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뉴스의 주요기사는 늘 남의 나라 뉴스로
가득합니다.
이민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특징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나라가 늘
조용한 탓이 큽니다.
어쩌다 국내 무슨 뉴스거리가 생겨도 사실에 근거한
내용 정도만 달랑 올려놓으니 재미가 없습니다.
이번 주말 해외뉴스에는 스페인 카타로니아 지방의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자가 많이 나면서 선거가 무산될 것 같다는
소식을 지켜보다가 문득 아직도? 하는 생각이 들면서
카타로니아 출신의 첼로성인< 파블로 카잘스>를 떠올렸습니다.
카타로니아의 독립을 꿈에도 그리던 카잘스가1972년 UN에서 국제평화상 수상연설을 하고
95세의 몸으로 카타루니아의 민요곡
Song of Birds를 연주하고 이듬해인 1973년96세로 사망한지가
벌써 44년이 다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곳 캐나다의
지인들 중에 라틴계통의 사람들은
간혹 저를 파블로 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파블로가 영어로는 폴 입니다.
파블로 카잘스의 얘기가 나오면
의례 첼로음악에 관한 얘기를 좀 해야 하는게 기본인데
저의 음악적 소양이 절대 부족하지만 심심풀이 이바구
삼아서
지난 4년간 열심히 귀로 들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야기를
조금만,그리고 간단하고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거긴 추석이라
몸은 바빠도 마음은 조금 공허하고 심심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예전 같으면 도치어머니께서 일산약국에서 당직을
서고 계셨을텐데 말이지요…ㅎㅎㅎ
첼로는 제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악기입니다.
중후한 멋이 있고 품격이 느껴지는 소리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첼로라는 악기는 독립적으로 연주곡을
충족시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악기입니다.
때문에 무반주 첼로 곡을 연주할 때는 테크닉은
물론
높은 음악성이 요구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눈치로
습득하게 되었구요.
더불어 선율미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면서 화성적인
조화와 대위를
잘 나타내야 좋은 소리로 들린다는 점도 알게되었습니다.
가끔씩 유튜브를 통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지내오다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제대로 열심히 들어봐야겠다는
작정을 하고 4년 전에 인터넷으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연주자 7인 가운데 4명을 선정해서 CD 4장을 구매했습니다.
<CD 사진을 컴으로는 못올리겠습니다.>
1) Pablo Casals (파블로
카잘스)
2) Mstislav Rostropovich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3) Anner Bylsma (안너
빌스마)
4) Pierre Fournier (피에르 프르니에)
<<요요마 음반을 구입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취향 때문입니다.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면 중국의 정극을 연상시키는
소리 시도나
너무 과격한 표정연기와 지나치게 뒤로 누워서 연주하는
자세가 늘 연상되는점.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의 비브라토가 너무 귀에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현대 첼로연주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연주는 담담하면서 느릿느릿 느린감이 있고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저 같은 문외한이 듣기로는 심지어 가끔 연주가
틀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범한 연주인지라
신장혈액투석을 받을 때 혈관에 바늘을 꼽고 누워서
파블로의 연주를 이어폰으로 들으면
통증과 지루함이 서서히 옅어지면서 저를 편안한
수면으로 인도해주곤 했습니다.
투석치료를 중단한 지금도 낮에 잠시 15분 정도 깜박낮잠을 갖으려면
카잘스의 연주를 듣습니다.
파블로 카잘스 연주의 높은 질을 느끼려면 카타로니아
민요인 새들의 노래(Song of the birds)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안너 빌스마
풍부한 힘이 느껴지는 저음부분이 무척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연주자입니다.
병원 투석실 창 밖으로 가을볕이 요즘처럼 맑고
날카롭게 빛나는 날이면
따뜻한 팀홀튼 커피를 마시며 늘 빌스마의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빌스마의 연주를 들으면 흡사 큰 날개를 가진 몸이
무거운 거위가
아주 유연하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가는 상상을 하게되는데
빌스마는 빠른 연주부분에서도 여유있게 커다란 악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연한 소리를 만들어내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요즘 같은 가을아침에도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안너 빌스마를 듣습니다.
피에르 프르니에
프르니에의 연주는 강약이 잘 조절된,
정확하고 빈틈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명품을 잘 차려입은 입은 정장의 신사처럼 고급지고
냉철한 연주자입니다.
몇 년전 제가 심장문제로 이틀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병원에 머물던 때가 있었습니다.
벽의 모든 그림이나 창문까지도 가만히 잠시 지켜보노라면
이것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마 그때 에드가 알런 포우의 Raven 같은 갈까마귀가 날아
들어와 있었다면
저도 충분히 포우처럼 그 레이븐과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고 레이븐도 Nevermore라고 대답을
했겠지요.
그 시절 병원에서 들은 프르니에의 연주는 저를
그 혼란스러운 환상으로 부터 많이 지켜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프르니에의 연주를 들으면 그 시절 병원에서
겪은 혼란스럽던 일주일이 생각납니다…ㅎ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이 분의 연주를 들으면 닥터 지바고 영화가 늘
떠오릅니다.
제가 군복무 시절 휴가를 나가서 이 영화를 보고
귀대를 해서
내무반원들을 모아놓고 닥터 지바고와 라라의 이별장면을
수사를 좀 많이 사용해서 설명을 해주니까
모두들 너무 몰두를 해서 한숨을 쉬며 간간이 눈물도
글썽이게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ㅋㅋ
강렬한 활놀림에서 나오는 장대한 스케일의 소리, 열정,테크닉, 그리고 지성이 느껴지는 연주.
눈보라가 창 밖으로 몰아치는 겨울에 들으면 닥터
지바고를 보던 젊은 그 시절로 저를 인도합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무반주 첼로 연주는 저에게는 겨울에
듣는 음반입니다.
즐거운 추석들 즐기시길,
Peace & Joy. 폴
첫댓글 글은 텍스트를 먼저 읽고 그 다음엔 글 쓴이의 생각을 읽고 그리고 나선 자신을 읽으라고 해설랑 감상평을 쓰려면 한참 걸리겠네만 자네다운 글을 오랜만에 만나니 참 반갑네. 파블로 하니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생각나네.
폴님이 쓰신 이글을 읽으니
추석에 큰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파블로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를 즐겨 듣습니다.
오늘 같은 날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
판쵸님이 여름에 묵었던 산속오두막에서 들어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는데
비옥한 땅에서 부지런히 일해서 부유한 카탈루니아 사람들의 세금으로
남스페인의 놀고먹는 게으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데모들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스페인이 참 멋진 나라인데 (축구도 잘하고)
경제적인 이유로(물론 역사적인 배경도 무시하진 못하지만) 쪼개지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스페인에서 허락을 안할 것 같아요.
Pau Casals: Song of the Birds
https://youtu.be/_T8DjwLt_c4
PLAY
본 글에 못 올린 사진입니다.
https://youtu.be/mGQLXRTl3Z0
자주 즐겨듣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입니다
PLAY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를 즐겨 들으시나 봅니다.
오늘 전곡을 정독하듯 들어봤습니다.
치유의 음악이네요. 확실히 아픔이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음악...
아픔이나 고통을 부드럽게 하거나
혹의 그의 세상으로 더 집중하게 하여 잊게 하는 건지도,
저는 폴님 글을 읽으며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로 온 선교사들과
이제는 프랑스로 보내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간의 종말 이란 영화 생각이 나네요.
양성원의 첼로 연주가 주인공(?) 이기도 한...영화죠.
이제 올만에
첫 발을 떼셨으니 좋은 글 자주 읽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