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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과 근대 토론방 조선시대 전마(戰馬)에 대해서..
밀리터리 나그네 추천 0 조회 396 08.07.17 22:4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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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7.19 15:35

    첫댓글 1. 좋은 자료 매우 유익하게 보았습니다...고려말(공민왕이후) 때는 명나라와 고려가 대원(북원)전쟁의 동맹군의 입장에서 '말'을 지원하였다고 보이는데...조선이 개국한 뒤의 상황은 이미 북원은 명의 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명에서 조선에게 '말'을 바치라고 하는 이유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봅니다....즉, 명은 조선의 군사력신장을 우려하여 사전에 이를 제거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 08.07.19 15:35

    2. 명이 조선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한 이유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태조 이성계가 확실하게 '사대'를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가 조선을 저리도 철저하게 '견제'한 것은 바로 '일본(왜)'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아직 소멸되지 않은 '북원'도 경계의 대상이긴 하였었겠지만, 명으로서는 '조선+일본'의 연합군을 가장 우려한 것으로 봅니다.

  • 08.07.19 15:35

    3. 그래서 명나라는 자주성이 강한 태조(정도전포함)의 집권을 중도에 정지시키고 야심가인 태종의 집권을 인정(지원)하는 반대급부로 태종으로부터 매년 10,000필의 말을 매매형식으로 조공받도록 함과 동시에 태종이 직접 '왜구(일본)'를 정벌하여 조선이 일본과 연합하여 명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증명토록 요구하였다고 봅니다.

  • 08.07.19 15:35

    4. 결국, 조선초기에 수만필의 말이 중국에 바쳐졌고, 또 태종에 의해서 대마도정벌도 이루어지므로서 비로소 명나라는 조선의 '사대주의'가 진심임을 확인한 뒤에 조선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었다고 봅니다...어떻게 보면 명나라로서 국방을 우려하는 당연한 조처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명나라에서는 개국 초기부터 전해안에 들끓는 '왜구'의 침략을 단순한 '해적'들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 08.07.19 15:35

    5. 즉, '왜구'들이 극성을 부렸던 이유가 따로 있었으며, 명나라에서는 그 이유 때문에 '조선+일본'을 가장 경계하였었다고 봅니다...이 '조선+일본'이라는 개념은 200년뒤에 풍신수길이 조선침략을 하면서, '명나라를 치는 길을 열어라'라는 요구로 재현된 것으로 봅니다...이에 당연히 '조선+명'이 일본을 상대하게 된 것이지만, 좀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때의 전쟁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기 이전에 명나라와 일본의 전쟁으로도 볼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 08.07.19 15:36

    6. 만일 조선초에 명나라에서 조선의 군사력을 철저하게 약화시키지 않았고 또 조선의 국가전략이 '사대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이를 역설적으로 본다면 '조선+왜'의 연합으로 명나라나 대륙을 공략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여져서 이래저래 조선초 '사대주의'라는 국책의 선택여부는 논란이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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