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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용복
홍현희
강원도 관찰사 심평이 올려 보낸 장계가 조정에 올라오자 조용하던 조정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벌컥 뒤집혔다. 장계의 내용인즉, 안용복이란 자가 조선 관리의 옷을 입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성주, 도주들을 만나 울릉도와 독도 문제를 놓고 담판을 짓고 와서 천한 백성이 나라일에 간섭한 죄를 졌으므로 벌하여 달라고 자수해 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숙종은 대신과 비변사의 여러 관리들을 불러들였다.
“여기 이 장계에 보면 동래 뱃사람인 안용복이란 자가 감히 일본에 두번씩이나 건너가 나라에서 포기하다시피 한 울릉도와 독도를 다시 찾아온 것처럼 주장한다 하는데 이것이 무슨 말이며, 어찌 천한 백성이 벼슬아치를 가장하여 천릭을 입고 일본의 성주들과 담판을 지었다 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요?”
숙종이 급한 마음에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장계를 영부사 남구만에게 넘기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는 격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백 년하고도 오 년이 지났건만 겁많고 비겁한 조정의 대신들은 긴장하다 못해 벌벌 떨었다. 그래서 물산 좋고 해산물이 풍부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에 거저 넘겨주다시피 한 것이었다.
사건의 배경인즉 이러하였다. 2년 전, 간교한 대마도주 종의륜이 일본 국왕 이름을 도용해, 울릉도와 독도를 문제삼아 시비를 가려 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선 어부들이 울릉도에 나왔다가 표류되어 대마도로 간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월경이라고 시비를 걸다가 급기야는 울릉도에 조선 어부들이 오는 것을 금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울릉도를 자기 땅인양 ‘다께지마’ 라고 슬그머니 이름을 바꾸어 붙여놓은 채 따지고 덤비었다.
부산포 왜관에 일본 사신(사신이 아니라 대마도주의 심복인 귤진중)이 몇 달이고 버티고 앉아, 조선 백성이 울릉도에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을 문서로 해내라고 졸랐다.
그때 숙종은 장희빈 사건의 후유증으로, 더우기 그 오라비 장희재 일로 골머리를 알고 있던 중인데 한동안 조용하던 왜구들이 남해안에 출몰하는 데다 일본 사신까지 죽도에 조선 어부들이 가지 못하게 하라는 문서를 쓰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우의정 민암 같은 사람은,
“과거 삼백 년 동안 비워 둔 척박한 섬인데 그것으로 이웃 나라와 화친을 깬다는 것은 좋은 계략이 아닌 줄 아옵나이다.”
하며, 아예 양보하자고 나섰고 다른 중신들도,
“울릉도와 독도의 뱃길은 워낙 험하여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금압령을 내리는 것이 가한 줄로 아나이다.”
하고 양보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조 참의가 그대로 문서를 만들어 보냈는데 이듬해 봄이 되자, 일본 사신이 다시 와서 문서에 써 있는 ‘경지 울릉도’(우리 땅인 울릉도)란 말을 지우고, 다시 써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지완이나 홍중하 같은 젊은 관리들이 펄펄 뛰고 말려 시일을 끌고 있었고, 부산포에서 끈질기게 동래 부사를 괴롭히던 귤진중도 대마도주 종의륜이 죽자 그 아비 종의진의 영으로 일본에 돌아가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좀 조용해지는가 보다 하고 있던 중에 이번에 안용복이가 일본 성주들과 시비를 걸고 조선땅인 울릉도에 왜놈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담판을 짓고 왔다 하니 임금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대체 안용복이란 자가 어떤 사람이요?”
왕은 참을성 없이 남구만을 보며 물었다. 남구만은 장계를 좌의정 윤지선에게 넘기며 대답했다.
“동래의 뱃사람이온데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았다는 천하장사이옵나이다. 의협심이 강하며 바다의 표범처럼 용맹하여 왜구들이 우리 해안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었으며, 나라간에 문제가 될까 보아 죽이지는 않고 배만 빼앗고 혼쭐을 내주었다 합니다. 한번은 왜구들을 똥도랑에 잡아넣고 혼을 내준 적도 있었다 하옵니다.”
“그런 장사가 있단 말이냐?”
“신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부터 을릉도와 독도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왔나이다. 일본 사신이 와서 우리가 보낸 외교 문서에 ‘조선땅인 울릉도’라는 말만 지워달라고 떼를 쓰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음흉한 흉계를 깨달아 반대하고 나선 일이 삼 년 전에 있었나이다. 이 사실을 안 안용복이 뱃사람들을 데리고 울릉도 독도에 가서 왜놈들을 몰아내고 옥기도, 백기주에 들어가 유창한 일본말로 항의를 했다 합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어찌하여 너희 섬이란 말이냐? 우리 조선에서는 하루 뱃길이지만 너희 일본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닷새가 걸리지 아니하느냐? 이렇게 담판을 짓고 일본 관백의 외교 문서를 받아 들고 나오다가 대마도주에게 붙잡혀 문서는 빼앗기고 옥에 갇
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신 귤진중이 안용복을 묶어 동래로 끌고와서 동래 부사에게 월경했다고 항의하니 동래 부사는 용복이를 감옥에 가두었나이다. 이 년이나 갇혀 있다가 풀려나와 보니 울릉도 독도에는 조선 백성이 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이 장계에 적힌 대로 흥해 사람 유일부, 영해 사람 유봉석, 평산포 사람 이인성, 낙안 사람 김성길, 순천의 중 뢰헌·승담·연습·영률·단책, 연안 사람 김순립 등을 거느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지난 번 담판 지었던 성주들을 만나 따지어 꼼짝 못하게 하고 돌아온 듯하나이다.”
“그럼 그 장계에 적힌 대로 안용복이가 주장한 말들이 사실이란 말이냐?”
“그런 줄 아나이다.”
“저런! 참으로 무엄한 놈이로다.”
숙종은 놀랐다.
“의기는 가상하나 어찌 천한 백성이 나라일에 간섭하고 나선단 말이냐?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용복에 대해서는 중신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돈령부 영사 윤지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용복이 사사로이 다른 나라에 가서 나라일에 대하여 외람되이 말하였으니 저쪽에서 혹시 조정에서 시킨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용복의 죄를 따진다면 죽여야 함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대마도의 왜인들이 종전부터 기만해 온 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 관백과 직접 연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옵니다. 이제 안용복으로 말미암아 일본국과 통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대마도주는 반드시 두려워 겁을 내게 될 것인데, 용복을 죽였다는 소문을 그놈들이 들으면 그 길이 영영 막힌 것을 또한 기뻐할 것이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안용복을 처단하는 것이 법으로 볼 때에는 옳으나 계책으로 볼 때에는 잘못입니다. 법을 무시하는 것은 물
론 옳지 않으나 계책을 놓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게다가 또 섬에 통보까지 하고 왜관 밖에 목을 베어 매달아 보임으로써 교활한 왜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것은 제 발등을 찍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안용복이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일본의 왕이나 다름이 없는 관백의 글을 받게 되었고 더우기 그 동안 대마도주가 일본에 들어가는 조공물을 잘라먹은 사실도 이번 안용복에 의해 드러나게 되었으니 그를 죽이지는 말자는 것도 무리한 의견은 아니었다.
영의정을 지내고 영부사가 된 남구만은 이렇게 말했다.
“전하, 용복은 소신이 영의정으로 있던 계유년에 울릉도에 갔다가 왜놈들에게 사로잡혀 백기주에 들어갔다가 이 백기주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영영 조선에 속한다는 관백의 공문을 받았고 선물도 받았는데, 귀로에 대마도를 거쳐오다가 공문과 선물을 몽땅 대마도의 왜인들에게 빼앗겼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꼭 믿을 만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용복이 다시 백기주에 가서 공문을 제출한 것으로 보면 앞서 한 말이 사실인 듯하옵나이다. 용복이 금령을 무시하고 재차 말썽을 일으킨 죄는 물론 죽여 마땅하옵니다. 그러나 대마도 왜인들이 울릉도를 죽도라고 이름 붙이고 관백의 명령이라고 허투루 핑계를 대면서 우리 나라로 하여금 울릉도에 사람들이 왕래
하는 것을 금지하게 하려 했는데, 중간에서 농간질을 한 진상이 이번에 용복에 의하여 드러나고 말았으니 이것 또한 통쾌한 일이옵나이다. 용복에게 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 죽여야 할 것인가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천천히 의논하여 처리해야 할 것이옵고, 대마도에서 우리 조정이 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쌀과 천 그리고 종이의 분량을 마음대로 줄인 것은 자질구레한 문제이니 모두 지적하여 논할 것은 없사옵나이다. 그러나 울릉도와 독도에 관계되는 문제는 이 기회에 동래부로 하여금 대마도에 글을 보내어, 조목조목 명확히 밝혀 따져 묻고 통렬히 지적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습니다.”
“따질 것이 무엇이냐?”
숙종이 물었다.
“그 동안 일본 국왕의 이름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조선 어부들이 오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외교 문서가 안용복이 가서 알고 보니 대마도주가 일본 국왕의 이름을 도용했던 것이옵니다. 대마도주가 울릉도와 독도를 탐내어 거짓 문서를 보냈던 것이옵니다.”
“저런 못된 놈들이….”
“그러나 그 동안 그들이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하옵니다.”
“버릇을 고치어야지. 그 못된 짓을 어찌 알아냈느냐?”
“안용복이 다시 백기주에 가서 그 사실을 알아내었는데, 대마도주 의륜의 아비 종의진이 그 사실을 일본 왕에게만은 알리지 말아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안용복에게 빌었다 하나이다.”
“용복이란 자가 그만한 힘이 있었단 말이냐?”
“뱃사람이오나 일본말을 잘 하여 왜관의 일본 사람들조차 놀란다 하나이다.”
“그래, 이 일을 어찌해야 할꼬?”
