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환영이지 Always Welcome, 1887
엄마, 또 와도 돼? 야윈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합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봄볕처럼 따사롭습니다. 흰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는 아무래도 어디가 아픈 모습입니다. 안정이 필요해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아온 것 아닐까요? 침대에 올라앉은 아이의 무릎을 살짝 잡은 엄마의 손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 언제든지 환영이지. 엄마가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창밖에는 봄이 시작인데요.
알마 타데마는 네덜란드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마을의 공증인이었는데 좀 특이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두었는데 아내가 죽자 처제와 결혼을 해서 다시 세 명의 아이를 얻습니다. 알마 타데마는 둘째 아내의 막내였지요. 제 기억에 자매와 차례로 결혼을 한 화가는 프랑스의 라 투르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매와 차례로 결혼이 가능했던 것이 유럽의 풍속이었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봄꽃들 Spring Flowers, 24x18cm
제목을 보지 않아도 봄입니다. 꽃도 화병도, 그리고 소녀의 머리도 모두 봄의 색깔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소녀 뒤편에 있는 창에도 봄이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화병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소녀의 눈빛에도 봄이 담겨 있습니다. 아련하잖습니까? 이제 얼마 있으면 다투어 필 꽃들과 여린 잎들로 우리 사는 세상은 또 얼마나 풍요로울까요? 그림 속 소녀처럼 요즘 저도 기다리는 마음에 속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알마 타데마가 세 살이 되던 해 좀 더 돈벌이가 되는 곳으로 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이사를 갔지만 그 다음 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일찍 죽은 아이를 제외한 다섯 아이와 아내를 덩그렇게 남겨놓은 것이지요. 미술 교육을 받았던 알마 타데마의 어머니는 그리기가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것을 알고 동네 미술 선생님을 고용해 아이들에게 미술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알마 타데마를 화가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알마 타데마를 법률가로 만들 계획이었거든요.
허니문 Honeymoon, 1868
처음에는 여자 두 명이 작품 속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남자가 화관을 썼군요. 여인의 어깨 너머로 거울을 같이 보고 있는데 남자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여인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들의 외모에 심취한 모습이거든요. 요즘 표현대로라면 ‘셀카’를 찍는 순간입니다. 행복한 시간이지요. 그런데 허니문 기간은 같은 방향을 보기보다는 서로를 마주 보는 기간 아닌가요? 탁자에 조각된 동물상을 보다가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저 기간이 지나면 간혹 뿔과 날카로운 발톱을 서로에게 세울 때가 오게 되지요.
열다섯이 되던 해 알마 타데마는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육체적으로 쇠잔해졌고 신경쇠약에 걸린 것이죠. 의사는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고 그의 어머니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알마 타데마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결과 얼마 살 수 없다던 알마 타테마는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신께서 알아주신다는 말을 저는 늘 믿습니다.
춤을 추고 난 뒤 지친 마이나데스
Exhausted Maenades after the dance, c.1873~1874, 132x59.1cm
‘알마 타데마의 작품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완성된 작품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입니다. 마이나데스는 디오니소스의 시중을 드는 여인들입니다. 나체로 미친 듯이 춤을 추곤 했다고 하는데 그 이름에는 ‘광란의 여인들’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고 난 뒤 찾아오는 피곤함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날이 갈수록 이럴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온 몸을 던지기에는 이미 늦은 걸까요?
다시 건강이 회복된 알마 타데마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앤트워프(안트베르펜)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4년간 공부하는 동안 그는 여러 번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역사 속의 의상에 대한 과정을 가르치던 교수의 조수로 들어가 3년간 일을 하고 난 후 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Ninetyfour in the Shade, 1876, 35.5x21.6cm
한글 제목 붙이기가 참 어렵군요. 문장으로만 본다면 ‘그늘 속에서 94쪽’까지 읽고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94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추수가 거의 끝난 가을 밭, 아마 산책 도중이었던 것 같은데 나무 그늘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습니다. 모자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책 속에 푹 빠진 모양입니다.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 그 자리에서 소년도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클로비스 아이들의 교육’(The education of the children of Clovis)이라는 작품을 안트베르펜 예술가회에 전시한 알마 타데마는 미술 평론가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것이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게 되는 기반이 됩니다. 같은 화실을 쓰고 있던 얀이라는 친구가 작품 속 대리석 묘사가 떨어진다는 충고를 하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대리석 묘사에 힘을 쏟습니다. 훗날 대리석과 화강암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세계적인 화가의 탄생이었습니다. 충고를 할 줄 아는 사람과 그 것을 자기 계발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 멋진 사이였군요.
