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강의였습니다. 개인적 사정이 있어 뒤풀이 참석은 못했지만, 유쾌했던 기록을 남기고자 간만에 자판을 두드립니다.
1. 창의, 마음을 읽는 것
국내 영화 시장은 1년 총 관객이 2억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어벤저스 제작진이 해적판 우려 때문에 전 세계 동시상영을 원칙으로 하던 관례를 깨고 한국 상영만 1주일 이상 앞당긴 것은 한국의 영화시장 규모가 커서 수입 배급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배급사가 영화개봉 시기를 앞당긴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시기가 중·고교 중간고사 직후(4월말·5월초, 10월말·11월초)라는 점에 기인한다.
한국 관객들은 지적으로 포장된 오락 영화에 관심이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쪽박 난 인터스텔라가 한국에서는 대박을 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은 지적 호기심, 또는 지적 열등감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흥행 영화의 최고 보증수표 최동훈 감독은 화장실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독서광(지식 수집가?)이다.
천만 관객 영화를 중심으로 봤을 때 한국 관객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는 사회적 약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억울함에 대한 감정이입(共感)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율에도 소수 의식, 억울함과 관계된 정서가 깔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동안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들은 주인공이 1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 multi-top 캐스팅이 일반적. 그런데 억울함의 최고봉인 이순신을 다룬 “명량”은 one-top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대박을 쳤다. 최초에는 multi-top으로 기획되었으나 감독의 역사적 양심 때문에 주인공이 한 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 창의, 도전하는 것
이준익 감독은 진정한 예술가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여기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자”라 했다고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실행)하는 것이 예술가의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한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흥행 당시 장동건은 최고의 캐스팅 대상이었고, 원빈은 충무로에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드라마 배우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캐스팅 우선 순위는 완전히 바뀌었다. 장동건은 성공 경험 있는 감독이 만드는 안전한(?) 영화를 선호했고, 원빈은 자신에게 맞는 시나리오라면 실패한 감독이라도 개의치 않고 도전했다.
세계적 영화감독들도 안전하고 알려진 길을 간 사람들이 아니다. 매드맥스를 만든 조지밀러 감독은 외과의사를 하다 그만두고 영화계에 입문해 1979년에 "매드맥스“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최근에 만든 그의 걸작 ”매드맥스 : 분노의 질주“는 지구 멸망 이후의 냉혹한 생존을 다룬,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걸 만들 수 없다는, 참으로 스팩터클한 영화인데, 매드맥스 이전에 만든 그의 영화는 따뜻한 가족 애니메이션 ”해피피트 2“였다. 그는 ”진정한 거장은 죽는 순간까지도 정리되지 않는 자“(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임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아바타 이전에도 3D 영화는 있었다. 3D 기술은 아바타보다 더 극적이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반면,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룬 감독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입체영화의 본질이 “입체를 줄이는” 것이라는 도전을 감행했다. 즉, “입체”영화의 테크닉보다는 “영화”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3. 창의, 마음을 얻는 것
영화의 명대사들은 관객의 강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오래 기억된다. “원래..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에겐 모른척하고 싶어져”(아저씨),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소.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관상), “여자에게 첫사랑은 처음 사랑한 남자가 아니라 지금 사랑하는 남자의 첫 모습이야”(나의 사랑 나의 신부).
명대사들은 대부분 쉽고 짧다. 그리고 창의적이다. “I love you"라는 흔한 말은 영화에서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You complete me"(제리 맥과이어)라는 말로 관객의 공감을 얻어 유행어로 발전했다. 그러나 명대사는 단순히 말장난(비틀기)을 넘어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진정성은 소재(text)가 아니라 맥락(context)에서 나온다. 많은 연인들의 입을 거치면서 식상해 진 ”You complete me"라는 표현은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맹목적 악행 동기를 가진 최고의 악당 조커가 배트맨에게 ”You complete me"라 내뱉으면서 다시 명대사로 부활했다.
4. 에필로그
강의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단어로서, 영어로 번역할 수 없는 모순가득한 단어 “연기파 배우”라는 말을 칠판에 적었다. 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생긴 단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그 이외의 것(외모, 성장환경, 학력, 가수겸업 등)에 주목하는, 또는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에 열광하는 한국 관객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말로까지 들렸다. 하지만, 천만 이상의 한국 관객들이 열광한 영화를 대상으로 “창의”성에 대해 강의한 만큼 더 이상의 깊은 설명은 이어가지 않았다. 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복잡한 생각은 접었다.
첫댓글 (엄마와 와이프가 좋아하는) 막장 드라마가 "연기파 배우"들에 의해 빛나는 모순, 시청자 탓인가? 드라마와 영화는 다른가? 이걸 못 물어본 게 좀 아쉬웠음..
주백~ you complete me~^^
강의를 다시 듣는 기분~~~
어찌 이렇게 강의 정리를 잘해서 듣는 것 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오게 하시는지
이것이 글의 마력인가요???
한정리 하시는 고주백님 감사~~~
우와, 정말 정리 잘 하셨어요. 옆에 앉아서 보니 메모두 많이 안하는 것 같던데...ㅎㅎ
오늘 윗분께 깨지고 우울했는데 힘을 주셔서 감사...you complete me...
흑
녹음을 하신걸까? 대단~~
제가 웬만해선 이 말씀 안 드리려 했는데, 슬프네요...
저 엄청 악필이고 필기 많이 했습니다.
You uncomplete me.. ㅠ ㅠ
@고주백 ㅋㅋ 나 이런 사람이야(요)~~