“대마도 놈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놓고 다시 교묘하게 꾸며대면서 불복하는 말을 한다면 우리 나라에서 또 글을 보내어 물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들은 두 나라 사이에 있으면서 모든 일에 이렇게도 신용이 없단 말이냐? 용복은 풍랑에 떠내려간 하찮은 백성이고 국서가 없이 제 나름으로 공문을 만들었으니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조정에서 이제 사신을 보내어 그 실상을 조사해 보게 하려 하니 너희들이 어떻게 처리하려는가?’ 하는 내용으로 따져야 좋을 줄 아나이다. 그렇게 하면 대마도의 도주가 반드시 두려워하고 겁을 내어 죄를 인정하고 애걸할 것이옵니다. 그런 다음에 용복의 죄는 우리 나라에서 그 경중을 의논하여 처리하여도 늦지 않을 듯
싶사옵니다. 울릉도와 독도의 문제는 감히 왜인들이 다시 입을 벌리지 못할 것이옵고 그렇게 되면 교활한 왜인들이 우리를 떠보려는 잔꾀가 좀더 수그러질 것이니 이것이 최상의 계책이옵나이다.”
“용복을 살려 두잔 말이냐?”
“살려 두자는 말씀이 아니오라 그를 죽이기 전에 대마도 문제를 처리해야 될 줄 아나이다. 대마도주가 용복이 관리를 사칭한 죄를 말하고 항의할 것이 뻔하오나 그렇다고 우리가 용복을 단죄하겠다는 말을 써서는 아니되옵나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약점을 잡히게 되옵나이다. 용복을 쉽게 죽인다면 대마도주가 비록 시원스럽게 앙갚음한 것을 속으로는 다행히 여기더라도 겉으로는 우리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 매사에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용복을 구실 삼아 우리 나라를 깔보고 협박하는 태도로 나올 것이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울릉도와 독도 문제를 책잡아서 사람을 게속하여 보내올
것이오니 이를 어찌 견디겠나이까?”
그러나 좌의정 윤지선은 반대했다.
“남구만이 말한 최선의 계책이란 것도 경솔히 의논하기 어려울 듯 하옵니다. 용복을 죄를 주어 죽이지 않고서 대마도주만 나무란다면 마치 안용복이가 일본에 들어가 시비하고 싸운 것이 마치 조정에서 시키어 한 것으로 오해되어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나이다.”
숙종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윤지선은 더 목소리를 높혔다.
“그러하오니 안용복은 죽여 마땅하옵나이다.”
“아니되옵나이다. 안용복을 죽이면 우리가 우리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되어 끝없는 외교 문제의 약점이 되옵나이다.”
남구만이 반대하자, 지사 신여철도 거들고 나섰다.
1.
용복 일행 삼십여 명이 출발한 것은 4월 보름 새벽이었다.
출발은 순조로왔다. 그러나 점심 때부터 부는 바람이 어찌 거센지 배는 출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바람이 거세어 전번보다는 늦었지만 그래도 사흘째 되는 날에는 무사히 을릉도에 도착하였다.
잠시 쉰 후에 사람들은 어서 나무도 찍고 전복도 따자고 서두르는 것이었으나, 용복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어가며 만류하는 한편 일본 어선이 어서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과연 일본 어선 서너 척이 달려들더니 어부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용복은 유일부 이하 장정 수십 명을 앞세우고 마주 내려가면서 일본말로 호통을 쳤다.
“네놈들이 다시는 이 섬에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백기주 태수가 관백의 명령을 받아서 나에게 약속한 일이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놈들이 또 온단 말이냐? 이번에는 네놈들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다. 꼼짝 말고 섰거라!”
하고 소리치고는 유일부에게는 우리말로
“저 놈들을 묶으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부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가 본래 마쯔시마로 간다는 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
하고 변명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어선이 떠나갔다. 일본 어선이 떠나간 후 용복은 다시 그들을 추격하여 가보니 독도였다. 왜놈들은 그때 마침 밥을 짓고 있었다.
”이놈들! 네놈들이 마쯔시마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독도이다, 독도도 우리 나라다.”
“아니다. 마쯔시마는 일본땅이다.”
용복은 천둥치듯 소리쳤다.
“이 도둑놈의 새끼들아, 여기가 우리 영토 독도인데 너희 나라 마쯔시마라니 무슨 수작이냐?“
용복은 몽둥이를 휘둘러 솥을 부수면서 소리쳤다. 용복이 소리치는동안에 유일부와 그 동무들이 어부 십여 명을 잡았다. 나머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어떻게 할까요?”
“추격하라! 이번에는 일본 막부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해질 무렵에야 옥기도에 닿았다. 먼저 달아난 놈들이 가서 보고를 했는지, 해안에 벌써 수십 척의 배들이 뜨고 군사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배 위에서 용복은 칠릭으로 갈아입었다.
군사들이 가까와지자, 용복은 유창한 일본말로 외쳤다.
“나는 울릉도와 독도의 세금을 받아들이는 관리이다. 우리는 너희들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너희 성주를 만나 우리 섬인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므로 너희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다짐받기 위해서 왔다.”
하고 위엄을 갖추자, 저희들끼리 수근수근 의논하더니 대장격인 듯 칼찬 장수 하나가 나와 절을 하고 용복의 앞장을 서서 안내한다.
성채로 들어서자 도주는 마중을 나온다.
“멀리 오시느라 수고하시었소.”
“미리 알리지 못하고 온 것은 불례이오나, 귀 백성들이 무례하게도 우리 나라 울릉도와 독도에 함부로 드나들기에, 이것을 항의하기 위해 왔소이다!”
이 성주도 용복이 단도직입적으로 핵심을 찔러 말하니, 그의 위엄과 유창한 일본어에 눌리어 아무 말도 못했다.
이 말에는 대꾸도 못하고 용복 일행을 귀빈으로 모시었다.
“울릉도와 독도는 엄연한 우리 나라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귀국의 선원들이 함부로 침범해 오기를 한 두 번이 아니매 그냥 내버려 두매 양국간의 우의만 끊어지고 장차 수습하기 어려운 화를 불러 일으킬 염려가 있어서 우리는 이 문제를 담판 짓기 위해 왔소이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 백기주 태수에게 품하여 회답하리다.”
이래서 용복 일행은 관사에서 기다리는데 차일피일하며, 기다리다가 한달이 지났다. 용복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음을 선언하고 직접 백기주 태수를 만나기로 했다.
옥기도 도주는 용복 일행을 백기주 태수에게로 안내했다.
용복과 동행했던 이인성 선생은 사학과 문장에 뛰어나 대화를 나눌수록 모두들 감탄하였다. 게다가 관복을 입은 용복의 위풍이 워낙 당당하고 늠름한 데 눌리어 말청에는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용복은 마루가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조선과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창한 일본말로 알아듣게 타이르고 또,
“울릉도와 독도로 말하자면 우리 나라 영토임이 당연함을 귀국의 관백도 확실히 인정하고 있거늘 이제 와서 중간에 선 대마도주가 교활한 수단을 써서 관백의 이목을 흐리게 하고 있으니 나는 여기서 공연히 시간만 보낼 것이 아니라 직접 막부로 찾아가서 관백을 만나가지고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토론하여 설득하겠소.”
하니 백기주 태수는 당황하고 입이 얼어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벌써 허어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궁리에 잠긴다. 이 위인은 나이도 이제 칠십 가까이 늙고 세상 경력도 적지 않아서 수단이 놀라웠다.
“그러면 이 일은 양국간의 대사이니만큼 경솔히 다룰 수 없으니 역시 막부에 보고하여 그 회답을 기다려 처리하겠습니다.”
하고, 요령을 부려 여전히 시간만 지연시키려 했다. 용복이 더 참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며 천둥같이 호통을 친다.
“들어보시오! 우리 나라가 귀국에 보내는 무역물로 말하면 쌀은 열닷 말이 한 섬인데 중간에서 대마도주는 일곱 말을 한 섬으로 하여 여덟 말을 횡령하고, 포목은 삼십 척이 한 필인데 대마도주는 이십 척을 한 필로 하여 십 척을 횡령하여 착복하고, 종이는 그 길이가 십 장인데 그것을 삼 속으로 잘라서 막부로 보내어 나머지는 역시 착복하였소. 관백이 어찌 이 내용을 알겠소? 이 사연을 글로 적어 관백에게 올려주시오.”
꾀송거리기 잘 하고 수완좋은 태수도 이번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미 지난 번에 안용복의 인격을 알게 되었고 이번에 들은 이야기로도 대마도주의 행동을 비열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는 오래 생각지 않고 안용복의 청을 쾌히 승락하게 되었다.
“좋소! 장군께서 하시는 말씀이 틀리지 않고 우리 현에 속하는 대마도의 그런 불미스런 일을 나도 알고서야 외면할 도리가 없소. 그놈이 그리 비열한 줄 몰랐는데 나도 여간 불쾌하지 않소.”
태수는 자리에 앉더니 문방구를 준비하라 명하고 붓을 꺼내어 다듬기 시작한다.
“내 직접 쓰리다.”
이 때였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 지더니 신하 하나가 뛰어 들어와 태수에게 고한다.
“대마도주의 아비 종의진이 급히 뵈옵기를 청하나이다. 어찌 하올깝쇼?”
하는 말에 불쾌한 빛이 역력해져 버들눈썹 꼬리를 추켜올리더니
“호랑이도 제 말 한다면 온다더니…. 들여 보내라!”
하고 역정을 낸다.
이때 문이 열리고 황송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것은 용복이 만났던 종의륜과 얼굴이 흡사한 것이 영락없는 그 아비 종의진이었다.
“네 이놈!”
하는 태수의 호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의진은 벌써 무릎을 꿇었다.
“마침 잘 왔다. 너희 부자가 어찌 무사의 후손으로서 조상을 욕되게 하고 무사의 명예를 더럽힌단 말이냐? 하여 어찌하여 조선에서 관백에게 올리는 물자를 축내게 하며 종이와 비단까지 네 멋대로 잘라먹는단 말이냐? 그게 사실이냐?”
태수의 호통에 의진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며 통곡을 하다가 간신히 얼굴을 들며,
“형님!”
“듣기 싫다! 비열한 놈!”
“죽기를 작장하고 왔나이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하오나 관백께서 아시는 날이면 이제 어린 제 아들 의륜이마저 배를 갈라 죽을 것이 분명하오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참으로 은혜가 백골난망이옵니다.”
울음 섞인 간청에 진정이 넘친다.
태수는 대인이었다. 종의진이 애걸복걸하는 것을 보고는 분이 가라앉는지 태수는 용복의 눈치를 살피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번에는 오히려 용복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장군. 관백에게 글을 올리는 것은 그만둡시다. 제 잘못을 깨닫고 저렇게 뉘우치니 그럴 것까지야 없지 않겠소? 이제부터는 울릉도 문제에 대해서는 전과 같이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요. 만약 그렇지 않거든 사람을 보내어 내게 알려 주시오. 내가 책임지리다.”