산문 Prose, 1879, 35.5x24.2cm
어떤 내용의 글일까요? 두루마리를 펴고 편한 자세로 앉은 남자의 얼굴에 두루마기에 반사된 빛이 내려앉았습니다. 시선이 두루마기를 뚫을 듯합니다. 표정을 보니 사랑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자신과 관련된 보고서 같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여자처럼 무엇엔가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눈빛만 조금 부드러웠으면 참 좋겠습니다.
알마 타데마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1월, 병을 앓던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납니다. 9월에 마리 폴린이라는 프랑스 언론인 딸과 결혼을 하는데 이 여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내에 대해 그도 말을 아꼈거든요. 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둘만 살아남았습니다. 큰 아이는 훗날 문학가가 되었고 딸은 화가가 되었다니까 예술 DNA는 풍부했습니다.
미지근한 욕실에서 In the Tepidarium, 1881, 24.2x33cm
테피다리움은 로마 시대의 미지근한 목욕탕*을 말합니다. 방금 욕탕에서 나온 여인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동물의 가죽이 깔린 대리석 위에 몸을 기댔습니다. 아직도 숨이 가쁜지 입은 가볍게 열렸고 눈은 살짝 감겼습니다. 몸을 식히기 위해 새의 깃털로 된 부채를 들었는데 그 위치가 참 절묘합니다. 그림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누드화를 보게 되는데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가장 에로틱한 작품 다섯 점 안에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나른함과 함께 생명력 가득한 여인의 몸을 보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담담합니다.
*‘미지근한 목욕탕’이란 선동기님 표현이 재미있긴 한데 좀 어색해서 ‘온욕탕’ ‘온욕실’이라 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림 제목을 보통 ‘테피다리움에서’라고 옮기고 ‘미온탕’ 또는 ‘미지근한 욕탕’이라 설명을 붙여놓고 있네요.
결혼한 다음 해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화상 중 한 명이었던 에른스트 감바르트를 만나게 된 것은 알마 타데마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감바르트는 24점의 작품을 주문하고 그 중 3점을 런던으로 보내 전시를 하게 되는데 런던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반가운 발자국 소리 Welcome Footstep, 1883, 41.9x54.6cm
꽃다발을 든 남자가 조심스럽게 밀회 장소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여인을 만나면 해야 할 이야기가 소용돌이를 치고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조심스럽게 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여인은 여유가 있습니다. 남자가 숲으로 들어설 때부터 이미 남자의 발자국 소리를 알고 있었거든요. 사랑에 빠지면 세상의 모든 소리 중에서 그 사람의 한숨소리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결혼한 지 6년이 되던 해 일년 넘게 앓던 알마 타데마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 충격으로 거의 4개월 가까이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섯 살, 두 살인 아이들은 그의 누이가 집에 함께 살면서 돌보았습니다. 이 해 여름부터 알마 타데마는 건강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병명이 무엇인지 진단이 어렵자 화상인 감바르트는 다른 진단을 받으라고 권유했고 12월 런던에 도착합니다.
거기 누구? Who is it?, 1884, 21.4x26.1cm
여인 셋이 모였으니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소리가 들렸을까요?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올라선 여인을 바라보는 다른 여인들의 눈매가 인상적입니다. 그 눈에도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한 궁금함이 담겼거든요. 일어서 있는 여인의 까치발에 모든 궁금함이 다 몰려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들 못할까요… 젊은 여인들이 나누는 ‘규방정담’에는 원래 주제도 범위도 없는 법이거든요.
화가 포드 매덕스 브라운 집에 도착한 알마 타데마는 그곳에서 로라를 만나고 첫눈에 반하고 맙니다. 이 이후 이야기는 앞서 로라 알마 타데마의 이야기에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거처를 옮긴 그의 런던에서의 생활은 성공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었고 가장 비싼 작품 값을 받는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또 사업가로서의 기질도 발휘되었습니다.
