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에 걸린 노을
윤애자
몸살이라도 나신 걸까. 점심은 드셨냐는 전화에 어머니 목소리가 갈라진다. 당신은 괜찮다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컨디션을 짐작할 만큼 나도 이제는 반 도사가 되었다. 홀로 계시는 팔순 노모의 밤이 길고도 길 성싶다. 몸살약과 호박죽을 준비해 해거름에 친정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와 성북교에서 좌회전을 하면 바로 신천대로다. 곧장 이삼십 분 달리면 친정동네가 나온다. 북대구IC를 지날 즈음이면 시야가 트이고 바람결이 확연히 다르다. 이래서 강 건너 사는 친구는 여름에 에어컨 없이도 산다고 했나보다. 금방이라도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석양, 역광을 받아 다홍색으로 반짝이는 금호강,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끝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팔달교가 가까워지자 하늘을 찌를 듯한 크레인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친정을 오가며 수시로 마주치는 광경이다. 도시철도 3호선과 4대강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수륙공중전을 방불케 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강의 몸부림이 요란하다. 그런가 하면 거대한 콘크리트 빔 위로 정거장이 생기고 전철이 다닐 괘도가 형체를 드러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잖아 모노레일을 타고 도시를 횡단할 수 있다니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개발의 바람은 조용하던 시골까지 불어닥쳐 친정마을도 몸살을 앓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보호막이 설치되고 수시로 바뀌는 임시 진입로는 갈 때마다 사람을 긴장케 한다. 이맘때면 코스모스가 피어 가을 정취를 더해주던 마을길도 덤프트럭이 오가는 삭막한 풍경으로 변했다. 사정은 마을 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목이 좋은 대로변은 외지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큰길을 따라 상가와 가내 공장이 자리 잡으면서 낯선 동네에 들어선 느낌이다.
개발은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도 한다. 마을의 외형뿐 아니라 정붙이고 살던 이웃과의 관계도 소원하게 한다. 개발붐을 타고 외지 사람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정작 대를 이으며 마을을 지키고 살아온 토박이들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친정집 주변은 안노인 홀로 생활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환경도 사람도 노후되어 바람 불면 꺼질 듯 불안하다. 혼자 사는 어른들이 많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대문이 열렸는지부터 확인한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울컥해진다.
지난봄에 마을회관에 딸려있던 경로당이 시야가 탁 트인 언덕으로 이전했다. 우리가 어릴 때 뛰어놀던 야산으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청년회에서 뜻을 모아 전망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건물도 새로 지었다. 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로당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하던 어머니의 발길도 뜸해진 지 오래다.
지나가는 바람소리에도 귀를 세우시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기척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드셨나 보다. 머리맡에 쌓인 약봉지와 파스, 몇 개의 연고와 리모컨이 당신에겐 더 절실해 보인다. 어머니의 긴 하루가 크레인에 걸린 노을처럼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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