이렇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간청하는 데는 못들어 줄 용복의 아량이 아니었다.
“좋소.”
용복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내가 대마도주 아비에게 한 가지만 다짐을 받아야겠소.”
하고, 종의진에게로 얼굴을 돌리었다.
“대마도주의 아비는 들으시오. 이제 돌아가는 길로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관백에게 올리어 허락을 받고 관백의 서계를 받아 우리 조선 임금께 올리시오.”
“예. 명심하리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다른 일은 다 없었던 걸로 하겠소.”
“이 은혜 죽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장군.”
백기주 태수는 용복의 손을 덥석 잡고,
“참으로 장부다운 분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한량 없소.”
하고 작별을 아쉬워했다.
“제가 드릴 말씀이오이다.”
태수는 정중한 작별 인사와 함께 여러 가지 많은 예물을 선사하였다.
용복은 옥기도와 백기주에서 받은 예물을 가져와 뢰헌 이하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자신의 본뜻이 장사에 있지 않음을 밝혔다.
뢰헌 이하 여러 사람들이 감격해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대장님, 참으로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나라에서도 못하는 일을 해내셨습니다. 참 장하십니다.”
“저희들 목숨 걸고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용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에 올라서야 용복은 철릭을 벗어 접어놓고 평복으로 갈아입고나서
“잘들 듣거라. 이 배를 강원도 양양에다 대어라.”
“양양으로 가십니까?”
“그렇다. 양양에 닿자마자 나는 자수할 것이다. 천한 백성이 무관을 자칭했으니 큰 죄가 아니냐. 내 죄를 내가 고할 것이다. 너희들은 죄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죄는 없으나 나와 동행했으니 고하기는 해야 할 것 아니냐?”
뢰헌이 불끈하고 나섰다.
“왜놈들한테 빼앗긴 울릉도와 독도를 다시 되찾아왔는데, 아니 임금도 못한 일을 해 왔는데 죄를 받으시다니요?”
점잖은 이인성도 애마른 목소리로,
“설마 죄야 받으시겠읍니까만…. 양반만 따지는 무능한 관리들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할 도리를 했을 뿐, 나라에서 내리는 벌이라면 참으로 홀가분하게 받을 것이오. 벌을 받아도 기쁘고 받지 않아도 기쁜 것은 내 땅을 도로 찾았기 때문이오.”
“상은 못내릴 망정 벌이라니요? 말이나 됩니까?”
뢰헌이 투덜거렸다. 뢰헌을 뒤따라 모두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용복은 껄껄 웃었다.
“상 받기 위해서 한 일도 아니요. 벌이 두려워 망설여 본 적도 없소.벌이 두려웠으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겠소? 그래서 내가 매일 이인성 선생께 일기를 쓰게 한 것이요.”
사흘이 지나서야 배는 양양읍에 닿았다.
“왜 양양으로 오셨습니까?”
“동래로 가야 마땅하지만 거기서 내가 잡히었다는 소문이 대마도에 들어갈 것은 뻔하지 않나?”
“그렇죠.”
“그렇게 되면 대마도주 놈은 조선에 각서를 보내려다가두 그만둘 수있지 않겠나.”
일행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양은 남북으로 긴 동해안 고을이지만 동서로는 함경도와 백리가 못 된다. 서북으로는 영 등성이에 막혔고 동남쪽은 태산 밑이어서 지세는 비좁으나 맑고 아름다운 고을이다.
“관가로 가자.”
배에서 내리는 그 길로 용복 일행은 양양 부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고하고 다른 증거품들과 함께 이인성의 일기까지 함께 바쳤다.
이인성의 일기를 자세히 읽어본 부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몇 가지를 물어본 후에,
“그래 너희들이 조선 관리 이름을 팔아 담판을 짓고 왔단 말이냐?”
하고, 눈이 뚱그래졌다.
“예. 그러하옵나이다.”
“너희 의기는 가상타만 무관을 자칭한 것은 죄가 분명하니 윗전에서 하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거라. 내가 강원 감사께 첩정(공문)을 올리리라.”
이래서 일행은 옥에 갇혔다. 보름이 지나서야 풀리어 나왔으나 퍽 인자하던 부사도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하명이다.”
하고 다시 일행을 묶어 죄인 수레에 태웠다.
용복은 일행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들 이 고생이니 미안하오이다.”
하고 용복이 제일 나이 많은 이인성에게 사과하자,
“고생이라니요!”
하고 이인성은 설레설레 흔들었다. 일행도 용복의 위인됨을 깨달은 터요, 오로지 울릉도를 찾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것을 직접 목격했으므로 용복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복을 위로했다.
“대장님, 용기를 내십시오. 상은 주지 못할 망정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하늘이 알고 있으니 기운 내십시오.”
일행이 한양으로 압송되어 가던 날이다. 낙산사를 지나 고갯마루에 올라 잠시 쉬는데 일행은 낙산사를 발 아래 깔고 동해 바다를 바라본다. 푸른 바다 흰 구름 사이로 삼봉산이 보인다. 울릉도였다.
“울릉도다!”
“삼봉산도 보인다!”
“울릉도 만세!”
“이제는 안심이다!”
하고들 저마다 한 마디씩 감격하여 외치는데 이인성 선생만이 고요하다. 용복은 이인성 선생을 바라본다. 수염까지 허어연 선생은 바위에 앉아 동해 바다를 고요히 내려다보기만 한다.
“선생껜 참으로 미안합니다.”
용복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인성은
“무슨 말씀이요.”
하고도 석상인듯 고요히만 있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더니,
동해 바다 흰 구름속
외로운 섬 울릉도
아무도 내 땅이라
돌아 보지 않을 때에
적굴 속 넘나들며
외로이 애쓰던 님
상이야 마다한들
이름이야 묻히리까?
상이야 못드릴 망정
한양압송 웬말인가?
하고 시를 읊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일시 모두 숙연해졌다. 일행만이 아니었다. 일행을 호송하는 나졸들까지 뚝머슴처럼 묵묵히 서서 이인성 선생이 읊는 시에 벅차오르는 분을 삭이는 듯했다.
“가자!”
하고 용복이 일어서서야 나졸들이 다시 움직이었다. 갈수록 고요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았다. 고개에 오르면 동해 바다가 망망하고 골짜기로 들어가면 물은 맑고 돌이 아름다왔다. 대관령 지릅고개를 넘어갈 때였다. 어디선가,
“안쌍! 안쌍!”
하는 소리에 나졸들이 주춤 선다. 눈을 들고 돌아다보니 조선옷을 입었으나 첫눈에 엔도와 사와꼬 오누이였다. 사와꼬는 남장을 했으나 용복의 눈에는 어색했다.
“오, 이찌랑! 사와꼬!”
“어떻게 알고….”
사와꼬가 보르르한 이마의 솜털을 바람에 날리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대답했다.
“종의진이 안상께 무릎꿇고 빌었단 이야기를 듣고 기뻐서 동래로 달려와 수소문해서 찾아도 소식이 없는데, 오라버니가 한양 갔다 오면서 소식을 들으셨지요.”
“이찌랑이?”
“내가 아는 기생들이 벌써 소식을 알고 있더군요.”
“너무나 분합니다.”
“안쌍께서는 일개 천민으로 책임도 없고 엄명을 받은 것도 아닌데 죽을 고비를 넘기시면서까지 나라에서도 내어놓은 섬을 도로 찾아오시었는데, 상은 나리지 못할 망정 이것이 무슨 일이랍니까?”
엔도는 마치 제가 당한 것처럼 분하여 소리치는데, 옆에서 사와꼬는 용복의 핼쓱해진 얼굴을 보자 훌쩍거리기부터 한다.
“울지 마라. 내가 천민으로 태어난 죄니라. 그러나 잃어버릴 뻔한 나라땅을 다시 찾은 기쁨에 비하겠느냐? 나는 여한이 없다. 내 한숨 잃고 나라가 산다면, 나라의 잃었던 땅, 조정에서 힘이 없어 내어줄 뻔한 땅을 다시 찾으면 대장부로 태어난 값은 한 셈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너무 억울합니다.”
“대마도주의 사악함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아무도 함부로 우리 울릉도에 들어오지는 못할 걸세.”
“참으로, 큰일 하셨습니다.”
엔도 오누이가 싸 온 음식을 바위 위에 풀어놓고 나누어 먹을 때 이 인성은 음식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무슨 생각에선지 이찌랑을 불러 귀엣말을 속삭였다. 이찌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인성이 속삭이는 대로 무엇인가 받아적는다.
용복은 엔도 남매에게 갈 길이 머니 다시 돌아가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용복 일행을 뒤따랐다.
2.
용복이 한양에 도착하자, 곧 의금부로 끌려갔다. 의금부에는 형조 삼당관(판서, 참판, 참의)이 버티고 앉아 있고 좌랑이 붓을 들고 앉아,
“안용복을 잡아들이라!”
하고, 소리쳤다.
용복은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입안이 타서 더운 김이 훅훅 끼치는데 그렇게도 힘이 넘치던 용복이었으나 탈진한 채로 끌려들어가 형틀에 꿇린 뒤에 심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상은 받지 못할 망정 죄수로 끌려나와 무릎을 끓으니 용복은 가슴이 터질 듯하였다.
“너는 우리 나라 일개 수병으로 나라의 지경을 넘어 일본으로 돌아다니며 흑작질을 하고 나중에는 감세관을 자칭하여 외국 관인과 항례하여 국가에 모욕을 끼치고 양국의 화목하고 우호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죽일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네가 외국을 교통한 것은 무슨 이유로 그리하였는지 털끝만큼도 숨기지 말고 일일이 직고하여라.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숨기거나 거짓을 아뢰었다간 죽기 전에 악형을 받으리라.”
한다. 이 말에 용복은 하도 억울하고 분하여 눈이 캄캄하고 기운이 막히여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네가 어인 연고로 일본에 가게 되었는냐?”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었다. 정신을 차리니 입안이 홧홧거림을 깨달았다.
용복은 입안이 타서 한참 있다가야 입을 열었다.
