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구수한 맛
늦둥이를 만났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낯 설은 땅에서 처음인 사람과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을 겪어 보는 일이다. 건강하게 돌아온다는 조건에, 좋은 일이건 좋지 않은 일이건, 즐거운 일이건 즐겁지 않은 일이건 모두를, 일정에 차질이 생겨 헤매는 일 조차도 경험하는 일이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헤쳐 나가는 과정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훗날 뜻 깊은 이야기로 오랫동안 남는다.
노르웨이 여행 중 이었다. 정교한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나를 품고 오슬로 국제공항을 출발했다. 한 시간 후 짙은 구름 속을 비를 가르며 노르웨이 한 시골 알리순드 공항에 내려놓는다. 자정이 가까운데 낮같이 밝은 하늘에선 빗줄기가쏟아진다. 낯선 곳에서 비를 만나면 생각도 축축해진다. 그려면 판단과 행동에 머리가 둔해지면서 좀 당황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항 근처에 예약해둔 모텔에서 마중 온다니 안심은 되었다. 약속 시각이 30분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 오는 야밤 중 한적한 을씨년스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낯 서른 모습들이 기분을 차갑게 만든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울리는 신호에 답이 없다.
혹시 내 전화기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옆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현지 청년에게 다시 부탁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주소를 살피더니 공항에서 멀지 않으니 자기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예약한 숲속에 아담한 모텔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나무가 무성하고 비에 안개까지 가세하여 현지인 그도 이리저리 헤매었다. 찾지 못하고 시간만 지체되자 자기 집에서 쉬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마침 부모님이 여행 중이라 집에 혼자이니 부담 갖지 말라면서. 이런 고마울 때가. 마침 테마성 여행이니 한 가정을 둘러보는 기회가 덤으로 온 것이다. 나는 정말 괜찮으냐고 재차 묻고 고맙게 받아드렸다.
달리는 동안 비는 멈추었고 한밤중 달도 없는데 차 밖에는 대낮같이 훤하다. 북극에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한다. 계획 차질에 전계될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 다 왔다며 언덕 위 그림 같은 단층집으로 내 짐을 나른다. 집안은 내일 이사 갈 집처럼 단순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는 명화 몇 점 탁자 위에는 조촐한 화분이, 중앙에는 TV와 앞에 탁자와 소파가 전부다. 부엌에는 커피머신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조명시설이 현대식으로 단출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30여 년 동안 한집에 살면서 필요치 않은 살림살이를 쌓아놓은 내집과 번뜻 비교가 된다. 이번 여행 마치면 이처럼 정돈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하긴 여러 차례 그랬지만 짐은 어쩐지 점점 늘어만 간다. 이번에는 정말로 꼭~
그의 여유로운 말투로 보아 20대 후반인 청년인 줄 알았다. 그런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아직 모르겠다면서 1.2년 사회 경험한 후 결정하겠다는 대답이다. 좀 의야 했다. 우리 같으면 대학, 졸업, 직장, 결혼, ... 등으로 이어지는데 말이다. 사실 내 학창시절은 사회 분위기는 그랬다. 경제적 여유로움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가. 우리는 생존의 전략이고 그들은 삶의 방식이라 해야 할까. 대학 시절 여행을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내 애들은 고등학교 때 휴학하고 1년쯤 여행을 시키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시기를 놓쳐 아쉬워했는데, 이들 생활방식이 마음에 든다. 물론 모두가 다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주는 사회적 문화가 부럽다.
늦은 밤인데도 서로에 색다른 질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미국에 대해 여러 면에 호기심이 많았고 특히 한국을 삼성의 나라, LG의 나라, 현대의 나라로 알고 있다. 나의 설명에 흥미진지하게 귀를 기우리며 한류까지 곁든 대화도 이어졌다. 기념사진 만들자며 옆에 기댄다. 자연스레 서로가 손을 꽉 잡아본다. 처음 접촉인데도 왠지 어색치 않다. 만일 막내아이보다 더 어린 늦둥이가 있다면, 곁에 둔 감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화 시간만큼 밤도 깊어져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손수 차를 운전하며 여기저기 속속히 안내한다.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잘 모른다면서 설명이 궁색해지면 미안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원주민 격인 바이킹족의 ‘마을 박물관’을 찾았다. 한국 민속촌처럼 바이킹 시절에 배들, 대장간, 가게, 사무실, 가정집등 삶의 여러 모습을 그 당시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자기도 이번이 두 번째라고 실토 한다. 초등학교 때 현장 학습이 처음이라고. 하긴 나도 디즈니랜드에 언제 가 보았는지, 서울에 살면서 창경궁에 몇 번이나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LA에 방문하면 꼭 우리 집에서 지내라는 당부를 하고 헤어지며 수고비를 주려 하니 완강하게 거절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었는데 그러면 기쁨이 사라진다며나의 손을 꼭 잡는다. <솔베이지의 노래> 의 물결 따라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으로 발길을 돌리는 내 가슴에 덥썩 안긴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번 여행 여정을 다시 집어본다. 물과 조화롭게 자태를 뽑내는 노르웨이에서, 북극 하늘 밑에서 차가움이 빚어낸 광난과 차분함이 어울려 춤추는아이슬랜드에서, 깊고깊은 고풍을 자연이 움켜지고 있는 스코트랜드에서의 세세한 만남의 기억들이 내 머리 용량을 채우고 넘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레이몬드 청년과 만남이 불쑥 나타난다. 이란에서 이민 온 부모를 둔 이민 2세, 이란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마치 우리 딸애와 같은 처지이어 더욱 정겹다. 어린 나이에 보여준 마음 씀씀이가 귀엽다. 영혼의 문을 열어두면 하늘이 찾아오고 마음의 문을 열어놓으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했던가. 내가 더 경직한 삶을 살지 않았나 하고 의심도 해 본다.
집에 도착해서 전화했다. 마침 반갑게 받는다. 여행이 어떠했느니 질문이 이어지고,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을 두어 존경스럽고 부럽다는 인사말을 부탁했다. 그리고 LA 방문 시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다시 당부했다. 전화를 통해 잠시나마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맺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늦둥이와 대화를 아쉽게 마친 양 여운이 귓전에 남는다. 여행은 새로운 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모든 여정은 그 무대를 넓혀가는 파장이다. 그 의중에 항상 예상치 않았던 기쁨과 행복이 덤으로 끼어 있다. 늦둥이와 특별한 만남이 이번 여행을 더욱 빛나고 보람되게 만들었다. 삶이 참으로 구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