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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10년 가까이 강원도에 살아봤던 적이 있었던지라, <강원도의 맛>이란 이 책의 제목이 나에게 궁금증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70대 중반의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 먹던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글의 내용이 또한 상당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60살이 넘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덧붙이고 있다. 비록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저자의 글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기억을 통해서 끄집어낸 다양한 일화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대화와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면서 서술되고 있기에, 아마도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 중에서 강원도의 토속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지만, 그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추억 속의 음식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요즘에는 대형 마트에 가서 어떤 식재료라도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고,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저자의 개인적 추억이 담긴 음식들이기에, 동시대를 겪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단순히 음식이 아닌, 저자의 추억 여행에 동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4부로 이뤄진 이 책의 첫 번째 항목은 ‘꽃이 피던 그때 그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과 연관된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따금 떠올려보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저자의 어린 시절에는 돈을 주고 과자를 사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주변의 자연에서 찾은 재료나 혹은 집에서 부모들이 해주었던 음식들이 유일한 간식거리였을 것이다. 해산물을 보기 힘든 시절 삼척으로 동원 훈련을 나간 오빠가 가져온 미역국, 그리고 누에 수매를 끝낸 할머니가 해주시던 꽁치구이 등은 아마도 저자에게 아련한 추억의 음식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밖에도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즐겼던 음식,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들도 함께 만들어먹었던 간식들에 대해서도 그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저자의 가족이나 이웃들과 얽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결혼한 이후의 생활은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기에 소개된 내용들은 주로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까지 고향에서 지낼 때의 사연들이라고 이해된다. 여름철 무더위에 피서를 간 폭포에서 여자들끼리 해먹었던 ‘생떡 미역국’이나, 천렵꾼들이 모여 잡은 쏘가리를 회로 먹었던 이야기들에서는 그대로 그 시절 농촌의 정겨운 모습들이 연상되었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개구리는 아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이처럼 강냉이 냉죽, 개구리 구이, 첫물 고추무침 등 저자의 추억이 담긴 특별한 메뉴들을 소개하면서도, 그에 얽힌 사람들의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일을 하다’라는 제목의 3부와, ‘한가한 날, 술 한잔 같이하다’라는 4부에서도 역시 저자가 살았던 조그만 공동체 마을의 정겨운 모습들과 그에 얽힌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때로는 이웃들과 갈등이나 다툼도 생기기도 하고, 또 이웃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서로 부조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계절에 맞는 식재료를 소개하고, 또 그에 곁들여 오랜 세월 간직했던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글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러한 추억들을 다양한 음식들과 연관시켜 풀어내는 저자의 글을 쓰는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저자만의 시각이 담긴 글을 계속 쓰면서, 늦게라도 젊은 시절 소설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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