“소인은 동래에 사는 천한 백성이오나 참으로 떡고물 같은 땅과 바다 보물이 깔려 있는 울릉도 독도가 왜놈들 나막신짝 발자국으로 더럽혀지고 그 귀한 약초와 아름들이 대나무를 마구 베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냥 앉아 배길 수 없어서 울릉도를 갔다가 일본까지 가게 된 것이옵니다.”
“그럼 일본은 잡혀간 것이 아니냐?”
“아니오이다. 왜놈들이 당당한 우리 나라 토지를 침범하다가 나중에는 아주 차지해 버리려는 것이 분하여 먼저 번에도 이번에도 내 발로 일본에 다녀온 것이옵니다.”
“더 소상히 말해 보아라.”
“예. 저는 왜놈들의 더러운 나막신 자국이 울릉도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나이다. 동래부에 들어가 사또에게 말씀을 드려보기도 했나이다. 울릉도의 왜놈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씀입죠. 그러나 사또는 걱정 말라고만 하셨나이다. 저는 견디다 못해 뢰헌 등을 설득시켜 그의 배를 타고 울릉도로 떠날 수 있었나이다.”
배는 중간에서 큰 바람을 만나 수십 번이나 뒤집힐 뻔하였다. 하루 동안을 풍랑에 휩쓸려 어부들은 고기밥이 되는 줄만 알았다. 닻을 내리고 배 바닥에 엎드려 하루를 지내니 물고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틀을 꼬박 바다에서 보내고 나서야 울릉도는 보이기 시작했다. 동산포 선창에는 역시 큰 배 세 척이 묶여 있었다.
벌써 왜놈들이 배를 대고 마음껏 노략질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용복이 탄 조선배는 멀리 떠 있는데 달패가 탄 왜선은 동산포의 왜선이 묶인 곳으로 노저어 갔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일본 배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달패의 배가 동산포에 닿을 무렵 용복의 배는 동산포를 향해 급히 미끄러져 나갔다. 이십여 어부들이 힘껏 노를 저으니 배는 쏜살같다. 배는 바람처럼 미끄러지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해변으로 달려나오는 왜놈들 수백 명 머리 위로는 돌팔매 세례가 퍼부어졌다.
이때 일본 배 한 척에 불이 난 것이다. 왜놈들은 용복의 부하들이 던지는 돌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저희들이 타고 온 배에 불이 붙이 붙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배로 달려간다.
용복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대한 속도를 내어 달려간 용복의 배는 닿자마자 불을 끄러 달려가는 왜놈들을 뒤에서 몰아치는데 불을 지른 달패 쪽에서는 배들을 모두 육지에서 떼어놓고는 자갈 세례를 퍼부었다. 놈들은 앞으로 뒤로 쓰러지고 자빠지면서 다시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용복이 딱 버티고 서서 일갈 호령하였다.
“네 이 도적놈들아! 네놈들이 고향에도 못 돌아가고 물 속에 장사지내 주길 바라느냐?”
하고 유창한 일본말로 소리치니 놈들은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저희들이 타고 온 배는 접점 육지에서 멀어지니 발들을 동동 구른다.
“너희 대장이 누구냐?”
용복이 위엄있게 다시 소리치자 무사 하나가 용복 앞으로 나온다.
“잘 듣고 대답하시오.”
용복은 일부러 점잖은 말로 대장을 예우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남의 나라 섬에 들어와서 노략질을 일삼는단 말이요?”
용복이 이렇게 묻는데 대장이라는 무사는 멀어져가는 배만 바라보며
“왜 남의 배는 가져가는 것이요?”
하고 몸이 달아 묻는다.
“이놈! 네가 네 죄를 모른단 말이냐? 너희 도적놈들은 이제 이 섬에 갇히고 말았다. 이제 곧 조선에서 큰 군사가 온다. 너희들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묶어놓으라는 명을 받고 우리 선발대가 온 것이다.”
대장과 왜적들은 얼굴부터 새파랗게 질렸다.
대장은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용복에게 사정을 한다.
“그럼 어떡해야 되겠소? 우릴 고향으로 보내주시오. 우린 여기서 살려고 온 것도 아니고 소문에 물산이 좋다고 해서 오늘 새벽에 도착했소. 물산을 캔 것도 아직 없소. 우리를 다시 돌아가게만 해 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왜놈 대장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정 그렇다면 한 가지 약조를 해라.”
“무엇이옵니까?”
“너희 백기도주를 만나러 가는데 네가 안내할 테냐?”
“하겠습니다.”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무사의 약속이니 믿겠소. 우리 양국은 이웃나라로서 작은 문제로 다툴 것이 아니라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여 선린의 우의를 돈독히 해야 할 것이요. 그러기 위하여는 당신들과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대마도주를 만나 의논코자 하니 안내하시오.”
하고 부드럽고 점잖게 타일렀다.
용복은 어둔에게 조선말로,
“배는 돌려보내고 자네하고 나하고는 대마도로 가세.”
하였다.
“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사람 두려워 말게!”
“대장님이 무슨 벼슬아치도 아니고 무슨 권한을 위임받은 것도 아닌데…. 나중에 신분이라도 드러나면 더 큰 화를 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게 생각이 있네. 그냥 따라만 오게.”
“이거야 참. 그렇다고 대장님 혼자 보낼 수도 없고….”
어둔은 겁이 나서 따라갈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 혼자 갈 수야 없지 않나. 걱정 말고 따라오게.”
왜놈 대장은 거듭 사과했다. 그저 호기심에 와 본 것뿐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나절 뜯고 베고 모아온 것을 보여주었다.
대장이 내보여 주는 물산이라는 것은 첫째로 복숭아였다.
“이렇게 큰 복숭아는 내 평생 처음이요.”
복숭아는 어린아이 머리 만하였다.
“저것 좀 보우.”
왜놈 대장이 소리쳤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니 하늘을 가린 대나무 숲이 보인다.
“무슨 대가 저렇게 굵을까?”
“한 아름은 되겠지?”
해서 용복도 돌아보니 안쪽으로 허옇게 대를 베어 간데다가 그 자리에서 가지를 다듬어 놓은 것까지 더부룩히 쌓여 있었다.
용복은 왜놈 대장의 약속을 믿기로 했다. 용복은 왜선을 다시 대게 했다. 점심을 먹고나서 어부들은 남겨두고 용복과 어둔만이 왜장의 안내를 받아 놈들의 배에 올랐다.
일본으로 가는 길에, 그의 안내로 오후에는 독도(독도)에 들러보았다. 전복 해삼 도미 광어 연어만이 아니라 해물은 무진장이라는 것이 잠수부들의 말이었다. 이튿날은 어린아이 머리 만한 복숭아를 떨어 싣고 굵기가 한 아름이 넘는 대도 여나무 대 잘라 실으니 배가 다 차서 사람 탈 자리가 비좁았다.
이래서 배는 보내고 어둔과 함께 왜놈 배에 오른 것이다. 어둔은 두려운 듯 눈을 한군데 두지 못하고 주위를 살피는데 사무라이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자꾸 묻는다.
“당신은 조선에서 무얼 하오?”
“무관이요.”
그러자 무사는 용복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무관이면 복장이 어찌 그러하오?”
“무관이면 섬에 바람쐬러 오는 데도 정장하는가?”
하니 사무라이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 하이…”
를 되뇌인다.
“이름이 뭐요?”
“겐타로라 합니다”
“겐타로… 난 안용복이요.”
“예.”
“난 박어둔이요.”
“예.”
용복은 능통한 일본말로 사무라이와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이내 친해지고 말았다.
”첫 기착지가 어디요?”
용복이 이렇게 물으니 그 사이 친해진 겐조라가 대답했다.
“오랑도요.”
“오랑도? 얼마나 크오?”
“울릉도보다는 크오.”
“그래 그 도주는 누구요?”
“도주는 마사오라 하는데 이제 스물 일곱이라요.”
“어리구먼.”
“그렇소. 작년에 그 아비가 죽어 성주가 되었소.”
“성미가 급하겠군!”
이것은 용복이 그저 넘겨 짚어본 것이었다.
“어떻게 아오?”
하는 말에는 옳다! 싶어,
“내가 일본을 모르는 줄 아오?”
하고 사무라이의 기를 먼저 꺾었다.
해가 점점 저물어가는데 바람 또한 그치므로 배는 고요해졌다.
노을이 지고 나자 어둑어둑해지는데 머얼리 블빛이 여러 개 보이기 시작했다. 섬이 가까워지자 푸른 산이 사면을 막고 가운데에 평야가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섬을 감싸고 있는 푸른 안개가 시원스럽고 맑으며 아름다왔다.
“저게 무슨 섬이요?”
“남도요.”
3.
닷새만에 도착한 곳은 오랑도라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날씨는 동래보다는 더웠다. 섬인지라 거의가 바다를 발판 삼아 생계를 꾸리는 듯 육지에는 농부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팔과 발이 다 드러나는 옷들을 입었다.
겐타로가 앞장을 섰다. 대마도는 둘째요, 이 섬의 책임자(도주)에게도 울릉도와 독도에 이곳 백성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겐타로를 앞장세웠던 것이다.
“여기가 어딥니까?”
어둔이 용복에게 물었다.
“오랑도란 섬이라네.”
두어 시간을 걸어가니까 성채가 보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성문 앞에서부터 창을 든 군사들이 마주보고 서서 창과 칼을 받들었다. 성문에는 울긋불긋한 깃발까지 세웠다.
겐타로가 먼저 들어가 무어라 했는지 다시 나오더니 절간에 기다리고 있는 용복과 어둔에게로 다가왔다.
“성주께서 모셔 오라십니다.”
성문 앞에서부터 군사들이 길게 무장하고 섰는데 무장부터가 조선하고는 판이하게 달랐다. 군사들이 무장한 것을 보니 조선 군사들하고는 차이가 많았다.
조선인들은 궁술에 있어서 뛰어났다고는 하지만 다른 무기에는 너무 서툴렀다. 조선의 무기는 모두 철로 만들어진데다가 짧고 무디며 쉽게 휘어졌다. 창과 장대의 접합 부분에는 창 끝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장대를 끼우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창은 장대에 꽂혀 있고 그 부위에 띠를 감아서 훨씬 더 안전하고 고장나는 일이 적으며 창신은 강철로 날이 서 있다.
