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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주의자로, <신약성서>를 최초로 편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문학이 발달한 이탈리아 학자들이 개척한 문헌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신학 연구를 통해 비판적 방법론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당시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형식에 치우친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인간성을 중시하고 고전 읽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등 인문주의적인 교육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학자로서, 당시의 교육이란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일’로 여겨졌다. 때문에 당시의 중요한 고전들을 읽기 위해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했다.
이 책의 라틴어 원제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고전을 공부하고 강독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며, 대체로 <교육방법론>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자신이 쓴 이 책의 초고를 세인트 폴 스쿨의 존 콜레트에게 보냈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파리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출간이 되었다. 이후 에라스무스의 손길을 거쳐 약 1년 후 파리에서 정식으로 이 책이 재출간되었다. 번역자에 의하면,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가정교사로 가르쳤던 토마스 그레이에게 쓴 편지이며, 두 번째는 콜레트에게 쓴 편지이고, 마지막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교육방법론>의 본문에 해당한다. 번역자는 편의상 각각의 부분을 헌사와 개요, 그리고 본문으로 구분해서 편집했다고 한다. 나아가 책의 앞 부분에 ‘에라스무스의 생애’를 덧붙이고, 부록으로 그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제시해 놓았다. 특히 부록으로 덧붙여진 편지들을 통해서, <교육방법론>의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에라스무스는 개요에서 두 종류의 지식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이 사물에 대한 지식과 언어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순서로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앞서고, 중요하기로는 사물에 대한 지시기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말과 사물을 동시에 배우고, 그것도 가장 뛰어난 교사로부터 배운 사람만이 두 지식 모두에서 탁월함을 보인다’고 하였다. 즉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 이해된다. 또한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고전 읽기를 중시한 그의 ‘교육방법’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다양한 학자들의 저술을 읽을 것을 권하고, 이와 함께 ‘올바르게 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쏨씨가 뛰어난 사람들과 즐겨 대화하고 문체가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실상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는 본문 역시 이러한 방법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다양한 학습 방식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의 교육이란 좋은 고전들을 찾아서 폭넓은 지식을 소화하고,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서 자신이 가진 학문적 지식을 펼치는 것이 요체였던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어떤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그것을 가르쳐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으며, ‘실제로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르치면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금의 교육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본문은 분량상으로도 그리 길지 않지만,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고전 읽기를 강조했던 에라스무스의 교육방법은 당시의 교육 현장에 큰 영향을 미쳐, 수사학과 논리학을 중시하는 등 이전까지의 형식적인 교과과정을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에라스무스는 다양한 사상이 만개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 신학과 인문학 등에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유럽 문화의 자유주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세분화된 오늘날의 학문분야에 그대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방법으로 채택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즉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조하는 그의 교육방법은 인문학적 지식의 함양과 고전 읽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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