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꽃」 을 영화로 만들어볼까 하던 시절, 나는 영화감독과 프로듀서와 함께 아바나로 향했다. 도착 첫날 저녁, 쿠바산 시가를 사러 동네 담뱃가게에 들어갔지만 팔지 않았다. 우리가 시가를 구하는 것을 밖에서 보고 있던 이십대 청년 하나가 우리를 따라오더니 거래를 제안했다. 자기 집에 공장에서 빼돌린 몬테크리스토가 있다, 원한다면 싸게 팔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따라 뜨거운 증기탕 같은 아바나의 좁은 골목길로 걸어들어갔다. 플라스틱 주렴을 드리운 방에서 사내들이 러닝셔츠만 입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여자들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다 우리가 지나가자 말을 멈췄다. 우리를 낚은 친구는 연신 뒤를 흘깃거리며 우리를 데리고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문득, 아바나에서 아무나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던 누군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러나 돌아서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우리는 그의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좁은 방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양철 현관문이 쿵 하고 닫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셋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그러고는 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의 등을 두들겼다. 소년은 냅다 뛰어 나가더니 망을 보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집 안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늙은 할머니 하나와 그녀의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자, 그리고 러닝셔츠를 입은 중년남자, 그리고 십대 소년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우리를 데려온 친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목이 길었는데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긴장이 우리에게 전염돼 우리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그 가족이 식탁으로 쓰는 유원지용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가 집 뒤로 가더니 맥주박스를 들고 왔다. 박스를 열자 몬테크리스토 No.4 케이스들이 쌓여 있었다. 그가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조심성 없이 그 박스를 열려고 하자 가족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내저었다. 가난한 가족들의 그 절박하고 소리 없는 비명. 나는 동작을 멈추고 몬테크리스토 케이스를 살펴보았다. 케이스의 옆면에는 진품임을 보증하는 봉인이 붙어 있었다. 우표처럼 생긴 그것은 한번 떼면 다시 말끔히 붙여 되팔기가 어려워 보였다. 내게서 시가를 돌려받은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살짝 떼어낸 후, 그 안에 들어 있는 시가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흰 장갑을 끼고 고서화라도 감정하는 사람 같은 태도였다. 우리는 짐짓 시가에 대해 잘 아는 척하느라 시가를 코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 우리끼리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일부러 무표정하게 진행된 그 대화들. 한 박스에 얼마래요? 아,그래.꽤 싼데.진짜 맞을까? 저렇게들 긴장하는 것 보면 진짜 같지 않을까?
사고 싶은 수량을 정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우리는 방심한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온 가족의 절실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 그 애절한 눈빛을 거두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황급히 눈길을 돌렸지만 우리에게 쏟아지던 그 눈길을 이미 보아버린 뒤였다. 저 다섯 박스만 팔리면, 저 다섯 박스만 팔리면, 저 다섯 박스만 팔리면, 그리하여 저 달러가 우리 손에 들어온다면, 저 달러가 우리 손에 들어온다면, 저 달러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몸에 좍 달라붙는 외화상점의 청바지도 살 수가 있고, 화사한 멕시코산 스커트도 살 수가 있고, 작은 세탁기도 하나 들여놓을 수 있을지 몰라. 그들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당시 아바나에선 외화 없이는 사치품을 사기 어려웠다. 청바지, 화장품, 향수, 컴퓨터 등이 아바나에서는 사치품이었다. 페소화로는 오직 밀이나 설탕, 쌀과 같은 생필품만 살 수 있었다.
문을 걸어 닫아놓은 방은 점점 더워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도 고개 숙인 선풍기만이 맥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밖에서 망을 보는 막내는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한지 골목 입구보다 방 쪽을 더 자주 들여다보고 잇었다. 우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그 돈에서 눈을 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이가 세는 둥 마는 둥하며 우리 돈을 자기 어머니에게 건네고는 우리에게 줄 시가박스를 조심스럽게 다시 맥주상자에 넣었다. 우리는 그것을 가방 속에 넣고 미로 같은 구시가의 골목들을 지나 사복경찰이 성매매를 단속하는 대로로 걸어나왔다. 북유럽에서 온 건장한 노동계급의 사내들이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아바나 외곽의 번듯한 국영호텔로 돌아올 때까지도 그 후텁지근한 골목에서 마주친 끈적한 눈빛들이 잊히지 않았다. 욕망을 감출 수 없는, 그럼으로써 남을 부끄럽게 만드는 삶들이 뜨거운 양철지붕 아래에서 드글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독한 술을 마시고 시가를 피웠다. 쿠바산 담뱃잎을 말아 만든, 잎맥 사이로 촘촘하게 스민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부드러운 몬테크리스토는 아주 훌륭했지만 뒷맛은 텁텁했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