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 결실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피조물의 허무와 멸망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구원을 사는 이들이고, 세상의 죄와 어둠을 이기고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여 세상의 허무와 종살이해서 해방된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하느님의 자녀는 부활의 권능을 살아가며 하느님의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활의 권능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어려움을 이기고, 유혹을 넘어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비유도 그러합니다. 비유를 살펴보기에 앞서 바오로 사도가 그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바오로는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 속에 살아감을,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하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멸망의 종살이에 놓여 있음을 한탄합니다. 그리고 그런 비구원의 상황에서 구원의 희망을 노래합니다. 바오로가 노래한 구원의 희망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의 탄생입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하느님의 자녀는 피조물의 허무와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들입니다. 피조물이 겪는 탄식과 진통을 극복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들이고, 하느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영광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세상의 죄와 어둠을 이긴 이들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로 불린 이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이 세례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도록 합니다. 그 십자가의 길이 세례의 길이고, 세상의 노예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구원과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는 세례를 받고 또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비구원의 상태, 허무와 종살이에서 일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삶은 하느님의 자녀의 삶이고,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부활의 삶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십자가를 제대로 져야하고 죽음을 겪어내고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의 삶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가 이를 잘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또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경우입니다. 하느님 보다는 세상과 그 악에만 관심을 지닌 경우입니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다음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곧 하느님의 말씀을 포기하고 세상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다음으로는 세상의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너무나도 큰 경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기보다 자신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또 하느님보다 재물에만 의존하는 삶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꿋꿋하게 자리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좋은 밭에 비유됩니다. 곧 온전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이것이 쉬울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걱정과 유혹,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하게 신뢰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이들이고,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우리는 누구나 구원과 해방, 자유와 기쁨을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세상의 노예와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유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권능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유혹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믿고 순명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가 승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죽은 이를 일으키시는 부활의 권능을 지니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자유와 영광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우리를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구원과 자유와 기쁨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세상의 것에 의해 영향을 받으시거나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구원은 세상의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로지 하느님을 찾아야 하고, 하느님을 의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참으로 온전하게 믿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지니고,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이들이, 세상의 죄와 어둠을 이기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부활을 사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유와 영광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축복과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