연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6. 마뉴엘 데 팔라 [Manuel de Falla 1876-1946]
1876년 스페인의 카디스에서 출생하여, 1946년 아르헨티나에서 사망한 작곡가이다. 최초에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마드리드에서 페드렐에게 작곡을, 트라고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20세기 스페인 음악을 대표하는 스페인 최대의 작곡가인 그는 1910년대의 {사랑은 마술사}와 {삼각모자}등으로 각광 받기 시작하였으며 인상주의적인 수법으로 {스페인 정원의 밤}을 써서 크게 성공했고 인상파로 부터 신고전주의로 방향을 바꿨던 그는 스페인 국민주의의 원조인 페드렐에게 사사받으며 스페인 음악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어 스페인 민족음악을 그대로 소재로 삼지않고 그것을 소화시켜 분위기를 더 높게 승화시켰던 세계적인 작곡가이며 피아노 연주자로서도 이름이 있던 인물이다. 중요한 작품으로는 오페라 "무상한 인생", 바레 음악인 "삼각 모자", "사랑의 마술사" 등이 있으며, 기타의 작품으로는 "드빗시"의 죽음에 바치는 "오메나헤"가 있다.
17. 레오 브라우어 Leo Brouwer (쿠바)
작곡가이자 기타연주가로서 쿠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새로운 음향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성공된 특이한 작품을 써왔다. 그의 대표적인 곡은 [무용 찬가].[끝없는 나선계단].[특징있는 무곡].[3개의 스케치] [블랙 데카메론] 등으로서 가장 현대적 수법인 조성의 복합과 탈피를 사용하는 전위물을 창작하였다.
18. 마누엘 바루에코 (Manuel Barrueco)
마누엘 바루에코는 잘 알려진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며, 피바디(Peabody)와 맨한탄 음악 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바루에코는 1952년 쿠바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집 근처에 음악원이 있어서 쉽게 기타를 접할 수 있었고 같은쿠바 출신의 작곡가 레오 브라우어(LeoBrower)의 도움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7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본격적인 기타 수업을 거쳤는데 피바디음악원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장학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1974년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데뷔 후 그는 Concert Artists Guide Award를 수상하는 첫 연주자가 되기도 했다. 또 그의 첫녹음은 1979년 그라모폰지에서 극찬한 바 있다. 그는 현재 많은 레코드를 내고 있는데 그의 레퍼토리는 수세기에 걸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곡을 재 해석하고 기타로 편곡하고 연주하여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그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는 작품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과 합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작품의 예술성에 충실한 분석과 편곡, 그리고 합리적인 운지법의 완벽한 연주로 기타 음악의 음악적 가치를 전 세계에 인식시켰다. 레퍼토리 또한 바흐부터 비틀즈의 곡까지 매우 댜양하여, 데이비드 러셀, 훼르단데즈와 더불어 새로운 대가로 떠오르고 있는 연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다. 그는 밝고 강렬하며 섬세한 음색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음색은 빠른 순발력으로 탄현하는 주법과 그의 악기인 로버트 록(Robert Rock)이 적절하게 어울려서 나는 소리이다. 그는 또 경제적인 탄현과 음색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주는 VOX와 EMI레이블을 통하여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현대곡에 대한 해석, 특히 브라우어의 곡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빌라 로보스의 프렐류드를 들어 보면 그의 연주가 얼마나 깔끔하고 정확한 연주인지 알 수 있다. 또 그는 개인적으로 존 레논을 좋아해서 비틀즈의 음반을 기타로 편곡한 음반도 나와 있고, 93년 내한 공연 때에는 재즈를 연주했는데, 재즈곡을 모은 '섬타임즈'라는 음반도 소개 되었다.
19. 엘리엇 피스크 [Eliot Fisk]
엘리엇 피스크는 세고비아의 전통을 계승한 기타리스트로 세계전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편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으며 독주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및 실내악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그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고, 파울라 로빈스, 기돈 크레머, 루치에로 리치, 로스 앙헬레스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을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태생인 그는 윌리엄 비올라, 오스카 지길라, 알레리오 디아즈 그리고 세고비아에게 사사받았고 특히 세고비아는 그를 일컬어 "그는 우리시대의 최고의 화려하고 지적이며 재능있는 기타리스트 중의 한사람이다."라고 격찬하 바 있다. 또한 피스크는 예일 음대에서 하프시코드 주자인 랄프 커크 페트릭에게도 사사받은 최우수 졸업자로서 이곳에 처음으로 기타과를 창단했다. 1976년 뉴욕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1980년 이탈리아 콩쿨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이후 쾰른의 음악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기타교육과 연구를 위해 안드레스 세고비아 협회를 설립하여 기타의 저변확대에 큰 공적을 남기고 있는 신세대 연주그룹의 선두주자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플루티스트 파울라 로빈슨과의 듀오로 발표한 앨범 'Mountain Songs"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으며 연주활동 외에도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스페인 등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재능있는 기타리스트들을 발굴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 마리아 루이사 아니도 [Maria Luisa Anido]
190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금교 모론에서 출생한 아르헨티나의 여류 기타리스트, 유년 시절부너 아버지에게 기타아를 배우고 7살 때에 1년동안 도밍고 프라트에겍 사사했다. 그밖에 로블레도에게 4개월간 배운 것을 비롯하여 레로우프와 료벳에게도 사사한 바 있다. 18년 11살 때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명기 토레스로 첫 리사이틀을 갖고 절찬을 받은 바 있으며 아니도의 천재는 프라트가 말한 "어제는 나의 제자였으나, 오늘은 나의 동료이고, 내일 나는 그녀의 찬미자가 될 것이다." 라는 격찬으로 잘 설명된다고 하겠다. 29년 료벳의 제 4회 남아메리카 리사이틀에서 2중주를 연주하여 상을 받은 일을 비롯하여, 현재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거장의 한 사람이다.
