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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향
4월9일 병원에 다녀오고 엄마는 얼굴 혈색도 조금 나아지셨고
다니시길 좋아하셔서 어디 갔다 오자고 하면많이 좋아 하셨었다.
올케가 시어머니께 맛있는 걸 사드린다고 모시고 오라해서 마석에 있는 오빠집으로 갔다.
막내동생과 함께,,,뭐 드시고 싶냐고 했더니 그냥 아무거나 하시길래,,
전에 맛있게 드셨던 찜갈비집으로 갔는데,,엄마는 갈비탕을 드신다고 하셔서
우리 모두 갈비탕을 먹고 오빠집으로 들어갔다.
2층이라 힘드실까봐 엄마께 여쭤봤더니힘들어도 올라가신다고,,,
아쉽게 오빠는 교육을 받으러 지방에 가고 없었다.
엄마는 아들을 많이 보고싶으셨을텐데,,커피와 과일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들에게 메세지를 보내셨는데오빠는 답장도 전화도 없었다..ㅠ.ㅠ.
4월14일엄마의 하나뿐인 여동생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이모아들하고 전날 약속을 했었다.이모도 건강이 안좋으셔서 수원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엄마랑 만난지가 2년정도 되셨었다.서로 사는게 바쁘다보니 자주 만나질 못했는데
지난번 연락이되어 이모를 만나러 가게 된것이다.남편에게도 같이 가자고 해서 동생이 집까지 와주었다.
오랫만에 만난 이모,,올해 75세인 이모..몸이 아픈 이모였지만 환한 미소는여전히 아름답고 이쁘셨다.
아프지만 않으시면 얼마나 좋으실까,그래도 아들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같이 간 둘째아들이 살갑게 하는걸 보니 마음이 좋았다.
이모를 모시고 나와 고기집으로 모시고 가서 갈비살하고 안창살을사서 구어드렸더니
엄마와 이모는 맛있게 잘 드셔서 모두의 마음이좋았다..냉면도 시켜서 드렸더니 잘 잡수셨다.
남편이 대접을 해드려서 나는 더 좋았고 감사했다.
엄마와 며느리의 만남이 엄마와 이모의 만남이 마지막일거라곤 조금도 생각을 못했으니,,
4월23일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서둘렀다.
막내동생에게도 병원으로 오라고 했더니 일찍 서둘러서 왔다.
의사를 만나고 나오면 늘 뭔가가 막힌듯,,,골수검사를 해서 자세한 병명을 알고
치료를 하자는 의사의 말에 골수검사를 받으러 입원을 하게 되면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싫다하시고 24시간을 간병을 해야하는데
간병인을 부칠 형편도 안되고,,혈액암인건 확실하시니 수혈받으시면서,,
여기저기 구경도 하시면서,,맛있는것도 드시면서,,
조금 몸을 추스리시면 검사받으시기도 좋을거 같다는 엄마와 가족들의 의견였는데,,,
혈액종양내과에서 진찰을 받고 이번엔 5월2일 수혈받으시러 올것을 예약을 하고
소화기내과예약이 내일였는데 오후에 진료를 받기로 했다.밖으로 나가니 비도 내리고 있었다.
엄마께점심은 뭐 드시겠어요~했더니 냉면을 드시겠단다.
막내동생과 아는 집으로 가서 냉면을 드셨다.
점심을 먹는 동안 둘째동생이 전화를 해서 엄마랑 통화도 했었다.
다시 병원으로 와서 호흡기 내과와 소화기내과에서 진료를 받으셨는데
별다른 처방은 내리지 않고 약만 받아 집으로 왔다.
동생은 집으로 갔고 엄마는 내일 30여년을 운동을 하셨던
잠실YMCA배드맨턴을 같이 하셨던분들이 우리집으로 오신다고 하셔서
마음이 좋으셨던지 저녁을 드시고 일찍 주무셨다.
나도 엄마 옆에서 티비를 보면서 컴에서 음악도 들으면서 밤1시까지 있었다.
