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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물론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식물 존재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일한 목차를 마련하고,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을 통해 공통의 목차를 채워나가는 독특한 방식의 기획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스 이리가레는 예전에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또 다른 저자인 마이클 마더는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접하게 되었다. 저자의 소개에 의하면, 마이클 마더는 '하이데거 현상학에 사상적 토대를 두고 현대 서구 철학과 식물성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철학자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현상학의 이론이나 용어들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기에,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루스 이리가레가 쓴 ‘서문’에 의하면, 두 사람이 ‘이 책을 함께 쓴 이유는 현재 자연과 생명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루스 이리가레의 제안에 마이클 마더가 응해서 이뤄진 이 책의 기획은, 애초에는 정해진 목차에 따라 서로의 견해를 나란히 수록하고자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필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글을 나란히 싣는 것보다 동일한 목차를 나란히 병치하면서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효과를 주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일러두기’에서 두 사람이 쓴 동일한 제목의 목차들을 번갈아 읽는 방식을 제시했기에, 일단 그 제안에 따라 일독을 했다. 분명 주고받은 글들을 통해 해당 항목의 내용들을 비교할 수 있었다는 장점은 있지만, 두 사람의 사상을 일관된 관점에서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독자로서 두 사람의 저자들이 지닌 철학적 바탕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서 있지 않았기에,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추후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아마도 각각의 글들을 목차에 따라 순서대로 읽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들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서양 철학사의 흐름에서 자연철학의 관점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인간의 존재와 식물성의 문제에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두 사람이 말한 바의 핵심은 루스 이리가레의 에필로그에 있는 다음의 두가지 문제라고 이해된다. 첫 번째는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 존재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식물 세계를 보존하는 것은 지구 행성을 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두 번째는 인간의 실존 방식이 식물을 토함한 자연의 실존 방식을 통하여 인간으로서 세계를 통치하는 과학과 기술의 지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존재로서 인식하고, 그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겠다.
저자들은 각각 16개의 목차를 마련하고,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 내용을 채워나가고 있다. 목차의 순서도 저자들이 처음 식물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계기와 이유를 설명하는 ‘식물 세계에서 피난처 찾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만물 사이에서 생명을 키우고 공유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들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면서 저자들의 사유가 덧붙여져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이 대체로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나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았으나, 이 책에서 강조하는 바의 주제나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자연을 파괴와 개발의 대상으로만 삼는 관점에서 벗어나, 서로 공존할 수 방안이 마련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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