조용한 인사 A Silent Greeting, 1889. 30.5x22.9cm
바느질을 하다 잠이 든 아내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습니다. 혹시라도 여인이 잠에서 깰까봐 발뒤꿈치도 들었습니다. 남자의 시선은 여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잘 갔다 올게.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저런 몸짓 하나가 더 강할 때가 있습니다. 잠시 후 잠에서 일어난 여인은 좀 황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를 깨우고 다시 소파에서 잠이 든 아내를 깨웁니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거든요.
1872년부터 알마 타데마는 자신의 서명과 일련번호를 작품 속에 표기했는데 1851년 작품 ‘내 누이 Artje’가 1번이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그린 작품이 408번이었습니다. 작품 위조를 막는 효과가 있었는데 제 기억에는 아마 그가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해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데 특히 이탈리아의 폐허와 관련된 사진을 하면서 그는 그림의 완성을 위해 사용될 고문서와 책들도 함께 구입하기 시작합니다.
가족 A Family Group, 1896, 30.5x27.9cm
초상화 앞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대부분 환한 얼굴인데, 맨 오른쪽 여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예쁘게 그려진 탓일까요 표정이 좀 어둡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올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림이니까 그 차이가 더 할 수 있겠지요. 잘 그려진 얼굴보다는 정확한 얼굴이 좋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모두들 정말 많이 닮았군요. 역시 콩 심은 곳에는 콩이 납니다.
1879년 마흔셋이 되던 해 알마 타데마는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화가로서는 가장 큰 영광이었겠지요. 3년 뒤 185점의 작품을 모아 회고전을 열었고, 1899년 예순이 되던 해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영국 출신이 아닌 대륙 출신으로는 여덟 번째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나라로부터 메달을 받았습니다. 뛰어난 사업가이자 19세기 가장 부유한 화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화가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은 셈입니다.
봄날의 약속 Promise of Spring, 1890, 38x22.5cm
남자가 무슨 말을 했길래 여인의 얼굴이 저렇게 붉어졌을까요? 쭉 뻗은 한 손은 남자에게 맡기고 나머지 한 손은 뜨거워진 얼굴로 가져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막상 듣고 보니 온 몸으로 열기가 퍼져 나가는 것이겠지요. 무슨 약속인들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않겠습니까? 연인들 뒤에 서 있는 나무와 꽃들도 둘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병풍처럼 서서 그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저도 봄날에 약속 하나쯤 만들고 싶습니다.
1909년 일흔셋이 되던 해 아내 로라가 쉰일곱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의 충격이었을까요? 3년 뒤 딸을 따라 위궤양 치료를 위해 독일 휴양지에 갔던 그는 그곳에서 일생을 접고 맙니다. 외향적인 성격에 따뜻한 심성을 가진 그는 어린 아이의 특성과 동시에 프로의 기질도 있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와인과 여인, 파티를 사랑하는 유쾌한 남자였다고 하니까 만약 저와 만났다면 이야기가 잘 통했을 것 같습니다.
효과 없는 청혼 Vain Courtship, 1900, 77.5x41.3cm
이것 참 난감한 일입니다. 머리에 화관도 두르고 옷도 연 노란색으로 차려 입고 왔는데 여인은 본 척 만 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등을 돌리고 앉은 여인의 몸은 ‘나는 당신에게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남자의 표정에는 ‘저를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남자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남자가 예쁘게 꾸민다고 해도 창밖의 꽃만 하겠습니까? 차라리 화관을 벗어 던지고 좀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마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조금 남자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총각, 우선 패션부터 바꿔!
세상의 변화는 무서운 것이죠.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작품 구매 숫자는 줄어들었고 평가는 달라졌습니다. 영국의 존 러스킨은 ‘19세기 최악의 화가’라고 그를 평가했습니다. 알마 타데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1960년 그의 작품이 다시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 그는 빠르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습니다. 자신이 그린 작품이 거절당하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하녀에게 테이블보로 쓰라고 주었던 그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뒤늦게나마 우리들에게 다가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어디에선가 펄쩍펄쩍 뛰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