엄마를 집에 모시고 부터 난 거실에서 잠을 잔다.엄마가 잘 주무시길래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데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얼른 가보니,,,,
엄마는 속옷을 갈아 입으시다가 넘어져 계셨다.
난 놀래서 엄마~이밤중에 속옷은 왜 갈아입으시느라,,
엄마는 일으켜줘,,난 혼자서는 안되길래 아들을 불러서 침대에 눕혀드렸다.
물도 드리고 속옷도 마져 입혀드렸다.잠시후 엄마는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시길래
나를 붙잡게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셨다.
엄마가 나를 부른 시간은 1시30분경,,,화장실까지 갔다온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었다.
이때까진 엄마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그런데 엄마는 숨이 차고 눈동자에 촛점이 없어지고
내가 불러도 대답을 못하셨다.난 놀래서 엄마~정신차리세요,,,
남편에게 뛰어가 엄마 좀 봐요...
남편은 얼른 119를 불러,,,
예전에 시어머님도 몇번 불렀던 경험이 있었기에 차분하게 119를 부르고
엄마를 불러봤지만 엄마는대답을 한번도 못하셨다.
119는 10분만에 와서 엄마를 태우고 가는데 내가 옆에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오빠에게 동생들에게 연락을 했다.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와 긴급수혈도 했지만 당직의사는 준비하라고 한다.
2013년 4월24일 6시4분에 엄마는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새벽에 놀래서 오빠부부,둘째동생부부,막내동생부부는 달려왔지만
엄마는 이미,,,,,말한마디 못하시고 멀리 멀리 가셨다.
오빠는 담주에 엄마를 뵈러 오려고 했다고,,
그립던 아들얼굴을 못보시고 엄마는 그렇게 가셨다..ㅠ,ㅠ,
둘째동생에게도 엄마랑 하룻밤이라도 와서 자고 가라고 야단을 쳤었는데
이번주에 와서 자고 가야지 했다고 하지만
엄마는 기다려주질 않으셨다.
엄마를 잘 모시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엄마는 기다려주질 않으셨다.엄마가 아프셔서 짜증내실때 덩달아 짜증을 냈던 일도 너무나 죄송했다.
엄마가 넘어지셨을때 얼른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못한것도 너무나 죄송했다.
더 잘해드려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게 너무나 아쉽고 죄송했다.
79세로 어렵고 힘들었던 세월속에서도 육남매를 키우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잠시 아프셨던 엄마를 귀찬아했던 일들이 마음에 사무친다.
그래도 가시고 싶었던 곳,,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좋아하셨던엄마,,,
힘들었던 세월들 다 잊으시고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래요.
엄마를 모두 모두 그리워할거여요...엄마...사랑해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달려온 울 오남매.. 엄마의 마지막을 이렇게 볼 수 밖에 없는...
울 오남매...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도 못 듣고, 엄마의 마지막 눈길도 못 보고
우리는 엄마를 보내드려야만 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빠와 우리 모두 엄마를 보내드린 시간은 새벽 6시4분...
을지병원 응급실에서 엄마는 79세를 일기로 험난하고 고생스럽고 큰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마음은 쉽게 누그러 지지 않으셨던지... 소리없이 아프셨나 보다.
우리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늘 씩씩하신줄만 알았던 엄마...
그 아팟던 마음을 자식을 키워 조금은 알았었지만 엄마는 늘 건강하신줄만 알았다.
어쨋던 엄마를 편하게 모셔야겠다는 남매들의 의견에 을지병원 장례식장보다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이 오시는 분들도 좋을것 같기에 옮기기로 했다.
오빠와 동생들은 8시가 다 되어 엄마를 모시고 신촌으로 갔다
나는 잠깐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잠시지만 계셨던 방으로 들어오니 눈물이 하염없이...
한바탕 실컷 울고는 짐을 챙겨차를 가지고 그 복잡한 신촌으로 가는데 의외로 잘 찾아갔다.
오빠랑 제부가 일처리를 잘하고 있었고 막내동생이 친척들에게 알리고
천주교 다니는 동생이 상조회를 불러모든 일들을 잘 하고 있었다.