조선의 기병들은 무거운 삼지창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에는 무시무시하지만 너무 무거워 거의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도 휘두를 수가 없어서 적을 죽이지 못한다. 조선의 갑옷이라는 것도 대부분 쇠와 가죽으로 보기 좋게 장식되어 있지만 왜병의 갑옷에 비하여 움직이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쉽게 공격하기 어렵다.
그러나 왜병의 갑옷은 거친 사슴가죽의 뒷면에 비단과 쇠로 장식되어 있으며 소매도 쇠사슬로 장식되어 있다. 보병은 양측 모두가 쇠사슬과 철판을 조합하여 만든 갑옷을 입었다. 조선의 병사들은 날이 넓은 칼이나 날이 비스듬한 창이 없기 때문에 기병대를 만나면 거의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왜군들은 수염을 말끔히 깎고 귀가리개와 면갑이 달린 튼튼한 투구를 쓰지만 조선의 병사들은 면갑이 없이 앞이 확 트인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수염이 텁수룩하여 ‘털난 야만인’이란 별명을 들었다 .
조선 병사들은 화약의 사용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배합이 잘 되지 않아서 잘 터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조선인들은 대나무로 만든 노를 성위에서 쏘았는데 사정거리는 짧았다.
그러나 왜놈들은 가벼운 놋쇠로 만든 대포를 사용하여 성벽 위의 수비대를 신속하게 제거하고는 길고도 가벼운 대나무 사다리를 이용하여 성 위로 기어올라갔다. 어찌나 가벼운지 들고도 뛸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엄을 갖추어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였다. 사무라이 하나가 앞장을 서고 나머지는 뒤따르는 것이었으나 그들이 위엄으로 누르려 하는 것을 알게 되자 용복은 더욱 태연해졌다.
성채 안으로 들어서자 다락같은 누락이 섰는데 그 안에 성주인 듯, 조선의 옷고름 없는 두루마기와 비슷하나 품이 넉넉하고 아래는 치마같은 것을 입은 젊은 남자가 단상에 앉아 있었다. 첫눈에도 씨름꾼같이 뚱뚱한데 눈은 가늘고 길었다. 젊은 도주였다.
“어서 오시오. 원로에 얼마나 곤하시요?”
용복이 앞에 섰던 사무라이에게서 몇 마디 귓속말을 듣고 나서야 거만하게 일어선 도주는 웃음띤 얼굴로 맞이했다.
“이렇게 만나뵈니 반갑습니다.”
용복은 예를 갖추어 정중히 답례했다.
둘러보니 좌우에 칼 든 놈, 창 든 놈, 몽둥이 든 놈이 즐번히 늘어선 가운데로 안내하는 꼴이 제 딴에는 한껏 위엄을 부려 용복 일행을 굴복시켜 보자는 속셈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린 도주는 말만 이렇게 할 뿐 서 있는 용복을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것도 한 계단 밑에 서 있는 용복을 바라보고만 있다. 용복은 어둔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절대로 비굴해선 안 되네. 당당하게.”
“예.”
그러나 어둔은 겁을 먹은 얼굴이다.
“당당해야 이기네!”
이때 앉아 있던 도주가
“이리 앉으시오.”
얼마 만큼 떨어져 낮게 앉으라고 하니 안용복이 앉지 않고 갑자기 유창한 일본말로 지붕을 날려버릴 듯 벽력같은 소리를 날리었다.
“우리는 외국 사람이오. 일본 사람이 아니오. 도주가 우리와 만나자면 외국 사람으로 대접해야 할 것이 아니오? 마치 자기 부하처럼 우리를 대접하니 이 무슨 예절이란 말이오? 일본 예절은 이렇단 말이오? 아무리 배운 바가 없다 한들 이렇게 무례할 수 있단 말이오? 이런 예절에 없는 대접은 받을 수 없소.”
순간 둘러섰던 병졸들이 의외의 고함 소리에 놀라 당황한 빛이 역력한 도주의 눈치를 살피고는, 와르르 덤벼들어 용복을 강제로 앉히려 하자 용복은 또다시 추상같이 대청이 쩡! 하고 울리도록 호령했다.
“이놈들아! 우리는 너희를 그래도 이웃으로 생각하고 두 나라간의 일을 의논하자고 찾아온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야만스러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우리 두 사람이 맨몸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한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으로 인해서 두 나라 사이에는 당연히 말썽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 섬도 편안치는 못할 것이다. 피차간 좋은 말로 의논해서 조용히 처리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젊은 도주는 긴장하며 일어섰다. 눈빛이 가늘게 떨리었다. 용복의 논리적이고도 정당한 주장에 눌리어 두려움이 없지 않았고, 둘째로는 그의 유창한 일본어와 그 의연함과 당당함에 감동되어 도주의 오기는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장군! 장군은 과연 대장부요!”
“…….”
“내 평생에 당신같은 남자다운 남잔 처음 보았소!”
도주는 연해 용복이 정말 사내답다고 추켜세우면서 친히 내려와 웃는 낯으로 용복의 손을 잡고 올라와 책상을 격하고 마주 앉았다.
“죄송합니다.”
도주는 태도가 바뀌어 공손해졌다. 용복을 추켜세우면서 간신히 제 체면을 차리었다. 용복에게 대하는 태도가 칙사 대접으로 바뀌었다. 도주는 용복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고 적당히 용복을 돌려보내자는 계획이었다.
이튿날 아침 용복은 도주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따졌다.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나라에서는 하루 뱃길이요. 귀국에서는 닷새나 걸리니 그것이 우리 나라 섬이란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명백하지 않소. 우리가 울릉도 독도를 드나드는 것은 우리가 우리 땅을 오고가는 것이지만 귀국의 어부들이 울릉도 독도를 출입하는 것은 남의 나라를 침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요? 이 섬들이 우리 나라에 속한 지는 천년이 넘었소. 이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니, 다시는 이런 불법의 침범을 하지 않도록 귀국의 백성을 잘 단속하기 바라오.”
안용복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도주란 자도 할 말이 없었는지,
“그 문제는 실은 내 권한도 아니고 내 소관도 아니요.”
“그럼, 누구의 권한이요?”
“그것은 우리 상관인 백기주의 태수이니 그 어른을 만나 보시오.”
“백기주? 백기주가 어디요?”
“여기서 한나절 길이요. 헌데 어디서 그런 일본어를 배우셨소?”
“부산포에 엔도 이찌랑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이와 그 누이한테 배웠소이다.”
“얼마나 배우셨소?”
“한 이년 배웠소이다.”
“이 년 배운 일본어가 그 정도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용복은 엔도 이찌로와 그 누이 사와꼬가 떠올랐다.
그들을 보면 왜놈들이 밉지 않았다. 그렇게 착하고 선량한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문득,
‘사와꼬….’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무엇으로 이 은혜를 갚는단 말인가?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아닌가? 어떻게든 은혜를 갚을 길이 있겠지.
도주는 첫째, 안용복의 정당하고 떳떳하며 명분있는 주장에 눌리었고 둘째로는 그의 유창한 일본어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산책을 나가서다. 마을길을 걷는데 저만큼 떨어진 언덕길 위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줄 서듯 서 있다. 그들은 용복 일행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뭐라 하는데 멀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
용복이 일행이 신기한 듯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젖을 내어 가리키며 오라는 시늉을 한다. 그래도 가만히 서 있자 허어연 볼기를 내어 두드리며 오라는 시늉을 한다. 그래도 듣지 않자 치마를 들썩들썩해 밑을 보였다.
“뭐하는 짓들이요? 저 여자들은?”
어둔이 겐타로에게 물었다.
“유나라는 여자들이요?”
“유나? 그게 무슨 뜻이요?”
“몸을 파는 여자들이요.”
“기생이로군!”
어둔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지만 기생두 체통이 있는 법이지 그래 백주 대낮에 저게 무슨 꼴이람.”
용복은 속이 뒤틀려 산책을 중단하고 돌아와 버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데 도주는 아예 울릉도와 독도에 대하여는 말머리도 꺼내려 하지 않았다. 안용복이 그저 조용히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도주가 예의를 갖추었기에 용복은 순순히 응하였다.
이날 밤 어여쁜 여인 둘이 용복의 방으로 들어왔다.
“누구요?”
용복은 놀라 물었다.
그러나 여인들은 생글생글 웃기만 하다가
“누구냐고 묻지 않소?”
여자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으며,
“저희 성주께서 편안히 모시라는 분부를 받잡고….”
“말씀은 고맙소. 그러나 사양합니다. 돌아가시오.”
용복은 도주의 잔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리에 들었으나 쉬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일은 잘 마쳤으나 내일 만나게 될 백기주의 태수란 어떤 놈일까? 오늘은 도주가 아직 어리고 단순한 데다가 따지고 보면 제 권한 제 소관이 아니어서 쉽게 응락했지만 태수란 놈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묻혀 몸만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어둔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해가 이미 밝아 있었다.
이날 도주는 안용복과 박어둔을 제 상관인 백기주 태수에게로 보내주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배를 탔다. 하루가 더 걸리어 백기주에 닿았다. 백기주의 태수는 환갑이 되어 보이는 노인인데, 무슨 속셈인지 처음부터 용복 일행을 귀한 손님으로 만나 대접을 잘할 뿐 아니라, 많은 은덩어리를 주며 달래는 것이었다.
“실은 우리 관백이 울릉도를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대마도주가 그러는 것이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마도주의 말은 귀국에서 내버리는 섬들을 우리가 좀 이용하겠다는 것이지요.”
“내버리는 섬이라니 그건 얼토당토 않는 말이지요! 우리 조선은 그 섬을 내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선 사람이 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근 백여 년을….”
“그것은 사실을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요. 이 두 섬은 512년 신라에 귀속해서 우리 나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고려를 거쳐서 조선에 이르는 동안 어느 때에는 백성들이 그 섬에서 사는 대로 내버려 두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에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그 섬을 비워 두기도 했지만, 이 섬들은 언제나 우리 나라의 판도에 들어 있었습니다.”
태수는 연싹싹한 배처럼 사근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그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기왕에 귀국 백성이 살지 않고 있는 그 섬이라면 우리가 이용해도 좋지 않소?”
“그렇지 않습니다. 살든 안 살든 그것은 조선의 땅이요. 아무리 섬이지만 남의 땅에 일단 들어오려면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지 무단히 침범하는 것은 비법이요.”
