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둘러싼 정부 수사가 과거 유사 사례와 비교해 유독 강도 높게 전개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이 정보유출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노조 문제와 과거 논란까지 잇따라 보도하며 ‘쿠팡 때리기’에 가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이라는 입장이지만, 수사의 범위와 공개 방식, 그리고 언론 보도의 방향을 종합하면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개인정보 사고 조사를 넘어 기업 전반을 문제 삼는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쿠팡 침해 사고에 관한 민관 합동 조사 결과를 잠정 발표한 가운데, 지난해 11월 29일부터 남아있는 쿠팡의 웹 접속기록(로그) 25.6테라바이트(TB) 분량(데이터 6천642억 건)을 분석한 결과 쿠팡 '내 정보 수정 페이지'에서 이용자 이름, 이메일 3천367만여 건이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와 상관없이 이미 쿠팡 문제는 한미 간의 관세와 외교 문제로 비화되고 말았다는 점이 문제다.
과거 대형 유출 때는 달랐다
국내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통신사와 카드사, 게임사, 플랫폼 기업 등에서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 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일부 사건은 실제 금전 피해와 2차 범죄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정부 대응은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재발 방지 대책 요구가 중심이었다. 압수수색이나 경영 책임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전방위 수사는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2014년 KB국민카드·롯데카드·NH농협카드 등 이른바 ‘카드 3사’ 사건에서는 약 1억 건에 가까운 금융·신용정보가 외부로 유출돼 실제 보이스피싱과 금융사기로 이어졌고, 2012년 KT 해킹 사건에서는 약 8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장기간 노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최근에도 LG유플러스 해킹 사고로 수백만 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고, 일부 게임사와 플랫폼 기업들 역시 대규모 유출과 신고 지연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 사건에서 정부 대응은 주로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재발 방지 대책 요구에 그쳤으며, 경영진을 겨냥한 전방위 수사나 기업 전반을 문제 삼는 공개적 압박은 제한적이었다.
이 밖에도 카카오는 물론 빗썸은 갖고 있지도 않은 비트코인을 전송하여 시장에 충격을 주기도 하는 등 대한민국의 보안 관련 취약성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전례와 비교하면, 아직 대규모 2차 피해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쿠팡 사건에 적용되는 수사와 여론 압박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쿠팡 사건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조사와 동시에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전반, 내부 보안 시스템, 사고 대응 과정, 자료 보존 문제까지 한꺼번에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 수사의 폭과 공개성이 눈에 띄게 넓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 확인 전인데도 ‘최대 수위’ 논란
쿠팡 사건은 접근 통제 미흡과 신고 지연 등 관리상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현재까지 대규모 2차 피해나 외부 반출이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실제 피해가 발생했던 사건들보다 더 강한 압박과 연속적인 공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왜 이번에는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법 집행의 필요성과 별개로 적용 기준의 일관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보유출과 무관한 노조 이슈까지 번진 보도
논란을 키운 또 다른 요인은 언론 보도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일부 매체에서는 쿠팡의 노조 갈등, 과거 노동 환경 논란, 물류센터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들 사안은 각각 별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일 수 있으나, 이번 정보유출 사고의 원인이나 경위와 직접적 연관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관련 보도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쿠팡을 ‘총체적 문제 기업’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사고의 기술적·법적 쟁점을 검증하기보다 기업의 기존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의 보도가 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진보 성향 매체 중심 ‘쿠팡 때리기’ 확산 지적
특히 일부 진보 성향 매체를 중심으로 정보유출 사건을 계기로 노조 문제, 기업 문화, 자본 구조까지 한꺼번에 비판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감시와 비판을 넘어선 프레임 확대”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의 유사 사고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방식의 집중 조명이 쿠팡에만 나타나고 있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업 전체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분위기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금융권과 맞닿은 쿠팡의 위상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으로, 미국 내 정치·금융권과의 접점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쿠팡의 경영진인 로저스(Rogers)가 미국 하원의원들의 요청으로 26일 의회 법사위 증언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 하원은 미국 회사인 쿠팡이 대한민국에서 과도하게 차별을 받았는지, 적법한 절차로 수사를 받았는지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특히 쿠팡은 단순한 국내 이커머스 기업이 아니라 미국 제도권과 직접 연결돼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쿠팡 Inc의 이사회에는 과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를 지낸 케빈 워시(Kevin Warsh)가 2019년부터 사외이사로 참여해 왔으며, 워시는 월가와 미국 정치권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 공화당 진영의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돼 왔다.
심지어 지난 1월3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캐빈 워시를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했다. 이 때문에 쿠팡은 미국 정치·금융권에서 ‘잘 알려진 회사’로 인식돼 있고, 최근에는 쿠팡 경영진이 미 하원 차원의 질의·증언 대상에 오르며 미국 내 관심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국내 정부와 언론이 쿠팡을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와 전방위적 비판에 나서는 모습은, 해외에서는 한국의 기업 규제 리스크이자 정치적 대응으로 해석될 여지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언론의 대응이 해외에서는 ‘정책 리스크’로 해석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익 관점에서 남는 질문
전문가들은 “법 집행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방식과 연출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강경 대응이 자칫 한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신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치권과 금융권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업을 둘러싼 사안일수록, 국내 수사와 언론 보도는 더욱 냉정하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국익
이번 논란의 본질은 정부가 수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왜 과거 유사 사건과는 다른 기준과 강도로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언론이 수사와 직접 관련 없는 영역까지 끌어들이며 기업을 규정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쿠팡 수사를 둘러싼 의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 집행의 정당성은 일관성과 절제 위에서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 한국법인의 대표이자 미국 본사 차원에서 법무·행정 업무를 총괄해 온 최고관리책임자(CAO) 출신인 로저스가 미의회 법사위에서 26일 어떤 증언을 할 것인지, 그리고 이에 대해 미 의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최근 불거진 트럼프의 갑작스런 25% 관세 인상 결정이 대한민국 정부의 미국 기업 쿠팡 죽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미국 측이 대한민국 정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