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의 ‘샘’
마르셀 뒤샹의 ‘샘’, 1917/1964, 레디메이드, 36 x 48 x 61㎝, Original version(Lost), photo by Alfred Stieglitz,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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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1일, 영국의 미술가 500명이 투표를 했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친 작품이 무엇인가?”
‘색의 마술사’라는 앙리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The Red Studio, 1911)가 5위,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 1937)가 4위,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2면화’(1962)가 3위를 차지했다. 2위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선정됐다.
그런데 이러한 명작들을 다 제치고 1등으로 뽑힌 작품은 뜻밖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이라는 작품인데,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를 거꾸로 엎어놓고, 거기에다 ‘샘’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마르셀 뒤샹은 이러한 작업을 ‘레디메이드’라고 불렀다.
마르셀 뒤샹은 이 작품을 1917년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의 전시회에 ‘샘’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소변기의 편편한 부분을 바닥에 대고 뉘어놓아 그것이 ‘발기(勃起)’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R. Mutt 1917'이라고 서명을 했다.
Mutt는 'Mott Works'라는 위생도기 판매회사 이름에서 따왔는데, ‘모트’라는 말이 너무 뻔해서 (발음이 같은)‘머트’로 바꾼 것이다. 또 당시 신문에 연재되던 만화 ‘Mutt and Jeff’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R’은 ‘Richard’의 약자인데, 프랑스 속어로 ‘벼락부자’라는 뜻이다.
‘독립미술가협회’ 전은 심사위원회도 없고, 상도 주지 않는 전시회이다. 연회비로 6달러만 내면 누구나 두 점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그러나 작품 ‘샘’은 전시기간 내내 전시장 칸막이벽 뒤에 놓여 있었다. 도록에도 빠져 있었다. 아무도 이것을 ‘미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리처드 머트 사건’(Richard Mutt Case)이다. 뒤샹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찍은 ‘샘’의 사진을 ‘블라인드 맨’이라는 잡지에 실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욕조가 부도덕하지 않은 것처럼 작품 ‘샘’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머트(Mutt)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하고,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실용적인 특성을 상실시키는 장소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결국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이 작품을 구입한 ‘월터 아렌스버그’가 원작 소변기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작품 ‘샘’은 다시 복제되었다. 이것을 사람들은 “오브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지킨 것”으로 의미를 해석한다.
그 복제된 소변기 ‘샘’의 가격이 지금은 100만 달러가 넘는다. 복제된 8개의 작품 중 하나는 1999년에 19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 피에르 피노첼리라는 남자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을 망치로 부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람은 1993년에도 ‘샘’에 소변을 보다가 처벌 받은 적이 있는데, “뒤샹에게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샘’을 부수려 했다”고 주장했다. ‘샘’ 이라는 작품의 의미가 기성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인데, 이것이 고가의 예술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작품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나는 2008년 10월,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 개관전시회에 갔었다. 백남준에 관한 여러 가지 전시가 대담하여 마음에 들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 마르셀 뒤샹에 관한 전시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마르셀 뒤샹은 이미 비디오아트를 제외하고 모든 걸 다 이뤄 놓았다. 그는 입구를 커다랗게 만들어놓고 출구는 조그맣게 만들어놓았다. 그 조그만 출구가 비디오 아트이다. 그리로 나가면 마르셀 뒤샹의 영향권 밖으로 나가는 셈이다.”
백남준은 마르셀 뒤샹을 ‘자기가 평생에 넘어서야 할 벽’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백남준은 그에게서 전위적인 실험들을 계속할 용기와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문구도 전시되어 있었다.
“뒤샹조차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100년이나 걸렸다. 나는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2032년에 사람들은 더러움을 보여주는 나의 날림의 미학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뒤샹과 백남준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관습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한 마디로 미술의 전통, 회화의 상식에 대하여 도전장을 내면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최근 주목받는 미술가 크레이그 마틴의 생각도 똑같다. 그는 “평소에 익숙해져 있는 사물을 클로즈 업 시킴으로써 위대함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창의적 프로세스는 그 분야가 예술이든, 과학이든 마찬가지이다.
뒤샹은 ‘레디메이드’에 대하여 1916년 동생 쉬잔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내 작업실에 올라가면 자전거 바퀴와 병 건조기가 있을 거야. 내가 마치 완성된 조각품처럼 여기고 사들인 거야. ‘병 건조기’에 대한 내 의도를 말해 줄게. 난 여기 뉴욕에서 그런 비슷한 양식의 오브제들을 구입해서 ‘레디메이드’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 오브제들에게 부여한 영어 이름은 ‘기성품’(tout fait)이라는 의미야.
거기에다 난 영어로 서명을 하고, 제목을 적는다. 예를 들면, 큰 제설용 삽에는 ‘부러진 팔에 앞서서’(In Advance of the Broken Arm), 라고 썼어. 이걸 낭만적으로나 인상주의적으로 이해하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어.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한 장황한 말은 네가 이 병 건조기를 가지라는 뜻이야. 난 멀리서 하나의 ‘레디메이드’를 만드는 거지…”
소설가 채만식은 1934년 신동아에 단편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는 여러 군데에서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엇비슷하게 말하여 꼬집는 기법이 쓰여 졌는데, 나는 채만식도 역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작품 ‘샘’의 영향력이 정말 컸다는 생각이 든다.
권기균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사>과학관과 문화 기획위원장
[펌] 저는 뒤샹의 '샘'이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샹의 '샘'은 화장실 변기를 사용한 작품입니다. 이제까지의 기존 회화에서는 표현매체로 주로 물감을 사용하였으나,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기성품인 화장실 변기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한 현대미술사에 있어 획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샹은 이 변기를 '발견된 오브제'라고 하였으며, 이 매체를 선택한 것은 미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 우연에 의한 발견에 제목을 달아준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변기는 일상생활에서는 소변을 보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미술관에 놓임으로써 본래의 기능이 아닌 미술품으로써 새로운 사물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전통 미술이 어쩌면 사물의 재현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면 이미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사진의 발명을 통해 그러한 미학의 근원에 도달하였으며 또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운동의 재현까지도 가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기존의 미술에 대항한 다양한 새로운 방식들이 시도되었는데, 그 예로 칸딘스키에 의해 촉발된 이미지의 변형이 있으며, 또한 피카소에 의한 새로운 이미지의 재창조를 들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그림같지도 않은 그림' 이라고 여겨졌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예술로 받아들여졌으며 이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뒤샹이 화장실 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전람회에 출품한 사실 자체는 뻔뻔스러울지 모르나, 다른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내세웠다는 것에서는 예술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