용복은 이 노인의 사근거리는 목소리부터가 싫어 단호하고 분명하게 못박았다. 그러나 태수는 끈질기게 회유하는 것이었다.
“이런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켜서는 두 나라가 서로서로 화목하게 지내자는 본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거든 말씀만 하시오. 내 대마도주에게 기별하여 얼마든지 당신의 소청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요.”
하고 늙은 태수가 내어미는 것은 주먹보다도 더 큰 은덩어리였다.
안용복은 비로소 울릉도 독도를 가지고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대마도주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선사한 은덩이를 도로 돌려주면서 용복은 태수에게 강경하게 청하였다.
“나는 우리 조선 강토인 울릉도와 독도를 따지러 온 것이지 이러한 은덩어리를 탐내어 온 것이 아니요. 내가 은덩이나 금덩이를 요구한 것이 아니요, 내가 청하는 것은 다만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 땅인 울릉도에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기 위해 온 것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하여는 말도 하지 마시오. 그보다는 차라리 전과 같이 화의를 지켜 이웃한 나라 사이의 우의를 지키는 것이 옳은 도리일 것이요.”
“옳은 말씀이요.”
“귀국의 무사들은 힘만 있다고 무사가 아니요, 의리가 있어야 무사인 줄 아오.”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의리란 무엇이요? 의리란 옳은 일을 지키고 행하는 게 아니겠소?”
“그렇구 말구요!”
“그래서 난 귀국의 무사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바이요. 그러니 강호 막부에 연결하여 다시는 이런 내분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하고 글로써 회답을 받아 주시오.”
“…….”
태수는 용복의 위인됨을 비로소 깨닫고 달래 보아도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우기 그가 용복의 마음을 움직여 볼 수 없음을 알고 오히려 그의 대장부다운 기개에 감동되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고 쾌히 승락을 했다.
“며칠만 기다리시요. 기다리시는 동안 쉬시면서 우리 섬 구경도 하시오.”
하고 부하 중에 그중 얼굴이 번듯한 무네라는 청년을 불러 용복 일행을 안내하라고 일렀다.
청년이 처음 안내한 곳은 온천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뜨거운 김이 눈앞을 가린다. 숨이 탁 막힌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람들이 옷을 벗고 입고 하는데 안쪽에서는 우물같은 탕이 떡치는 집에서처럼 김을 뿜어내고 있다. 눈앞에 더운 김이 사라지며 자세히 살피던 용복은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이요!”
“예?”
옷을 막 벗으려던 무네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게… 이런… 이런 해괴한….”
그제서야 어둔도 알아챘는지,
“세상에 이게 무슨 짓들이요?”
하고 놀란다.
안쪽에 보니 남녀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벌거벗은 채 서로 웃으며 지껄이며 희희락락하고들 있는 것이 아닌가?
용복은 얼른 뛰어나왔다. 어둔도 뒤따라 나왔다.
무네도 놀라 따라나오며,
“왜들 그러십니까?”
하고 의아해 묻는다.
용복이 두눈을 부릅뜨고 따졌다.
“왜라니?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남녀가 벌거벗고 희희덕거린단 말인가?”
“예?”
무네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리며 섰다. 그러자 용복은 더 큰소리로 꾸짖었다.
“남녀가 더불어 벌거벗고 희롱하면서도 괴이히 여기지 않으니 금수와 다를 바가 무어냐? 돌아가자!”
이튿날은 뱃놀이를 가자 하였다.
용복은 어둔과 함께 다시 무네의 안내를 받으면서 해안가로 가서 뱃놀이를 했다. 훈훈한 남풍에 돛을 달았다. 바다는 외로워 보였다. 외로운 것은 바다만이 아니었다. 외로워 몸부림치는 파도를 보며 멀쩡한 섬을 눈 버언히 뜨고 빼앗기는 조선의 외로움이었다.
해안으로 겹겹이 둘러선 산은 짙푸르고 고송과 성긴 귤나무들의 숲이 모양이 좋은데 배는 고요한 바다를 가르며 미끄러진다. 배에 같이 탄 왜인들이 용복에게 시를 지어 달라고 했다. 용복이 “나는 시를 지을 줄 모르오” 하고 대답했더니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웃어보이고 만다.
글을 모르는 용복이었다. 자세한 연유는 모른다.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린 증조부의 서자라는 것, 그리고 세상을 숨어 피하며 살았다는 것, 그것이 용복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글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용복이 일본어를 열심으로 익힌 것은 천자문도 배우지 못했으니 일본어라도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글이야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제 땅 제 나라는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요, 특히 내 바다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왜 조선에서 오신 분이 시를 못 지으십니까?”
“글을 안 배웠으니.”
“그렇습니까?”
“전 조선에선 다 글을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내하는 청년의 말이었다. 용복은 잠시 우울하였다. 그들이 권하는 대로 배 위에서 술도 마셨다. 술은 용복이 마셨으나 취한 것은 바다인 듯 파도는 점점 높아졌다.
이날 돌아오는 길에서는 또 끔찍한 일을 두 가지나 목격하였다.
하나는 얼굴에 발그레 화장을 하고 서서 여인들과 지껄이는 남자들이 있어서,
“광대요?”
하고 물었더니 안내 청년은
“아니요, 그 사람들은 몸을 파는 남자들입니다!”
“무어요!”
이래서 한번 놀라고, 산등성이를 다 올라와서는 한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발을 멈추었던 것이다.
“세상에! 누가 저리 슬피 울까?”
용복이 이렇게 궁금해 하자, 안내하던 청년이
“울어도 시원찮지요!”
하고 표정이 어두워진다.
“무슨 말이요? 그게.”
“너무너무 가난해서 제 아기를 낳자마자 죽인 거랍니다.”
“뭐라구? 누가?”
“지가 난 애길 지가 죽이는 거지요.”
“왜? 왜 죽여?”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게 없으니 그렇지요.”
“그렇다구 낳자마자 죽여?”
“그게 어디 한두 명인가요?”
“세상에… 그래 죽이면… 어떻게 죽인단 말이요?”
“죽이는 방법이야 간단하죠. 눌러 죽이고 굶어 죽이고 숨을 막아 죽이고 허리 엉덩이 혹은 무릎으로 눌러 죽입니다. 질식시켜 죽일 때에는 어미가 걸레로 입을 막거나 입과 코에 젖은 종이를 붙이고…….”
“그게 말이 되오?”
“한두 집인가요? 어디….”
“그렇게 간단하단 말이요?”
“그렇답니다.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싶을 때엔 산파를 시키지요. 그래서 그런 산파를 귀신이라고 해서 귀파라고도 부른답니다.”
“고려장 소린 들었어두 원….”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아이가 일 년에도 수만 명이랍니다.”
“세상에….”
그들은 모두 우울하였다.
열흘이나 지나서야 강호의 막부에서 서계가 왔다. 서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막부의 관백은 이제, 동해 바다의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속도인 만큼 이제부터는 일본인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타일러 경계하여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
5.
용복은 기뻤다. 작은 섬이나마 증조부께서 지키셨던 땅, 더우기 왜놈들의 나막신으로 더럽혀진 땅,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게 되었으니 기쁘기 한량 없었다.
“참, 큰일하셨습니다, 대장님!”
간밤 꿈 때문에 우울해 있던 어둔도 뛸듯이 기뻐하였다.
“할일을 했을 뿐이네!”
용복은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튿날 해가 밝기를 기다려 왜인들이 부산포를 왕래하는 배를 타게 되었다.
배가 나가사끼에 정박했을 때였다. 관리인듯 싶은 칼잡이 두 사람이 용복이 앞에 정중히 예를 하더니,
“저희 도주께서는 안 선생 일행이 일본에 오신 것을 알고 바쁘시지 않으시면 모시어 인사를 올리시기 원하십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도주께서 어찌 아셨답니까?”
“그걸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용복은 망설였다. 어둔도 도주가 초청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 하였다. 이 도주에게서도 두 섬의 문제를 이해시키고 각서를 받는다면 더 큰 성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가사끼의 성채는 대궐처럼 웅장했다.
도주는 정원까지 나와 반색을 하며,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
하고 살살거리며 웃었다. 용복은 사내답지 않게 실웃음을 웃는 그가 어쩐지 싫었다.
“초청해 주시니 고맙소.”
“조선에도 이런 대나무가 많습니까?”
“많았는데 당신네 일본인들이 많이 베어갔지요.”
“허허허….”
재미있는 대화가 될 것이 즐겁다는 웃음이었다. 머리는 다 벗어지고 뚱뚱한데다가 수염이 유독 길었다.
차 대접을 하고나서 도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백기주 태수한테서 소식을 들었소. ”
“그러셨읍니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요.”
도주는 술잔을 용복에게 권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소. 태수, 사실은 이 대마도도 조선 땅이요!”
“뭐라구요?”
“역사를 보시오. 대대로 우리 조정의 은혜를 받아오지 않았소. 지금도 해마다 쌀을 내리고 무명을 보내지 않소? 그게 다 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이라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요. 대마도주가 이백칠십 년 전에 세종조에 와서 한 말이 있소. ‘우리 대마도 백성에게 조선 영토 안에도 주와 군의 예에 따라, 명칭을 정하고 윤허하여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대마도야 조선에서 훨씬 가깝고 왜국에서야 네 곱절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요.”
“위치로는 그러하오.”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 때에 초무관으로 일지도에 파견되었던 강근선의 보고를 보면, ‘대마도는 토지도 좁고 또 척박하여 농업에 힘쓰지 않게 되니 기근을 면하지 못하여 도둑질을 멋대로 하고 그 마음도 포악합니다. 더우기 일본 왕의 명령이 미치지 않아 그 중간에서 망령되게 자존하면서 포악하오나 모두들 도서를 받고 우리 조정에 귀순하기를 원하오니, 청하건대 이 섬의 두목들에게 예전같이 내왕하게 하고 이따금 양식이나 주고 도서를 주어 뜻밖의 우환을 대비하게 하소서…’라고 보고한 적이 있소.”
용복이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어 어린 아이 타이르듯 설명하자 태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었다. 그리고는 순순히,
“나도 글을 한 장 쓰리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양국 우호 친선에 큰 도움이 되겠소.”
“그러면 백기주 태수가 어떻게 썼는지 그 글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용복은 백기주 태수의 글을 꺼내 주었다.
