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
서숙희
이제 신의 시간을 천천히 거부하고
서슴없이 들 것이오
당신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삼엄한 그 슬픔을
둥글게 안을 것이오
그 안에서 죽어서
눈을 뜨고 죽어서
초월이나 영원 같은 말들은 다 버리고
한 덩이 몸 하나만을 환하게 사를 것이오
온몸으로 들이마신 합일의 검은 순간을
푸른 저 어둠에 걸림 없이 풀어 두고
그날 그,
흰 불잉걸로
살아 차오를 것이오
그, 랩소디처럼
서숙희
엄마, 지금 막 사람을 죽였어요*
누구처럼 햇빛이 눈부셔서는 아니에요
잘못 낀 첫 단추처럼 첫 문장이 어긋났어요
끝낸다는 건 방아쇠를 당기는 거였어요
소리는 명쾌하게 전말을 관통했어요
끝끝내 발설 못한 배후도 평온히 잠들었어요
무덤처럼 튼튼한 테이블을 놓을 거예요
새하얀 식탁보를 반듯하게 거기 깔고
날마다 흰 구름밥을 짓고 또 지을 거예요
몇 날과 며칠을 구름밥을 먹고 먹어도
뭉게뭉게 돌덩이 같은 슬픔이 자란다면
천천히 그냥 슬프도록 그냥 둘 거예요, 엄마
* Mama. just killed a man,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 서숙희 시조집 『빈』 2024.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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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월식 / 그, 랩소디처럼 / 서숙희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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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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