21. 루이제 발커 [Luise Walker]
1910년 비엔나 출생, 8세때 기타를 시작하여 13세때 비엔나에서 데뷔하였다. 비엔나 국립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아니도, 프레스티와 더불어 20세기 3대 여류 기타리스트로 불리운다.
22. 미구엘 리오벳 [Miguel Liobet]
타레가의 위대한 계승자로 알려진 리오벳은 1878년 스페인에서 출생한 기타리스트이다. 조각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 그리는 것으로 자랐고 일찍부터 기타와 친할 기회가 많았다. 바르셀로나의 시립 음악학교에서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와 동창이었고 이 때부터 아르카스 문하의 마힌 아레그레에게 기타를 배웠다. 1901년 바렌시아 음악 학교에서 기타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3년간에 걸쳐 스페인 각지의 연주회에서 명성을 얻은 리오벳은 1904년 파리에 데뷔하여 연주가와 교수로서 성공하였교 벨기에, 영국등지에서도 연주회를 가졌다. 1910년에서 1912년에 걸쳐 남미 연주 여행은 타레가 주법을 전한 큰 역할을 하였으며 남미의 기타음악은 리오벳에 의해 개안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메리카, 유럽등에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으며 1928년에 리오벳 탄생 50주년을 축하하는 축하회를 베를린에서 성대히 거행하였다. 1937년 스페인 내란으로 공격을 받아 그의 일생을 마쳤으며 주로 카탈로니아 지방의 민요나 무곡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있다.
23. 누엘 폰세 [Manuel Maria Ponce1885-1948]
1885멕시코에서 출생한 근대 멕시코의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멕시코 시립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1903년 독일과 이태리에서 유학하였다. 멕시코 국민음악학원 교수겸 피아니스트, 그리고 멕시코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40세 때 프랑스의 폴 듀카에게 사사받았으며 세고비아에게 "기타의 바하"라는 찬사를 들은 바 있으며 만년에는 멕시코 국립음악의 수립에 노력하였다. 1940년 세고비아를 위하여 작곡한 "남의 협주곡"을 비롯하여 "3개의 소나타", "3개의 멕시코 민요"등이 유명하다.
24. 안토니오 라우로 [Antonio Lauro]
베네수엘라 출신의 뛰어난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였던 라우로는 기타 음악 가운데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다. 라우로는 기타를 연주하기 전에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연주회장에서 바리오스-망고레의 기타 연주를 듣고는 기타를 연주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한다. 그 후 라우로는 기타를 배우면서 클래식한 음악과 민속적인 음악을 모두 섭렵한 후 이 둘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했다.
25. 페르난데스
페르난데스는 1952년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양친은 모두 음악 애호가로서, 그 영향으로 그는 7살대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왜 피아노를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어릴때부터 내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타리스트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던게 아닐까? 어쨌거나 첫 수업부터 유명한 라울 산체스 선생에게 기타를 사사하기 시작한 페르난데스는 그뒤어 기도산토르솔라에게서 음악 전반에 관한 수업을 받으며 자기 자신만의 독자적 음악 표현의 기처롤 쌓기 시작했다. 연주와 이론에 대한 기초를 탄탄히 다진 그는, 그것을 완벽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아벨 깔레바로 주법을 몸에 익혔다. 이 과정등은 사실상 남미에서의 기타수업에서는 가장 엘리트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주가로서의 데뷔는 1963년 그의 쌍둥이 형과의 이중주로시작했다. 꽤 오랜시간후 1971년 부터 솔로 활동을 개시 했으며 이후 오늘날까지 많은 콩쿨 수상과 레코딩, 연주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출처는 폴인기타앙상블 싸이월드 클럽에서 퍼왔습니다
원본 파일도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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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6. 이하림[Lee HaLim]
강원대학교 클래식기타 동아리 34기로 비장을 멋지게 연주하여 모든이에게 찬사를 받았다.
ㅋㅋㄱㅋ
아진짜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