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의 눈 '점자블록', 오히려 안전 사고로 이끈다
설치나 보수 관리의 미흡으로 길 안내 기능 상실한지 오래… 차도나 공사 현장으로 안내
시에서는 인원 부족 등의 이유로 관련 대책 미비
춘천 시내 ‘점자블록(유도블록)’ 설치와 관리가 미흡해 시각장애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이 발바닥이나 지팡이의 촉감을 통해 보행상태에서 도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표면에 돌기를 붙인 것이다. 블록은 보행 방향을 지시해주는 ‘선형 블록’과 장애물이나 위험 지역을 알리는 ‘점형 블록’으로 나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이 두 종류의 블록이 사실상 눈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잘못된 설치로 메시지가 틀리게 전달될 경우 심각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2일 시내를 돌아다닌 결과 횡단보도 앞이나 공사현장 등 큰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곳조차 점자 블록 설치와 보수가 미흡한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명동거리 입구 앞 횡단보도의 경우 유동 인구가 많아 오히려 점자 블록이 더욱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횡단보도가 있음을 알리는 점형 블록이 전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횡단보도를 인식하지 못한 시각장애인이 차도로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보수 관리가 되지 않아 돌기 부분이 전부 마모되어 있어 시각 장애인이 발이나 지팡이의 촉감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국토교통부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지침)’에서는 "점형블록의 경우 돌출점의 높이가 3.5mm이하, 선형 블록의 경우 돌출선의 높이가 3.0mm이하이면 시각장애인의 감지가 불가능하므로 점자블록을 교체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지침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임시 보행 유도 시설을 설치하고 그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춘천역 인근 공사 현장에는 비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자 통로 안내만 있을 뿐 시각장애인용 점자 안내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임시 보행로도 없이 갑자기 보행을 안내하는 블록이 사라진 도로 위에서 시각장애인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거나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이 밖에도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블록이 전혀 설치 돼 있지 않아 낙상 사고의 위험이 있는 등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에서 지난해 조사한 ‘전국 7개 시·도 소재 공공건물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강원도 소재 공공건물 점자 블록 미설치율은 46.5%로 전국 7개 시·도 중 2번째였으며 평균 미설치율인 37.6%보다 약 10%p 높았다. 부적정 설치율도 37%나 되었으며 적정 설치율은 16.5%에 불과했다.
시청 도로과 김창현 주무관은 “정기적인 점검이나 보수 공사는 인력 부족 등 여러 여건상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라며 “대신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 응급보수는 최대한 신속히 착수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안책 없이 응급 상황 발생 후 보수 공사에 착수하는 식의 대응은 사고를 예방할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박은주 시민기자
춘천 명동거리 앞 횡단보도. 횡단보도 앞에 장애물이 있거나 위험 상황이므로 잠시 멈춰 상황을 살피라는 뜻의 점형 블록은 없고 보행을 유도하는 선형 블록만 있다. 시각 장애인의 눈이 되어줘야 할 점자 블록이 오히려 시각 장애인을 차도로 이끌어 생명의 위협이 되는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춘천역 앞 공사현장. 점자 블록이 시각 장애인을 공사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사 현장을 돌아갈 수 있는 임시 보행로를 찾아볼 수 없다.
(좌) 민원실 입구, (우) 민원실 내부. 춘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시청 민원실로 안내하는 유도 블록이 전혀 없다. 시청 정문에서부터 주차장을 거쳐 민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갈 방향을 잡지 못한 시각 장애인이 주차하려는 차량과 부딪힐 위험이 있다. 또한 장애물이 있음을 알리는 점형 블록이 정작 있어야할 유리벽 앞이 아닌 옆에 있어 장애물을 감지하지 못한 시각 장애인이 다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