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강정숙
목련 늙은 가지마다 아기 망울 맺혔으나
뒷동산 발치에선 청설모가 살다 가고 청 다래 마른 잎은 바람 없이 구르는데 운동장에 뛰어놀던 아이들이 그리운가
작은 새 무리가 빙빙 돌다 날아간다 교실마다 문틀에 앉아 우는 개똥지빠귀 소리 같은, 문틈에 끼어 우는 문풍지 소
리 같은 것들이 글썽이다 가는 곳, 입춘 지나 햇살이 구들장 데우면 물오른 목련이야 꽃망울 열릴 것이고 새는 갔다
가 다시 오면 그뿐, 문 자주 여닫아 맑은 기운 들이는 일 사람의 몫인데
교문 앞 신작로에는
솜털 뽀얀 옛 시절만 서성인다
비열한 여름
인터넷 바둑판에서 대상을 클릭한 뒤
포석에 공들이고 판세에 뜸 들이자 기계가 슬슬 비웃다 광속으로 진행한다
덩달아 나도 빨라져 낭패에 도착하고 한· 수· 물· 린· 다. 두 수 물린다
어머머 왜 그러세요! 기계가 화를 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깨 짚고 모자 씌워
대마를 잡고 만다 돌 거두는 인터넷,
뒷맛은 비열하지만 더운 날이 시원하다
약력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수상 등단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 시조집 『천개의 귀』 『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해도 좋을』
주소 ;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성현로 659번길 176- 20. 동문자연마을 107호
우편번호 1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