글을 건네받으면서 도주는 태도가 돌변하여 좌우에 늘어선 사무라이에게 소리쳤다.
“이 두 놈을 묶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무라이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준비했던 밧줄로 용복과 어둔을 묶었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열 명인들 당하지 못할 용복이 아니었으나 그 순간을 준비하고 덤벼드는 여섯 명의 무사를 당할 도리는 없었다.
“이게 무슨 비겁한 짓이냐?”
용복은 벽력같이 소리쳤다. 그러나 도주도
“어리석은 놈! 순진하기는….”
하고 야실거리는 것이었다.
“네가 이러고도 사무라이란 말이야?”
분을 못 삭여 소리쳐 보았으나 도주놈은 이번에는 재밌다는 듯 소리높여 웃을 뿐이다. 용복은 후회했다. 둘은 죄인이 되어 갇히고 말았다. 반항해 보았자 소용이 없음도 알았다. 오히려 간수들은 용복의 인품을 알아채고는 오히려 걱정해 주었다.
“왜놈들이 간교하다더니 참으로 그렇구나.”
하고 용복은 탄식했다.
“그래 두번째 일본에 가게 된 것은 어떤 연고냐?”
“서계를 빼앗긴 것도 분한 참에 동래 감옥에 갇혀 있자니까 다치마나가 이번에는 울릉도 독도를 실제로 차지하고 나서 외교문서로까지 일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예조의 문구를 고치기 위해 동래 부사를 윽박지르고 협박하며 별별 수단을 다 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중 뢰헌을 만나 몇 년 전에 울릉도에 갔다온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또 이 섬에 해산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게 언제냐?”
“달포 전이었나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좀더 소상히 일러라.”
심문관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을 뿐아니라 목이 타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는 샘물을 떠오라 하여 바가지째 건네 주었다.
“그래서 뢰헌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영해의 뱃공 유일부 등과 더불어 떠나서 그 섬에 닿았습니다.”
전에 빼앗은 왜선을 타고 간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주가 되는 산은 세 봉우리가 삼각산보다 높고 남쪽에서 북쪽까지는 이틀길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도 그러하였습니다. 산에는 잡목과 매, 까마귀, 고양이가 많고 왜인의 배도 많이 와 있었습니다. 뱃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기에 제가 말을 꺼내기를 ‘울릉도는 본래 우리 나라의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할 수 있는가? 너희들을 다같이 묶어야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뱃머리에 올라서서 크게 호령하고 을러메었더니 왜놈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본래 송도에서 사는데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하려고 어쩌다 나왔으니 이제 본고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본 고장이란 어디를 말하느냐?”
“송도라 하였나이다. 그래서 송도가 어딘가 하고 뒤따라가 보니 바로 독도였나이다.”
“독도라?”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한참 가서 있는 두 개의 작은 돌섬이옵니다. 송도란 왜놈들이 마쯔시다라고 제멋대로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소나무 송짜를 씁니다. 바로 독도이고 이 역시 우리 나라의 땅이기에 ‘너희들이 감히 여기서 산단 말이냐?’ 하고 둘러보니 왜놈들이 한창 솥을 쭉 걸어놓고 물고기 기름을 졸이기에 저는 몽둥이로 쳐부수며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놈들은 주섬주섬 거두어 배에 싣더니만 돛을 올려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길로 배를 타고 좇아갔는데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나서 표류하다가 일본 옥기도에 닿았습니다. 도주가 들어온 까닭은 묻기에 저는 ‘전년에 내가 여기에 들어와서 울릉도와 독도 등을 조선의 지경으로 확정하였고, 관백의 문서까지 있다. 그러나 본국에서는 일정한 규정이 없다하며 이번에 또 우리 나라의 지경을 침범하였다. 이게 무슨 도리인가?’ 라고 호통을 치고 ‘백기주에게 통보해야 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말은 어디서 배웠고 그 도주들이 한낱 어부인 너에게 그리도 고분고분하더냐?”
“일본어는 부산포 왜인들에게 배웠고 이번에는 천릭을 만들어서 울릉도 독도 감세관이라 하였나이다.”
“감세관?”
“예. 그런데 오래 되어도 소식이 들리지 않기에 저는 격분을 참을 수 없어 배를 타고 곧추 백기주로 가서 ‘울릉, 독도 두 섬의 조세를 맡아보는 장수’ 라는 거짓 호칭으로 사람을 시켜 본도에 통고했더니 사람과 말을 보내어 맞아주었습니다. 저는 푸른 천릭에 검은 베갓을 쓰고 가죽신을 신고 교자를 탔으며 여러 사람들도 모두 말을 타고 그 주로 같이 갔습니다. 도주와 대청 위에 마주 앉고 여러 사람들도 모두가 중간 섬돌에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그래서?”
“도주가 ‘어째서 들어왔는가?’ 라고 묻기에 ‘전날 두 섬의 문제로 문서를 받아 가지고 간 것이 명명백백하다. 그런데 대마도 도주가 문서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자주 심부름군을 보내어 법도 없이 함부로 침해하곤 한다. 내가 이제 관백에게 글을 올려 죄상을 낱낱이 말하려 한다.’ 라고 하였더니 도주가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인성을 시켜 글을 꾸며 제출하게 하였나이다.”
“이인성은 누구냐?”
“울산 사는 선비이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그 도주는 간교하여 태도가 달라졌나이다. 조선에서 강호 관백에게 보내는 쌀과 피륙과 종이를 중간에서 잘라 먹고 있는 것을 소인이 다 알고 있으며 이것도 관백에게 고하겠다고 하니까 그 아비 종의진이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나이다. ‘만약 이 글이 올라가기만 하면 관백의 성미에 내 아들이 틀림없이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니 한번만 살려주소서’ 하고 애걸복걸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대마도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비법적으로 넘어가는 자가 있다거나 도주가 함부로 침범한다면, 국서를 작성하거나 역관을 통해 알려주면 응당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식량을 주고 왜인을 붙여주며 호송하게 하였으나 저는 데
리고 가는 것이 폐단스럽다고 사절하였습니다.”
용복의 심문을 마친 다음날부터는 뢰헌 등 일행의 심문이 시작되었다.여러 사람의 진술도 용복과 다르지 않았다. 용복과 그 일행은 다시 옥에 갇히었다.
6.
조정은 안용복 심문으로 뒤숭숭했다. 일개 천민이 양반 관리라고 속이고 그 복장까지 갖추고 외국에 나아가 태수들과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에 관리들은 분노했던 것이다. 나이 많은 관리들은 용복의 죄가 참수하고도 남는다고들 했다. 용복이 정말 참수를 당할 것인지 목숨은 살려줄 것인지 귀양을 가게 될 것이지가 온 대궐 안의 궁금거리가 되었다.
며칠이 지나서 임금은 대신들과 비변사의 여러 관리들을 불러들여 만났다.
“안용복이 문제를 어찌해야 하겠소?”
숙종 임금이 말꼬를 트자, 영의정 유운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용복이가 나라의 금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일본까지 가서 말썽을 일으켰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표류된 사람을 제 나라에서 돌려보낼 때에는 반드시 대마도를 거치는 것이 관례인데 곧바로 그곳에서 보내왔으니 이 점을 명백히 언급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용복에 대해서는 아직 바다를 건너간 역관이 돌아온 다음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 말에는 좌의정 윤지선도 동의하였다. 형조판서 김진귀는,
“신이 영의정께서 하신 말씀을 가지고 우의정 서문증 대감께 가서 물었더니 이 문제는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않다 하십니다. 예로부터 이웃 나라와 교제한 사실을 놓고보면 처음에는 하찮은 일같던 것이 나중에는 대단히 크게 번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마도에서 만약 용복의 일을 들으면 반드시 우리 나라에 대하여 앙심을 품고 성을 낼 것이니 먼저 통보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그리고 용복 등을 가두었다가 저쪽에서 소식이 있은 후에 죄를 논단할 것이 옳은 줄 아나이다.”
대신들이 모두 일본의 눈치를 보아가며 안용복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 백성의 잘잘못을 남의 나라 눈치를 보아가며 벌하겠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기 이전에 자존심을 버린 행동이었다. 좌의정, 형조 판서, 우의정, 영의정이 깊은 생각없이 일본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강직하다는 판부사 신익상도
“대마도에 통고하는 것이 순리인 듯하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하는 말을 들어본 다음에 처리하는 것은 마치 그들의 지시를 받는 것 같으니, 한편으로는 통고한 다음 다시 정황을 보아 처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사옵니다.”
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자고 했을 뿐 다른 신하들과 다를 것은 없었다.
용복은 다시 옥에 갇히었고 장안에서는 용복이 참수당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대궐 안까지 파다하였다. 용복을 참수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관리들의 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장안에 쫙 퍼졌다.
“글쎄, 안용복이 참수당한답니다.”
“그분이 뭘 잘못했다고?”
“천민이 무관을 자칭하고 일본 태수들을 만나 담판을 짓고 왔다는 죄요.”
“죄라니? 나라에서도 못하는 일만 한 것을 왜 잡아가. 더우기 다 잃어버렸던 울릉도를 찾아오니까 고맙다고 잡아가? 경을 칠 놈들!”
“양반이란 것들이 하는 짓은 순 쌍놈인걸!”
“왜적들 잘 막아주구 대마도주를 무릎 꿇려 싹싹 빌게 만들어 놓구 이제 다시는 울릉도엔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받아 오니까 상은 안 주고 무슨 수작이람….”
“안 장사는 영웅이요. 일개 천졸로 죽음을 무릅쓰고 국토를 회복해온 공을 어찌 모른 체 할 수 있단 말이요?”
안용복 이야기는 방방곡곡에서 퍼져나갔다. 그러자 용복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물론 용복의 용맹함을 전설처럼 들어오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능한 양반 통치자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이상한 노래가 하나가 불리워지고 있었다. 마치 작년에 입으로 입으로 불리워졌던 ‘장다리는 한철이구 미나리는 사철일세’와 같이 널리 불리워졌다.
동해 바다 흰 구름속
외로운 섬 울릉도를
아무도 내 땅이라
돌아보지 않을 때에
왜적 속 넘나들며
외로이 싸우던 장군
상이야 못 드릴망정
참수라니 웬말인가?
규방에서, 골목에서, 기방에서, 입으로 입으로 번지어 온 장안에 파다하게 퍼지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안용복 장사를 두고 하는 것쯤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 노래는 온 겨우내 전국으로 퍼지어 백성들의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안용복 이름 뒤에는 ‘장군’이 붙었다.
