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바람직한 일입니까? 인생 살다보면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고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인생을 살아오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적질만 하다가 감옥을 들락날락하던 유명한(?) 도적이 삶을 바꾸어 목회자가 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반겨주고 또한 응원도 해주었습니다. 문제는 지속성입니다. 그 변화가 인생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렵지요. 물론 제삼자로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에게 어떤 사정이 생겼는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사정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당사자는 개과천선할 수도 있지만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는 그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받은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치유하기도 전에 그의 변화를 받아달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기도 합니다. 단 하나 자식을 키우며 의지하며 살던 여인이 그 자식을 잃습니다. 유괴당하여 살해됩니다. 충격과 슬픔 그리고 살아가면서 당해야 하는 그 마음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치유가 힘들고 이겨내고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갑니다. 어느 날 믿음의 감동을 받아 그를 용서하려고 교도소로 면회를 갑니다. 그런데 자기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희희낙락합니다. 다시금 충격을 받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 살인자는 어떻게 저렇게 평안할 수가 있는가?
어찌 보면 과거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범죄 집단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오히려 그 집단에게서 집단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를 당하는 일도 생깁니다. 남은 무리에게 이질감을 심어준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속된 말로 ‘그래 너 혼자 잘났다,’ 싶으니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 분노합니다. 그리고 그 분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구 밖으로 도망가서라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끈질기게 쫓아다닙니다. 이런 경우 개과천선이 말은 좋아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환경이 따라주지 아니하면 공염불이 되기 쉽습니다. 목숨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10년 세월, 세상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 더구나 20세기의 십년과 21세기의 십년은 변화속도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의식입니다. 옛날부터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의 소재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공감하고 감동하며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그 어떤 작품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즐겨하기도 합니다. 바로 복수심입니다. 피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은 쉽게 이겨낼 수 없습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당한 일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원망과 원한은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그리고 복수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못된 짓을 하다가 총격을 받고 죽습니다. 그야 죽을 짓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한 무리가 그런 의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제삼자의 과욕일지도 모릅니다. 당사자는 자신의 아비가 죽음을 당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비의 유업을 물려받아 악한 짓을 이어갑니다. 참으로 요지경인 세상이지요.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잘나가니 말입니다. 나라를 움직일 만큼 돈과 권력을 쥡니다. 그러니 경찰도 그들의 끄나풀일 뿐입니다. 십년 세월을 마음속에 칼을 갈며 준비해왔습니다. 가공할만한 무기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그에 따른 막강 군대(?)와 첨단 장비 등등 상상을 초월한 준비를 합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싶어 실행으로 옮깁니다. 복수를 위해.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되로 받고 말로 주는 복수입니다. 하기야 사람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라고 제한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그 이상으로 복수를 하려는 것이 사람의 심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악당 ‘단테’가 ‘돔’에게 복수하려는 것이 바로 이런 식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당한 그 이상의 고통을 너에게 안겨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돔의 가족이라 여기는 팀원들을 하나씩 제거하려 듭니다. 기막힌 궤계를 사용해서 팀을 분리시키고 그렇게 하여 각개 격파를 하려 합니다. 첨단장비에 막강한 군사력과 기막힌 계획에 의하여 돔이 계속 위기를 맞습니다. 과연 하나를 헤쳐 나가면 이어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좀 그럴듯하였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기상천외한 질주가 이어집니다. 이름 그대로 ‘분노의 질주’입니다. 이번이 열 번째입니다.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질주가 계속됩니다. 그러려니 하고 보는 것이지요. 회를 거듭할수록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자동차 질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복수도 악당의 끝장도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다음 회가 또 기다려집니다. 굉장한 볼거리로 끝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인류공통의 양념을 가미했으니 있을 법하지도 않은 공상을 희석시켜줍니다.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Fast X)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