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
죽음만큼 삶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저 평온하기만 한 삶이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이어진다면, 아마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삶에 소홀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문밖을 서성이는 죽음의 발자국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면,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며 주어진 삶에 더 충실하게 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팬데믹(pandemic)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죽음을 가깝게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필자도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이지만 두 딸과 언니, 또 두 명의 조카들까지 모두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간호사인 딸이 코비드 검사를 받았다는 연락이 오고, 인턴인 조카가 응급실에서 검진한 환자가 다음날 코비드 확진을 받았다는 연락이 오고, 언니는 직접 코비드 환자들을 돌보며 한 달을 넘게 일했었다. 우리 모두 병원에서 일하는 frontline worker(최전방 근로자)들이니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두려움을 감당하느라 매일 기도를 하며 지내야 했다. 잠깐 긴장이 풀리는 여름이 지나고 이제 또다시 2차 대유행이 시작되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주유소를 운영하는 남편은 안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주유소에 담배를 배달했던 배달원이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이젠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이상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 코앞에 다가서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요즘 난 삶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내 생각의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한 환자가 있었다. 바로 그 이야기를 지금 해볼까 한다.
오래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였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옛말처럼 오랜 세월 병간호를 하다 보면 돌보던 가족들도 너무 지쳐 나중엔 다 나가떨어지게 된다. 바로 그 환자의 아내가 그랬던 것 같다. 사고로 사지 마비가 된 남편을 돌보며 8년째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사는 분이었다. 한번은 휴식 시간을 맞아 옥상에 마련된 정원에서 잠깐 햇볕을 쐬고 있는데, 그분이 벤치에 앉아 찾아온 언니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저 사람 돌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도 이제 환자 다 됐어.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어.”
“제부 저렇게 된 지도 벌써 8년이다. 그 긴 세월을 돌봤으니 골병이 들어도 벌써 들었지.”
언니가 안타까운 얼굴로 한탄하는 그분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갈 사람이면 인제 그만 갔으면 좋겠다는..그런 생각까지 들어 요즘은.”
“당연히 들지. 그래야 산 사람이라도 살 거 아냐?”
들려오는 그분들의 대화를 들으며 난 속으로 참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같이 산 부부애도 긴 병 앞에서는 결국 ‘자기애’로 돌아서게 돼 있었다. 으레 사람이라면 자신의 편안함을 우선으로 여기기 마련이니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으리라. 죽고 못 산다는 남녀의 사랑, 가족애, 가장 위대하다는 모성애까지도 ‘자기애’ 앞에서 무너지는 걸 병원에서는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그 고통의 시간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묵묵히 지켜낼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난 그분들의 대화를 못 들은 척, 그 자리를 떠나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분만장 간호사로 밤 근무를 하던 새벽이었다. 갑자기 간호 감독이 전화를 해서는 병동에 중환이 둘이 발생해 동시에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데 손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간호사에게 분만장 일을 맡긴 후 내가 바로 뛰어 올라가 보니, 다름 아닌 그분의 남편이었다. 아저씨가 가슴에 심전도 모니터를 단 채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38분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곧 사망 선언이 이뤄지고, 난 가족들을 병실 밖으로 내보낸 후 사후간호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보낸 환자의 아내가 울며 다시 달려 들어왔다.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죽은 아저씨 주위를 뱅뱅 돌며 이렇게는 못 보낸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아저씨 목에 꽂힌 튜브를 제거하니까, 바로 달려와 애원했다. “안 아프게 빼주세요. 안 아프게. 흐흑.” 그리고 정맥주사를 빼니까 또 달려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애원했다. 죽은 사람이 뭘 느낄까마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그분의 애달픈 마음이 전해져왔다. 눈이 불거진 난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쳐 가며 정성스럽게 사후간호를 해줬다. 그리고 영안실로 옮기기 위해 이송직원이 와 아저씨를 이동용 침대로 옮긴 후, 같이 흰 천을 시체 위로 덮을 때였다. “아니. 아니. 흐흑..이렇게 갈 순 없어.” 아저씨의 죽음이 진짜 실감이 되는지 이젠 그의 아내가 옆에서 벌떡벌떡 뛰며 울부짖었다. 그러다 아저씨의 얼굴에 흰 천을 덮는 순간, 그분은 그 자리에 기절하듯 쓰러져버렸다. ‘왜 하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이 얼굴에 흰 천이 덮이는 순간일까?’ 상황을 겨우 수습해 그분들을 영안실로 내려보내고, 난 창가로 가 떠오르는 여명을 보며 생각했다. ‘내겐 사랑할 오늘이 있는데, 저분은 없네!’ 인식을 못 했을 뿐, 그분이 다리 쭉 뻗고 푸념하던 그 순간마저도 사랑이었는데. 사랑할 수 있는 날이 계속될 줄 알고, 우린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사실 나도 전날 남편과 싸우고 근무를 나왔었다. 그래서 그날은 집에 가자마자, 무조건 남편을 껴안아 줬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몽테뉴가 말했다. ‘죽음을 걱정해봤자 쓸데없다. 죽음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니까. 차라리 삶에 대해 걱정하라.’ 그의 말처럼 날마다 찾아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를 충실히 사는 길밖에 없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걸 인식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람의 몸속에는 해골이 들어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삶과 뗄 수 없는 것으로 이미 우리 몸 안에 새겨져 있었다. 거울이 사물을 뚜렷이 비추는 건 뒷면에 흑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을 뒷면으로 놓고 삶을 바라보는 요즘,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일이란 생각이 뚜렷이 들었다.
2020년 10월
첫댓글 얼마전 60대 어느분이
일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삶과 죽음이 거울처럼 앞면과 뒷면이네요
요즈음 코비드가 기승을 부리는데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감합니다
삶 뒤에 죽음이 늘 같이 있는데
우린 삶과 죽음의 거리가 아득히 먼, 또는 타인의 일로 생각하고 살지요
그나마 위안이 되고 감사한 것은 조물주께서
우리가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때를 알지 못하게 창조 하셨다는 것이지요\
설령 가까워 옴을 알지언정......
하여 우린 은정님의 말씀처럼 뒤에 있는 죽음보다는 앞에 놓인 삶을
충실히 다스리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에 공감표를 던집니다
저도 그래보려고 두 주먹 꼭 쥐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일이란 생각이 뚜렷이 들었다."
걱정이 아니라...사랑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또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늘 고민하고 실천하며 지내는 하루하루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