“안용복 장군이 참수당한다더라!”
“그런 공을 세우고도 참수당하다니!”
“눈들이 멀었군!”
“살려냅시다. 안용복 장군!”
옥에 갇힌 지 반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용복이 참수당한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성해졌다.
엔도 이찌로와 사와꼬, 그리고 용복의 부하들도 안달이 났다.
엔도는 전에 다치마나의 부탁을 받고 만났던 기생 초월을 찾아갔던 것이다.
“초월이.”
“예?”
“혹, 안용복 장군이라구 들어보았는가?”
“맨손으루 호랑이를 잡았다는 분? 일본 가서 빼앗긴 울릉도를 다시 찼아왔다는 분 아니에요?”
“그래. 그분이지.”
“안용복 장군을 아세요?”
“알다마다! 어떻게든 그분을 살려내야 하겠는데!”
“그렇게 공이 큰데 죽이기야 하시겠어요?”
“모르는 소리! 조정 대신들은 안 장군이 저지른 죄가 너무나 크다구 다 참수를 시켜야 한다는 걸세. 울릉도를 대마도주와 담판지어서 다시 찾아온 건 사실이지만, 그건 아직 증거가 없으니…. 대마도주가 강호의 관백에게 여쭈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여 외교 문서로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중인데….”
하고, 엔도는 용복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자기 남매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 말고도 용복의 위인됨과 나라의 대신들도 못한 큰일을 해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는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니, 용복을 살려낼 사람은 대신들을 많이 모시는 초선이 뿐이라는 것 ― 이런 설명을 다 하고 나서,
“그래서 형님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네!”
하고 가지고 온 금가락지도 건네었다. 초월은,
“천만에요. 제가 비록 기생이지만, 안 장군께서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라면 저도 한번 나서보지요.”
하고, 사양했다.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되어도 용복을 살려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다고 용복에게 유리할 것은 없을 듯했다.
대신들은 안용복 문제를 논할 때마다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우기었다. 다만 월경을 한 조선 백성은 대마도를 거쳐서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용복이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돌아왔으니, 대마도에 연락을 해서 안용복의 월경 사실을 알리고 그쪽의 말을 들어보고 나서야 죽여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마도에서 또 시끄럽게 굴 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수단을 썼는지 엔도가 통영갓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와서 이렇게 소근거렸다.
“아무래도 제가 대마도를 다녀올까 합니다.”
“왜?”
“형님이 죽고 사는 건 이제 종의진 손에 달렸소. 그 자가 약속대로 서계를 보내오면 형님은 살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형님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신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대마도에 가서 종의진을 만나보렵니다. 새 태수 의방이 아직 어려서 의진이 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용복은 잘라 거절했다.
“사내자식이 같은 말 두번 하기는 싫다. 그 놈이 분명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약속했으니 약속한 걸 지키건 안 지키건 그건 그놈이 알아 할 일이지 다시 찾아가 사정할 건 없지 않느냐?”
“그렇지만….”
“내버려 두어라.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이제 죽은들 뭐 그리 아쉬우리.”
엔도는 용복의 초연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겨울이 다 가도록 용복은 옥에 갇혀 있었다.
7.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언제까지나 미루어둘 수 없다 하여 다시 용복의 문제를 들추어내었다.
대마도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조정의 관리들은 다시 안용복을 벌주어야 한다고 나섰다.
“안용복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마도에서 이미 무슨 서계가 와야만 하옵나이다. 그러나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그놈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오니 미루지 말고 조세관을 자칭한 안용복을 참수해야 할 줄 아옵나이다.”
“우리 조정에서 대마도의 눈치를 보고서야 죄인을 벌한다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만드는 일이오며 이러한 약점을 일본에서 안다고 하면 그들이 조선을 어찌 보오리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숙종은 입을 열었다.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신하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복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으며 또한 대마도에 통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먼저 대마도주에게 통고한 후 다시 정황을 보아 처리하는 것이 좋은 줄 아나이다.”
임금이 말하기를,
“용복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으며 또한 대마도에 통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이 때 승지가 들어와 대마도주에게서 서계가 왔다고 알리었다. 서계는 이러했다.
전 도주는 죽도의 문제와 관련하여 거듭 조선에 사신을 보낸 바 있는데 그가 죽은 다음 지금의 도주는 강호에 들어가서 관백에게 말하기를 ‘죽도는 조선에 가까우니 호상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나이다. 관백께서는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땅이라 하시고 일본 백성이 다시는 그 섬에 가지 못하도록 금하셨사오니 저희 대마도에서도 두 섬에는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백성들에게 금령을 내렸나이다.
대마도에서 울릉도 독도에 대하여 온전히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서계를 받아보고서야 안용복을 죽여야 한다고 우기던 신하들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용복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영부사 남구만이,
“용복이 비록 죄는 있으나 대마도가 예전부터 속여온 것은 한갖 강호와 직통하지 않은 때문이었다가 지금 달리 통하는 길을 찾았으니 대마도에서 반드시 두려워할 것인데 이 때에 용복을 참형에 처하는 것은 국가의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대마도에서 속여온 일은 용복이 아니었다면 다 드러날 수 없는 것이니 그 죄의 유무는 막론하고 우선 섬을 놓고 다투는 일에 대하여 이 기회를 통해 밝게 변석하고 엄중하게 물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형조 관원들은 죄인을 다스리는 것은 국법이요, 외국과 교섭하는 것은 나중 일이라 하고 용복을 죽일 것을 고집하였다. 안용복을 죽여야 한다고 떠들던 양반 통치 계급도 이제와서는 그의 공로를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신분에 당치 않게 관리 행세를 한 그 죄가 그 공로를 갚고도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구만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입을 열었다.
“용복은 계유년에도 울릉도에 갔다가 왜놈에게 사로잡혀 백기주에 들어갔더니 이 주에서 울릉도는 영영 조선에 속한다는 공문을 만들어주고 또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나올 때에 길이 대마도를 거치게 되어 공문과 선물을 몽땅 빼앗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꼭 믿을 만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만 이번에 용복이 다시 백기주에 가서 공문을 제출한 것을 보면 앞서 한 말이 실상인 듯합니다. 용복이 금령을 무시하고 재차 가서 말썽을 일으킨 죄는 물론 죽여도 남습니다. 그러나 대마도 왜인들이 을릉도를 죽도라고 가짜로 부르고 강호의 명령이라고 허투루 핑계대면서 우리나라로 하여금 을릉도에 사람이 왕래하는 것을 금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중간에서
속여 넘기면서 농간질을 한 진상이 이번에 용복에 의하여 드러나고 말았으니 이는 참으로 통쾌한 일입니다. 용복에게는 죄도 있지만 공도 적지 아니하니 목숨은 살리고 귀양을 보내는 것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
강직하기로 이름난 원로 대신 윤지완도,
“안용복은 죽일 수 없나이다. 우리 어촌의 어부들을 용맹으로 지켜주었으며 잃어버리다시피 한 울릉도 독도를 다시 빼앗아 왔으니 그 공이 어찌 크지 않으리요.”
이래서 임금도 마음이 누그려져 안용복을 죽이지는 말고 귀양보낼 것을 명했던 것이다.
8.
안용복은 귀양지로 떠났다.
강원도 양양까지는 묶이어 왔으나 나졸들도 바다가 보이면서는 용복을 풀어주어 걷게 해 주었다.
낙산사 뒷산에서 보는 동해 바다는 푸르다 못해 자주빛까지 돌았다. 용복은 동해바다가 좋았다. 용복이 어려서부터 듣기로도 동해 바다는 조수가 없는 까닭에 물이 탁하지 않고 맑아서 벽해라 부른다고 했다.
동해 바다는 과연 벽해였다.
“참 푸르기도 하다! 여기가 양양이지?”
용복이 나졸에게 물었다.
“그렇소. 작년 여름 들어왔다던 바로 그 양양 앞바다요.”
양양에서 하루를 묵고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바닷가로 나섰다. 봄이지만 새벽이라 바람끝이 날카로웠다. 새벽의 봄바다는 더욱 푸른 쪽빛이었다.
여기서 용복은 그를 따라오던 사람들과 작별을 했다. 엔도와 사와꼬, 박어둔과 박태연, 유일부와 뇌헌, 이인성과 순덕이까지 모두들 용복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다.
여기서 헤어져 동해를 오른편으로 끼고 한참 걸어가다가 잠시 쉴 때 용복은 다시 동해를 바라보았다. 바다도 즐거운 듯 끝없이 웃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급이굽이 꽃들이 되어 하얗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 같았다.
‘장하다. 흐믓하지?’
하고 저들이 더 기쁘다는 듯 반기는 것 같았다.
“저기 저것이 울릉도 아닌가?”
용복은 이마에 손을 얹어 눈에 새그러운 햇빛을 가리고 먼 바다를 내려다 본다.
“그렇습니다. 장군께서 다시 찾아오신 그 울릉도입니다.”
“장군이라니? 내가 무슨 장군인가?”
“아닙니다. 군사도 못하고 나라도 못하는 일을 해내셨으니 장군이라 불러도 부족하지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르고 있나이다.”
“그런 소리 말게. 조선 백성으로 또 뱃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 걸.”
용복은 발을 멈추고 서서 뒷짐을 짚고 한참을 바라본다. 삼봉이 차차 우렷이 보인다.
“허, 장관이구나!“
용복은 발을 떼지 못한다. 갑자기 울릉도 뒷등 하늘이 점점 붉어지더니 크고 둥근 시뻘건 불덩어리가 서서히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해 일출이었다. 바다도 하늘도 붉게 타오르는 듯했다. 용복의 눈과 입술에는 미소가 바람처럼 스치어 갔다. 바람은 용복을 위로하듯 달래듯 산들산들 불어왔다. 그 바람이 밀고 오는 파도는 끝없이 달려와 흰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용복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즐거운 귀양길이었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할 때에도 용복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 때의 문서가 있어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저희 본토라고 주장하지 못했다.)◑
◇홍현희 『현대문학』에 「백자 항아리」 추천. 『월간 중앙』 신인작가상 「거문고」 당선. 연세대 도서관학과 졸업. 저서 「흑이여, 사랑이여!」 「Let My People Go!」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