필리핀에 있는 동생도 저녁비행기로온다는 소식이 왔다.
낮부터 많은 조문객들이 다니러 오셨는데 너무나 갑작스런일에 모두 놀라셨다.
체육관에서도 오셨는데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너무 슬퍼하셨다.
그래도 고생안하시고 가셨으니 다행이시라고 위로를 해주시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분들이 다녀가셔서 엄마 가시는길은 외롭고 쓸쓸하진 않으셨을거 같다.
마침 수요일이고 발인은 금요일이니 신부님인 오빠땜에많은 신부님들이 모두 다녀가셨다.
대한성공회김성주주교님께서도 다녀가셨고.. 그렇게 하루종일 손님들의 인사를 받으니
어느새 밤 12시...전날 밤을 새고도 졸립지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자야한다고 온 가족들의 말에 쉬기로 하고
내일은 조문객들이 더 많을거 같다고 특실로 옮기자는 의견이 나와 그러자고 하고 모두들 쉬었다.
다음날,,,,아침예배를 보고 의자가 있는 특실로 옮겼더니 너무 좋았다.
엄마도 많이 좋아하셨을거 같았다.
화사한 봄날,,,많은 꽃들이 핀 아름다운 계절에 엄마는 꽃속에서가셨다.
입관을 할때 본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하셨다.
오빠의 기도가 끝나고 모두 마지막 인사들을 하면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17년전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6년전 외할머니를 보내드리고,,5년전 시어머님을 보내드리고,,
2년전 언니를 보내고,,오늘 엄마를 보내드려야만 했다.
50여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족을 보내는것이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될거 같다.
그냥 슬퍼해야겠다.그냥 눈물이 나면 울어야겠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생각보다 엄청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가셨다.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갔다.
새벽 6시30분에 예배를 봐야해서 난, 막내동생과 막내동생친구들과 밤을 지새며엄마의 곁을 지켜드렸다.
신부님하고 예배를 드리러 오신분들이 시간을 맞춰오셨다.엄마를 리무진으로 모시고 벽제를 향했다.
벽제는 난 두번째 갔는데 많이 달라져있었다.엄마께 마지막인사를 하고
우리는 가족대기실로 가서기다렸다. 2시간만에 엄마는,,,,,
버스를 타니 엄마를 늘 모시고 다녔던 막내동생이 살고 있는구파발을 지나 연신내도로로 가고 있었다.
엄마생각이 더 많이 났다.시청앞까지 무사히 오니 10시30분,,,
엄마는 아들이 근무했던 성당을 다 찾아다니셨는데
지금은 마석에서 근무중이라 다니시기가 힘드셔서 대성당으로 가셔서 예배만드리고 조용히 말없이
누가 볼새라 다녀가셨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모두들 흐느끼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엄마를 안식의 집으로 모셨다.아늑하고 너무나 경건해보이는 곳,,,
여기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줄은,,,사실 오빠가 성공회신부님이라고 해도
시댁을 따라가야하니 천주교에 다니는 동생이 둘이고 난 남편이랑 절에,,
막내동생은 무교,,신부오빠에겐 많이 미안한 일이지만오빠는 강요한번 하지 않았다...
시댁에 맞춰서 다니라고,,
엄마를 안식의 집으로 잘 모셔놓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시내라 자주 찾아 온다는 말과 함께,,,,
엄마,,이젠 편하시죠~^^ 꿈에 그 어떤 자식들에게 나타나지 않은 울엄마.
꿈에서라도 한번 나오시지 않구요..꿈에서라도 한번만나고싶어요.....
엄마... 엄마~~하고 불러도 그래,,왜,,엄마의 깔끔한 대답...이젠 들을수가 없겠지요?
엄마를 위해 다녀가신 많은분들께~저와 함께 슬픔을 같이 해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어머님께서 작별인사도 없이 밤에 몇시간 사이에
갑짜기 가셔서 천리향님과 가족들의 슬픔이 더 커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